1번 짝. 한경택 교수 & 김강태 교수의 성악 무대
화음1. 아버지와 큰아들
1978년 서울대학교 방문 교수와 학부생으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40년을 훌쩍 넘긴 인연답게, 서로에게 어떤 존재냐고 묻는 질문에 ‘가족’이라는 같은 답을 했다. 김 교수는 스승님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마음이 벅찬, 아버지 같은 분’, 한 교수는 제자를 ‘자랑스러운 큰아들 같은 제자’라고 한 것이다. 김 교수는 미국에 방문할 기회만 있으면 미국에 사는 스승을 찾아 뵙고 안부 인사를 드리고, 한 교수는 내일 한국으로 떠나야하는 김 교수의 손에 과일 한 박스라도 들려서 보낸다. 그야말로 아버지와 아들 같은 깊은 정이 느껴지는 사제관계라 할 수 있다.
화음2 자랑하고픈 한국인 수학자
김 교수는 “수학에도 사대주의가 뿌리 깊다”며, “학생들은 존경하는 수학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외국인 이름만 말하는데, 존경할 만한 한국인 수학자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중 한 분이 한 교수다. 한 교수 역시 “김강태 군이 초석이 돼서 한국 수학이 더 발전하고 수학자를 꿈꾸는 한국 학생들이 더 많이 생겨난다면 더 바랄 게 없다”며 제자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드러냈다.
2번 짝. 이혜숙 교수 & 최영주 교수의 재즈 무대
스캣1. 내가 가는 그곳이 길이다
1970년대 말은 여성이 수학을 공부하는 것까지는 크게 어려움이 없었지만 교수가 되는 등의 경력을 쌓기에는 여전히 척박했다. 이 교수는 이런 환경에서 제자들과 후배들이 막히지 않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활동했다. 여성 수학자들을 모아 이화여대에서 최초로 한국 여성 수학자 학술대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경력 단절 여성 수학자를 지원하고 여성 과학자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길을 개척했다.
최 교수는 이런 스승의 희생으로 혜택을 봤다고 말했지만, 이 교수는 오히려 최 교수가 세계적인 석학과 협업하고 프로젝트를 선두에서 이끄는 점이나 여성 수학자 최초로 대한수학회 학술상을 받은 점을 들며 새로 수학계에 진입하는 여성들에게 역할 모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서로에게 공을 미루기 바쁜 두 수학자는 ‘KTX를 타고 가면서 봐도’ 한국 수학계의 여성 선구자 사제간이 분명해 보였다.
스캣2. 지금도 우리는 ‘ing’
얼마를 주기로 연락을 주고받냐는 질문에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요즘은 카톡이 있어서 자주 하지요”라고 답하는 이 교수의 모습에서 어리석은 질문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수학자의 교류는 1년에 한 번 연락할까 말까 한 ‘추억의 사제지간’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항상 가까이 계시고 언제나 의논할 수 있는 분”이라며, “선생님이 쉬지 않고 끊임없이 후배들과 제자들을 위해 활동하시니 게으름을 부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최 교수가 저보다 현장감이 좋을 수도 있고 요즘의 도전과제를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이슈를 자주 묻는다”며, 서로가 좋은 의논 상대이자 조력자라고 밝혔다.
국제활동을 활발히 하는 최 교수가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얻으면 먼저 이 교수에게 말해 주기도 하고 이 교수가 묻기도 한다. 현장에서의 문제를 놓칠까 봐 제자와 긴밀하게 교류하는 모습과, 그런 스승의 모습에서 ‘청출어람’ 하여 이 교수가 “존경하는 제자”라고 부르는 수학자가 된 최 교수의 모습이 지금도 힘차게 역동하고 있었다.
3번 짝. 구교석 장학사 & 박원택 교사의 힙합 무대
비트1. 우리보다 인연이 두터울 리 없G!
구 장학사와 박 교사의 인연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한층 더 특별하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담임과 제자이자 같은 대학에서 공부한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꿈이었다는 박 교사는 담임 선생님이었던 구 장학사를 보며 ‘저런 교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수학 선생님을 꿈꾸는 박 교사를 위해 구 장학사는 따로 학습능력에 맞는 문제들을 찾아서 풀게 하고 수업 시간 외에도 수학을 가르쳐줬다.
“어려운 문제가 정말 많았어서 ‘설마 선생님도 이건 못 푸시겠지?’ 생각하고 질문하러 가면 한 번도 막힘없이 다 가르쳐 주시곤 했다”며, 자신이 자만하지 않게 이끌어 준 구 장학사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박 교사는 말했다. 그렇게 입학한 대학에서도 구 장학사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수학이 너무 어려워서 군대로 도피했던 박 교사는 학과에 전설처럼 남아있는 구 장학사의 일화들을 들으며 ‘나도 부끄럽지 않게 하는 데까지 해봐야겠다’고 마음을 잡았다고 한다. 게다가 당시 대학원에 구 장학사가 다니고 있어서 강의가 끝나면 종종 같이 밥을 먹기도 했다.
비트2. 추억이 너무 많아!
3년 동안 수학 교과 담임이자 1년 담임 선생님이었던 덕분에 두 사람 사이엔 추억이 많았다. 박 교사는 특히 기억나는 일로 구 장학사의 딸이 태어났을 때 학급회의로 이름을 지었던 것을 꼽았다. ‘덕이’, ‘석기’ 같은 이름만 잔뜩 나오는 바람에 후보를 추리고 추려 보고했음에도 결국 이름은 채택되지 않았다. 구 장학사는 이름 목록을 보고 피식 웃더니 장난스럽게 불호령을 내렸다고 한다.
이날에 대해 구 장학사는 “딸이 너무 귀여워서 체신이 없었던 모양”이라고 웃으며, “하지만 정말 아이들이 정해준 이름으로 지으려고 했었다”고 장난스러운 결과물에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선생님이 되고도 자주 만나는 두 사람은 비교적 최근의 추억도 전했는데, 박 교사는 2012년 12월 31일 갑자기 구 장학사가 대구 비슬산 종주를 가자고 불러냈던 일을 떠올리며 “영문도 모르고 일단 따라갔다”며, “갑자기 취소된 약속이 있으셨던 거 같다”고 했지만, 구 장학사는 그날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고단한 시간을 말없이 함께 걷는 경험은 굉장히 특별해요. 우리는 같은 수학 교사고, 같은 학교에서 공부했고, 같이 대구에 사는 등 이미 많은 것을 함께하고 있어요. 제가 교사로서 경험했던 힘든 일들을 원택이도 겪게 될 가능성이 크죠. 그때 이런 기억들이 힘이 되어 외롭지 않고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고 느끼길 바랐어요.”
부모의 마음을 모르듯 스승의 마음을 헤아리려면 끝이 없나 보다.
비트3. 디스전 말고 자랑전 수웨그!
박 교사는 스승을 ‘걸리버’라고 표현하며, “소설 ‘걸리버 여행기’를 보면 걸리버가 소인국에 갔을 때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소인들을 보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평소엔 엄격하고 무섭지만 늘 학생 편에 서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걸리버 같았다”고 말했다. 구 장학사는 이 말을 전해 듣고 “걸리면 큰일 난다는 뜻이었을 수도 있다”며 껄껄 웃더니 “원택이는 참 밝고 똑똑한 아이였고, 실장이고 선생님과 친하고 하면 다른 친구들에 밉보일 수도 있는데 그런 것 없이 참 성격이 좋았던 학생”이라고 말했다. 또 “선생님이 된 뒤로도 계속 노력하고 시도하는 모습이 대견하다”고 칭찬하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잘 읽고 부단히 연구하여 두 세대를 연결하는 훌륭한 교사가 되길 바란다”고, 스승다운 애정 어린 가르침의 말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