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토피아에서 달리기 시합을 하면 어떨까. 공정성을 위한 규칙이 없다면 뻔하다. 토끼는 치타를 이길 수 없다. 시합이 재밌으려면 토끼도 금메달을 딸 수 있게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장애인 스포츠를 위한 이런 규칙을 수학이 만들었다. 놀랍게도 이 규칙만 있다면 비장애인과 함께 순위를 겨루는 것도 헛된 상상이 아니다.
우리는 ‘장애인’이라 뭉뚱그려 부르지만, 장애의 모습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같은 하반신 절단 장애인도 한쪽 발목이 없는 사람, 한쪽 종아리가 없는 사람, 두 다리가 없는 사람 등 종류가 무한에 가깝다. 그래서 공정한 규칙을 찾는 건 중요한 숙제다.
공정함을 위해 패럴림픽은 몸을 사용할 수 있는 정도가 비슷한 사람끼리 따로 경기한다. 스키의 좌식, 입식, 시각장애 부문이 그렇다. 같은 좌식 부문에 참가하는 선수도 저마다 장애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불리한 신체 기능을 지닌 선수에게 이익을 주는 점수 제도도 마련했다. 바둑이 급수가 낮은 사람에게 돌을 몇 개 먼저 올리도록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크로스컨트리 스키 시각장애 부문의 예를 보자. 모든 선수는 위 분류 중 하나에 속한다. 만약 B2에 속한 ‘김우현(가명)’이라는 선수가 50분 만에 코스를 완주했다면 최종 기록은 아래 환산 기록 공식으로 구한다. 눈 손상이 심할수록 환산 계수가 작으므로 기록이 크게 앞당겨진다.
환산 계수는 과거 대회 기록과 의학 전문가의 의견을 변수로 두고 만든 공식으로 구한다. 이 공식은 여러 수학자의 도움을 받아 주최 측이 계속해서 수정한다. 이에 따라 B2인 김우현 선수도 노력하면 자기보다 시력이 좋은 선수를 이길 수 있다. 아래 전광판처럼 말이다.
수학자가 내건 더 공정한 규칙
2011년 새로운 규칙을 제안하는 논문이 미국 응용수학연구소 ‘경영수학’지에 실렸다. 저자는 환산 계수를 구하는 공식에 조언을 해온 데이비드퍼시 영국 샐퍼드대학교 수학과 교수다. 퍼시 교수는 알파인 스키에서 환산 기록을 구하는 방법이 공정한지 검토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논문을 썼다. 핵심 문제는 환산 계수가 과거 대회 결과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었다.
과거 결과를 이용하면 장비의 발전과 현재 경기장 상태를 반영할 수 없다. 스키는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눈 상태와 산 모양, 날씨 같은 조건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이는 특정 장애 유형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국제패럴림픽위원회는 매번 환산 계수 산출 공식을 약간씩 수정 하는데, 이때 주관적인 의견이 들어갈 위험이 있다.
이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기 위해 퍼시 교수는 현재 결과만을 이용하자고 주장했다. 아래 식처럼 환산 계수를 구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중앙값’이란 수를 크기에 따라 차례로 놓았을 때 중앙에 있는 수를 말한다. 예를 들어 1, 2, 100의 평균값은 103/3 이지만 중앙 값은 2다. 만약 1, 2, 3, 100처럼 중앙에 수가 2개 있다면 중앙값은 둘의 평균인 (2+3)/2이다.
평균값 대신 중앙값을 쓰는 건 어떤 선수가 경기를 포기하면 해당 등급의 평균 기록이 지나치게 길게 나오기 때문이다. 환산 계수를 낮추려고 다른 선수와 짜는 속임수를 막으려는 의도도 있다. 위 공식대로라면, B2 선수들이 낸 기록의 중앙값이 가장 성적이 좋은 B3의 중앙값보다 2배 느렸다면 김우현 선수는 자기 기록에 1/2을 곱하는 이익을 받는다.
퍼시 교수의 공식도 한계가 있다. 참가 선수가 적으면 중앙값이 등급의 특성을 충분히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퍼시 교수는 통계 기법 중 하나인 ‘축소방법’을 사용한다. 모든 선수의 완주 기록을 사용해 환산 계수를 보정하는 방법이다. 퍼시 교수는 2013년, 참가 선수가 적을 때 생기는 문제를 축소방법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해 같은 학술지에 실었다.
올림픽과 패럴림픽을 합친다면?
2016년, 퍼시 교수는 응용수학연구소 웹진에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크로스컨트리 스키에서 좌식과 입식, 시각장애 부문을 통합해 한꺼번에 경기를 하자는 것이다. 경기 부문을 잘게 쪼개면 메달 경쟁률이 들쑥날쑥하다. 실제로 리우 하계 패럴림픽의 100m 남자 달리기는 메달이 걸린 부문이 16개나 되는 반면, 뇌성마비 선수가 나갈 수 있는 장거리 달리기 경기는 없었다.
원래 방식으로는 여러 부문을 합칠 수 없다. 과거에 경기가 열린 횟수와 규칙이 부문마다 달라 환산 계수 산출 공식도 다르기 때문이다. 반면 퍼시 교수의 공식은 현재 결과만 쓰므로 이런 문제가 없다. 게다가 장애 형태로 나눈 경기 부문만이 아니라 비장애인과의 구분도 없앨 수 있다.
퍼시 교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경쟁해도 공정할 수 있다는 논문을 써서 심사를 받고 있다. 퍼시 교수는 수학동아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연구목표가 “누구도 스포츠에서 배제하지 않고 다양성을 늘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경기를 한다는 게 생소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영국과 유럽에서는 이런 주장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 패럴림픽을 따로 열어 장애인을 배제하는 게 차별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영연방* 소속 국가들의 종합스포츠대회인 ‘커먼웰스 게임즈’는 영국 맨체스터에서 열린 2002년 대회에서 비장애인 선수를 경기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영연방★ 영국 연방의 줄임말로,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만든 국제 기구다.
퍼시 교수는 아직 자신의 방법을 국제패럴림픽위원회에 공식적으로 제안하지 않았다. 현실에 적용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퍼시 교수는 “나의 제안으로 어떤 경기가 어떤 이익을 얻는지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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