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가 흐리게 보인다고 해서 전부 장애인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안경으로 시력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보조 기구만 있으면 낮은 시력도 장애가 아닌 것처럼, 장애인 선수도 자기에게 맞는 장비만 있으면 장애는 장애가 아니다. 동계와 하계 패럴림픽의 갖가지 종목에서 쓰는 휠체어와 의족을 소개한다.
하계 패럴림픽 종목인 휠체어 럭비는 미국에서 ‘머더볼’이라 불린다. 살해를 뜻하는 ‘murder’를 붙여 다소 끔찍한 이름을 지은 이유는 휠체어 럭비가 그만큼 거칠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휠체어를 날렵하게 조작하며 시시때때로 상대방과 충돌한다.
이처럼 움직임이 많은 럭비와 농구, 테니스는 위 왼쪽처럼 생긴 휠체어를 쓴다. 바퀴를 A자 모양으로 기울여 아랫부분 사이를 벌렸다. 의자의 높이도 낮다. 물리학에서는 물체의 움직임을 간단히 설명하기 위해 질량이 한 점에 모여 있어 모든 중력이 그 점에만 작용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를 ‘질량중심’이라 한다. 의자가 낮으면 질량이 아래쪽에 모여 질량중심도 낮아진다.
농구용 휠체어를 타면 옆으로 쉽게 넘어지지 않는다. 상대 선수가 왼쪽에서 달려와 내 휠체어와 부딪친다고 생각해보자. 휠체어는 아래 그림처럼 중심점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질량중심이 중심점에서 지면과 수직하는 직선을 벗어나지 않으면, 휠체어는 오뚜기처럼 제자리로 돌아온다. 무게중심이 낮고 아랫변이 긴 농구용 휠체어는 최대로 기울어질 수 있는 각도가 컬링용보다 크다.
A자 모양 바퀴는 방향을 바꾸는 것도 쉽다. 이는 민첩하게 움직여야 하는 농구와 럭비에는 유용하지만 정확성과 안정감이 중요한 컬링에는 쓸모가 없다. 그래서 컬링용 휠체어는 일상용과 비슷하게 생겼다. 컬링 선수들은 취향에 따라 몸을 지지하는 막대를 휠체어에 설치하기도 한다.
경기력 높이는 맞춤형 휠체어
피겨 스케이팅의 김연아 전 선수는 스케이트화 때문에 운동을 그만두려 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맞춤형으로 피겨 신발을 만드는 회사가 한국에 없어 발에 맞지 않은 것을 신다 자주 다쳤기 때문이다. 이런 맞춤형 장비는 장애인 선수에게 더욱 중요하다. 똑같이 휠체어를 타더라도 척수가 손상된 선수는 몸이 앞으로 기우는 등 선수마다 자세와 체형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우리나라 컬링 국가대표팀은 이번 대회를 계기로 자기 몸에 맞는 휠체어 의자를 쓰게 됐다. 자신도 휠체어를 타는 김종배 연세대학교 작업치료학과 교수팀이 3D 스캐너 기술로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3D 스캐너는 물체에 쏜 레이저 빛이 반사되어 돌아오는 시간으로 물체의 표면을 이루는 수많은 점의 위치를 인식한 뒤, xyz 좌표에 물체의 모형을 가상으로 그린다.
체형을 완벽히 본뜨는 게 끝이 아니다. 휠체어를 오래 타면 꼬리뼈처럼 툭 튀어나온 부위가 눌려 욕창이라는 병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이 받는 압력을 분산시키도록 모형을 수정하는 ‘오프로딩 기술’이 필요하다. 교수팀은 오프로딩 기술까지 적용한 맞춤형 의자를 휠체어 국가대표팀 전원에게 제공했다.
의족도 용도에 따라 다르다
휠체어와 함께 패럴림픽에서 흔히 보이는 장비는 의족이다. 특히 왼쪽의 조니 피콕이 가진 100m 달리기 기록이 10초 81에 달할 만큼 달리기용 의족은 성능이 좋다. 무릎이 없는 선수들은 달리기용 의족을 찬 채 허벅지를 앞뒤로 흔드는 운동만 한다.
의족을 차고 달릴 때 허벅지를 뒤로 미는 순간, 의족도 뒤로 움직인다. 원래라면 운동 상태를 유지하려는 관성에 따라 허벅지가 멈춰도 의족은 계속 뒤로 가야 한다. 그렇게 엉덩이까지 닿으면 사용자는 의족이 바닥에 돌아오지 않은 것도 모른 채 반대쪽 발을 뗐다가 넘어지고 말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무릎에 기름의 압력을 이용하는 유압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17세기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이 발견한 파스칼의 원리를 이용해 의족이 적절한 각도에서 멈추게 한다. 어떤 유체★에 압력을 주면 그 압력은 유체의 모든 곳에 똑같은 크기로 전달된다. 허벅지와 함께 움직이는 피스톤이 의족 무릎 속 기름을 밀면, 압력이 제동 장치까지 전달돼 의족의 속도를 서서히 줄인다.
유체★ 기체와 액체를 통틀어 이르는 말. 기체와 액체는 고체와 달리 흐르는 성질이 있어 ‘유체’라는 이름으로 묶는다.
스키·스노보드용 의족에는 이런 장치가 발목에도 있다. 발목을 많이 꺾기 때문이다. 이런 스포츠용 의족은 물론이고 일상용 의족도 비싸다. 의족을 만드는 송창호 오토복코리아 차장은 “한국은 신체 장애인을 위한 보장구 지원이 적은 편”이라며, “지원을 확대해 장애인을 사회로 복귀시키는 게 결과적으로 사회 비용을 줄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 관람 전 주목!
우리 선수들, 어떻게 훈련하나
한국스포츠개발원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최근까지 비장애인 스포츠에만 집중하다 평창 동계 패럴림픽을 계기로 2017년부터 장애인팀을 돕기 시작한 것이다. 총 메달 4개, 종합순위 10위에 도전하는 선수단의 꿈도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김태완 한국스포츠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휠체어 컬링팀과 파라 아이스하키팀에서 영상 분석과 근전도 검사★를 도왔다.
근전도 검사★ 근육을 사용할 때 생기는 전기를 측정해 어떤 근육을 얼마나 쓰고 있는지 알아내는 검사. 스톤을 던질 때와 같은 동작에서 근전도 검사를 하면 근육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예로, 아이스하키 링크장의 얼음 상태에 따라 어떤 썰매 날을 쓰는 게 좋은지 알게 됐다. 파라 아이스하키 정승환 선수는 “회전은 얼마나 급하고 속도는 얼마나 빠른지 영상을 찍어 분석해줬다”며, “무른 얼음에선 직선 날이 좋고, 단단한 얼음에선 회전이 쉬운 둥근 날이 좋다”고 말했다.
개발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휠체어 컬링팀을 위한 훈련 장비를 만들고 있다. 스톤을 미는 선수와 스톤의 목적지인 하우스 사이에 왼쪽과 같은 장비를 놓는다. 스톤이 지나가야 하는 가이드 폭을 좁혀가며 투구를 연습하면 정확성을 높이는 압박훈련을 할 수 있다. 휠체어 컬링은 소위 ‘빗자루질’이 없기 때문에 스톤을 밀 때 정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스톤의 궤적과 속도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시스템도 있다. 센서를 스톤이 지나가는 길 옆에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한다. 스톤이 센서의 앞을 지나가면 센서는 시각을 기록한다. 각 센서 사이의 거리를 스톤이 지나간 시간으로 나누면 스톤의 속도를 알 수 있다. 센서가 측정한 정보는 선수와 코치가 스마트 글라스와 태블릿에서 바로 볼 수 있다.
아쉽게도 이들 훈련 장비는 테스트가 마무리되지 않아 지금은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나 김 선임 연구위원은 “이번 대회가 끝이 아니다”라며, “컬링 팀은 앞으로 이 장비로 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원은 올해부터 동계와 하계 장애인 스포츠에 담당 연구원을 공식적으로 배정할 계획이기도 하다. 장애인 스포츠 환경이 열악한 우리나라에서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까.
INTERVIEW
‘빙판의 메시’ 정승환 선수
러시아 전지훈련을 마치고 이제 막 돌아온 파라 아이스하키 정승환 선수를 2월 12일에 만났다. 201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MVP를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선수다. 스무살에 취미로 하키를 시작했다가 14년째 경기를 뛰고 있다.
이번 대회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선수로서 목표는 당연히 금메달이지만, 강호인 미국팀과 캐나다팀을 지금까지 이겨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일단 결승전 까지는 가려고요. 우리나라에서 경기가 열리는 데다, 올라갈수록 응원도 많을 것 같아서 미국팀이나 캐나다팀을 한 번 정도는 이기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요즘은 어떻게 연습을 하고 있나요?
오늘부터 인천에서 마무리 합숙을 시작해요. 장애인 스포츠 선수를 위한 이천 훈련원이 아쉽게도 아이스하키 링크장을 못 지어서 전국을 떠돌며 훈련을 하고 있죠. 이번에 메달을 따면 이천 훈련원에도 링크장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오토복코리아가 달리기용 의족을 후원했다고 들었어요.
제가 5살에 다친 이후로 달려본 적이 없어서 유산소 운동에 굉장히 약해요. 처음 하키를 시작했을 때도 2바퀴 이상을 못 돌았어요. 이제 유산소 운동을 하니까 숨도 덜 차는 것 같고요. 하키가 전신운동임에도 그동안엔 준비와 정리운동 때 상체만 움직였다면 지금은 하체운동도 할 수 있죠.
달리기용 의족을 차면 느낌이 어떤가요?
처음 쓰고선 SNS에 글을 올렸어요. 숨어 있던 세포가 살아나는 느낌이라고. 의족을 낀 오른쪽 다리는 스카이콩콩 같아요. 그 속도를 다루기 위해 왼쪽 다리가 버텨줘야 하죠. 잘 버틸수록 빨리 달릴 수 있어요. 처음엔 약간 위험하지만, 너무 재밌어서 무서운 줄도 모르겠더라고요.
이번 패럴림픽에서 바라는 게 있나요?
우리가 메달을 따서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길 바라고 있어요. 어린 장애인 친구들이 운동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어요. 저도 그랬죠. 섬에 살아서 장애인 스포츠가 뭔지도 몰랐으니까. 이게 많이 알려져서 장애인과 어울리며 운동을 즐기는 걸 부모님들도 허락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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