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3연패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첫 대국 결과는 예상을 뒤엎고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다.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예측했던 것과 다르게 경기는 팽팽하게 진행됐다. 알파고는 5개월 전 유럽 바둑 챔피언 판후이 5단과 대결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세돌 9단의 패배가 확실해지자 행사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침체된 분위기로 바뀌었다. 결국 이세돌 9단은 186수만에 돌을 던졌다★. 알파고를 만든 구글의 인공지능 개발사 ‘딥마인드’의 CEO 데미스 하사비스는 “우린 달에 착륙했다”는 말로 알파고의 승리를 자축했다.
행사장에서 해설을 맡았던 프로 바둑 기사 조혜연 9단은 “알파고가 만만치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정도로 잘 둘 줄은 몰랐다”며, 예상 외의 실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첫 대국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시작된 2국도 이세돌 9단의 패배였다. 알파고는 사람이 둘 수 없는 수를 놓으며 이세돌 9단을 혼란시켰다. 이것은 오랫동안 ‘정석’으로 여겨지던 수들을 깬 발상이었다. 프로 바둑 기사이자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있는 김찬우 프로 6단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제2국은 바둑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한 판”이라며, “특히 포석★ 단계에서의 자유로운 발상은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주는 선물이 아닌가 싶다”라고 밝혔다.
하루 쉬고 3월 12일에 열린 제3국도 이세돌 9단의 패배였다. 알파고의 승리가 확정된 순간이다. 이세돌 9단이 유리한 것 같았지만 어느 순간부터알파고가 우세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렇게 이세돌 9단의 5:0 패배가 조심스럽게 점쳐지는 상황에서 제4국이 시작됐다.
[돌을 던지다★ 바둑에서 돌을 던진다는 뜻은 경기 도중에 패배를 인정한다는 것.]
[포석★ 대국을 진행하면서 집 차지에 유리하도록 초반에 돌을 배치하는 일]
이것이 신의 한수다, 4국 78수
4국에서 이세돌 9단은 평소 전투적인 바둑 스타일과는 다르게 단단하게 대국을 이끌어갔다. 백돌을 쥔 이세돌 9단은 한순간에 패배가 결정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78수를 뒀다. 이 한 수에 알파고는 혼란에 빠졌고, 지금까지 보여준 실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패배로 이어지는 나쁜 수를 두면서 스스로 무너졌다. 결국 이세돌 9단은 무엇보다 값진 승리를 얻어냈다. 4국은 인공지능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 의미 있는 대국이었다.
4국이 끝난 뒤 하사비스 딥마인드 CEO는 “이번 패배는 알파고를 개선하는 데 매우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세돌 9단은 “한 판을 이겼는데, 이렇게 축하를 받은 것은 처음”이라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승리”라고 밝혔다.
끝나지 않은 도전
세기의 대국은 이제 마지막 대결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마지막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은 흑돌을 쥐었다. 알파고가 흑돌을 잡았을 때 약한 모습을 보이자, 알파고가 강한 모습을 보이는 백돌을 잡았을 때 얻은 승리가 더 값지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사비스 딥마인드 CEO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스스로 불리한 상황을 만든 이세돌 9단의 마지막 승부는 패배로 끝이 났다. 이세돌 9단은 우세하게 대국을 이끌어갔지만, 대국 후반 수읽기에서 실수하며 결국 패배했다. 프로바둑 기사 김영삼 9단은 TV중계에서 “바둑 역사에 길이 남을 만큼 치열하고 흥미진진한 승부였다”고 평가했다.
이번 대결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먼저 영화 속에서만 보던 인공지능이 현실로 다가올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여기에는 인공지능을 향한 경외심도 있을 것이고,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값진 것은 이세돌 9단이 세 경기만에 인간 지성의 위대함을 보여준 것과 불리한 상황을 자처해 다시 도전하는 도전 정신이 아닐까.
알파고는 바둑 두는 법을 어떻게 배웠을까? 사람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처럼 정해진 교육과정에 따라 공부했을까? 알파고는 ‘딥러닝’을 활용해 프로 바둑기사들의 패턴을 학습했다.
딥러닝은 ‘기계학습’의 방법 중 하나다. 기계학습이란 컴퓨터에게 방대한 데이터를 주고 스스로 일반적인 패턴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딥러닝은 데이터만 넣어주면 알아서 각각의 중요한 특징을 찾아 스스로 학습한다.
알파고를 개발한 구글의 인공지능 개발사 ‘딥마인드’의 트레이드 마크는 ‘강화학습’이다. 강화학습은 알파고와 알파고가 경기하며 배우는 것이다. 기존의 데이터만으로는 프로만큼 바둑을 두기 힘들었던 알파고는 강화학습으로 새로운 양질의 데이터를 만들어 바둑 실력을 키웠다.
바둑은 한 경기에서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가 2.08×10170으로 어마어마하다. 이 때문에 모든 경우를 탐색해 수를 생각하는 알고리즘인 ‘무작위 대입’은 비효율적이다. 바둑에 비해 경우의 수가 적은 체스에서는 무작위 대입으로 사람을 이길 수 있었지만, 바둑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알파고는 ‘무작위 표본 추출’★이라는 알고리즘을 이용해 표본을 뽑아 탐색하며 바둑을 둔다. 표본이 전체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활용한 것이다. 표본 집단의 크기가 커질수록 정확도가 높아진다. 무작위 표본 추출은 알파고가 다양한 상황에서 가장 좋은 수를 고르도록 한다.
[무작위 표본 추출★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이라고도 한다.]
선형대수학★은 필수!
인공지능의 기반인 컴퓨터가 어떤 문제를 해결하게 하기 위해서는 ‘선형화’라는 과정이 필요하다. 선형화는 문제를 컴퓨터가 이해하는 언어로 바꾸는 과정으로, 수학적으로 ‘행렬’이 포함된 식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복잡한 3차 미분방정식을 선형화하면 훨씬 간단한 1차 미분방정식 3개로 된 식이 된다. 그러면 행렬의 성질을 이용해 쉽게 답을 구할 수 있다.
그런데 행렬의 크기가 100만×100만 같이 커지면 슈퍼컴퓨터가 풀더라도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 이것을 해결하는 답은 선형대수학에 있다. 선형대수학은 크기가 큰 행렬을 컴퓨터가 효과적으로 다루도록 도와준다. 푸는 데 10년 걸릴 문제를 순식간에 풀도록 바꿔주는 것이다.
컴퓨터에게 선형화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시키려면 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도록 알고리즘을 짜야 한다. 여기에는 ‘수치적 선형대수학’과 ‘수치해석학’을 이용한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이 알고리즘으로 코딩해 프로그램을 만든다.
[선형대수학★ 행렬, 연립 선형 방정식, 벡터, 선형 변환 등을 연구하는 대수학의 한 분야로, 컴퓨터가 문제를 효과적으로 다루게 하는 대부분의 알고리즘은 선형대수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빠지면 안 되는 확률
인공지능은 빅데이터를 입력해서 의사결정과 데이터를 연결해주는 모형(함수)을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 다양한 모형을 만들어 어떤 모형이 예측력이 가장 좋은지 알아내야 한다. 예측을 잘할수록 진보한 인공지능이다. 예를 들어, 알파고의 경우 현재 바둑판의 상황에서 어느 곳에 놓아야 이길지를 예측해 가장 좋은 수를 선택한다.
확률론은 모형을 어떻게 만들어야 예측을 잘 할 수 있는지 연구할 때 쓰인다.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모든 판단을 확률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확률론은 모형을 만들 때 직접적으로 쓰이지는 않지만, 모형을 만드는 원리를 제공한다.
이상구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는 “알파고 같은 인공지능을 포함해 사물인터넷, 드론 등 관심이 가는 분야가 있다면, 그것에 쓰인 학문을 직접 찾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수학, 통계학, 컴퓨터 과학 등 다양한 학문이 관련 있을 텐데, 이를 통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스스로 내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행동을 당부했다.
인공지능 수학자도 등장할까?
엄상일 KAIST 수리과학과 교수는 “컴퓨터가 사람이 한 증명을 보고 맞는지 틀린지를 판단하는 소프트웨어는 이미 쓰이고 있다”며, “하지만 수학자처럼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인공지능이 나올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미래를 전망했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을까? 영화 ‘매트릭스’나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암울한 미래일지, 영화 ‘로봇, 소리’처럼 사람과 인공지능이 서로 도우며 공존하는 아름다운 미래일지 궁금하다. 만약 이번 대국으로 인공지능에 관심이 생겼다면, 관련된 지식을 늘려보는 것은 어떨까? 그렇게 시작한 공부가 미래 인공지능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되는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