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들의 수학쌤’ 김동우 선생님을 만나러 대구 대명중학교를 찾았다. 대명중학교는 교육부가 선정한 수학교육 선도학교이기도 하다. 인사를 마치기 무섭게 선생님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요즘 학교에서 모범상을 받아 오면 부모님이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당연히 칭찬부터 하시지 않을까요?”
“아니에요. ‘너희 반에서 몇 명이나 받았니?’라고 한대요. 칭찬보다 다른 애랑 얼마나 차이가 났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인 거죠.”
예상치 못한 답이었다. 선생님의 속사포 같은 말이 이어졌다.
“이런 어른들이 어떻게 인성을 가르쳐 줄 수 있겠어요? 저 같은 어른보다 아이들이 훨씬 착하고 때도 덜 묻었어요. 인성교육은 어른이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있는 걸 찾아 주는 과정이에요.”
‘인성을 찾아주는 교육’. 고개가 끄덕여지는 표현이었다. 하지만 ‘수학 수업에서 그걸 어떻게?’ 라는 질문이 동시에 따라왔다. 의문을 품은 채 선생님의 수학 수업으로 향했다.
수타짜장면으로 배우는 협동수학
교실 앞 스크린에 수타짜장면을 만드는 요리사가 등장했다. 도마에 밀가루 반죽을 치댈수록 국수 가닥이 늘어났다. 몇 번의 과정이 반복되자, 익숙한 모습의 면발이 완성됐다. 김동우 선생님이 영상을 멈추고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 지금까지 만들어진 짜장면의 면발 개수를 맞혀 보세요!”
흥미로운 문제만큼이나 수업방식이 눈길을 끌었다. 조별로 모인 학생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김동우 선생님은 조를 오가며 어떻게 문제를 풀고 있는지 지켜보고, 이따금 학생들의 질문에 답을 해줄 뿐이었다. 칠판에 적은 문제를 학생들이 풀면 선생님이 올바른 풀이과정을 알려주는 익숙한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같은 조라도 문제를 푸는 모습은 저마다 달랐다. 능숙하게 거듭제곱을 이용해 면발의 개수를 구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면발을 하나하나 그리는 학생도 있었다. 선생님은 면발을 그리는 학생에게 거듭제곱을 가르쳐 주는 대신, 거듭제곱으로 문제를 푼 친구에게 왜 그렇게 풀었는지 물어 보라고 주문했다.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것보다 친구가 알려주는 풀이가 아이들에게는 훨씬 와 닿습니다. 또한 이미 문제를 푼 학생도 친구에게 어떻게 풀었는지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제대로 개념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죠. 조금은 더디지만 분명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길입니다.”
협력을 이용한 수업방식에 대한 김동우 선생님의 설명이다. 조금 앞서가는 학생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알려 주는 과정에서 더욱 탄탄하게 이해하고, 조금 뒤처진 학생은 친구의 도움을 받아 뒤쳐진 걸음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친구와 함께 걷는 일이 수학 수업에만 도움이 되는 건 아니다.
“신체적으로 나약한 인류가 살아남은 비결이 바로 협력입니다. 부족한 힘을 뭉치고 서로의 지혜를 나눴기에 거친 자연을 이겨내고 문명을 세울 수 있었죠. 이제는 학생들에게 서로를 앞서는 방법이 아닌 같이 가는 방법을 알려 줘야 합니다.”
Q1. 어떻게 수타짜장면 면발의 개수를 구할 수 있을지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자.
시끄러운 수학 시간
이어진 수업의 분위기는 더욱 뜨거웠다. 이번 시간의 문제는 142857×7을 직접 계산하지 않고 구해보는 것. 조마다 왁자지껄한 토론이 벌어졌다. 약간 시끄럽기까지 했지만, 학생들은 웃고 떠들며 문제를 풀었다. 이게 그 지겹고 어렵다는 수학시간의 모습이라니!
눈에 띄게 진도가 빠르던 조의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언뜻 보기에 완벽한 풀이였다. 김동우 선생님은 풀이를 정리해 발표자료로 만들라고 주문했다. 대신 발표는 그 조에서 가장 조용히 있던 학생에게 맡겼다. 기자가 보기에도 그 학생은 친구가 문제를 척척 푸는 동안,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문제를 푼 친구의 설명이 시작됐다. 침묵을 지키던 학생도 연필을 들었다. 이젠 고개가 아니라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교실이 시끌벅적했다. 아직 문제를 못 푼 조는 옆 조에서 슬쩍 힌트를 얻기도 했다. 마침내 풀이가 완성되자, 환호성까지 터졌다. 학생들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가며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완성된 자료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수업 게시판으로 전송했다.
발표시간이 찾아 왔다. 발표 자료의 첫 장면은 조별 사진이었다. 매일 보는 얼굴일 텐데, 뭐가 그리 좋은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조별로 나와 풀이 과정을 설명했다. 가만히 지켜보던 선생님이 말문을 열었다.
“자, 이 조 풀이에 대해서 할 말 있는 사람?”
여기저기서 손이 번쩍 번쩍 올라왔다. 학생들이 서로 놓친 부분을 하나 둘씩 지적했다. 답만 맞추고 넘어갔다면, 몰랐을 실수였다. 수업시간 내내 단 한 문제를 풀었을 뿐이지만, 서로 다른 풀이를 비교해가며 부족한 부분을 메우고 미처 알지 못한 개념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었다. 번쩍 들린 학생들의 손이 무색하게,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괜히 기자까지 아쉬웠다.
Q2. 142857×7의 값을 직접 계산하지 않고 구해보자(힌트: 무한 소수를 이용하라).
좋아서 하는 수학
학생들을 대하는 모습이 참 부드럽다는 기자의 얘기에 선생님이 손사래를 쳤다.
“아유, 저도 예전에는 아주 무서운 선생님이었어요.”
김동우 선생님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던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말 안 듣는 학생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바로 잡으려고 했어요. 강압적인 길도 마다하지 않았죠. 시험 문제 어렵게 내는 걸로도 유명했어요.”
그런 선생님이 달라진 건 자신이 가르치는 수학 시간의 모습 때문이었다.
“수업만 하면 이미 절반은 듣길 포기했어요. 수학을 포기했다며 엎드려 자는 아이까지 있었죠. 좋아서 해야 하는 수학을, 입시와 성공을 위해 억지로 하다 보니 생기는 당연한 결과였죠. 더 마음 아팠던 건 아이들이 자는 친구를 내버려 두라고 하는 모습이었어요. 깨우면 자기 공부에 방해만 된다는 거였죠.”
선생님은 새로운 수학 수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수학교사 모임 ‘Do Dream(두드림)’과 인성교육연구회처럼 다양한 모임에 참여하면서 협동수학과 인성교육의 길을 발견했다. 이제 선생님의 목표는 좋아서 하는 수학, 한 명도 포기하지 않는 수학이다.
“출산율이 감소하고 고도성장이 힘들어진 우리나라에서, 잘 하는 학생만 키우는 교육은 분명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물론 경쟁도 필요하죠. 하지만 같이 살아가는 길을 고민하는 게 먼저 아닐까요? 더 이상 수학 수업이 수포자를 만드는 시간이 돼선 안 돼요. 적어도 학교 수업만큼은 모두 같이 갈 수 있는 시간이 돼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