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서남해안에 존재하는 이 지형의 면적은 2443.3km2에 달한다. 넓기로, 다양한 생물이 살기로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그 일부가 202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한국의 갯벌 얘기다.
이렇게 세계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만, 과학자들 입장에서 갯벌은 연구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넓고 여러 지역에 흩어진 데다 현장 조건도 혹독하다.
때문에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에서는 드론, 항공기, 인공위성 등을 도입해 첨단 갯벌 연구를 진행 중이다. 미래 갯벌 연구는 어떻게 바뀔까. 4월 29일, KIOST 연구자들과 갯벌 연구 현장을 찾았다.
4월 29일, 경기도 화성시 제부도 입구 연안의 갯벌.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연구팀이 동아사이언스 취재팀과 함께 드론을 띄워 갯벌을 조사하고 있다.
갯벌 현장 조사 전문가인 구본주 KIOST 책임연구원이 제부도 인근 갯벌에서 현장 생태조사 시범을 보이고 있다.
4월 29일 오전 10시, 물때에 맞춰 도착한 경기 화성 제부도 입구 연안. 바다 너머로 보이는 제부도와 주변에 드문드문 흩어진 섬 사이로 갯벌이 넓게 펼쳐졌다.
“발이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여기는 다른 곳보다 훨씬 발이 깊이 빠집니다.”
서재환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동해환경연구센터 연구원이 기자에게 소리쳤다. 서 연구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비명과 탄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기자보다 한발 앞서 갯벌에 들어간 촬영팀이 내는 소리다. 주저앉는 사람들을 보고 정신없이 웃다 발 아래를 보니, 이미 기자의 장화도 갯벌 깊숙이 빠져든 상태였다. 모두가 절박한 심정으로 서 연구원을 부르자, 그가 조언했다. “더 깊이 빠지지 않으려면 한 발이 빠지기 전에 다른 발을 디디면 됩니다! 가만히 있을수록 더 깊이 빠져요.”
놀랍게도 그의 조언은 효과가 있었다. 겨우 발을 빼고 걸어 나와 서 연구원에게 갯벌 조사 중 몸이 어디까지 빠져봤냐고 물었다. “여기까지요.” 그가 가슴팍을 가리켰다.
갯벌의 종류를 구분하는 큰 기준은 퇴적물의 조성이다. 발이 잘 빠지는 갯벌은 입자가 곱고 부드러운 펄로 이뤄진 펄갯벌이다. 입자가 미세할수록 입자 사이의 틈인 공극이 물기를 많이 함유한다. 주로 모래로 이뤄진 모래갯벌이나 펄과 모래가 섞인 혼합갯벌은 입자가 굵어 덜 질퍽거린다. 보통은 한 지역에서도 세 가지 갯벌이 섞여서 나타나는데, 물의 흐름에 따라 퇴적물이 쌓이는 곳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조성이 다양하면 갯벌 생물도 다채롭게 나타난다.
갯벌 현장 조사 전문가인 구본주 KIOST 책임연구원이 제부도 인근 갯벌에서 현장 생태조사 시범을 보이고 있다.
갯벌 생물을 찾으려면
서식굴을 보라조개, 게, 갯지렁이 같은 대형 저서생물부터 이들을 잡아먹는 수많은 철새들과 인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생물이 갯벌을 터전으로 살아간다. 이들 대부분은 파도나 조류로 떠밀려 온 흙에 섞인 유기물질을 섭취하며 살아간다. 특히 죽은 생물이나 배설물 등을 분해하는 분해자가 상당수다. 그만큼 생태계에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들이다. 다가가면 펄 속에 곧장 숨어버리는 갯벌 생물들을 KIOST 연구원들은 어떻게 연구할까. 갯벌 생물들이 파놓은 굴에 답이 있다.
“갯벌 여기저기에 구멍이 나 있죠? 이것들이 갯벌 생물들이 파놓은 ‘서식굴’입니다.”
구본주 KIOST 책임연구원이 구멍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그의 말을 듣고 갯벌을 둘러보니, 에멘탈 치즈처럼 여기저기 구멍이 없는 곳이 없다. 서식굴은 생물종에 따라 생김새도 천차만별이다. 30년 동안 전국의 갯벌 생태를 조사해 온 구 책임연구원이 이리저리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생물을 동정해 낸다. 횟감으로 종종 보이는 개불은 모래 갯벌에 둥그런 구멍 두 개를 뚫는다. 가재를 닮은 갑각류인 가재붙이의 서식굴은 화산처럼 위로 봉긋하게 솟아올랐다. 칠게가 뚫은 굴은 자동차가 다니는 지하도처럼 넓고 완만하게 뚫려있다.
서식굴 내부의 모습도 입구만큼이나 다르다. 농게처럼 표면에서 30cm 정도의 깊이까지 굴을 파는 생물이 있는가 하면, 깊이 1m에 달하는 깊은 굴을 파는 가재붙이 같은 동물도 있다. 이들이 파는 서식굴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바닷물이 빠지는 간조 때에도 서식굴에는 바닷물이 남아있습니다. 저서생물들은 서식굴 안에서 몸의 건조를 막고 포식자의 침입을 피할 수 있어요.” 구 책임연구원의 설명이다.
그러나 서식굴이 아닌 갯벌 생물의 실제 모습을 보기란 쉽지 않았다. 크기가 무척 작은 데다, 펄에 뒤덮여 있어 주변과 분간이 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면 진동을 느끼고 펄에 파놓은 서식굴로 숨어버린다.
그래서 서 연구원과 같은 연구자들은 갯벌 생물을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조사한다. 첫 번째는 갯벌 시료를 채집해서 분석하는 ‘정점 조사’다. 정해진 위치(정점)에서 갯벌 시료를 채취해 1mm 직경의 체로 거른 후, 연구실로 가져와 현미경으로 살피며 동물들을 찾는 방법이다. 이렇게 해서 발견된 생물종과 생물량을 토대로 갯벌의 조사되지 않은 구역의 생물종과 생물량을 추측한다. 이 방법은 표면에서 보이지 않는 매우 작은 동물까지 확인할 수 있다.그러나 표토를 채취하기 때문에 굴을 깊게 파는 동물은 찾기 어렵다. 또한 몸이 힘들다. “정말 넓은 갯벌은 조사 장소까지만 수 km 넘게 걸어야 해요. 무게가 수십 kg인 진흙 시료를 가지고 발이 푹푹 빠지는 펄을 밟으며 그 먼 길을 돌아오면 힘이 다 빠지죠.”
두 번째 방법은 표토의 서식굴 조사다. 갯벌 생물들이 파놓은 서식굴로 생물을 찾는 방법이다. 앞서 말했듯, 서식굴은 갯벌 생물의 종류에 따라 형태적 특징이 다양하다. 또한 굴의 수를 알면 몇 마리의 생물이 서식하는지 생물량도 쉽게 알 수 있다. 달 표면의 분화구처럼 뚫려있는 서식굴이야말로 갯벌의 생태를 드러내주는 핵심 데이터인 셈이다.
KI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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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지의 갯벌을 탐사 중인 KIOST 연구원들. 심하면 가슴팍까지 빠지는 갯벌에서의 현장 조사는 숙련된 연구자들에게도 쉽지 않은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