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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안동 권씨가 대전에 살게 된 까닭은?


한국인의 성씨는 혈통과 지리적인 출신을 나타낸다. 30년 동안 변해 온 지역별 성씨 분포 빅데이터를 통계물리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한 결과,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개인이 현재 특정 장소에 살고 있는 것은 그 의지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적 맥락이 더해진 결과라는 것이다.

필자는 안동 권씨
추밀공파의 35대 손이다. 경북 안동이라는 지역에서 시작된 권씨의 35대 자손이라는 뜻이다. 안동 권씨의 시조인 권행은 고려의 건국 공신으로, 고려 태조로부터 권씨 성을 하사받았다. 권행의 본래 이름은 김행이다. 김씨에서 권씨로 성이 바뀐 것이다.

같은 성씨 안에서도 여러 파가 존재한다. 파의 시조를 파조라고 하며, 안동 권씨 추밀공파의 파조는 권수평이다. 필자 이름의 ‘오’는 35대 자손들이 공통으로 이름에 사용하는 돌림자로, 숫자 5를 뜻하는 한자(五)다. 35대의 뒷자리 수 5에 맞춰 결정된 돌림자다. 필자의 자식 세대인 36대 자손들은 ‘혁’자를 돌림자로 사용하는데, 한자 ‘혁’자에 6이라는 숫자를 나타내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같은 항렬의 자손들은 이름에 돌림자라는 공통된 글자를 쓰는 경우가 많다. 성씨와 항렬의 돌림자에 그 사람이 어디 성씨의 몇 대 자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정보가 모두 담겨 있다.

필자의 아버지와 그 형제들은 모두 경기도 파주가 고향이다. 필자의 할아버지와 증조, 고조할아버지까지 모두 파주에서 일생을 보냈다. 고려와 조선시대 등 농업 중심 사회에서는 각 집안이 농사지를 중심으로 동일한 성씨를 유지하며 집성촌이라는 거주 문화를 이루며 살았다.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로 이동했다. 필자의 아버지와 그 형제들도 서울과 인천, 경기도 성남 등지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그 결과 필자의 고향은 성남이 됐다. 현재 필자는 직장이 위치하고 있는 대전에 살고 있다. 세 명의 딸을 둔 필자는 대전을 고향으로 하는 안동 권씨 세 명을 대전 인구에 더하게 됐다. 파주에 살았던 안동 권씨 한 명으로부터 대전 인구에 안동 권씨 네 명이 추가되기까지, 수십년의 시간 동안 다양한 사회 문화적 과정이 있었던 것이다.

안동이라는 지역에서 처음 시작된 안동 권씨 일가가 어쩌다 파주로, 대전으로 이동하게 된 걸까.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퍼져 나가게 되는 문화적, 역사적, 경제적 요인은 뭘까. 또 자기 고향에서의 삶을 고집스럽게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때마침 통계청에서 운영하는 통계지리정보서비스에서 성씨 분포 데이터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통계청은 5년에 한 번씩 우리나라의 인구주택총조사를 시행하는데, 15년 주기로 본관까지 묻는 상세한 성씨 조사를 한다. 1985년, 2000년, 그리고 최근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성씨 조사가 이뤄졌다. 통계지리정보서비스를 이용해 시군구 행적구역별로 본관까지 구분한 성씨별 인구수를 상세하게 얻을 수 있어 필자의 연구에 안성맞춤이었다. 이 자료를 토대로 성씨의 지리적인 분포를 통계물리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했다. 또 그에 담긴사회, 경제적인 맥락을 해석해 한국물리학회지 2015년 11월호에 발표했다(2015년 통계는 논문에 포함하지 못했고 이 기사를 위해 추가로 분석했다).
 

 

‘토박이’ 안동 권씨와 ‘전국구’ 밀양 박씨

우선 필자의 관심사인 안동 권씨의 전국적인 분포를 살펴봤다. 행정구역별 인구 중 안동 권씨의 비율을 지도 위에 표시했다. 검은색일수록 안동 권씨의 인구 비율이 높다는 뜻인데, 고려 건국 초기에 발생한 안동 권씨가 10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안동시와 그 주변 지역에서 가장 많은 인구 비율을 차지하고 있음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오늘날에도 나무처럼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오랜 세월동안 삶을 영위해 왔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런 현상이 안동 권씨라는 특정 성씨에서만 나타나는지 확인해 봤다. 흐트러짐이나 무질서한 정도를 측정하는 엔트로피라는 양을 도입해 각 성씨별로 그 인구가 전국적으로 얼마나 퍼졌는지를 정량적으로 계산한것이다. 엔트로피를 계산하는 수식은 아래와 같다.
 
이 엔트로피(S)는 p라는 확률값이 모두 같을 때 가장 큰 값을 갖는다. 대상이 고르게 퍼질수록 큰 값을 갖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특정 성씨가 200여 개나 되는 전국의 시군구 행정구역에 얼마나 고르게 퍼져있는지를 측정할 수 있는 적절한 수리적 모델이라고 판단했다. pi는 i라는 행정구역의 인구에서 특정 성씨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1985년부터 2015년까지 인구가 가장 많은 15개의 성씨에 대한 엔트로피 값을 비교해 본 결과, 밀양 박씨가 1985년부터 2015년 동안 줄곧 가장 큰 엔트로피 값을 유지했다. 전국에 가장 고루 퍼져 있다는 뜻이다. 밀양 박씨의 인구가 가장 많았기 때문은 아니다. 이 기간 동안 인구수 1위를 유지했던 성씨는 김해 김씨였고, 밀양 박씨는 그 다음이었다. 가장 작은 엔트로피를 유지한 성씨는 광산 김씨였다. 광산 김씨는 인구수 8위를 유지한 성씨다. 필자의 성씨인 안동 권씨는 광산 김씨 다음으로 작은 엔트로피를 유지하다가, 2015년에는 안동 김씨에 그 자리를 내주고 세 번째로 작은 엔트로피 값을 나타냈다. 참고로 안동 권씨의 인구수는 1985년부터 2015년까지 줄곧 11위를 차지했다. 광산 김씨와 안동 권씨는 적지 않은 인구임에도, 전국적으로 널리 퍼지지 않은 성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적 맥락이 모두 담긴 성씨 다양성

개별 성씨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성씨를 기반으로 지역별 인구 구성에 대한 분석도 할 수 있다. 생태학에서 생물종의 다양성을 측정하는 ‘피셔 알파(Fisher’s Alpha)’라는 수식을 통해서다.
 
이 식을 토대로 각 지역의 성씨 다양성을 모두 계산한 결과, 서울과 부산, 대구 등 광역시가 성씨 구성의다양성이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동 지역과 전라도 및 제주도 지역이 대체적으로 낮은 다양성을 보였다. 제주도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외부와의 교류가 많지 않아 인구 유입과 유출이 적었을 것으로 보인다. 안동은 제주도처럼 지리적으로 고립되지 않았음에도 특수하게 성씨의 다양성이 낮았다. 전국 모든 지역의 α값의 평균을 구해보면 1985년부터 2015년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대한민국이 전체적으로 다양한 성씨가 모여 사는 추세로 변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도별 평균 α값을 보면, 서울 및 광역시의 인구는 다양한 성씨로 구성돼 있다. 산업화 및 도시화에 따라 많은 인구가 유입된 결과다. 반면 제주도는 고립된 지리적 특성 때문에 제일 낮은 성씨의 다양성을 보인다.또 전라도가 성씨 구성의 다양성에서 하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대부분 농업기반의 지역으로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에서 가장 소외된 지역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추정된다.


안동과 ‘사드 배치’의 성주, 고유한 성씨 구성 보여
 

성씨 구성이 유사한 정도에 따라 전국을 여덟 개의 지역으로 나눠 보면 흥미롭게도 그 경계가 행정구역상의 도 경계와 거의 일치했다. 전체적으로 행정구역상의 구분이 인적·물적 교류의 역사적 경계가 돼 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서울과 경기도, 충청도, 강원도 북부 네 지역은 한 덩어리로 묶였다. 또 전라남북도는 성씨 구성에서는 하나였다. 반면 경상도는 최근으로 올수록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의 구분이 뚜렷해지고 있다.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경상도와 전라도의 성씨 구성은 오히려 더 뚜렷하게 구분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정치, 문화적 요소가 인구 혼합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독립적으로 고유한 성씨 구성을 보이는 곳으로는 제주도(핑크색)와 강원도 남부(보라색), 안동(파란색), 성주(하늘색) 4곳이었다. 제주도와 강원도는 지형적인 고립에 의해 고유한 성씨 구성이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안동과, 최근 사드 배치로 논란을 빚었던 성주는 특유의 문화를 고집해 온 것이 성씨 구성의 독립성을 유지한 배경으로 추정된다.

올해 7월 27일 성주 지역의 유림단체연합회와 임진왜란 공신 22문중의 후손으로 구성된 임란선양회는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상소문을 발표했다. 90세가 넘은 유림도 갓과 도포를 착용한 선비의 모습으로 청와대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성주의 지역사회가 성씨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성씨 분포는 개개인이 지금 이 시점에 특정 장소에서 살고 있는 이유가 우연이 아님을 보여 준다. 그 안에는 역사와 사회, 정치, 경제적인 맥락이 모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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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권오규 선임연구원
  • 에디터

    최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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