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죽었다고 가정하자.
그의 죽음과 동시에 파리는 시체에 알을 낳는다. 알에서 태어난 구더기는 성충이 되기까지 시체를 섭식하며 성장한다. 그리고 부패가 끝날 때까지 시체 곁을 지킨다. 죽음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파리는 시체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따라서 수사를 할 때, 마지막 목격자인 곤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0년 여름, 한국에서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2010. 06. 22 6일 만에 심하게 부패
결혼한 딸은 혼자 생활하는 아버지가 늘 걱정이었다. 일주일 간격으로 집에 들러 청소와 반찬을 준비하는 게 전부라 더욱 미안한 마음이었다.
2010년 6월 16일경, 딸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버지 댁에 들러 청소를 해주고 안부를 살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6월 22일, 딸은 오전 11시쯤 아버지에게 전화했지만 도통 받지를 않았다. 불안하고 걱정스러워 아버지의 집을 찾았을 때, 그는 이미 사망해 부패하고 있었다.
사건 현장에 출동한 수사팀은 시체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시체는 전신이 부패했으며, 눈과 코, 입에서 구더기가 자라면서 얼굴 뼈 일부가 노출돼 있었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구더기가 시체의 옆구리와 배, 골반 부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고, 일부 구더기는 시체를 떠나 방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번데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파리가 시체에 산란하는 시기는 일반적으로 사망 시점과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산란한 알은 구더기로 부화해 1령, 2령, 3령을 거쳐 성장한다. 이후 번데기가 됐다가 성충으로 우화한다. 파리가 자라는 성장 속도는 철저하게 온도에 달려있는데, 이는 파리가 스스로 체온을 조절할 수 없는 변온동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온도는 미생물 및 화학적 변화와 더불어 곤충의 성장에도 관여하며, 부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시체는 부패가 진행되고 곤충 또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지만, 시체 소견에서 범죄 혐의점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남겨진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은 채, 사무실로 돌아와 사건 종결을 위한 서류를 제출했다.
하지만 그날 밤 11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사건 담당 검사였다. 변사 사건의 사망 시점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딸이 본 시점으로부터 변사체로 발견된 날까지는 6일. 그러나 시체는 뼈가 노출될 정도로 부패했기 때문에 사망 시점이 더 오래됐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발견자의 진술이 거짓이라면 사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검사는 이웃을 탐문해 변사자의 최종 목격을 확인한 뒤, 통화 기록을 통해 사망 시점을 추정하라고 지휘했다. 이후 구더기의 발육 상태를 확인해 객관적인 사후경과 시간(PMI·Postmortem Interval)을 추정해 비교해달라고 요청했다. 형사소송법상 변사 사건에서 검시는 검사의 책임이며, 모든 판단의 주체는 검사에게 있다.
그러나 당시 곤충을 이용한 사후경과 시간 추정은 먼 외국의 이야기였으며, 한국에서는 아직 이를 추정할 만한 감정기관도 존재하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당시 전북지방경찰청 과학수사팀도 농장에서 받은 죽은 돼지를 이용해 실험하기 시작한 지 겨우 1년밖에 되지 않았을 만큼, 법곤충학 연구는 걸음마를 막 뗀 수준이었다.
2010. 06. 23 시체 부위에서 구더기 20마리씩 채집
법곤충학은 시체가 심하게 부패했을 때 힘을 발휘한다. 부패가 사망 원인이나 사망 시점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모든 법의학적 소견을 사라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만약 곤충이 쉽게 시체에 접근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보통 사망자의 죽음과 동시에 파리가 시체에 접근해 알을 낳는다. 따라서 구더기의 성장 정도를 통해 사망 시점을 추정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시체에 있던 구더기를 채집해야 한다. 하지만 시체가 발견된 건 하루 전 일이고, 시체는 이미 냉장고 안에 있었다.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 너무 높거나 낮은 온도에서 곤충이 성장을 멈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이렇게 성장이 멈추기 시작하는 낮은 온도와 높은 온도를 최저 및 최고 임계온도라고 한다. 이 임계온도는 파리 종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어떤 파리도 시체를 보관하는 온도(영상 4도)에서 성장할 수는 없다. 비록 하루 동안 냉장고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구더기의 성장은 어제 냉장고에 들어간 순간부터 정지했을 것이다.
수사팀은 서둘러 시체의 각 부위에서 구더기를 약 20마리씩 채집해 80% 농도의 알코올 통에 담았다. 일부 구더기는 종과 발육 단계를 확인하기 위해 살아 있는 상태로 채집했다. 이들은 수사팀 내 법곤충실험실에 설치된 인큐베이터 안에서 성충으로 자랄 터였다.
채집을 마친 뒤 사건 현장 온도를 파악하기 위해 시체가 발견된 곳에 이동용 기상장비를 설치했다. 구더기는 외부 온도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달라진다. 따라서 시체가 놓여 있던 과거의 현장 온도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수사팀은 이를 위해서 약 사흘 동안 현장 온도를 측정하고, 같은 기간 현장과 가장 가까운 위치의 관측소에서 측정된 기온을 비교 분석해 과거의 현장 온도를 추정했다.
현장에 설치한 기상장비에서 측정한 온도와 가까운 기상관측소 온도를 단순회귀분석을 이용해 비교한 결과, 당시 현장 온도가 기상관측소보다 1.2도 낮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따라서 기상관측소에서 측정한 과거의 온도에서 1.2도를 빼면 시체가 놓여 있던 현장 온도를 알 수 있다. 이제 남은 건 구더기를 분석하는 일이었다.
2010. 06. 28 시체에 최초로 접근하는 구리금파리
기본적으로 파리의 발육과 성장은 현미경을 이용해 확인한다. 이때 가장 중점적으로 확인하는 부분은 ‘후기문’이다. 구더기는 12마디로 이뤄져 있는데, 그중 마지막 마디에 있는 틈을 후기문이라 한다.
후기문의 틈의 개수에 따라 구더기의 발육 단계를 확인할 수 있는데, 틈이 1개면 1령, 2개면 2령, 3개면 3령이다. 구더기가 3령에 이르면 더 이상 먹이를 먹지 않는 후섭식기 단계로 접어든다. 이 단계에 접어든 구더기는 시체를 떠나 번데기가 될 준비를 하는데, 먹이를 먹지 않아 장내에 음식물이 없다. 이외에도 사육과 유전자 분석 등을 통해 더 정확한 발육 단계를 확인한다. 채집한 구더기를 현미경으로 확인한 결과, 이들은 3령에 해당했다.
더 정확한 분석을 위해, 국내에서 유일하게 파리 유전자 분석을 꾸준히 연구해 온 고려대 의대 법의학교실에 DNA 분석을 의뢰했다. 그 결과, 시체 곁을 지켰던 마지막 목격자는 바로 구리금파리(Lucilia sericata)인 것으로 밝혀졌다. 주로 시체에 최초로 접근하는 파리 종으로, 실내 시체에서 80% 이상 발견되는, 법곤충학에서 아주 중요한 파리다.
법곤충실험실 인큐베이터에서 구더기를 성충으로 우화시킨 뒤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역시 구리금파리였다. 다행히 구리금파리는 사육이 용이한 종이기 때문에 성장 정보가 잘 알려져 있다. 큰검정뺨금파리(Chrysomya pinguis) 등 야생성이 강한 일부 종은 사육이 불가능하다. 성장 정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현장에서 발견해도 사후경과 시간을 추정하기가 어렵다.
이제 유효적산온도(ADD·Accumulated Degree Days)를 활용할 차례다. 유효적산온도는 특정 성장 시점에 다다를 때까지 쌓이는 온도를 뜻한다. 이번 경우에는 파리가 알에서 3령까지 자라는데 필요한 유효적산온도를 알아야 했다. 이때 현장 온도에서 발육과 성장이 정지하는 최저 임계온도만큼은 빼고 계산해야 한다. 이 최저 임계온도는 종마다 조금씩 다르다.
구리금파리의 경우 최저 임계온도는 9도, 알에서 3령까지 자라는데 필요한 유효적산온도는 1536도다. 이제 사건 현장의 온도에서 9도를 뺀 뒤, 여기에 시간을 곱한 값이 1536도가 되는 시점만 역추적하면 된다. 곤충을 통해 사후경과 시간을 추정하는 최초의 사건이었다.
발견 직후 시체를 냉장 보관했기 때문에 시체 발견 시점인 6월 22일 정오부터 계산하면 된다. 이날 평균기온은 20.1도였다. 따라서 발견일의 유효적산온도 계산식은 (20.1-9)×12이고, 그 값은 133.2도가 된다. 그 전날인 6월 21일은 현장의 평균온도가 21.0도였으므로, 266.9도가 된다.
이런 방식으로 구리금파리의 유효적산온도가 1536도가 되는 시점을 역추적한 결과, 6월 17일 오후 2시경 구리금파리가 시체에 접근해 산란한 것으로 밝혀졌다. 구리금파리는 사망자의 죽음과 동시에 시체에 산란하므로, 변사자의 사망 시각 또한 6월 17일 오후 2시가 된다. 딸이 마지막으로 아버지 댁에 들렀던 것이 6월 16일이므로 딸의 진술에는 모순이 없었다. 마지막 목격자인 파리가 딸에 대한 의구심을 벗겨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