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벌 조사에 쓰이는 첨단 장비는 드론뿐만이 아니다. “저희가 촬영한 한국 갯벌 고화질 이미지들입니다. 한눈에 갯벌의 변화상을 볼 수 있죠.” 3월 5일, 부산 KIOST 본원에서 만난 유주형 해양위성센터 책임연구원이 소개했다. 그가 보여준 이미지는 다양한 색이 덧입혀져 있어 갯벌이라고는 쉽게 떠올릴 수 없었다.
유 책임연구원이 보여준 이미지는 각각 인공위성 관측과 항공 촬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갯벌 조사에 굳이 비행기와 인공위성까지 동원해야 하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나 이 장비들로 드론이나 직접 조사로는 찾기 어려운 소중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인공위성 관측은 지형과 수온, 퇴적상 등의 갯벌 변화를 추적하기 좋다. 겉에서 보기엔 평화롭지만, 사실 갯벌은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변화무쌍한 지형이다. 파도와 강에서 흘러오는 물의 흐름은 갯벌 사이로 난 물길인 갯골의 방향을 바꾼다. 갯골의 방향이 바뀌면 쌓이는 입자의 종류와 양도 달라진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갯벌이 사라지고, 없던 갯벌이 새로 생긴다고 어민들과 갯벌 연구자들은 한목소리로 말한다.
게다가 한국 갯벌은 넓고 서남해안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다. 2023년 해양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한반도 이남에는 2443.3km2 면적의 갯벌이 있다. 2021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갯벌 넓이만 1284km2다. “이 넓은 갯벌을 현장 연구자들이 모두 파악하기 어려우니, 전체적인 변화상을 관측하기 위해 인공위성을 쓰는 거예요.” 유 책임연구원이 말했다. 인공위성 관측을 통해 심각한 변화가 포착된 갯벌은 항공 관측으로 더 자세히 조사한다. 항공 라이다(LiDAR) 장비를 사용하면 지형의 고저를 파악할 수 있고, 실제로 갯벌에서 물이 어디로 흘러나가는지 자세한 지도를 만들 수 있다.
현장 연구자부터 드론, 항공기, 인공위성에 이르기까지. 유 책임연구원의 목표는 갯벌을 지켜보는 다양한 시선들을 활용해 현재 환경과 가장 유사한 갯벌 디지털 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갯벌 지도는 5년에 한 번씩 갱신됐습니다. 이러면 급속한 변화에 대비할 수 없고 효율도 떨어져요. 인공위성과 항공기 등 다중 플랫폼을 이용하면 훨씬 더 효율적으로 갯벌 지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위성으로 변화를 상시 탐지하고, 이상 변화는 항공기와 드론으로 자세히 조사하는 거죠. 연구자부터 어민까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지도를 만들 겁니다.”
장영재 KIOST 해양위성센터 연구원이 갯벌 탐사 드론을 조종하고 있다. 드론으로 수만 장의 갯벌 사진을 촬영해 AI가 서식굴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학습시킨다.
KIOST
2023~2024년, 충남 가로림만 갯벌의 온도 변화를 인공위성으로 촬영했다. 붉은색에 가까울수록 갯벌 표층 온도가 높다는 뜻이다. 표층 온도의 변화는 갯벌 생물의 생태를 파악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Shutterstock
하늘에서 바라본 경기도 시흥시 갯벌. 칠면초 군락이 갯벌을 붉게 물들였다. 칠면초는 한국 갯벌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염생식물이다.
“세계 제일의 갯벌, 우리가 지켜야”
왜 KIOST 연구자들은 이렇게까지 갯벌을 연구하는 것일까. 우선 한국의 갯벌이 차지하는 위상이 세계적으로 독보적이기 때문이다. 구 책임연구원은 전 세계 ‘5대 갯벌’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세계 5대 갯벌로 한국 서남해안 갯벌과 함께 유럽의 북해 연안 갯벌, 미국 동부의 조지아 연안 갯벌, 캐나다 동부 연안 갯벌, 남미 아마존 유역 연안 갯벌이 꼽힙니다. 이 중 한국의 갯벌이 가장 다채로운 지형과 생물 다양성을 갖고 있어요.”
모래 갯벌이 대부분인 다른 곳과 달리 한국에서는 펄, 모래, 혼합갯벌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그만큼 다양한 생물상을 볼 수 있다. 한국 갯벌의 생물 다양성이 열대 맹그로브 연안 습지보다도 높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더 중요한 점은 한국 갯벌에서는 조개나 낙지를 잡는 등의 어업 활동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된 갯벌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민들의 활동까지도 세계유산으로 인정된 셈이다. 구 책임연구원은 “그래서 한국의 갯벌은 자연적인 가치는 물론 경제적, 문화적 가치도 높다”며 “갯벌의 파괴는 생태계 파괴는 물론, 어민들의 터전 상실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갯벌 보전은 수산업을 보호하는, 어민들의 생존권이 달려있는 문제란 뜻이다. 이때, KIOST 연구자들의 갯벌 연구 자료는 어민을 돕고 갯벌을 보전하는 정책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체계적인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갯벌의 변화를 담은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다. 유 책임연구원은 “현재는 5년마다 갯벌 조사가 이뤄지는데, 이 정도 시간 간격으로는 갯벌의 빠른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앞으로는 기후변화와 해수면 상승으로 이 변화가 더 빨라질 겁니다. 5년마다 갯벌을 전수조사하는 건 의미가 없어질 거예요. 빠른 변화를 따라가려면 데이터도 빨리 수집해야 합니다.” 갯벌의 과거 데이터베이스가 충분해야 변화의 경향성도 파악할 수 있다.
오후 3시가 되자 제부도 연안으로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바닷물은 금방 갯벌이었던 곳을 채우고 길마저 가라앉혔다. 갯벌이 역동적으로 살아움직이는 지형이라는 걸 이보다 잘 보여주는 광경이 있을까. 돌아나오는 길, 서 연구원이 갯벌 연구의 가치를 설명했다.
“해양수산부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갯벌이 품고 있는 총 경제 가치는 16조 원에 달합니다. 이런 갯벌을 지키는 게 어느 때보다도 중요합니다. 갯벌 연구를 진화시킬 단계입니다.”
국립생물자원관
칠면초 옆에서 자라는 영국갯끈풀. 영국갯끈풀은 귀화식물로, 한국의 갯벌 생태계를 위협하는 생태계교란생물로 지정됐다. 인공위성을 활용해 영국갯끈풀 같은 교란생물의 분포를 조사하면 생태계 보전에 큰 도움이 된다.
Shutterstock
“한국의 갯벌이 품고 있는 총 경제 가치는
16조 원에 달합니다. 이런 갯벌을 지키는 게
어느 때보다도 중요합니다.
갯벌 연구를 진화시킬 단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