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설국열차는 ‘미래의 음식’을 그린 영화 중 하나입니다. 다만, 미처 준비되지 않은 미래였죠. 영화는 기후위기에 대한 대책으로 대기권 상층에 인공 냉각 물질을 살포해 지구 온도를 낮추고자 했다가 예상치 못한 거대 한파가 세상을 덮쳐 새로운 빙하기가 찾아온 설정을 제시합니다. 그 탓에 모든 지구상의 생명체가 멸종됐으며 끝없이 달리는 열차 안에 올라탄 사람들만이 유일하게 남은 인류였고요. 살고자 꼬리 칸에 올라탄 사람들은 매일 하루 한 개의 단백질 블록을 배급받습니다. 성인 남성의 손바닥만 한 크기의 단백질 블록은 양갱과 비슷한 질감과 색이었죠. 이 블록이 큰 화제가 된 것은 설정상 블록의 주재료가 바퀴벌레였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는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데다가 번식력이 강한 바퀴벌레가 미래 식량의 주재료였지만, 오늘날 연구에선 사람이 먹을 수 있도록 재배하거나 가공한 식용곤충이 활용됩니다. 메뚜기나 귀뚜라미 등이 특히 단백질 함량이 높고 고소합니다. 한국에서는 두 벌레를 포함해 누에, 백강잠, 흰점박이꽃무지 등이 이미 식품 원료로 인정받은 상태입니다.

이진규 이화여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가 이끄는 식품나노공학연구실에서 3차원(3D) 대체육을 출력하는 모습. 오늘날 3D 푸드 프린터로 출력할 수 있는 음식의 종류는 스테이크 외에도 참치, 새우, 연어, 능성어 등 다양하다.
하지만 그냥 튀긴 메뚜기나 귀뚜라미를 먹는 건 아닙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설국열차에서 바퀴벌레를 가공해 양갱처럼 만든 건 다 이유가 있겠죠. 이는 과학적으로도 입증된 사실입니다. 2016년과 2022년 켄 이치로 고야마 일본 가고시마대 심리학과 교수가 이끈 공동 연구팀은 음식의 생김새가 식욕과 만족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조사한 바 있습니다. doi: 10.3109/09637486.2015.1118618, 10.1080/09637486.2022.2137784
연구팀은 일본에서 판매하는 식품인 iEat와 믹서기로 간 음식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도를 뇌의 반응으로 살폈습니다. iEat는 씹거나 삼키는 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위해 일본의 한 의약품 회사가 개발한 연화식입니다. 보통 연하(삼킴)장애가 있는 경우 액체류나 죽과 같은 걸쭉한 제형의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음식들이 맛있어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 점을 개선코자 만들어진 iEat는 생김새와 풍미는 일반적인 음식과 비슷하지만, 입안에 들어갔을 때 부드럽게 녹는 특징이 있습니다. 효소로 음식 속 단백질이나 탄수화물, 지방과 같은 주요 성분을 분해하는 기술을 사용했죠.
연구팀은 먹음직스럽게 보이게 만든 iEat가 편도체와 복측 선조체, 안와전두피질 등 뇌의 보상 시스템과 관련된 영역을 강하게 활성화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즉 보기 좋은 음식은 뇌 차원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구미가 당기게 만든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먼 훗날 우주 공간에서 미생물로 만든 음식도, 집에서 키운 배양육 고기도 식탁 위 그릇에 담길 땐 입맛을 돋우는 형태여야 합니다.
음식을 먹을 때 나는 소리도 음식을 더 맛있게 먹게 하는 요소입니다. 2008년 찰스 스펜스 영국 옥스퍼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감자칩으로 음식을 먹을 때 발생하는 소리는 그 음식의 신선도와 품질을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참가자들이 같은 감자칩을 먹더라도 ‘바삭’ 소리를 더 크게 들을 경우 “더 바삭하고 신선하다”고 응답했습니다. 청각이 ‘맛’을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이 연구는 그해 이그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가스트로피직스(gastrophysics)’란 학문 분야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음식을 어떻게 인식하고, 맛보고, 즐기고, 기억하는지를 감각적·심리적·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분야입니다. 스펜스 교수는 이 가스트로피직스의 창시자 격입니다. 그는 가스트로피직스를 두고 ‘먹는 것의 과학’이라고 부릅니다.
앞으로 가스트로피직스 연구는 더욱 활발해질 것 같습니다. 심각한 기후위기로 식량이 줄어들고, 우주에서 살아야 할 날이 가까워질수록 인류는 무엇을 어떻게 맛있게 먹을 것인지 계속 고민할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