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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제이 기드 박사의 청소년 뇌 발달 장기 추적 MRI 연구

오리지널 논문으로 배우는 생명과학 26



2012년 벽두부터 신문과 TV를 도배하고 있는 학생폭력, 교실 내 왕따 이야기는 승천하는 흑룡(黑龍)의 기상을 받은 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회 분위기를 침울하게 만들고 있다.

예전에도 이런 문제는 늘 있어왔지만 지금은 그 심각성이 도를 넘어선 느낌이다. 특히 학생들을 보호하고 지도해야 할 교사들마저 손을 놓은 것 같아 더 씁쓸하다. 사실 청소년 사이의 폭력이나 왕따는 우리나라 문제만이 아니다. 그 정도가 심해지는 경향도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선진국에서는 청소년의 머릿속을 이해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으려는 시도를 해오고 있다. 청소년 뇌 발달 연구로 가장 유명한 건 미국립정신건강연구소(NIMH)에서 1991년부터 시작한 장기 프로젝트다. 3살부터 25살에 이르는 피험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2년마다 뇌를 MRI로 촬영해 그 변화를 분석하는 대형 연구과제로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12살이면 뇌 부피 성장 완성

NIMH 내 ‘어린이 정신의학 분과’에서는 어린 시절 발생하는 정신분열증이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 질환을 연구하는 프로젝트와 함께 청소년기 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연구하는 ‘뇌 발달 연구(brain development study)’ 프로젝트도 진행해왔다. 이 프로젝트를 맡아 이끌고 있는 과학자가 제이 기드 (Jay Giedd) 박사다.

1986년 미국 노스다코타대에서 정신의학으로 학위를 받은 기드 박사는 듀크대를 거쳐 NIMH에 자리잡았다. 그는 청소년의 정신질환을 이해하려면 먼저 정상적인 청소년의 뇌발달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뇌 발달 연구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일반적으로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사이의 10여 년을 청소년기라고 한다. 이 때 일어나는 몸의 변화는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지만 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눈에 보이지 않아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자기공명영상장치(MRI) 같은 분석장비가 개발되면서 청소년기 뇌 발달의 비밀을 밝힐 수 있는 ‘도구’가 생겼다.

얼핏 보면 뇌의 성장은 몸의 성장보다 빨리 일어난다. 갓 태어난 아기는 머리가 몸뚱이만하다. 키가 1m를 조금 넘는 6살 무렵에 뇌는 이미 어른 크기의 90%나 된다. 12살 정도가 되면 뇌의 부피 성장은 거의 완성된다. 그렇지만 청소년 뇌의 내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이 프로젝트가 밝힌 가장 중요한 내용은 청소년의 뇌발달 속도가 부분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는 것. 기드 박사팀은 1999년 뇌과학저널인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 데이터를 담은 논문을 실었다.



시냅스 가지치기 활발

연구자들은 대뇌피질에서 회백질(gray matter)과 백질(white matter) 양의 변화로 뇌 발달을 추정했다. 회백질은 신경세포가 체액에 담겨있는 조직이고 백질은 신경섬유(축색)가 미엘린이란 지방성 피막으로 둘러싸여 있는(수초화돼 있다고 부른다) 조직이다. 회백질은 수분이 높고 백질은 낮기 때문에 MRI로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4살에서 22살에 이르는 건강한 피험자 145명(남성 89명, 여성 56명)을 대상으로 뇌의 MRI 영상 데이터를 얻었다. 이 가운데 80명은 1회 측정에 그쳤지만 35명이 2회(대략 2년 간격으로 측정), 28명이 3회, 1명이 4회, 1명이 5회 측정했다.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청소년 뇌의 회백질은 나이가 들면 초기에는 두꺼워지다가 후기에는 얇아지는데 그 시기가 부위별로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대뇌피질을 크게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 후두엽으로 나눠 각각의 회백질 변화를 측정했다. 그 결과 전두엽과 두정엽은 12살 무렵이 가장 두꺼웠고 그 뒤에는 지속적으로 얇아졌다. 반면 측두엽은 16살이 넘어서야 부피성장이 정점에 도달했다. 한편 후두엽은 20세가 될 때까지도 꾸준히 늘어났다.

회백질이 얇아지는 건 신경세포 사이의 연접, 즉 시냅스에 가지치기(synaptic pruning)가 일어나기 때문이라는 게 유력한 설명이다. 보통 신경세포 사이의 시냅스는 우리가 어떤 경험을 쌓을 때 하나 둘 만들어지면서 늘어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신경세포가 생길 때부터 이미 수많은 시냅스가 무작위로 연결돼 있다.

따라서 뇌의 회로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냅스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분의 불필요한 시냅스를 잘라내야 한다. 이런 시냅스 가지치기, 즉 회백질의 성숙 과정이 청소년기에 활발하게 일어나는데 그 시기가 부위별로 다르다는 것.

청소년기 회백질 발달 과정은 여자가 남자보다 전반적으로 1~2년 빨리 일어났다. 같은 또래일 경우 여자 청소년이 좀 더 정신적으로 성숙해 보이는 이유일 것이다. 한편 백질은 청소년 시기 전반에 걸쳐 꾸준히 증가했다. 축색의 수초화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수초화가 되면 신경 정보가 훨씬 빠르게 전달되기 때문에(마치 길을 포장하는 것과 같다) 인지능력이 향상된다. 사실 수초화는 50세 무렵에 이르러서야 정점에 도달한다고 한다.

1999년의 논문은 청소년기의 뇌 발달이 균일하게 일어나지 않음을 명백히 보여줬지만 이를 뇌의 기능과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뇌를 네 부분으로 나눠 분석해서는 이런 정보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차원적 사고는 늦게 성숙해

5년이 지난 2004년 기드 박사팀은 해상도가 훨씬 높은 데이터가 담긴 후속 논문을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대뇌피질을 34개 영역으로 세분해 각각의 회백질 변화를 측정했다. 그 결과 뇌의 기능과 뇌 발달의 속도가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시각, 청각, 후각 등 감각정보를 처리하는 영역이나 운동을 조절하는 영역은 10살 전후부터 회백질이 얇아진다. 그 뒤에 공간 방향, 발성, 언어 발달에 관여하는 영역의 변화가 따른다. 판단이나 의사결정 같은 고차원적 사고를 담당하는 부위는 10대 후반에 가서야 회백질이 얇아지기 시작한다.

따라서 청소년은 감각정보를 받아들여 처리하는 능력은 성인과 차이가 없지만 주의를 집중하거나 종합적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은 떨어진다. 이 결과 청소년들은 몸은 커졌지만 정신은 아직 통제력이 약해 정서가 불안하고 뜻밖의 사고를 치기도 한다. 청소년기 사망률이 몸이 연약한 어린아이 때보다 오히려 두세 배 더 높은 이유다.

한편 회백질의 성숙은 전반적으로 좌뇌에서 먼저 일어나는데 이는 실험 참가자 대다수가 오른손잡이이기 때문이라고 연구자들은 해석했다. 즉 우세한 반구가 먼저 성숙한다는 말이다.



뇌의 구조 연구와 함께 뇌가 분비하는 신경전달물질에 대한 연구도 청소년의 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청소년 뇌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은 글루타메이트와 도파민이다. 글루타메이트는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이다. 흥미롭게도 청소년기 가지치기되는 신경 연결망의 대다수는 글루타메이트나 다른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의 신호를 받는 수용체를 갖고 있다.

한편 청소년기에는 감정의 뇌 부위인 변연계에서 도파민의 수치가 올라간다. 도파민은 우리가 쾌감을 느끼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변연계의 도파민 증가로 청소년들은 더 감정적이 되고 보상이나 스트레스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의 우세와 도파민 활성의 증가는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한 청소년들이 폭력, 흡연, 음주, 성관계 등 위험한 행동에 쉽게 빠져드는 현상을 설명해준다.

한편 뇌 발달 과정은 유전자의 프로그램에 따라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환경의 영향에도 민감하다. 즉 시냅스의 가지치기 가운데는 ‘쓰지 않으면 잃는다(use it or lose it)’는 원리가 적용되는 경우가 있다. 즉 자주 사용하는 시냅스는 더욱 강화되고 쓰지 않는 시냅스는 결국은 사라진다. 최근 기드 박사는 온라인게임, 휴대폰으로 상징되는 디지털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청소년의 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고 한다.

최근 국내에서도 환경이 청소년의 뇌에 미치는 영향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의 김대진, 박민현 교수팀은 인터넷에 중독된 청소년의 지능이 떨어진다고 1월 18일 발표했다. 중고등학생 642명을 대상으로 검사한 결과 9.5%가 인터넷 중독 상태로 평가됐다. 지능 검사를 한 결과 이해력 분야에서 중독 청소년은 9.92점으로 일반 청소년의 11.65점보다 낮았다. 이해력은 윤리, 도덕적 판단력과 관련이 크다.

청소년기의 뇌 발달이 어떤 경로를 따라 이뤄졌는가는 그 사람의 나머지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 사람의 인성이 이때 형성되기 때문이다. 학생폭력과 왕따가 청소년 시기에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현상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기드 박사는 “청소년들은 스포츠, 여행, 음악, 외국어 같은 풍요로운 환경에 노출돼야 한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최신 뇌과학 연구가 내린 결론은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은 이런 상식을 무시하며 학생들과 교사들을 ‘성적의 싸움터’로 내몰아왔다. 청소년 뇌 발달 연구에 기초한 교육 패러다임의 전환이 어느 때보다도 시급하다.




 

2012년 2월 과학동아 정보

  • 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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