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라디오 방송국 PD인 철규(권상우 분)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은원(이보영 분)과 십년 째 한집에 살고 있는 이상한 남자다. 언뜻 보기엔 신혼 부부처럼 보이지만 둘은 아직까지 서로에게 진정으로 마음을 열어준 적이 없는 사이다. 철규는 어릴 적 가족에게 버림받았고, 은원은 교통사고로 가족을 한날한시에 모두 잃은 과거가 있다. 두 사람은 서로의 빈자리를 가족처럼, 친구처럼, 연인처럼 메워주며 함께 살아간다. 은원은 철규를 K라고 불렀고, 철규는 은원을 크림이라고 불렀다.
그러던 어느 날, K에게 청천 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아빠가 죽었던 것과 똑같은 암에 K가 걸린 것이다. K에게는 앞으로 살 날이 2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자신이 떠나면 홀로 남겨질 크림…. K는 크림 곁에서 평생 함께 할 남자를 찾기로 한다.
메디컬 평점 ★★★☆☆ 말기 암환자의 못다 핀 사랑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는 사랑과 이별을 그린 시로 큰 인기를 모은 바 있는 원태연 감독이 자신만의 풍부한 멜로 감성으로 빚어낸, 시처럼 아름다운 영화다. 의학적 관점에서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영화 속에서 K가 앓고 있는 질병이 명확히 그려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대사나 화면은 그런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의료 정보와 DNA
영화 초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K의 눈에 능력 있고 집안 좋은 치과의사 차주완(이범수 분)이 등장한다. 그는 고아로 자란 K나 크림에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엄친아’ 부류의 남자이며 이미 약혼녀까지 있다. K는 먼저 차주완의 의료 기록을 넌지시 캐낸다. 그가 자신처럼 유전병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최소한 주완이 자기처럼 일찍 죽을 염려는 없다고 판단한 K는 그를 크림의 남편으로 만들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약혼녀를 설득해 파혼을 시키려는 것인데 주완의 의료 기록을 훔쳐 본 K의 시도는 과연 온당한 일이었을까.
타인의 의료기록을 엿보는 행위는 법으로도 금지돼 있지만 윤리적으로도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가끔이긴 하지만 건강보험공단의 개인 정보유출 사건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일이 일어나는 실정이다. 전국민 의료보험을 실시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어떤 진료를 제공했는지는 물론이고 병명까지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돼 있다. 건강보험공단입장에서는 진료가 적절한지 판단하기 위해 자료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이러한 제도 자체가 환자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한편 의료기록이 아니라 환자의 유전정보를 모으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일부 주정부에서는 기소된 성범죄자와 중범법자를 대상으로 유전정보를 모은 사실이 있고,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군인의 유전정보를 등록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북유럽에 있는 나라인 에스토니아는 국부를 육성할 목적으로 국립 유전자은행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듯 환자의 진료기록이나 DNA정보와 같은 의료정보의 가치는 바이오산업 발전과 더불어 날로 증대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아직까지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논의가 미약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유전질환이란 무엇인가
영화 중반, 영화 속 K의 모친은 남편이 죽자 어린 아들을 버리고 떠난다. 아무리 남편의 병수발에 지쳤다고 할지라도 혼자 살려고 아들을 버릴 엄마는 세상에 없겠지만, 영화는 K에게 슬픔보다 더한 슬픔을 안기기 위해 모진 엄마를 마련해 두었다. K가 가진 또 하나의 슬픔은 부친을 죽음으로 몰았던 암에 자신 역시 걸렸다는 사실이다. 말기 암에 걸렸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야만 하는 K는 가혹한 운명의 결정체다.
암은 비록 유전질환이 아니지만 대장암과 유방암의 일부는 유전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가족성용종증’이란 병은 대장에 수백 개의 작은 용종이 생기는 유전 질환이다. 성인이 됐을 때 대장의 용종이 암으로 변하므로, 20세 이전에 대장을 전부 절제하는 수술을 받아야만 암을 예방할 수 있다.
유방암의 위험인자로는 유전적 요인, 여성호르몬, 노화, 방사선, 생활 습관, 환경적 요인 등이 있다. 전체 유방암 중 약 7%는 유전적 소인을 갖는데 이 가운데 ‘BRCA1’, ‘BRCA2’ 유전자의 돌연변이와 관련된 것이 가장 강력한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다. 서양에서 연구된 결과에 따르면 ‘BRCA1’, ‘BRCA2’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있는 사람은 평생 유방암에 걸릴 위험이 최대 80%에 이른다. 그러나 한국인의 유방암은 서양에 비해 빈도가 낮고 젊은 연령의 환자가 많기 때문에 서양의 결과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유전질환은 염색체의 모양이나 수의 이상, 또는 유전자 이상으로 생긴다. 유전되는 방식에 따라 흔히 상염색체 우성/열성, 성염색체 우성/열성으로 나뉜다. 우성유전이 부모 중 어느 한 쪽에만 질환이 있어도 자손에게 유전되는데 비해 열성유전은 부모가 동시에 유전 보인자일 때 자손에게 유전된다. 개체에 불리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자손을 남길 기회가 적어지는데도 유전병의 출현 비율이 수 세대에 걸쳐 거의 일정한 이유는 돌연변이가 유전질환을 계속 만들기 때문이다.
유전질환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유전자, 염색체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수다. 유전자는 DNA 배열에 따라 정해지는 유전 정보의 단위다. 유전자들이 모여 구성된 유전 정보 물질을 뜻하는 염색체와 구분된다. 인간은 23쌍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게놈은 유전자 전체를 합한 것으로 유전체라고도 불린다. 인간은 염색체 속에 약 2만~2만 5000개의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염기 서열의 99.9%는 동일하며 약 0.1%의 차이로 개인의 유전적 특성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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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죽음의 방식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영화 중반 K는 결국 주완의 약혼녀를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K의 계획대로 주완은 파혼하고 크림은 주완과 사랑에 빠진다. 행복해하는 크림을 보며 K는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죽을 날이 머지않았음을 느낀다. 항암제 대신 먹는 모르핀의 용량은 하루하루 늘어난다. K는 왜 항암제 치료를 받지 않았을까.
암은 그 질병 단계에 따라 흔히 1,2,3,4기로 나뉜다. 암의 크기가 작고 수술로 제거가 가능한 부위에 있으면 1기, 원래 발생한 장소에서 먼 곳까지 암이 퍼져있으면 4기로 분류한다. 항암제 치료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암은 치료할 수 없다’는 과거의 통설이 무색해지긴 했지만, 사실은 암을 조기에 진단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1,2기의 암이 많이 발견돼 치료율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옳다. 실제로 조기 진단이 어려운 폐암이나 담낭암, 췌장암의 경우 3, 4기인 상태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치료율이 매우 낮다. 영화 속 K가 항암제 치료를 받지 않은 이유도 진단 때 이미 암이 많이 진행된 4기였기 때문이다.
K처럼 말기 암환자가 항암치료 대신 진통제에 의존하는 것을 ‘호스피스 케어’라고 부른다. 호스피스란 라틴어 어원인 hospes(손님) 또는 hospitum(손님을 맞이하는 장소)에서 기인되며 ‘주인과 손님이 서로 돌보는 것’을 뜻한다. 미국 호스피스협회(NHO)에서는 말기 암환자와 가족에게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정의하며, 흔히는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한 환자에게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통칭된다.
말기 암환자의 경우 웬만한 진통제로는 조절되지 않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 호스피스에서는 이런 환자의 통증 조절을 위해 강력한 모르핀을 처방한다.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환자 입장에서는 통증 없는 시간을 늘려 인간으로서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호스피스는 환자가 여생 동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돕는데, 이를 통해 사별 가족의 고통과 슬픔까지도 경감할 수 있는 총체적인 돌봄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모르핀은 항상 중독될까
K의 죽음으로 영화가 끝났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영화는 크림의 시선으로 지난 일을 더듬기 시작한다. K가 주완을 크림의 남편감으로 점찍었던 바로 그날, 집에 혼자 남아있던 크림은 우연히 K가 복용하던 약을 먹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환각 증세를 경험한다. 크림이 먹은 약은 말기 암환자들이 복용하는 모르핀이었던 것이다. 크림은 그제야 집중력을 높이는 약이라던 K의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날 밤 K는 크림에게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라고 충고를 한다. 이에 크림은 K의 배려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주완을 만나기 시작하고, K의 뜻대로 결혼을 하기로 하는데….
모르핀은 아편에서 추출한 화합물로 1804년 독일의 약리학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아담 제르튀르너가 처음 만들었다. 꿈의 신 모르페우스(Morpheus)의 이름을 따 명명됐으며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진통효과와 중독성을 만들어낸다. 정상인에게 투여하면 오심, 구토, 불쾌감, 졸음, 주의 집중 곤란 등을 일으킨다. 크림이 느꼈던 바로 그 증상이다.
경험이 부족한 의사는 모르핀 중독이 두려워 말기 암환자에게 처방을 주저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모르핀의 성질을 잘 모르는 데에서 나온 행동이다. 암환자처럼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환자에게 투여되는 모르핀은 강력한 진통효과를 발휘하지만 중독성은 보이지 않는다. 근래에는 모르핀의 이런 특성을 이용해 수술을 받은 환자의 통증 조절에도 모르핀을 적극적으로 쓰는 추세다. 그러나 모르핀 사용량이 적정수준을 초과하면 말초신경이 마비되거나 심할 경우 호흡이 억제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의사의 감독 하에 주의해 사용해야만 한다.
강석훈 전문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2006년부터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2007년 방송된 SBS 의학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의 보조작가로 활동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대한의학회에서 건강정보심의위원회 실무위원을 맡아 잘못된 건강정보를 바로잡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현재 서울대 의대 의학교육실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K에게 청천 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아빠가 죽었던 것과 똑같은 암에 K가 걸린 것이다. K에게는 앞으로 살 날이 2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자신이 떠나면 홀로 남겨질 크림…. K는 크림 곁에서 평생 함께 할 남자를 찾기로 한다.
메디컬 평점 ★★★☆☆ 말기 암환자의 못다 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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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정보와 DNA
영화 초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K의 눈에 능력 있고 집안 좋은 치과의사 차주완(이범수 분)이 등장한다. 그는 고아로 자란 K나 크림에게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엄친아’ 부류의 남자이며 이미 약혼녀까지 있다. K는 먼저 차주완의 의료 기록을 넌지시 캐낸다. 그가 자신처럼 유전병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려는 것이다. 최소한 주완이 자기처럼 일찍 죽을 염려는 없다고 판단한 K는 그를 크림의 남편으로 만들기 위한 작전에 돌입한다. 약혼녀를 설득해 파혼을 시키려는 것인데 주완의 의료 기록을 훔쳐 본 K의 시도는 과연 온당한 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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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의료기록이 아니라 환자의 유전정보를 모으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일부 주정부에서는 기소된 성범죄자와 중범법자를 대상으로 유전정보를 모은 사실이 있고, 전사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군인의 유전정보를 등록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북유럽에 있는 나라인 에스토니아는 국부를 육성할 목적으로 국립 유전자은행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렇듯 환자의 진료기록이나 DNA정보와 같은 의료정보의 가치는 바이오산업 발전과 더불어 날로 증대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아직까지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논의가 미약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유전질환이란 무엇인가
영화 중반, 영화 속 K의 모친은 남편이 죽자 어린 아들을 버리고 떠난다. 아무리 남편의 병수발에 지쳤다고 할지라도 혼자 살려고 아들을 버릴 엄마는 세상에 없겠지만, 영화는 K에게 슬픔보다 더한 슬픔을 안기기 위해 모진 엄마를 마련해 두었다. K가 가진 또 하나의 슬픔은 부친을 죽음으로 몰았던 암에 자신 역시 걸렸다는 사실이다. 말기 암에 걸렸다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야만 하는 K는 가혹한 운명의 결정체다.
암은 비록 유전질환이 아니지만 대장암과 유방암의 일부는 유전이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가족성용종증’이란 병은 대장에 수백 개의 작은 용종이 생기는 유전 질환이다. 성인이 됐을 때 대장의 용종이 암으로 변하므로, 20세 이전에 대장을 전부 절제하는 수술을 받아야만 암을 예방할 수 있다.
유방암의 위험인자로는 유전적 요인, 여성호르몬, 노화, 방사선, 생활 습관, 환경적 요인 등이 있다. 전체 유방암 중 약 7%는 유전적 소인을 갖는데 이 가운데 ‘BRCA1’, ‘BRCA2’ 유전자의 돌연변이와 관련된 것이 가장 강력한 위험인자로 알려져 있다. 서양에서 연구된 결과에 따르면 ‘BRCA1’, ‘BRCA2’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있는 사람은 평생 유방암에 걸릴 위험이 최대 80%에 이른다. 그러나 한국인의 유방암은 서양에 비해 빈도가 낮고 젊은 연령의 환자가 많기 때문에 서양의 결과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유전질환은 염색체의 모양이나 수의 이상, 또는 유전자 이상으로 생긴다. 유전되는 방식에 따라 흔히 상염색체 우성/열성, 성염색체 우성/열성으로 나뉜다. 우성유전이 부모 중 어느 한 쪽에만 질환이 있어도 자손에게 유전되는데 비해 열성유전은 부모가 동시에 유전 보인자일 때 자손에게 유전된다. 개체에 불리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자손을 남길 기회가 적어지는데도 유전병의 출현 비율이 수 세대에 걸쳐 거의 일정한 이유는 돌연변이가 유전질환을 계속 만들기 때문이다.
유전질환에 대해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유전자, 염색체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수다. 유전자는 DNA 배열에 따라 정해지는 유전 정보의 단위다. 유전자들이 모여 구성된 유전 정보 물질을 뜻하는 염색체와 구분된다. 인간은 23쌍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게놈은 유전자 전체를 합한 것으로 유전체라고도 불린다. 인간은 염색체 속에 약 2만~2만 5000개의 유전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염기 서열의 99.9%는 동일하며 약 0.1%의 차이로 개인의 유전적 특성이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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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죽음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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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은 그 질병 단계에 따라 흔히 1,2,3,4기로 나뉜다. 암의 크기가 작고 수술로 제거가 가능한 부위에 있으면 1기, 원래 발생한 장소에서 먼 곳까지 암이 퍼져있으면 4기로 분류한다. 항암제 치료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암은 치료할 수 없다’는 과거의 통설이 무색해지긴 했지만, 사실은 암을 조기에 진단하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1,2기의 암이 많이 발견돼 치료율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옳다. 실제로 조기 진단이 어려운 폐암이나 담낭암, 췌장암의 경우 3, 4기인 상태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치료율이 매우 낮다. 영화 속 K가 항암제 치료를 받지 않은 이유도 진단 때 이미 암이 많이 진행된 4기였기 때문이다.
K처럼 말기 암환자가 항암치료 대신 진통제에 의존하는 것을 ‘호스피스 케어’라고 부른다. 호스피스란 라틴어 어원인 hospes(손님) 또는 hospitum(손님을 맞이하는 장소)에서 기인되며 ‘주인과 손님이 서로 돌보는 것’을 뜻한다. 미국 호스피스협회(NHO)에서는 말기 암환자와 가족에게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정의하며, 흔히는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한 환자에게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통칭된다.
말기 암환자의 경우 웬만한 진통제로는 조절되지 않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아 호스피스에서는 이런 환자의 통증 조절을 위해 강력한 모르핀을 처방한다. 이미 죽음을 받아들인 환자 입장에서는 통증 없는 시간을 늘려 인간으로서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호스피스는 환자가 여생 동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면서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돕는데, 이를 통해 사별 가족의 고통과 슬픔까지도 경감할 수 있는 총체적인 돌봄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모르핀은 항상 중독될까
K의 죽음으로 영화가 끝났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영화는 크림의 시선으로 지난 일을 더듬기 시작한다. K가 주완을 크림의 남편감으로 점찍었던 바로 그날, 집에 혼자 남아있던 크림은 우연히 K가 복용하던 약을 먹고 정신이 몽롱해지는 환각 증세를 경험한다. 크림이 먹은 약은 말기 암환자들이 복용하는 모르핀이었던 것이다. 크림은 그제야 집중력을 높이는 약이라던 K의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날 밤 K는 크림에게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라고 충고를 한다. 이에 크림은 K의 배려를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주완을 만나기 시작하고, K의 뜻대로 결혼을 하기로 하는데….
모르핀은 아편에서 추출한 화합물로 1804년 독일의 약리학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아담 제르튀르너가 처음 만들었다. 꿈의 신 모르페우스(Morpheus)의 이름을 따 명명됐으며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진통효과와 중독성을 만들어낸다. 정상인에게 투여하면 오심, 구토, 불쾌감, 졸음, 주의 집중 곤란 등을 일으킨다. 크림이 느꼈던 바로 그 증상이다.
경험이 부족한 의사는 모르핀 중독이 두려워 말기 암환자에게 처방을 주저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모르핀의 성질을 잘 모르는 데에서 나온 행동이다. 암환자처럼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환자에게 투여되는 모르핀은 강력한 진통효과를 발휘하지만 중독성은 보이지 않는다. 근래에는 모르핀의 이런 특성을 이용해 수술을 받은 환자의 통증 조절에도 모르핀을 적극적으로 쓰는 추세다. 그러나 모르핀 사용량이 적정수준을 초과하면 말초신경이 마비되거나 심할 경우 호흡이 억제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의사의 감독 하에 주의해 사용해야만 한다.
강석훈 전문의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2006년부터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2007년 방송된 SBS 의학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의 보조작가로 활동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대한의학회에서 건강정보심의위원회 실무위원을 맡아 잘못된 건강정보를 바로잡는 데도 앞장서고 있다. 현재 서울대 의대 의학교육실 교수로 재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