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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중력의 물결에 맞춰 춤추는 TNO

과학계 각 분야에는 전설처럼 전해내려오는 일화가 있다. 태양계 변두리를 연구하는 천문학자들 사이에서는 마이클 브라운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행성천문학 교수의 이야기가 그렇다. 아니, 그가 2006년에 ‘명왕성 살인마(Pluto killer)’로 유명해진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그가 명왕성을 죽인 뒤 새 행성, ‘행성 X’를 찾게 된 이야기다.

 

브라운 교수의 주 연구 분야는 ‘해왕성 바깥 천체(TNO톂rans-Neptunian Object)’다. 그는 2000년대 초반 해왕성 너머에서 명왕성만큼 커다란 TNO들을 여럿 찾아냈다. 이 TNO들이 행성으로 인정받아 행성이 수십개로 불어나는 일을 막기 위해 2006년 국제천문연맹(IAU)는 명왕성과 TNO들을 분류할 새로운 항목인 ‘왜소행성’을 만들었다. 그 결과 명왕성은 행성에서 탈락했다. 그러자 브라운 교수의 딸이 그에게 “아빠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이 더 이상 슬프지 않도록 새로운 행성을 찾는 거예요”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행성을 찾겠다는 소망은 어린이의 꿈처럼 들리지만, 2016년 브라운 교수팀은 ‘행성 X’가 있을 가능성에 불을 지폈다. 그들이 증거를 찾은 곳은 다른 TNO들의 궤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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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천체들의 궤도가 이상하다!
해왕성과 카이퍼대를 넘어 매우 먼 거리를 이심률이 높은 궤도로 도는 천체들을 ‘분리천체’라 부른다. 태양 중력을 제외한 다른 천체의 중력에서 분리된 것처럼 보일 정도라 분리천체란 이름이 붙었다. 세드나를 시작으로 발견된 대표적인 분리천체들의 궤도를 그려보면, 근일점을 기준으로 한 이들의 궤도 방향과 궤도면이 한쪽으로 모여있음을 알 수 있다. 2016년, 마이클 브라운과 콘스탄틴 바티긴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행성천문학 교수팀은 이 천체들의 반대쪽에 거대한 질량의 ‘행성 X’가 있으면 이 같은 궤도 쏠림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딸의 말은 농담 정도로 여겼어요. 콘스탄틴 바티긴과 함께 태양계 바깥 천체들의 궤도가 이상하게 정렬됐다는 점에 관심을 가지기 전까진 행성 X는 생각도 하지 않았죠.”

 

2월 13일, 브라운 교수는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행성 X 연구가 시작되던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다. 그의 연구를 따라가기 위해 해왕성 바깥에 어떤 천체가 있는지 알아보자. 

 

해왕성은 태양으로부터 평균 30AU 거리를 공전하고 있다. 한국의 TNO 연구자인 정안영민 우주탐사그룹 선임연구원은 “그 바깥, 30~50AU 사이의 공간에는 ‘카이퍼대’로 알려진 ‘에지워스-카이퍼대(Edgeworth-Kuiper Belt)’ 구역이 있다”며 “지금까지 그 도넛 모양의 공간에서만 약 5000개의 천체가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정안 연구원은 2019년부터 지금까지 30개가 넘는 TNO를 발견하고 소행성센터로부터 공인을 받기도 했다.

 

카이퍼대 천체들도 해왕성의 공전 주기와 정수비를 이루는 것들 등 다양한 종류로 다시 나뉜다. 이중 비교적 태양과 가까운 궤도를 도는 고전적카이퍼대 천체들은 낮은 이심률궤도경사각을 가진 궤도를 돈다. 쉽게 말해 천체가 비교적 원형에 가깝고 위아래로 크게 기울어지지 않은 궤도를 돌고 있는 것이다.

 

이런 평범한(?) 이들에 비해 태양과 멀어질수록 튀는 궤도를 도는 TNO들을 발견하게 된다. 분류법은 학자들마다 다르지만, 눈에 띄는 천체들은 ‘분리천체’다. 근일점이 40AU보다 멀어서 태양과 가장 가까울 때도 해왕성보다 먼 TNO들이다. 이들은 멀리있을 뿐만 아니라 굉장히 찌그러진 타원 궤도를 도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세드나’라는 천체는 근일점이 76AU에 달한다. 태양 가까이 와봤자 해왕성보다 두 배 이상 멀리 있다. 이렇게 이상한 궤도를 갖는 천체들은 과학자들의 오랜 골칫거리였다. 

 

행성 X를 불러낸 열쇠, ‘포메가()’

 

“아홉 번째 행성에 대한 아이디어는 TNO의 공전 궤도에서 특이한 패턴을 처음 발견했을 때 시작됐습니다. 이 패턴들은 보이지 않는 천체가 중력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암시했죠.”

 

2월 13일, 브라운 교수와 함께 ‘행성 X’ 논문을 발표해 파란을 일으킨 콘스탄틴 바티긴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행성천문학 교수에게서도 e메일 인터뷰 답변이 도착했다. 그 역시 행성 X 연구가 시작되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레이밴 선글라스에 가죽 재킷을 입은 그의 프로필 사진은 교수보다는 록밴드 기타리스트에 가까워 보였다(실제로 그는 미국항공우주국(NASA)과의 인터뷰에서 “천체물리학은 제 플랜 B입니다. 제 밴드가 곧 메탈리카만큼 크게 성공할 거니까”라고 말한 바 있다). 

 

브라운바티긴 교수팀은 행성 X 논문에서 TNO 궤도의 이상 현상을 보여주는 수치, ‘근일점 경도(포메가)’를 제시했다. doi: 10.3847/0004-6256/151/2/22 근일점 경도는 ‘근일점 편각(ω)’과 ‘승교점 경도(Ω)’라는 두 값을 더한 값이다. 쉽게 설명하면 는 궤도의 방향과 궤도면이 얼마나 모여있는지 보여주는 수치였다. 연구팀은 장반경이 150~250AU 사이인 산란원반천체들을 관측한 결과,  값이으로 모여있음을 발견했다. 이 천체들의 궤도를 직접 그려보면 궤도의 근일점이 비슷한 방향으로 모여있음을 알 수 있다. 

 

브라운 교수팀은 논문에서 천체들의 궤도가 우연적으로 모일 확률을 약 0.007%로 계산했다. 이 편향성을 설명하는, 궤도역학적으로 단순한 해결책은 TNO의 반대편에 커다란 질량의 천체 하나가 돈다고 가정하는 것이었다. 행성 X의 역사적인 데뷔 순간이었다.

 

 

용어 설명
 AU(천문 단위)  : Astronomical unit의 약자로, 태양과 지구 사이의 평균 거리 약 1억 5000만 km를 의미한다. 태양계 내 천체의 거리를 표기할 때 주로 쓰인다.  이심률(eccentricity)  : 타원이 원에 비해 얼마나 찌그러졌는지를 나타내는 수치. 0에 가까울 수록 원, 1에 가까울수록 찌그러진 모양이다.  궤도경사각 : 천체의 공전 궤도면과 행성의 적도면이 이루는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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