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3. 사이버닥터가 진단한 인터넷 신드롬

사람 유혹하는 10가지 이유


인터넷-약인가 독인가


컴퓨터의 급속한 보급은 참으로 많은 진단명(?)을 만들어냈다. 얼마전까지는 ‘컴맹’ 이라는 ‘신종 병원체’ 감염에 의한 ‘컴퓨터 공포증’ 이 만연했다. 이러한 현상은 미국의 모 회사에서 컴퓨터를 잘 다루는 직원이 그렇지 못한 직원보다 15%정도 높은 생산성을 보인다는 발표가 나온 후 더욱 더 고조되기도 했다. 컴퓨터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던 중견 간부들이 주된 피해자들이었다.

직장 상사로서, 가장으로서의 체면이 말씀이 아니었다. 밤새 ‘모니터와 마우스 귀신’ 에게 쫓기는 ‘악몽’ 에 시달리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출근해서 마주친 직장 상사의 얼굴이 커다란 모니터 모습으로 보여 가슴이 철렁했다. 컴퓨터 게임에 몰두한 아들을 보는 순간 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뛰며, 이마와 양손에는 식은땀이 흐르더니 “이대로 도태되어 버리는구나…” 고 생각하는 순간 털썩 주저앉았다. 급기야는 깊은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신경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을 얻고서야 회복됐다.

요즘 각 신문들은 매일 두쪽 정도의 지면을 컴퓨터 관련 기사에 할애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인터넷 관련 기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인터넷 공포증’ 이란 말은 듣기 어렵다. ‘넷맹’ 이란 말이 있지만 ‘컴맹’ 보단 공포의 정도가 덜한 듯 하다. 오히려 ‘인터넷 중독증’ 이니 ‘인터넷 과부’ 니 ‘지구를 떠나 사이버스페이스로 간 사람들’ 의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웹이라는 후광을 등에 업은 인터넷은 공포의 대상이었던 컴퓨터를 숭배의 대상으로 바꾸어 놓았고, 급기야는 중독 증세까지 유발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너무 호들갑스럽다

정신의학적인 ‘중독증’ 의 진단은 단순히 어떤 대상을 탐닉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의존성, 내성 및 금단증상의 발현을 필요조건으로 한다. 인터넷에 중독된 사람들은 마음이 복잡하거나 허전할 때 자기도 모르게 인터넷에 접속해 시간을 보내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 의존성을 보인다. 또 웹에 매달려 있는 시간이 자꾸 길어지고 컴퓨터를 끄고 빠져나오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오래 컴퓨터 앞에 있다 보니 작업효율이 떨어지는 내성 현상을 보인다.

또한 이런 사람들은 인터넷을 떠나 있으면 인터넷에 관한 백일몽에 빠지기도 하고, 왠지 초조하고 불안해 한다. 인터넷 상에 무슨 중요한 일이 일어났을 것 같은 생각이 들고, 어떤 전자우편(e-mail)이 와 있을지 몹시 궁금해 한다. 마치 알코올 중독환자가 술이 떨어졌을 때 손을 떨거나 극도의 불안, 초조에 시달리는 금단증상과 같다.

이들은 모니터 앞에 앉아서 인터넷에 연결되는 순간 긴장이 해소되고 금단증상이 사라지는 안도감을 느끼며, 심지어는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뇌에서는 엔돌핀이 분비된다. 금단증상은 심리적 금단과 신체적 금단 두 가지가 있는데, 신체적 금단증상이 나타나면 더 심한 중독상태다.

중독에 관한 최신 의견 중 하나로 ‘행동의 총체적 변화’ 라는 현상이 있다. 코카인중독의 경우 금단증상이 적어서 한 때 그 심각성이 과소평가됐던 적이 있다. 그러나 최신 연구에 따르면, 코카인이 사람의 행동양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무척 정교하고 교묘하게 신경생물학적 메커니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알려져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즉 중독자의 ‘행동양식 전반’ 이 코카인 섭취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향으로 재조직화된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면 한 중독자가 사랑하던 연인과 이별한 후 비탄에 빠져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다. 이때 실상은 무의식적으로 약물사용이 필요한 상황으로 빠져들고자 하는 욕구가 우선이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연인과의 관계를 교묘하게 비탄지경에 빠뜨리고야 만다는 것이니 섬뜩하기까지 하다.

인터넷 증후군에선 아직 이러한 고도의 장애까지는 보고되지 않았다. 만일 지속적으로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서 인터넷에 머물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심각하게 자신의 행동양식 전반을 평가해볼 일이다.

문제는 이런 변화는 무의식적 과정이므로 본인 스스로가 판단하기는 극히 어렵다는 것이다. 인터넷 신드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가상공간에서 얻는 즐거움에 빠져서 현실의 인간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과 즐거움을 잃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 이들은 오직 가상공간의 가상관계에서만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돼 결국 새로운 인간소외 현상을 유발한다.

요즈음은 무엇이거나 조금 지나치기만 하면 ‘신드롬’ 이니 ‘중독’ 이니 무슨 무슨 ‘열병’이니 하며 호들갑스럽게 이름 붙이기를 좋아한다. 많은 정신의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대중의 인기에 영합해 혼란만 가중시키는 경계대상으로 보고 있다.

앞서 나열한 증상중 몇 가지가 나타난다고 해서 ‘인터넷 중독증’이라고 속단할 필요는 없다. 증상의 정도가 심하고 반복적이며 만성화돼 신체, 심리, 사회 및 직업 활동상의 장애를 유발하는 경우 비로소 정신의학적인 ‘중독현상’으로 볼 수 있다.

건강을 해치거나(밥 먹는 것, 잠자는 것을 포기함으로써), 직장의 업무효율이나 학업성적이 떨어지고(대부분의 시간을 웹에서 보내서), 주변의 실제 인물(웹상의 ID가 아닌)들과의 의미 있는 관계형성에 지장을 주고, 가족도 애인도 버리고 사이버스페이스의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너, 급기야는 가정불화와 무원고립지경에 이르는 경우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중독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인터넷 매력 포인트 10가지

왜 사람들은 가상공간으로 빠져드는가? 알코올중독이나 전자오락중독 등과 구별되는 특징은 무엇인가? 환경적 요소로는 네트웍 환경이 무르익고 웹브라우저의 출현으로 인터넷에의 접근이 쉬워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중요해 정보화를 강조하는 국가에서 이런 현상이 만연한다.

그렇다면 인터넷은 사람 내면의 어떤 점을 유혹하는가? 첫째 유희성이다. 모든 미디어 통합의 장이 인터넷이다. 그곳에는 영화, 연극, 음악, 미술, 오락 등 그동안 무수히 인간의 마음을 빼앗아 온 유희적 요소들이 모두 있고 마법, 죽음, 섹스와 같은 요소들도 있다.

둘째 호기심이다. 인터넷은 정보의 바다에 비유된다. 통제됐던 대중의 호기심은 막 열리기 시작한 금단의 정보를 지나칠 리 없다. 활자혁명과 종교개혁의 함수관계를 생각해 보면 인터넷을 만난 호기심은 새로운 역사변혁의 가능성마저 잉태하고 있다.

셋째 익명성이다. 화장실의 낙서에서처럼 무한자유를 추구하는 인간본성이 인터넷에서 발현된다. 이는 저항정신과도 통해 인터넷에는 유독 반골기질을 가진 이들이 많다.

넷째 권력욕이다. 무엇하나 내 뜻대로 안되는 현실세계와 달리 인터넷에서는 마우스 클릭만으로 가상세계의 통치자가 된다. 독재권력은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아무리 힘들고 위험해도 결코 권력을 놓아주지 않으려 한다.

다섯째 강박성이다. 가상공간은 무한히 넓다. 동틀 무렵에야 컴퓨터를 끄면서도 다 돌아보지 못한 것이 너무나 께름칙하다. 그곳에서 나만 빼놓고 무슨 일인가 벌어지고 있을 것만 같아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꿈속에서도 다시 컴퓨터를 켜고야 만다.

여섯째 ‘저 모퉁이만 돌아서면 증후군’ 이다. 바로 저 모퉁이만 돌아서면 무언가 멋진 일이 있을 것만 같고 그게 끝인 것 같다. 하지만 그 모퉁이를 돌아서는 순간 또 저쪽에 새로운 모퉁이가 나를 유혹한다.

일곱째 분열성이다. 인간은 한가지 존재양식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배우가 되는 무의식적 동기는 다양한 존재양식 체험의 소망이다. 가상공간에서는 다중인격체험(여러 ID로 활동)을 할 수 있다. 터미네이터2, 지킬과 하이드, 남장여인이 되는 짜릿한 체험의 근저에는 변신-환생에의 강렬한 소망이 있다.

여덟째 친밀성이다. 인터넷은 의외로 따뜻하다. 인터넷에 질문을 올리면 수없이 많은 답신을 보내주는 친절하기 그지없는 세계인을 만난다. 밤을 새워 이야기 할 수 있다. 인종, 성별, 나이 등은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 문화차별적인 예의범절도 없고 인류공통의 직관적 최소 예절인 네티켓 정도면 충분하다. 사소한 실수는 용납된다. 달리 말하면 네티즌들은 실제의 세계가 더 냉혹하다고 느낀다.

아홉째 포용성이다. 인터넷은 누구도 거절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면 언제든 어머니의 품처럼 열려 있다. 네티즌은 인터넷 앞에서 평등하다. 친구와 시간 약속하기도 어려워져만 가는 현대 사회의 한 단면을 보상한다.

열번째 신성희구(神性希求)다. 가상공간은 무한히 넓고 없는 것이 없으며 나 이전에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미지의 세계다. 방향도 중심도 알 수 없는 미로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하든 미동조차 없이 침묵한다. 이러한 무한성은 인간 무의식의 무한한 투사의 대상이 되고 무의식적 숭배의 대상으로 추앙된다.

얼굴 마주보는 즐거움 체득해야

인터넷 중독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알코올 중독처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사이버문화(CyberPunk) 자체가 아직 규명되지 않은 새로운 사회현상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이 새로운 사회현상에 대한 겸허한 고찰과 비평을 통해 미래의 사이버문화를 이 땅의 사람들을 위한 인간적인 문화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혹자는 인터넷 중독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용 시간을 줄이고, 알람이나 타이머를 사용하여 시간을 제한하고, 극단적으로는 전화선을 끊거나 컴퓨터를 없애라고 처방한다. 하지만 필자의 견해는 다르다. 인터넷 중독증은 단순히 하나의 중독현상이 아닌 복합적 사회현상의 한 단면이다. 그 근저에 강박성이 있을 수도 있고, 소외감, 의존성, 권력에의 지향성, 나르시시즘, 정체성 문제, 혹은 현대 문화증후군적인 정신병리가 내재해 있을 수도 있다.

역으로 이러한 열기는 인간정신의 창조적 본성, 탐구정신, 진취적기상, 무한성과 영원성을 희구하는 표현일 수도 있다. 즉 ‘신종질환’이라는 작은 틀에 가두기보다는 인간정신의 잠재적 특성들과 새로운 사이버문화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화충격은 항상 많은 정신병리를 유발하며 또 그안에 새로운 인간정신의 탄생을 예고한다. 물론 앞서 기술된 증상들로 고통을 받는 경우, 전문의의 도움을 얻는 지혜가 필요하다. 치료는 문제의 정확한 판단을 바탕으로한 정신치료와 더불어 필요에 따라 약간의 약물치료와 행동요법으로 그리 어렵지 않다. 목표는 가상공간 차체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현실세계에서의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그 기반을 견실히 해 정신적 활력을 얻음으로써 중독되지 않고도 가상공간 여행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많은 인터넷중독자들은 그 치료법 조차도 인터넷의 가상의사(Cyber-Doctor)에게서 찾고 있다. 필자도 가끔 그 사이버닥터의 역할을 수행해 주기도 한다(http://psyber.snu.ac.kr). 그들은 가상공간의 웹중독자(Webaholics)들을 위한 웹사이트에 모여들어 대책을 논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어울려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되찾는것" 이 가장 좋은 치료법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1996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김주한 전문의

🎓️ 진로 추천

  • 심리학
  • 사회학
  • 컴퓨터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