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2월 23일부터 한국은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어선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한편,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약 84세.
2025년 우리는 이제 인생의 4분의 1 가까이 노인인 상태로 보내는 세상을 산다.
고령인구를 돌봄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대는 지났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활발하게 삶의 겨울을 보낼 수 있을까. 과학동아는 그 해답을 뇌에서 찾았다.
뇌의 노화를 치료하고, 노화를 거스르고, 나아가 늙지 않는 뇌를 탐하는 과학을 만나보자.

알츠하이머 병을 치료할 신약이 나왔다. 레카네맙과 도나네맙이 그 주인공. 레카네맙은 2024년 12월 16일부터 국내 최초로 처방이 시작됐다. 도나네맙은 2024년 7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상황이다. 알츠하이머 병 정복을 위한 중요한 기점인 지금, 한국뇌연구원에서 알츠하이머 병 치료법을 찾는 연구자들을 만났다.
초고령사회, 고령층에게 가장 두려운 질병은 단연 치매다. 2014년 중앙치매센터에서 진행한 국내 치매 인식도 조사만 봐도 그렇다. 만 19~49세 사이 응답자는 가장 두려운 질병으로 암을 꼽는다. 그 뒤를 치매, 뇌졸중, 당뇨병 등이 잇는다. 이 순위는 만 50~59세 응답자부터 역전된다. 이들에게 가장 두려운 질병은 치매이고, 암은 그다음이다. 치매가 가장 두렵다고 꼽은 응답자의 비율은 만 19~24세에서 20%였다가, 응답자의 연령대에 따라 증가해 만 60~69세 응답자에게선 43%까지 오른다.
최근 그 치매를 치료할 약이 나왔다. 치매는 증상을 칭하는 말이다. 치매에는 기억장애와 행동장애, 성격 변화 등 다양한 증상이 포함된다. 치매를 나타내는 질병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는데, 그중 약 70%를 차지하는 것이 알츠하이머성 치매(이하 알츠하이머 병)다. 알츠하이머 치료제 ‘레카네맙’과 ‘도나네맙’은 2023년과 2024년 연이어 미국 FDA의 승인을 받았다. 2024년 12월엔 레카네맙(상표명 레켐비)이 서울아산병원에서 처방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처방된 첫 사례다.
118년 만에 쏘아 올린 치료의 신호탄
“외부에서 발표할 때 항상 알츠하이머 병에는 치료제가 없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기존 알츠하이머 약이 치료제보다 증상 완화제에 가까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죠. 이제 치료제가 생긴 겁니다.”
1월 6일 대구 한국뇌연구원에서 만난 김재광 한국뇌연구원 치매연구그룹 선임연구원은 말했다. 알츠하이머란 병 자체가 발견된 해가 1906년이었으니, 118년 만에 치료제가 나온 셈이다. 1906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 알로이스 알츠하이머 박사는 자신의 치매 환자가 사망한 뒤 부검을 하다 뇌에서 독특한 조직 병변을 발견했다. 환자의 뇌세포 주변에 어떤 물질이 비정상적으로 많이 뭉쳐 있었던 것. 알츠하이머 박사는 이 병이 치매라는 증상의 원인이 된다고 학계에 보고했다. 이후 이 병에 발견자의 이름을 따 ‘알츠하이머’란 이름이 붙었다.
알츠하이머 박사가 뇌세포 주변에서 발견한 어떤 물질은 후에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단백질로 밝혀졌다. 알츠하이머 병이 진행되면서 아밀로이드 베타는 큰 덩어리로 뭉친다. 이를 아밀로이드 플라크라고 부른다. 동시에 뇌세포 안에서는 타우라는 단백질이 뭉친다. 그 결과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선 공통으로 아밀로이드 플라크와 타우 단백질이 응집된 모습이 발견된다. 자연히 학계에는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에 집중해 알츠하이머 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찾는 연구자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알츠하이머 병의 원인에 대한 다양한 가설 중에서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이 응집돼 뇌세포의 기능을 떨어뜨리고 심각하게는 뇌세포를 죽인다는 ‘아밀로이드 가설’을 가장 유력하게 여긴다.
병의 원인이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이 뭉치는 현상에 있다면, 병을 치료하기 위해선 이를 막아야 한다. 이 기능을 하는 약이 바로 레카네맙과 도나네맙이다. 둘 다 아밀로이드 베타를 제거하는 항체 치료제다. 김 선임연구원은 “아밀로이드 베타를 표적으로 하는 신약 개발 시도는 여러 가지가 있다”면서 “아밀로이드 베타가 생성되는 양을 조절하거나, 이것이 변형돼 아밀로이드 플라크를 형성하는 과정을 억제하는 방법 등이 있고, 항체를 이용해 아밀로이드 베타를 없애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항체는 정해진 자물쇠에만 결합하는 열쇠처럼 정해진 화학물질에만 결합하는 특징이 있다. 레카네맙과 도나네맙은 아밀로이드 베타에만 결합하는 항체다. 항체가 아밀로이드 베타에 붙으면 뇌의 오염물질을 청소하는 교세포가 항체를 인식해 아밀로이드 베타와 항체를 통째로 잡아먹거나, 아밀로이드 베타의 독성이 줄어드는 등 연쇄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이날 김 선임연구원과 함께 만난 허향숙 퇴행성 뇌질환 연구그룹 책임연구원은 “아직 두 약이 인체에서 정확히 어떤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면서도 “그러나 항체를 이용한 이 치료법들이 치매 초기 환자들에게서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2022년 11월 발표된 레카네맙의 임상 3상 결과, 레카네맙을 18개월간 투여한 치매 초기 환자 898명의 뇌에서 아밀로이드 베타의 양이 줄었음이 드러났다.
레카네맙을 개발한 미국 바이오젠과 일본 에자이는 아밀로이드 양전자 단층촬영(PET)을 통해 환자의 뇌에 축적된 아밀로이드 베타의 양을 측정했다. 이때 아밀로이드 베타의 양은 ‘센틸로이드(Centiloid)’란 척도로 나타난다. 0에 가까울수록 아밀로이드 베타의 양이 적고, 100에 가까울수록 많다. 레카네맙을 투여한 환자들의 경우 18개월 후 아밀로이드 베타의 양이 평균 55.5 줄었다. 한편, 위약을 투여한 환자의 경우 3.6 늘었다.
레카네맙을 투약한 환자들은 치매의 진행 속도도 더 느렸다. 치매 증상을 판단할 때 면담을 통해 기억력, 판단력, 문제해결능력 등이 얼마나 악화됐는지 판단하는 임상치매척도가 사용된다. 레카네맙을 투여한 환자들의 경우 위약을 투여한 환자들보다 임상치매척도가 27% 더 낮게 나타났다.
미국 일라이 릴리가 2023년 5월 발표한 도나네맙의 임상 3상 결과 보고서를 살펴봐도 효과는 명확하다. 일라이 릴리는 임상 3상 보고서를 통해 “알츠하이머 병 초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 3상을 진행한 결과, 도나네맙을 투여한 환자들의 경우 투약 후 6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아밀로이드 PET 상으로 드러나는 아밀로이드 베타의 양이 유의미하게 감소했다”고 밝혔다. 알츠하이머 병이 악화될 위험성 또한 위약 투여군에 비해 39% 낮게 나타났다.

원인이 아밀로이드 베타가 아니라면?
레카네맙과 도나네맙에도 한계는 있다. 허 책임연구원은 “항체 치료제의 특성상, 치료제에 대한 면역 반응이 나타나면서 부작용이 발생한다”면서 “이런 특성이 중기 이후의 알츠하이머 환자에게 뇌부종과 뇌출혈을 일으키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몸에 항체 치료제처럼 낯선 화학물질이 들어가면, 우리 몸은 이를 인식하고, 공격해 없애는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이 면역반응은 때론 교세포나 뇌혈관 등에 영향을 미쳐 원치 않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특히나 뇌세포가 이미 많이 손상된 알츠하이머 병 중기 이후 환자들에게 이 부작용은 치명적이다.
김 선임연구원은 “치매의 본질은 뇌세포의 손상에 의해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면서 “레카네맙과 도나네맙 모두 병의 진행을 늦출 수는 있지만, 뇌세포의 손상 자체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레카네맙과 도나네맙을 알츠하이머 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약으로 보긴 어렵다는 이야기다.
나아가, 최근 학계에선 알츠하이머 병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이 아밀로이드 베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설이 대두되고 있다. 기자가 만난 두 연구자는 입을 모아 우리가 알고 있는 알츠하이머 병의 면면이 일종의 ‘스냅샷’이라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린아이의 머리에 손을 뻗고 있는 어른의 모습을 사진으로 봤다고 치자. 어른의 손길이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기 위한 것인지, 또는 머리를 때리기 위한 것인지 사진으로 봐서는 알 수 없다.
알츠하이머 병 연구도 마찬가지다.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이 뇌에 쌓이는 것과 알츠하이머의 발병에 분명한 연관관계는 있다. 그러나 이들이 알츠하이머 병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는 아직 확신할 수 없다.
실제로 2020년대 초반, 아밀로이드 가설은 큰 위기를 맞았다. 레카네맙과 도나네맙 이전에 아밀로이드 베타 항체 치료제인 ‘아두카누맙’이 있었다. 2021년 FDA 승인을 받은 이 약은 당시 ‘첫 알츠하이머 치료제’라며 각광받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약물의 효과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FDA 심사위원회 11명 전원이 승인을 반대하기도 했다. 이 분위기가 이어져 아두카누맙은 퇴출 위기를 겪다가 결국 2024년 2월 제약사인 바이오젠이 상업화를 포기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어서 나온 레카네맙과 도나네맙이 뚜렷한 효과를 보인 덕에 아밀로이드 가설이 구사일생한 셈이다.
2022년 6월엔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이 연구 조작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매튜 슈라그 미국 밴더빌트대 교수가 제기한 것으로, 실베인 레스네 미국 미네소타대 교수가 2006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 이미지 조작이 있었음을 포착했다는 내용이다. 이 논문은 아밀로이드 베타가 뇌에 쌓이면서 알츠하이머 환자의 기억력이 떨어짐을 입증하는 내용이다. 결국 해당 논문은 2024년 6월 저자들에 의해 논문 게재가 취소되기에 이른다.
다양한 사건을 겪으며 그 위상이 꺾였지만, 학계에선 여전히 아밀로이드 베타 가설을 주류 학설로 인정하고 있다. “큰 틀에서의 가설은 이렇습니다. 우선 아밀로이드 베타가 쌓여 아밀로이드 플라크가 됩니다. 아밀로이드 베타가 타우 단백질을 응집하는데 영향을 주면서, 두 단백질이 뇌에 축적됩니다. 그 결과 이들이 가진 독성 탓에 인지기능 저하를 동반하고 뇌세포 사멸에 이르죠. 여기까지 밝힌 겁니다. 저는 지금도 이 가설에 대한 검증 단계라고 봅니다. 아밀로이드 베타를 줄여도 알츠하이머 병이 치료되지 않는다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알츠하이머 병 타겟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요.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이 다른 중요한 핵심 메커니즘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일 거라는 가설도 있죠. 어떤 가설이 맞는지는 알츠하이머 병에 대한 연구가 더 이루어져야 안다고 생각합니다.” 허 책임연구원의 설명이다.


알츠하이머 발병 원인, 아밀로이드 가설과 치료제의 원리


그럼에도 알츠하이머 정복이 머지않은 이유
“질환의 치료법은 어느 날 갑자기 되게 똑똑한 사람이 태어나 ‘이것이다!’하고 발견하는 게 아닙니다. 다양한 방향의 연구를 진행하면서 그중에서 효과적인 길을 찾는 식이죠. 어떻게 보면 우리처럼 치료법을 찾는 연구자들 사이엔 평생 연구를 한 끝에 자신이 찾으려던 치료법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겁니다. 하지만 그의 연구가 의미 없는 건 아니지요. 아닌 길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 그것도 치료법을 찾는 데 밑거름이 될 겁니다.”
김 선임연구원의 설명이다. 현재 전 세계의 연구자들은 ‘어떤 것이 알츠하이머 병의 근본적인 원인인지’ ‘어떤 치료법이 최선의 답인지’를 두고 동시에 미로에서 길을 찾고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 네바다대 챔버스-그룬디 혁신 신경과학 연구센터는 매년 그해의 알츠하이머 신약 개발 현황 보고서를 내놓는다. 이들이 2024년 4월 발표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2024년 1월 기준으로 세계 각국에선 127종의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대상으로 164가지의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doi: 10.1002/trc2.12465
어떤 것이 맞는 길인지 모르는 상황에선 다양한 각도로 연구를 해보는 방법이 최선이다. 보고서에 기록된 164가지의 임상시험 중 약물을 뜻하는 ‘agent’만 모아 종류별로 통계를 낸 것이 왼쪽 그래프다. 138종의 약물 임상시험 중에선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에 집중하는 전통적인 접근방식을 가진 약이 34종으로 많다. 인지기능을 개선하기 위해 신경전달물질과 그 수용체를 조절하는 기존에 많이 나오던 접근방식을 가진 약도 30종이다. 이 두 방향성이 전체의 46%를 차지한다. 하지만 장과 뇌가 서로 화학물질을 주고받는다는 최신 연구 결과를 토대로 장을 조절해 알츠하이머 병을 치료하겠다는 전략, 생체리듬 자체를 조절해 보겠다는 전략 등 새로운 접근도 있다.
허 책임연구원은 현재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와 더불어 전자약과 디지털 치료기기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그가 개발중인 전자약은 빛과 소리로 뇌에 자극을 줘 치료효과를 얻는다. 디지털치료기기는 알츠하이머 환자가 게임과 유사한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학습과 관련된 뇌 부위를 활성화하면서 인지기능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그는 “실제로 알츠하이머 동물 모델을 대상으로 전자약을 사용했을 때, 2주 또는 4주이상 사용한 경우에서 인지기능 향상 효과를 얻었다”면서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 약물과 전자약, 그리고 디지털 치료기기를 병행해 치료하면 약물 투여 농도를 낮춰 부작용을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 선임연구원의 관심사는 지방대사와 알츠하이머 병 사이의 관련성이다. 그는 “당뇨병, 심혈관질환 등 지방대사에 이상이 있는 사람 사이에서 알츠하이머 발병률이 높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면서 “지방대사의 이상이 알츠하이머 병을 발생시키는 증상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알츠하이머 병 진행 가속화에는 확실히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알츠하이머 병 정복을 향한 120여 년의 미로찾기가 지금 더 다양해지고, 더 빨라지면서 특이점을 맞이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래서 언제쯤 알츠하이머 치료제가 나올 것 같냐”고 물었다. 김 선임연구원의 답이 희망차다.
“지난 120여년간 연구를 통해 축적한 정보와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 덕에 지금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광범위한 연구가 가능해진 시대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알츠하이머 병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시대라는 게 저와 제 동료들의 생각입니다. 치매 연구를 한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내 생전에 약이 나오냐’고 물어봅니다. 예전 같으면 ‘글쎄요’라 답했겠지만, 요즘은 ‘그럴 수도요’라고 말합니다. 앞으로 5년, 10년 뒤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요.”
2024년 알츠하이머 병 치료약물 임상시험 현황

미국 라스베이거스 네바다대 챔버스-그룬디 혁신 신경과학 연구센터가 2024년 4월 발표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2024년 1월 기준 세계 각국에선 127종의 알츠하이머 치료제를 대상으로 164가지의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다. 이 중 약물을 대상으로 한 138종의 임상시험을 접근방식에 따라 정리한 그래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