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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부드러운 장기시대 열린다

피부· 간· 췌장

몸에서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는 장기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조직공학이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주고 있다.

심장이나 혈관처럼 비교적 간단한 기능을 수행하는 장기라 해도 인공적으로 만들어 몸에 이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간이나 췌장처럼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는 장기라면 어떻겠는가. 여러 층으로 이루어져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피부도 만만치 않다. 이런 장기들에 이상이 생겨 고통받는 환자들의 수는 늘어가는 추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조직공학(tissue engineering)을 이용해 ‘기능성 장기’를 만드는 일이 진행되고 있어 희망을 주고 있다. 인체 장기의 기능을 수행하는 기본 단위는 조직이다. 조직은 한 종류 또는 여러 종류의 세포들로 구성돼 있다. 세포들은 세포배양이라는 기술을 통해 실험실에서 증식될 수 있다. 만일 한걸음 더 나아가 세포가 유래한 조직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인공장기(functional artificial organ)를 만들 수 있다면 현재 의학계가 당면한 한계를 획기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세포생물학과 기초의학의 연구에 따르면, 인체의 각 장기에는 소수정예로 이루어진 기저세포(stem cell)가 있다. 이들은 스스로 증식하면서 조직의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는 세포를 끊임 없이 만들어낸다. 그 결과 기저세포가 있는 한 조직의 기능은 일생동안 유지될 수 있다.
조직공학자들은 이 점에 착안, 조직을 관장하는 ‘주인’인 기저세포를 분리해 키우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기저세포라면 어디에서든 조직을 훌륭하게 재건하지 않겠는가.

세포은행 만들어 필요할 때 이식
최외각 지키는 보호막 피부


피부는 몸의 체표면을 덮고 있는 장기다. 피부는 체표면에 위치한 표피조직과 그 밑에 있는 진피로 크게 구분된다.

표피조직의 임무는 인체 내의 수분이 손실되지 않도록 하고 세균이나 자외선 같은 외부의 해로운 물질을 막는 보호막 기능이다. 제일 겉에 여러겹으로 쌓여있는 각질층, 색소를 형성해 자외선을 차단시키는 세포, 면역기능을 갖는 랑게르한스세포, 머리카락이나 털을 형성하는 모발 세포, 그리고 땀샘과 같은 부속 기관이 이곳에 있다.

기저세포는 표피조직의 제일 아래에 위치한다. 기저세포 자체는 별다른 보호막 기능을 갖지 않지만 보호의 일선에 선 다양한 세포들을 만드는 모체다.

표피 아래의 진피는 실처럼 얽혀있는 섬유상 단백질(콜라겐)과 섬유아세포들이 듬성 듬성 섞여있는 조직이다. 모세혈관은 바로 진피까지만 도달해 있기 때문에 영양분이나 여러 성장인자들은 확산을 통해 표피층 세포에 공급된다.

초기에는 피부에 상처가 생기면 새롭게 성장할 때까지 실리콘이나 드레싱과 같은 일시적인 보호막을 부착하거나 본인의 피부 조직을 떼어 이식하는 것으로 치료했다. 그러나 체표면의 상당 부분이 외상이나 화상으로 손실될 경우 본인의 피부조직을 이식하는데 한계가 있다. 만일 환자 자신의 우표크기만한 피부조직을 떼어 적어도 1만배 이상 증식시킨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쓰임새 다양

인공피부가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미국 MIT에서 이뤄졌다. 표피세포가 성공적으로 증식하기 위해 진피에 존재하는 섬유아세포가 배양용기에 반드시 함께 있어야 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섬유아세포가 표피세포의 성장을 위한 인자들을 제공한 것이다. 이후 새로운 사실들이 점차 밝혀지면서 인공피부의 제작방법이 활발히 연구돼 왔다.

1987년 이래 인공피부는 사람에게 적용되기 시작했다. 피부이식은 화상환자로부터 정상적인 피부조직를 떼어 배양한 뒤 이를 상처 부위에 이식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심하게 화상을 입은 환자의 경우 자신의 피부세포가 자랄 때까지 병균감염과 건조함으로부터 버티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런 환자의 경우 죽은 사람에서 얻은 피부를 보호막으로 이용하고 있다. 만일 인공피부를 미리 대량으로 배양해놓는다면 응급환자를 안전하게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누구의 피부를 이용할 것인가였다. 얼마 전 미국의 한 회사는 산부인과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잡았다. 남자 신생아가 태어났을 때 포경수술을 하고 난 뒤 버리는 피부조직을 이용하자는 발상이었다. 이 조직에서 표피의 기저세포와 진피의 섬유아세포를 분리해 인공피부를 만들기 시작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세포 은행’에 저장해 놓았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는 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아직 시작 단계다. 인공피부의 공급 수준은 환자의 수요에 훨씬 못미치고 있다. 인공피부를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한 전문적인 생명공학 회사가 거의 없다.

인공피부의 쓰임새는 단지 환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체 피부를 대상으로 직접 수행할 수 없는 각종 실험에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피부를 통한 약물전달과 약물 대사, 방사선이나 자외선이 피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에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또한 피부의 특수층에서만 번식하는 바이러스 연구에도 좋은 재료로 이용되고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외형의 피부는 대부분 조직공학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구강점막이나 자궁경부와 같이 몸 안의 특수 부위에 대한 연구도 진행중이다.

하지만 환자에게 직접 적용하는 사례는 그렇게 흔치 않다. 많은 정교함이 요구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술을 위해서 굉장히 경비가 많이 필요하다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피부를 직접 이식하는 방법만이 시행되고 있다. 특히 화상 환자의 경우 대부분 극빈자들이 많아 이런 시도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림1)자연피부와 인공피부^표피의 제일 겉에 각질층이 있고, 과립층ㆍ유극층에는 자외선 차단 세포, 면역세포 등이 분포한다. 기저 세포는 이런 세포들을 만드는 모체다. 진피는 섬유성 세포와 단백질로 구성된다. 인공피부는 아직 실험단계지만 자연 피부에 비해 손색이 없다.


동물세포와 사람 혈액의 만남
독소를 정화시킨다 간


간은 신체의 대사작용에서 가장 중심을 이루는 장기로 알려져 있다. 우선 몸에서 생성되는 유독물질이나 외부에서 유입되는 약물과 독성 물질을 분해한다. 또 음식을 섭취했을 때 탄수화물이 간에 들어오면 글리코겐 형태로 탄수화물을 변환시켜 몸 곳곳에 비상식량으로 저장시킨다. 만일 몸에 에너지원이 모자라면 글리코겐을 분해해 에너지원을 만들어낸다. 지방과 단백질의 대사에도 깊이 관여한다. 이밖에도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간의 역할은 다양하다. 그래서 간질환이나 간암, 또는 간 절제 수술로 간이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 생명에 큰 위협이 닥친다.

초기에는 동물의 간과 사람의 혈액을 직접 연결시키는 원시적인 형태가 존재했다. 환자 팔의 정맥으로부터 혈액을 뽑아 막으로 중심이 분리된 혈액투석기의 한쪽 공간으로 흐르게 한다. 이때 다른쪽 공간은 건강한 개의 혈액이 흐른다. 환자의 혈액에는 독성물질이 많기 때문에 막 사이의 농도 차이로 인해 독성물질은 개의 혈액쪽으로 침투한다. 이 독성물질은 개의 간에서 정화된 이후 막을 통해 다시 환자의 몸 속으로 들어온다.

현재 의료계에서 연구되는 인공간은 동물을 직접 데려다놓고 시술하는 형태에서 간세포만을 떼어 독성물질을 정화시키는 형태로 옮겨졌다. 예를 들어 속이 빈 섬유물 내부에 간세포를 부착해 배양하고, 이곳을 통해 간질환 환자의 피를 걸러내는 방식이다. 아직 몸 속에 직접 넣는 수준은 아니다.

작년 초 미국의 한 의약 회사는 돼지의 간세포를 사용한 인공간을 개발했다. 몇가지 성능 검사를 거친 후 올해에는 임상 실험에 들어갈 전망이다.
 

(그림2)원시적 형태의 인공간^간질환 환자의 혈액이 개의 간으로 흘러가 정화된 후 다시 몸으로 돌아오는 원리다. 1988년 개발됐다.

상황에 맞게 인슐린 분비
당뇨 환자 치료 췌장


췌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인슐린을 분비하는 일이다. 인슐린은 몸의 에너지원인 포도당을 세포에서 흡수하는 일을 돕는 호르몬이다. 만일 췌장이 인슐린을 생산하지 못하면 이 과정이 억제돼 당뇨병에 걸리게 된다. 즉 혈액에는 포도당이 많고 정작 포도당이 필요한 신체 곳곳의 세포는 기아 상태에 시달리게 된다.

최근 동물이나 사망한 사람으로부터 췌장세포를 떼내 배양기에서 기른 인공췌장을 만들고 있다ㅏ. 이 경우 췌장자리가 아니더라도 몸의 아무 곳에서나 인공췌장을 투여하면 기능 발휘에 별 문제가 없다. 예를 들어 배양한 췌장세포를 직접 복강 내에 주입하면 췌장세포는 몸 속을 돌며 체내상황에 맞게 인슐린을 분비한다. 이때 몸의 면역세포가 췌장 세포를 '적'으로 간주해 파괴시키는 일을 막기 위해 보호막(고분자화합물주머니)으로 세포를 감싼다. 다른 인공장기보다 훨씬 '부드러운' 기능성 장기가 등장한 셈이다. 현재 인공췌장의 연구는 동물실험 단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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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손영숙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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