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를 먹는 것과 늙는 것은 비슷한 듯 다르다. 매년 우리는 공평하게 한 살씩 더 먹는다. 그럼에도 어떤 이는 105세에 국내 최고령 철학자로 활동하고, 어떤 이는 20대에도 자꾸 깜빡깜빡 한다며 ‘나도 이제 늙었다’ 한탄한다. 노화의 속도가 사람마다 다르다면 세상에 노화를 멈추는 방법도 있을까. 최신 과학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다.

1월 7일 오후, 대전 KAIST 메타융합관에서 양재현 KAIST 뇌인지과학과 교수를 만났다. 이제 꾸린 지 1년도 안 된 그의 노화 리프로그래밍 연구실에는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실험장비와 갓 라벨을 붙인 실험도구가 정갈한 듯 혼란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양 교수가 미국 하버드 의대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KAIST로 온 것은 2024년 5월의 일이다. 하버드 시절부터 그는 ‘노화를 치료하는 과학자’로 알려져 있었다. 양 교수가 2023년 1월 데이비드 싱클레어 하버드 의대 교수와 함께 국제학술지 ‘셀’에 발표한 연구결과 덕이었다. 이 논문에서 연구팀은 태어난 지 5개월 된 쥐에게 DNA 손상을 유발하는 약물을 투여했다. 그리고 10개월 뒤 이 쥐의 신체 나이를 측정했다. 그 결과, 쥐의 체중과 모질, 근력, 시력, 청력 등이 24개월 된 쥐처럼 급속하게 노쇠했음을 밝혔다. 쥐를 빨리 늙게 한 것이다. doi: 10.1016/j.cell.2022.12.027
연구팀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이렇게 ‘가속노화’ 한 쥐를 다시 젊게 만드는 데에도 성공했다. Oct4, Sox2, Klf4 라는 세 가지 유전자를 가속노화 쥐에 주입하자, 5주 뒤 가속노화 쥐들이 회춘해 동년배(?) 정도의 신체 나이를 되찾았다. 당시 싱클레어 교수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 연구는 우리가 복잡한 동물의 생물학적 나이를 마음대로 빨리 감거나, 되돌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첫 증거”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현재 뇌 노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뇌, 근육, 장을 포함한 신체 전반의 노화를 연구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하지만 노화에 가장 취약한 장기가 바로 뇌입니다. 다른 장기들은 인공장기 개발과 이식을 통한 대체 가능성이 보이는데, 뇌는 대체가 안될 것 같아요. 뇌에 저장된 기억이 자아를 만들기에, 낡았다고 해서 교체할 수는 없죠.”


뇌세포 ‘공장초기화’로 노화를 리셋
양 교수의 연구는 노화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요한 증거다. 노화는 이제 자연의 섭리에 갇히지 않는다. 인간이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변수다. 그렇다면 치매와 파킨슨병처럼 고령층에서 많이 보이는 퇴행성 뇌 질환은 뇌의 노화 그 자체를 ‘치료’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꿈도 꿔볼 수 있다.
뇌의 노화가 정확히 무엇인지 학계에서 공통으로 받아들여지는 단 하나의 정의는 없다. 노화에 따라 뇌에서 신경세포 간의 연결이 줄어든다. 뇌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고, 신경전달물질의 수치가 전반적으로 감소한다. 그러면 뇌의 기능이 전체적으로 감퇴한다. 기억력과 학습 능력, 언어 능력이 저하된다. 자극에 대한 반응 속도가 느려지기도 한다.
양 교수는 이런 뇌 변화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후성 유전’에 있다고 본다. 후성 유전이란, DNA에 메틸기가 붙거나 DNA와 결합하는 히스톤 단백질이 변형되는 식으로 유전자 활성을 조절하는 변화를 말한다. DNA 염기서열 정보 자체에는 변화가 발생하지 않는다.
인체에는 200여 종의 세포가 약 40조 개 있다. 신경세포처럼 길쭉한 것부터 백혈구처럼 몸 이곳저곳을 누비는 것, 머리카락을 만들거나 근육이 되는 것까지 그 역할과 형태가 다양하다. 그러나 이 모든 세포는 단 하나의 유전정보를 가진다. DNA는 몸 전체를 만드는 정보가 적혀 있는 한 권의 책이다. 세포는 그 중 일부의 정보만 활용해 제각기 다른 기능을 수행한다. 후성 유전은 각 세포가 어떤 정보를 활용해야 할지 표시해 둔 책갈피라고 보면 된다. DNA에 후성 유전학적 조절이 가해지면, 각 세포에서 활용하지 않을 정보들에 활용 금지 책갈피가 덕지덕지 붙는 식이다.
DNA 활용 금지 책갈피가 붙은 부위는 그렇지 않은 부위와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활용 금지 책갈피, 그러니까 후성 유전학적 변형이 가해진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구별이 흐려진다. 원래 DNA 메틸화가 일어났어야 했던 부분에선 메틸화가 덜 일어나고, 메틸화가 일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부분에서 메틸화가 일어나 전체적으로 세포가 자기 정체성을 잃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포는 원래 맡은 일을 제대로 못 하게 된다.
양 교수는 앞서 소개한 쥐 실험에서 활용한 유전자인 Oct4, Sox2, Klf4가 “노화에 따른 후성 유전학적 변화를 리셋할 열쇠”라고 설명했다.
“세포를 컴퓨터에 비유하면, 유전정보는 중앙처리장치와 같은 컴퓨터의 하드웨어이고, 후성 유전 정보는 소프트웨어인 셈이죠. 사양이 동일한 두 대의 컴퓨터가 있다고 합시다. 한 대에는 문서작업용 소프트웨어를 깔고, 다른 한 대에는 게임 소프트웨어를 깔면 두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이 명확히 구분되죠. 이게 후성 유전학적 조절입니다. 대부분 유전정보인 하드웨어가 망가지는 걸 노화의 주요 요인이라고 보더라고요. 그런데 컴퓨터를 쓰다 보면 소프트웨어 버그나 바이러스 탓에 컴퓨터가 느려지는 경우가 훨씬 빈번하잖아요? 하드웨어에 비해 소프트웨어의 이상은 이전의 정상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용이합니다. 마치 컴퓨터에서 ‘시스템 복원’을 실행하는 것처럼요.”
Oct4, Sox2, Klf4는 야마나카 신야 일본 교토대 교수가 유도만능줄기세포(iPS)를 개발하며 찾은 핵심 유전자들이기도 하다. iPS란 성체세포를 줄기세포로 되돌리는 기술을 말한다. 줄기세포는 신체의 어떤 세포로든 분화할 수 있는 세포다. iPS를 이용하면 근육세포를 줄기세포로 되돌렸다가 신경세포로 만들거나, 피부세포를 줄기세포로 되돌렸다가 백혈구로 만드는 등 세포를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게 된다. 쉽게 말해 세포의 공장초기화 방법이다.
Oct4, Sox2, Klf4를 묶어 ‘OSK’라고 부른다. 양 교수는 “OSK를 일시적으로 발현하면 세포 시계가 역행해 후성 유전학적 변화가 젊은 상태로 되돌아간다”고 말했다. 실제로 2024년엔 25.3개월 된 암컷 쥐의 해마에 OSK와 c-Myc 유전자를 39일에 걸쳐 주입했더니 해마의 DNA 메틸화가 젊은 쥐의 패턴으로 되돌아갔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DNA 메틸화가 리셋된 쥐는 같은 나이의 쥐에 비해 공간 기억 능력을 비롯한 인지능력이 향상됐다. doi: 10.1007/s11357-024-01269-y
양 교수는 “앞으로 OSK 또는 OSK와 같은 기능을 가진 화학물질을 이용해 뇌를 다시 젊게 만드는 연구를 할 것”이라는 목표를 밝히면서 “현재는 쥐 실험과 함께 인간의 줄기세포를 이용해 뇌 오가노이드(미니장기)를 만든 뒤, 이를 대상으로 노화와 치매 치료법을 찾아가는 단계”라고 말했다.
장수 유전자를 찾아서

‘건강한 뇌 노화’ 유도해 기능 손상 극복
양 교수가 뇌의 노화를 되돌릴 수 있는 변수로 봤다면, 노화를 시간에 따라 성숙해 가는 과정으로 보는 연구자도 있다. 1월 8일 화상 인터뷰를 통해 만난 서진수 DGIST 뇌과학과 교수는 “건강한 노화와 그렇지 않은 노화를 구분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의 뇌 노화 연구실에서는 현재 노화에 따라 뇌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을 목록화하고, 이 현상 중 어떤 것이 건강한 노화인지 구분하는 연구가 한창이다.
“산술적인 나이는 이제 문제가 아닙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뇌의 기능이 쇠퇴하는 것과, 그걸 극복하고자 변하는 것. 두 가지가 혼재된 것이 뇌의 노화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노화는 촉진하고, 뇌 기능에 손상을 가하는 노화는 막을 방법을 찾고자 합니다.”
서 교수가 2023년 국제학술지 ‘셀 리포츠’에 발표한 연구결과를 살펴보자. 뇌에는 신경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제거하는 별아교세포가 있다. 별아교세포는 뇌가 급격하게 발달하는 성장기 및 성인기에는 에너지를 빠르게 공급할 수 있는 해당과정(세포 내에서 포도당을 분해해 에너지를 생성하는 대사 과정)을 많이 일으킨다. 한편, 노년기에는 보다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미토콘드리아 세포호흡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이 변화는 ‘건강한 노화’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별아교세포의 노화를 관찰한 결과 알츠하이머 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ApoE4 유전형을 가진 경우 별아교세포가 미토콘드리아 호흡을 잘 못하게 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나이가 들수록 별아교세포가 제대로 에너지를 얻을 수 없고, 뇌 기능에 악영향이 생긴다. 이는 ‘건강하지 않은 노화’다. 따라서 별아교세포가 미토콘드리아 호흡을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면 건강하지 않은 노화를 건강한 노화로 바꿀 수 있다. doi: 10.1016/j.celrep.2023.113183
서 교수의 관점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하나 더 있다. 카멘 츠베타노브 영국 케임브리지대 임상 신경생물학과 연구원은 노화에 따라 일어나는 ‘유체 지능(Fluid intelligence)’의 감소가 뇌의 기능적 보상을 통해 상쇄된다는 가설을 증명해 국제학술지 ‘eLife’에 발표했다. 유체 지능이란, 경험과 관계없이 타고난 학습 지능을 말한다. 추리력, 연산력, 기억, 공간지각능력 등이 여기 속한다. doi: 10.7554/eLife.93327.3
유체 지능은 뇌에선 외측전두피질과 후두정엽피질, 그리고 띠이랑 영역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 영역의 활성도는 노화에 따라 감소한다. 연구팀은 19세에서 87세 사이의 성인 223명을 대상으로 참가자들의 뇌를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기기로 촬영하는 동시에, 다양한 난이도의 그림 맞추기 퍼즐을 풀게 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 퍼즐은 유체 지능과 관련된 영역을 자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험 결과, 나이가 많을수록 퍼즐을 푸는 능력은 떨어졌고, 유체 지능과 관련 있는 뇌 영역의 활성도도 함께 낮아졌다. 한편, 나이가 많은 참가자에서 특히나 더 활성화된 뇌의 영역이 발견됐다. 전두엽 피질과 대뇌 뒤쪽의 설상엽이 바로 그것. 연구팀은 논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설상엽은 우리가 물체를 집중해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영역이다. 고령층은 방금 본 정보를 기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설상엽이 활성화됐다는 것은 고령층의 경우 시각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이 낮아진 대신 시각 정보를 집중해서 바라보는 ‘건강한 노화’를 통해 보상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유체 지능(Fluid intelligence)은 뇌의 ‘타고난 기초체력’이다. 추리력, 연산력, 기억, 공간지각능력 등이 속한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은 유체 지능과 관련된 이 영역의 활성도가 낮아질 때 뇌의 다른 영역의 활성도가 높아지면서, 유체 지능 감소를 상쇄하는 기능적 보상이 일어날 거라는 가설을 세웠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다양한 연령대 참가자들의 뇌를 fMRI로 촬영하는 동시에 그림 맞추기 퍼즐을 풀도록 했다. 그랬더니 노화에 따라 퍼즐의 정답률이 낮아지는 한편, 시각 정보를 집중해서 바라볼 수 있게 돕는 뇌의 설상엽의 활성도는 높아졌다. 참가자들이 풀었던 퍼즐을 함께 풀어보자. 네 개의 그림 중 다른 하나를 고르면 된다.
인간 뇌 오가노이드, 곱게 늙는 방법 보여줄까
노화를 되돌리거나, 건강한 노화를 유도하거나. 뇌의 노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들은 아직 연구 초기 단계다. 정말로 우리의 뇌에 적용하기까지 앞으로 밝혀야 할 의문이 더 많다. 서 교수는 뇌 노화 연구의 미래가 오가노이드에 있다고 보고 있다. 오가노이드는 실험실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작은 장기를 말한다. “현재까지는 주로 동물 모델을 이용해 뇌를 연구했습니다. 그런데 동물 종에 따라서 관찰되는 현상과 그렇지 않은 현상이 달라진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뇌를 연구하기 위해 떠오른 분야가 뇌 오가노이드입니다.”
특히나 뇌 오가노이드는 ‘수십 년 뒤 나의 뇌’를 미리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창구로 활용될 전망이다. 사람마다 뇌의 노화 양상이 다르다. 어떤 이는 유전적으로 알츠하이머 병에 취약할 수도 있다. 어떤 이는 뇌의 인지능력이 아주 오래 건강하게 유지되는 유전자를 가지기도 한다. 이런 차이를 미리 알면 뇌의 노화에 따라 발생하는 질병을 예방할 수 있게 된다.
서 교수는 “현재 기술로는 뇌세포를 배양한 지 1~2개월부터 대뇌피질 구조가 형성되고, 이후 장기간 배양하면서 노화에 따른 변화 양상을 관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이같은 뇌 오가노이드를 이용해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연구하고 있다.
“뇌 오가노이드 모델로 노화 연구를 하는 것에도 한계점은 많습니다. 줄기세포로 뇌세포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니, 뇌의 발달을 연구하는 데 더 적합할 수 있기 때문이죠. 당연히, 실험실에서 며칠 키운 뇌에서 노화에 의한 현상이 발견될 수 있냐는 의문도 제기됩니다. 하지만 뇌 오가노이드 표면의 세포들은 상당히 성숙한 뇌의 모습을 보이며, 이 영역은 실제 뇌의 대뇌피질과 유사하게 작동합니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 발견되는 아밀로이드 베타 축적과 같은 현상이 뇌 오가노이드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되죠. 이를 활용해 알츠하이머 병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노화 자체는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건강하게 늙으면 뇌는 점점 더 지혜로워질 겁니다. 노화가 쇠퇴와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개념을 받아들일 때입니다.”
뇌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과정은 피부 상피세포나 혈액, 소변 등에서 체세포를 채취한 다음 iPS 기술을 이용해 이를 줄기세포로 돌려놓는 단계부터 시작된다. 이 줄기세포를 뇌세포로 분화해 노화의 모습을 관찰하는 식이다. 서진수 DGIST 뇌과학과 교수가 만든 뇌 오가노이드. 위는 공초점 현미경, 아래는 광학현미경으로 촬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