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군(space force)’이라고 하면 우선 SF 속 우주군부터 떠오른다.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 사람이 아닌 외계인과 전쟁을 벌이는, 아직은 ‘비현실적인’ 우주군 말이다. 하지만 우주군과 함께 등장하는 우주기술은 지극히 실현가능한 것들이 많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실현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SF에 등장한 핵폭탄
1944년 초, SF 속 기술은 이미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고, 미국은 막강한 전력으로 유럽과 태평양 등지에서 추축국을 상대하고 있었다. 이때 미국 정보부를 놀라게 한 것은 ‘어스타운딩 사이언스 픽션(현재 이름은 ‘아날로그 사이언스 픽션 앤 팩트’)이라는 잡지에 실린 단편소설 ‘데드라인(Deadline)’이었다. 지구를 닮은 가상의 행성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는 내용이었는데, 이 소설에서는 우라늄235로 핵분열을 이용하는 어마어마한 폭탄이 등장했다.
놀랍게도 당시 미국 정부는 1942년부터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라는 이름 아래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 중이었다. 혹시 정보가 새어나간 것은 아닌지, 정보 당국은 이 소설을 쓴 작가인 클리브 카트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카트밀은 우라늄과 핵분열에 관한 공개 자료에 자신의 상상을 덧붙여 소설을 쓴 것으로 밝혀졌다.
SF 작가는 현실에 바탕을 두고 논리를 이용해 상상을 펼친다. 이미 영국의 소설가이자 역사가인 허버트 조지 웰스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1914년에 발표한 SF 소설 ‘해방된 세계(The World Set Free)’에서 핵반응을 이용한 폭탄을 묘사한 바 있다. 카트밀이 상상한 폭탄도 SF 속 상상의 미래 무기로 끝날 수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현실이 너무 빨리 상상을 따라잡아 버린 셈이다.
‘스타워즈’의 블래스터는 플라스마 탄
SF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골’ 우주무기도 기본적으로는 돌, 화살, 총알 등을 발사하는 투사 무기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이런 무기만 있다면 아무래도 재미가 없다. 명색이 SF인데 빛나는 광선이라도 이리저리 날아다녀야 보는 맛이 나지 않겠는가.
그래서인지 SF에는 에너지를 직접 투사하는 무기가 자주 등장한다. 1898년 출간된 웰스의 ‘우주전쟁(The War of the Worlds)’에서 지구를 침공한 화성인은 열선으로 목표물을 녹이거나 태워버린다. 이미 현실에도 등장한 레이저 무기와 같은 원리다. 좁은 면적에 빛을 집중해 에너지 밀도를 높여서 대상을 태우거나 녹이는 것이다.
레이저 대신 플라스마나 전류를 쏘기도 한다. 지구를 찾아온 외계인 난민을 소재로 다룬 2009년 영화 ‘디스트릭트 9’에서는 외계인들이 아크 건(Arc Gun)을 이용해 전류를 발사한다. 확실한 설명은 없지만, 방전으로 인해 전선에 불꽃이 생기는 현상인 ‘아크 방전’에서 따온 이름으로 보인다. 영화에서는 사람이 아크 건에 맞으면 내부의 온도가 급격하게 올라가면서 팽창해 폭발한다.
SF 영화의 고전 ‘스타워즈’에 나오는 ‘블래스터’는 언뜻 레이저 건 같지만, 광선이 날아가는 모습이 눈에 보일 만큼 느리고 제다이가 어렵지 않게 광선검으로 이를 튕겨낸다. 블래스터는 고에너지 플라스마로 이뤄진 탄을 발사한다.
플라스마 탄은 온도가 3000도 이상으로 목표물을 녹여서 관통하거나 아예 증발시킬 수 있다. 위력은 막강하지만, 현재 기술로는 아직 이런 형태의 플라스마 무기를 만들지 못한다. 플라스마를 발생시켜 쏘는 장치가 있긴 하지만, 유효 거리가 7~8cm 이내로 짧아 금속을 자르는 공업용으로 쓰이는 데 머물러 있다.
제다이가 든 광선검은 원래 별다른 설명 없이 영화에 등장했는데, 나중에 플라스마로 만든 검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미치오 카쿠 미국 뉴욕시립대 석좌교수는 2010년 자신이 진행하던 TV쇼 ‘SF 과학: 불가능의 물리학’에서 “에너지가 충분하고 플라스마를 검 모양으로 유지할 수만 있다면, 광선검을 만드는 게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강화복의 원조 ‘스타십 트루퍼스’의 군인
최첨단 우주무기를 든 우주군의 복장은 어떨까. 우주전(戰)에서는 전투복 대신 인간의 몸을 보호하면서 신체 능력을 증폭시켜주는 ‘강화복’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1959년 발표된 로버트 하인라인의 소설 ‘스타십 트루퍼스’다. 주인공을 비롯한 군인들은 전신을 감싼 강화복을 입고, 곤충처럼 생긴 외계인과 전쟁을 치른다.
이 강화복은 무게가 1톤(t)에 육박하지만, 내부에 있는 수백 개의 압력 감지 장치가 근육의 움직임을 인식해 훨씬 강한 힘을 낸다. 그래서 강화복을 입으면 더 무거운 무기를 휘두르고, 더 높이 뛰어오르고, 더 오랫동안 싸울 수 있다. 시각이나 의사소통 능력도 강화되기 때문에 적과 동료의 위치를 쉽게 파악하고 전술을 바꿀 수 있다. 이 작품은 1997년 영화로도 나왔는데, 영화에서는 이런 강화복이 빠지는 바람에 실망했던 SF 팬이 많다.
하인라인의 소설 이후 강화복은 미래의 전쟁을 그릴 때 보편적으로 등장하는 소재가 됐다. 지구에 침공한 외계인과 싸우면서 똑같은 하루가 계속 반복되는 타임루프를 겪는 2014년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에서도 군인들은 모두 강화복을 입고 싸운다. 슈퍼히어로 ‘아이언맨’은 강화복을 입고 개인 전투를 수행하는 것은 물론, 하늘을 넘어 우주까지 날아가기도 한다.
SF에 나오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현실에서도 강화복이 개발되고 있다. 무거운 짐을 들고 나르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환자의 움직임을 돕는 외골격 로봇이다. 실제로 일본의 자동차회사인 혼다는 휴머노이드인 ‘아시모’를 개발한 기술을 이용해 하체강화 외골격 로봇 ‘워킹 어시스트(Walking Assist)’를 개발했다. 군사용 외골격 로봇도 개발 중이다. 미국 방위산업체 록히드마틴은 2009년 무게 90kg의 짐을 메고도 시속 16km로 달릴 수 있는 강화복 ‘헐크(HULC)’를 개발했다.
국내에서도 의료용이나 산업용, 군사용 외골격 로봇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8월 말 LG전자는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IFA2018)’에서 하체를 지지하고 근육을 강화해 공장 등 산업 현장이나 환자 보조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클로이 수트봇(CLOi SuitBot)’을 공개했다.
그나마 ‘현실적인’ 반물질 폭탄
SF 영화에서 가장 웅장하고 멋있는 요소는 역시 우주함대다. 우주 공간에서 대규모 함대전을 벌인다면 총이나 검보다 훨씬 파괴력이 강한 무기가 필요하다. 개인 무기보다 레이저나 플라스마, 입자 빔을 훨씬 더 강하게 발사하거나 핵미사일도 자유롭게 활용한다.
영국 소설가 데이비드 웨버가 1993년부터 발표하고 있는 ‘아너 해링턴(Honor Harrington)’ 시리즈에는 현재 기술로는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엄청난 기술이 등장한다. 바로 중력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것이다. ‘임펠러 엔진’이라는 장치로 중력장을 만들어 우주선을 추진하는데, 이론상으로는 광속까지 가속할 수 있을 만큼 중력장이 강하다. 또 이 중력장은 무기로 뚫을 수도 없어 철통같은 방어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 중력장이 닿지 않아 적의 공격에 취약한 우주선의 옆면에는 따로 ‘중력측벽’을 만들어 방어한다. 중력측벽을 무력화하기 위해 만든 무기가 ‘중력 랜스(grav lance)’다. 소설 속의 설명에 따르면, 중력 랜스는 공진파(물체가 가진 특정 진동수와 같은 진동수의 힘이 가해질 때 에너지가 커지면서 생기는 파장)를 발생시켜서 적함의 중력측벽 발생장치에 부하를 걸어 파괴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불과 몇 년 전에야 중력파를 측정하는 데 성공했으니, 중력을 자유자재로 활용해 무기로 만드는 건 아직까지 머나먼 미래의 얘기다.
2013년 영화로도 나온 오손 스콧 카드의 ‘엔더스 게임(Ender’s Game)’에서는 미사일로 뚫지 못하는 외계인의 방어막을 뚫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 ‘닥터 디바이스’가 등장한다. 닥터 디바이스는 일종의 분자 분리 장치로 묘사된다.
이 장치가 광선을 발사하면 광선의 초점에 물리적인 장(field)이 생긴다. 이 장 안에서는 원자가 전자를 공유할 수 없어 분자 구조가 유지되지 않는다. 즉, 물질이 모두 산산이 흩어져 버린다.
이 장은 발생원에서 멀어질수록 약해지지만, 새로운 분자를 만나면 다시 강해지면서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닥터 디바이스를 우주함대가 밀집한 곳에 사용한다면 순식간에 모두 쓸어버릴 수 있다. 너무나 강한 나머지 지상에서 사용한다면 행성마저 모두 분해될지도 모른다.
그나마 ‘현실적인’ 우주무기가 있다면 반(反)물질(antimatter) 폭탄이다. 반물질 폭탄은 우주를 이루고 있는 물질과 특정한 성질이 반대인 반물질을 이용한다. 예를 들어, 양성자는 전하가 양(+)인 반면, 반양성자는 전하가 음(-)이다. 반물질이 물질과 만나면 쌍소멸 현상을 일으키며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한다. 질량이 에너지로 바뀌기 때문이다. SF는 아니지만 2008년 출간된 댄 브라운의 소설 ‘천사와 악마’는 바로 이런 반물질을 소재로 하고 있다.
반물질은 지금도 실험실에서 만들 수 있지만, 굉장히 비싸고 물질과 닿으면 폭발하기 때문에 보관하기 어렵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0.7g의 질량이 에너지로 바뀌어서 도시 하나를 파괴했다.
만약 반물질을 단 1g이라도 적함에 명중시킨다면, 물질 1g과 반응해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3배 가까운 위력으로 적함을 파괴할 것이다. 반물질은 단 1kg만 있어도 역사상 가장 위력이 컸던 수소폭탄인 옛 소련의 ‘차르 봄바’와 맞먹는 파괴력을 낼 수 있다. 반물질의 양에 따라 단순히 우주선을 파괴하는 것을 넘어서 행성 자체를 파괴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제4차 세계대전’은 없어야
기술적인 제약을 무시한다면 SF에서처럼 행성이나 항성 단위로 파괴의 규모를 넓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중력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면 소행성이나 위성을 끌고 와 행성에 충돌시켜 버릴 수도 있다. 적의 행성을 원래 궤도에서 빗나가게 해, 얼어붙거나 불타서 생명체가 살지 못하는 곳으로 만들 수도 있다. 적당한 크기의 블랙홀을 던져서 빨려 들어가게 할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항성을 초신성으로 폭발시켜 버리면 어떨까.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면 문득 의문이 든다. 우주에서 굳이 왜 이 정도의 증오심을 내보여야 할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제3차 세계대전에 어떤 무기가 쓰일지는 모르겠지만, 제4차 세계대전에는 몽둥이와 돌이 쓰이리라는 것은 알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한 번 더 세계대전이 일어나면 지구의 문명이 원시 시대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SF 소설이나 영화에서는 적대적인 외계인을 상대하기 위해 강력한 무기를 개발하곤 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아직도 전쟁이 멈추지 않는 현실을 보면, 인간은 우주에 진출한 뒤에도 서로 싸울 가능성이 크다. 정작 외계인은 지구에 관심도 없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이 좁은 태양계를 두고 군사 경쟁을 벌이다 자멸한다면 그건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