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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가 신비롭게 빛나는 하늘 아래 끝없는 빙원으로 덮여있는 환상의 남극대륙. 우리들에게는 아직 낯선 이 대륙에 한국탐험대가 도전했다.


남극위를 걷고 있는 펭귄


한국 해양소년단연맹(총재 윤석순) '남극관측탐험대'는 85년 11월 6일 오전 11시 "21세기를 향해 웅비할 한국의 원대한 꿈을 펼쳐보이겠다"는 기개를 다짐하는 탐험대 발대식을 갖고 이날 오후 5시 대한항공 021기편으로 장도에 올랐다.

탐험대는 단장 윤석순, 대장 홍석하, 부대장 허욱씨등 한국대양소년단연맹 지도자 11명, 해양 과학자 장순근(지질학박사), 최효씨(해양기상학박사)및 보도요원4명 등 17명으로 구성되었다.

극지의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은 오로라, 시선이 가는데 마다 장려하게 펼쳐져있는 얼음과 눈의 대경관, 그 곳에서 서식하는 갖가지 생물이 연출하는 드라마.

오로라. 그것은 하늘에 전개되는 장대한 빛의 예술이다. 커튼 모양을 비롯하여 활 베일 코로나 등 각가지 모양의 오로라중 대표적인 것이 커튼모양이다. 동서로 길게는 5천km이상으로, 너비는 5백~1천m로 펼쳐지는것도 있다. 각가지 색채로 어울려 수시로 변화하며 펼쳐가는 모양은 빛의 움직임이 연주하는 하늘의 교향곡이라 할 수 있다.

이 신비의 대륙 남극을 관측탐험한다는것은 진리는 탐구하는 과학의 눈을 남극의 자연과 환경 쪽으로 돌려 착실히 쌓아올린 성과로 인류평화에 기여하자는 것이다. 오로라에대한 초고층현상(超高層現狀)연구로 지구자기권(地球磁気圈)의 구조를 밝혀 내려는것이 그 하나다. 대량의 운석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우주의 기원을 밝힐 단서를 찾아낸것 등'극지는 우주에의 창'을 열어주기도 했다.

남극대륙은 또 오염된 인간의 접근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청정한 대륙이다. 거대한 빙원속에는 몇만년에 걸친 지구환경의 역사가 선명하게 간직되어 있다. 빙원 밑에 묻힌 지질에서는 지구의 생성과 변동의 역사를 읽어낼수도 있다. 해양과 대륙의 생물 및 광물자원 탐사도 중요하다. 남극관측은 이러한 지구환경의 해명과 남극을 어떻게 효과있게 이용할 수 있는가 등이 깊이 관련되어 있다.

지구상에서 인류에게 남겨진 최후의 자연보고-남극대륙. 이곳에 국제지구관측년(1957~58)부터 과학의 메스가 가해졌다. 그로 부터 불과 4분의 1세기가 지나는 동안 여러나라에서 과학의 힘을 크게 쏟아왔다. 남극지역은 평화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목표 아래 국제협력에 의한 과학적 데이타 축적의 필요는 앞으로 더욱 강조될 추세다.

이런 인류 공동의 목적에 우리나라도 발을 맞추어 이번에 남극관측탐험대가 첫발을 내 딛은 것이다.

남극대륙은 남위 90도의 남극점(南極点)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면적 1천3백50만㎢(지구 표면의 10분의 1, 한반도 면적의 약 62배)로 미국과 멕시코의 영토를 합친것 보다 큰 광대한 땅이다. 또 토착민이 없는 유일한 대륙이기도 하다. 대륙의 95%이상이 두껍고 거대한 얼음으로 덮여있다. 그 두께는 평균 2천 4백50m, 최대 약 4천8백m나 되며 지구상의 얼음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암반지대등 노출된 지표는 연안쪽 일부와 얼음 밖으로 정상을 내밀고 있는 산의 일부 뿐이다.

남극대륙이 언제부터 얼음에 덮이게 되었는지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7천만년 이전에는 아마 대륙에 얼음이 덮여 있지 않았을 것 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2억년 이전의 석탄층이 있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고 1억수천만년전의 파충류'리스트로자우루스'의 화석도 최근에 발견되어 이 대륙이 초목이 무성하여 동물이 살고 있었던 환경이었음이 드러났다.

대륙의 평균고도는 표면위에 덮인 얼음 부분을 빼면 약 2천3백m. 남극 이외의 육지의 평균표고가 7백30m이므로 남극이 얼마나 높은 지대인지를 짐작 할수 있다.

남극대륙은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지대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커서 남극점이나 소련의 '보스토크'기지 처럼 여름에도 영화 30도, 겨울에는 영화70도나 되는 곳도 있고, 일본의 쇼와기지처럼 바다에 가까운 지역은 비교적 따뜻하여 여름에는 0도 이상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보스토크기지에서는 1983년 영화 89.2도 까지 내려가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온도를 기록했다. 북반구에서 가장 추운 '베르호얀스크'와 남극의 '보스토크'기지는 20도 이상이나 차이가 난다.

남극의 기상을 혹독한 추위로 만드는 한 요소는 바람이다. '브리자드'(blizzard)라는 눈과 얼음이 섞인 강한 바람이 돌연 엄습한다. 3월부터 11월까지에는 한달에 2~3회, 많을 때는 5회 정도나 휘몰아친다. 때로는 초속 50m를 넘는 바람이 3, 4일씩 계속 불어 눈보라로 시계가 나빠져 50cm 앞도 볼수 없게 된다. 이런 바람은 기온이 낮은 내륙지대보다 해안에 가까운 지역이 더 심하다. 프랑스 기지와 가까운 데니슨 곶(岬) 부근은 세계에서 바람이 가장 강한 곳으로 초속 30m를 넘는 바람이 부는 날이 연간 1백일 정도나 된다.

남극해는 남극수속선(収束線)으로 인도양, 태평양, 대서양과 구분되는 남위 55도 이남의 해역이다. 남극해는 아열대수속선(남위40도)과 남극수속선 사이의 아남극해를 포함하여 남대양 남빙양 남극양이라고도 한다. 다른 해양과 달리 남극해는 육지로 구분되어 있지는 않으나 해류계와 수괴(水塊) 등 해양 구조가 다른 해양과 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독립된 해양으로 다뤄진다.

남극대륙에 가까운 남위 64~65도에는 남극발산선(發散線)이 있으며 이 해역의 해수는 심층수가 표층으로 소용돌이 치며 올라오고 있다. 표층으로 솟은 심층수는 남극표층수라고 하며 그 일부가 북동으로 흘러 남극수속선을 이루면서 다시 침강한다.

남극해의 면적은 약 3천8백80만㎢이며 동계에는 이중 반인 1천8백80만㎢가 얼음으로 덮인다. 하계에는 얼음이 2백60㎢ 까지 줄어든다.

남극해의 깊이는 2천~5천m 정도이며 대륙붕의 수심도 5백~8백m나 된다.

이 해역에는 밍크고래, 바다표범, 펭귄, 물개, 문어, 성게, 크릴등이 서식하고 있다.

광물자원은 남극반도 쪽에 동, 몰리브덴, 금, 은, 크롬, 니켈, 코발트, 망간이 있고 남극횡단산맥에는 동, 연, 아연, 은, 주석, 석탄이 있다. 또 '듀페크'산맥에는 크롬, 플라티나, 동, 니켈, 코발트가 있고 동남극에는 철, 동, 몰리브덴, 주석, 망간, 티탄, 금, 우란등 있으며 '프린스 찰즈' 산맥에는 당장 채굴 가능성이 있는 철광, 석탄광맥이 있다.
 

남극점과 남극대륙


남극대륙과 지구상의 여러 지점으로 부터의 거리는 직선거리로 일본 토쿄에서 남극점 까지가 1만3천9백47km, 런던에서 1만5천7백8km, 워싱턴에서 1만4천3백km, 모스크바에서 1만6천1백90km이며 가까운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 처치'에서도 5천1백83km, 오스트레일리아의 멜버른에서 5천8백9km,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에서 6천2백44km, 남미 부에노스 아일레스에서 6천2백2km, 칠레의 남단에서도 5천2백km를 넘는다.

우리 관측 탐험대는 서울을 출발,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에서 극지용 식량(건조식품)과 장비를 보급받고, 여객기 편으로 마이애미, 산티아고를 경유해 칠레의 남쪽 끝 푼타 아레나스(Punta Arenas)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장비와 식량을 재포장하는등 극한지대에 진입하기 위한 점검을 마치고 출발, 허욱 부대장이 인솔하는 7명의 한팀이 17일 전세기 트윈 오터편으로 해발 5천1백40m의 빈슨(Vinson)산 기슭에 도착했다.

윤석순 단장이 이끄는 10명의 다른 한팀은 이보다 앞서 16일 C-130 허큘리스 편으로 남위 62도 12분 파머반도 북쪽 끝 '킹 조지'섬에 도착, 남극땅에 처음으로 태극기를 세웠다.

빈슨 등반팀은 빙하에 착륙한 비행기에서 내려 해발 1천7백여m지점까지 올라가 바로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고 기상관측과 자연지질관찰을 시작했다. 20일에는 영하 30도를 넘고 돌풍이 휘몰아치는 속에 5백m정도 더 전진하여 제1캠프를 설치했다. 22일에는 6시간동안에 5백여m를 전진하여 제2캠프를 설치했다. 25일에는 제3캠프를 설치하고 정상도전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이때의 기온은 영화 40도가 넘었다. 그동안 암석채취, 빙하의 흐름 등 관찰이 계속되었다. 29일에는 허욱 부대장과 권오완, 이찬영, 김진원, 허정식 대원이 해발 4천8백m 지점서부터 최대경사가 60도 되는 빙벽을 8시간에 걸쳐 도전한 끝에 드디어 정상에 이르렀다.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동결된 성채를 정복한것이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 대한의 남아들이 인류공영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여기 남극에 첫발을 디디다"라고 새긴 태극 마크도 선명한 동판을 이곳에 묻었다. 캠프로 돌아오는 코스는 활강이었다. 30일부터는 계속 내림길을 더듬으며 비행기 착륙지점까지 돌아와 비행기 편으로 남극점을 향했다. 표고 2천8백4m의 남극점은 아문젠·스코트 기지라고도 부른다. 12월 7일에는 빈슨 외각으로 진출했다. 그동안에도 조사활동은 계속했다. 8일에는 돌아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할 때와는 다른 감격 속에 드디어 남극대륙을 이륙했다.

킹 조지팀은 19일 칠레기지와 중공기지 중간지점에 관측기지를 설치하고 장순근박사(한국해양연구소 책임 연구원)와 최효박사(한국해양연구소 선임 연구원)을 중심으로 기상관측과 자연지질 관측을 착수했다.

21일부터 24일 까지에는 칠레의 '아르투르프라트'기지와 브라질의 '코만단테 페라츠'기지, 아르헨티나의 '주바니'기지, 우루과이의 '아르티가스'기지, 폴란드의 '아크토우스키'기지, 중공의 장성(長城·Great wall)기지, 소련의 '벨링하우젠'기지를 차례로 방문했다. 이런 나라의 기지는 이미 남극에 학술탐사 거점을 마련해 놓고 있으며 남극에 대한 경험을 쌓고 있어 새로운 참여자에게 여러가지 협조를 해 주고 있었다.남극학술은 누구나 자유로이 할 수 있으며 그런 탐사의 결과는 자유로이 이용될 수 있다. 평화로운 목적만을 위해 이용될 수 있다는 남극조약 기본 정신에 따라 어떠한 핵 폭발도, 방사능 유출물질의 사용도 금지되어 있고 환경보호의 책임, 동물과 식물등 자연생태계 보존 책임등에 대한 안내 지도를 받았다. 또 긴급사태가 발생했을 때 협조받을 사항과 전기통신이용절차와 체계를 확실하게 해놓을 수도 있었다.

이런 준비와 협조 체계등이 모두 세워지자 26일 부터 해변과 빙산탐사, 해류와 조류 관측, 해양생물과 육상생물 관찰 및 표본채취, 화석및 암석채취등이 착착 진행되었다. 12월 6일 부터는 철수 준비를 시작했다. 10일에는 푼타 아레나스에서 빈슨 등반팀과 합류했다. 16일에는 드디어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지구가 둥글며 남반구에도 북반구와 비슷한 기후대가 있고 또 북방의 대륙과 같은 대륙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된 직후 1500년대에 그려진 지도에는 '테라 아루스토라리스 인코그니타'(미지의 남방대륙)이라 이름붙인 대륙이 그려져 있다.

남극 탐험의 역사는 18세기 말경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778~80년 사이에 제임스 쿠크가 3차에 걸친 항해로 남극대륙 주변의 섬을 발견하고 눈과 얼음이 덮인 대륙임을 확인했다. 1820년에는 미국의 파머선장이 물개잡이 항해 중 남극반도를 발견했다. 당시는 대륙의 일부인지를 인식못했다. 1839~42년에는 미국의 해군대위 클라크 윌크스가 2천4백km에 이르는 해안선 항해 끝에 남극대륙 발견을 선언했다.

1841~43년에는 영국의 제임스 클라크 로스경이 이끄는 탐험대가 남위 78도10분52초 지점까지 이르는 탐험으로 빅토리아랜드와 로스해, 로스붕빙을 발견하여 대륙탐험의 돌파구를 열었다. 1844~45년에는 노르웨이의 크리스텐센이 남극대륙에 처음으로 상륙했다. 1897~99년에는 벨기에의 게르란체가 벨링하우젠 해의 빙원에서 처음으로 월동을 했다. 또 1898~1900년에는 영국의 보츠 그레뷘크가 아데아 곶의 대륙에서 처음으로 월동했다. 1901~4년에는 영국의 스코트가 로스섬에서 월동하고 기구를 타고 공중정찰을 했다.

1907~9년에는 영국의 섀클턴이 남위 88도 3분지점-극점에서 1백50km까지 접근, 남자극(南磁極)을 발견했고 로스 섬의 에레버스 화산을 등반했다. 1911년12월14일 노르웨이의 아문젠이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했다. 1912년 1월 17일에는 영국의 스코트도 남극점에 도달했으나 귀환도중 5명 전원이 혹한 속에서 사망했다. 1929년에는 미국의 버드 소장이 남극점 첫비행에 성공했고, 이어 1946년~47년에는 버드 소장 지휘로 대륙 주변의 해안선을 대부분 촬영하고 미국 해군 4천7백명이 참여하고 함정 13척, 비행기 25대가 동원되어 기동작전을 벌인 하이점프작전이 있었다.

1957~58년에는 남극대륙에 대한 학술조사 기초가 되는 국제지구관측년이 실시되었고 1959년12월에는 미국 워싱턴에서 대륙의 평화적 이용, 과학조사의 자유보장, 영유권 주장의 동결등을 규정한 남극조약이 조인되었다. 이 조약은 1990년 까지 유효한 조건부 조약이며 최초의 가입국은 12개국이었다. 현재는 정회원국이 미국, 영국, 소련, 프랑스, 아르헨티나, 칠레, 뉴질랜드, 호주, 일본, 벨기에, 노르웨이, 남아공화국, 서독, 폴란드, 인도, 브라질, 중공, 우루과이 등 18개국으로 늘었다. 준회원국도 불가리아, 체코, 덴마크, 동독, 헝가리, 이탈리아, 네델란드, 루마니아, 파푸아뉴기니, 페루, 스페인, 스웨덴, 핀란드, 쿠바 등 14개국이다.

이와는 별도로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협약도 체결되어 있는데 가입국은 미국, 영국, 소련, 호주, 칠레, 동독, 뉴질랜드, 남아공화국, 일본, 노르웨이, 벨기에, 폴란드, 프랑스, 아르헨티나, 서독, EEC, 스페인, 스웨덴과 85년 4월 28일에 가입한 한국이다.

남극은 지구상의 마지막 프런티어다. 오염되지 않은 이 지역에 단백질이 풍부하고 번식력이 강한 크릴이 많이 있고 지하 자원도 풍부하기 때문이다. 1960년대 후반에 발견된 크릴은 길이 5cm정도의 갑각류로 새우와 비슷하게 생겼다. 바다 표면 가까이에 떼지어 있기 때문에 한번 그물을 올릴때 몇t씩이고 잡을 수 있다. 최근 어군 탐지기 조사로 크릴 자원량은 6억5천만t이나 된다고 추정되고 있다. 영양가도 많아 여러나라에서 식품개발을 서둘고 있다. 다만 잡은지 한 두시간 안에 냉동시키거나 삶아 놓지 않으면 상하기 때문에 저장 가공법개발이 급하다. 소련인들은 이것을 반죽한것 처럼 가공하여 샌드위치에 끼워 먹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냉동크릴을 시판, 식품으로 이용하고 있다. 그리고 단단백질 먹이로서 동물사료로 쓰는 나라도 있다.

광물자원의 장래성에 대한 관심도 차츰 높아가고 있다. 각종의 광석 매장량이 많으며 대륙붕의 석유와 천연가스 부존량도 많다고 알려려 일본, 프랑스, 노르웨이, 서독등 각국이 협조해가며 매장량과 경제성을 조사하고 있다. 또 남극 조약 조인국 끼리 광물자원 개발에 관한 국제법상의 기준을 정하기 위해 신중하게 토의하고 있다.

이런 각국의 앞선 남국자원 개발탐사에 우리나라도 뒤쫓고 있다. 78년12월7일부터 79년3월7일까지 91일간에 걸친 남북호(5천5백t)의 남빙양 시험조업을 통해 크릴 5백11t을 잡아온 제1차진출을 비롯하여 83년11월19일부터84년3월16일까지의 제4차까지 진출했다. 그 결과 남극조약가입국 및 남빙양 관련 국제 기구에 조사 연구보고서를 제출하여 85년4월28일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협약기구(CAMLR)에 가입했다. 이어 85년12월11일부터 86년3월4일까지 86일간의 일정으로 제5차 해양물자원조사선 동방호가 진출한다.

또 이번 남극관측탐험대의 진출로 남극조약가입과 남극자원개발 참여권 획득, 한국기지설치 등이 추진 될것이다.

57~58년의 국제기구관측년(70개국이 참가한 세계적 규모의 지구물리학 연구)은 당시로서는 전혀 미지의 세계였던 남극에 과학의 메스를 처음으로 댄 것이었다. 이 계획의 추진자들은 남극의 영토 분쟁에는 일절 관계하지 않으며 연구활동은 어디까지나 정치와 상관없이 자유로와야 한다고 못박았다. 이것을 확인한 것이 61년의 남극 조약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영토분쟁이 심각하게 내재되어 있다. 미국 등 몇나라는 타국의 영토권 주장을 견제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그들의 남극기지 '마란비오'에서 각의를 열기도 하고 78년에는 임산부를 기지에 보내 보호하여 출산케 한뒤 남극 시민권을 주장하기도 했다. 또 기지 주변에 철책을 설치하고 80동의 주택을 짓기도 했다. 칠레는 남극대륙 진출을 위해 극지에 가까운 '레이 호르게'섬(남위53도 서경90도)에 성인 12명과 1~10세의 어린이 6명으로 이루어진 6가구를 이주시켰다. 라스 에스트렐야스라 이름붙인 이 마을은 칠레의 용기와 주권의 상징이며 미래의 고향이 남극이라고 믿는 신념의 표현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들이 각 나라끼리 서로 자극하여 영토분쟁의 양상으로 번져 그 중에서도 영국과 아르헨티나, 칠레의 주장이 심각하게 엇갈리고 있다. 분쟁은 일고 있지 않으나 영토권을 선언한 나라는 뉴질랜드, 호주, 프랑스, 노르웨이 등이다. 영토권을 주장하지 않고 있는 남극조약 가입국은 미국, 소련, 일본, 서독, 벨기에, 브라질, 폴란드, 남아프리카, 인도 등이다.
 

남극 관측
 

남극 지역에는 12개국이 기지를 설치해 놓고 있으며 연중 개설하고 있는 기지는 35개소 내외다. 이밖에 남극의 하계(12월~2월)에만 조사활동의 거점으로 개설되는 기지가 있다. 이런 기지에서 연중 조사활동에 종사하는 사람은 9백명이며 그중 가장 많은 곳이 소련'모로조지나야'기지로 1백20명이 있다. 조사활동이 활발해지는 하계에는 많은 쇄빙선과 수송선, 항공기가 동원되므로 남극에 몰리는 사람이 수천명이 될 때도 있으며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미국의 맥머도 기지로 1천명이나 된다.

기지를 거점으로 연구관측하는 분야는 지상과 해상의 연구외에 성층권의 대기연구, 중간권과 전리권의 로케트관측 전리층관측 유성관측 오로라연구, 자기권의 인공위성에 의한 전자유체파 우주선 등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중공은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번째의 남극관측국이 되었다. 81년 여름 중공의 국가남극고찰위원회가 발족, 8명의 남극요원을 외국에서 연수시켰다. 이들을 기초요원으로 84년 남극에 진출하여 남극반도 끝쪽의 킹조지섬에 장성(長城·Great wall)기지를 설치하고 본격적인 극지탐사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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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이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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