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전기차 배터리 화재를 방지할 수 있는 기술 개발도 활발하다. 배터리 화재를 막는 방법은 사고의 원인을 제거하거나,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크게 세 가지 방향이 있다.

01. 불에 타지 않는 안전한 배터리 개발
과학자들은 리튬 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안전한 차세대 배터리를 꾸준히 연구 중이다. 그중 최근 관심을 가장 많이 모은 것은 ‘전고체 배터리’다.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 이온 배터리에 들어간 액체 상태의 전해질을 고체 전해질로 바꾼 배터리를 말한다. 8월 29일 만난 정훈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에너지저장연구센터장은 “고체 전해질은 아무리 불을 붙여도 잘 안 타고, 타더라도 액체 전해질만큼 폭발적인 반응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큰 산이 두 개나 있다. 첫 번째는 성능이다. 정 센터장은 “지금 쓰고 있는 리튬 이온 배터리의 성능이 너무 좋다”며 “전고체 배터리의 용량이나 출력 등, 성능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고체 배터리가 리튬 이온 배터리에 비해 급격한 용량 저하와 수명 단축을 겪는 이유를 규명하기도 했다. doi: 10.1002/aenm.202370162
두 번째 산은 가격이다. 현재 고체 전해질은 리튬 이온 배터리의 액체 전해질보다 1000배가량 더 비싸다. 하지만 토요타, 현대자동차그룹 등 국내외 전기차 업계에서는 안전한 배터리를 도입하기 위해 앞다퉈 전고체 배터리를 연구하고 있다. 연구 개발을 통해 대량 생산이 활발히 이뤄지면 점차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정 센터장은 전기차 배터리의 완전한 세대교체가 이뤄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성능과 가격면에서 뛰어난 리튬 이온 배터리가 시장에 계속 나와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술이 그 영역을 대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에요. 게다가 자동차는 5~10년 정도로 사용 주기가 길기 때문에 빠르게 변화하는 휴대전화 시장에 비하면 새로운 기술이 투입되는 속도가 느리죠.”
배터리 연구계는 상용화가 먼 전고체 배터리 대신 리튬 이온 배터리를 일부 개조하는 방법에 주목한다. 비교적 빨리 전기차 배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는 주로 배터리 내부의 화학 반응으로 인해 발생한다. 즉 배터리 내부 소재를 더 안전한 것으로 교체하면 화재 발생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정 센터장은 안전성을 높여야 하는 소재로 ‘분리막’과 ‘전해질’을 꼽았다.
“분리막이 손상되면 내부 단락이 일어나는데, 전기차 배터리 화재는 주로 단락에 의해 발생합니다. 또한 화재가 일어나려면 가연성 물질이 필요한데, 리튬 이온 배터리에서는 전해질이 그 역할을 해요. 따라서 분리막의 강도를 높이고, 전해질을 불연성으로 바꾸면 화재가 발생할 확률이 낮아지죠.”
먼저 국내 주요 배터리 제조사들은 분리막의 안전성을 높이고자 나섰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분리막을 세라믹 입자로 코팅해 내구성과 내열성을 높였고, SK온은 분리막을 지그재그 모양으로 감싸는 ‘Z폴딩’ 기술을 통해 양극과 음극의 접촉 가능성을 차단했다.
한편, 이민아 KIST 에너지저장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이 이끄는 공동연구팀은 기존보다 발화점을 높인 난연성 전해질 BMEC(bis(2-methoxyethyl) carbonate)을 개발해 2023년 7월 발표했다. doi: 10.1039/D3EE00157A BMEC는 기존의 전해질보다 발화점이 30℃가량 높아 불이 잘 붙지 않고, 고온 환경에서 가연성 기체 발생량이 37%, 발열량이 62% 낮다.

02.열 받아도 폭발하지 않도록 배터리 관리
“안전한 소재가 빠르게 개발된다면 배터리 화재를 잘 막을 수 있을 겁니다.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미 많은 전기차가 도로 위를 달리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전기차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배터리 시스템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합니다.”
8월 21일,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배터리 안전에 대한 과학적 접근’ 포럼에서 오기용 한양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전기차 배터리 소재뿐만 아니라 배터리 시스템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배터리 시스템이란 여러 개의 배터리 셀로 이뤄진 배터리 팩,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 배터리 냉각 장치 등을 통합한 시스템을 말한다.
그중에서도 배터리의 전압, 전류, 온도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배터리 상태를 관리하는 BMS는 배터리 안전과 가장 밀접하다. 배터리에 이상이 발생하면 바로 알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배터리 화재에서 BMS가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제기됐다.
“현재 모든 배터리 시스템에는 BMS가 설치돼 있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지가 미지수죠. 다양한 부위를 모니터링하려면 센서를 많이 설치해야 하는데, 경제성 문제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 교수가 설명했다. 한편 우승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공학부 안전과 화재방화연구실장은 “정보 저장 방식이 제조사마다 다르기 때문에, BMS 정보를 효과적으로 저장하는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배터리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열 관리가 중요해지면서, 배터리의 온도를 특별 관리하는 시스템도 개발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온도 센서를 통해 배터리 온도를 측정하다가 온도가 올라가면 쿨링 팬이나 유체를 사용해 배터리 팩의 온도를 낮추는 등의 조치를 취한다.
미국 자동차 기업 제너럴 모터스(GM)는 배터리 셀 사이에 열 전도성 재료를 삽입해 열 분산 능력을 향상시키는 열관리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런 시스템들이 적용되면 배터리는 최적의 온도에서 최대의 성능과 수명을 유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배터리 온도가 과도하게 상승할 때 일어나는 열폭주 현상도 예방할 수 있다.
오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 연구와 배터리 셀 단위의 소재 개발 연구가 협력해야 한다”며 “배터리 상태, 열역학 법칙, 연쇄 반응 등을 고려해 배터리 셀을 어떻게 배치하고 열관리 시스템은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등 배터리 시스템의 설계 최적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03.불 난 곳 빨리 찾아 효과적으로 진압
전기차 배터리 화재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 기술도 있다. 전기차 화재는 화염이 수평으로 퍼져 옆 차에 옮겨붙기 쉽다. 이같이 추가적인 화재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여러 기술이 개발됐다.
예를 들어, 화재 발생 시 전기차 하부에 화재 진압 장비를 이동시켜 구멍을 뚫고 배터리팩에 직접 물을 분사하는 방식이 있다. 전기차 배터리는 보호팩이 덮여 진압이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화재가 난 부분을 효과적으로 진압할 수 있다. 한편 불이 난 전기차 주변에 격벽을 설치해 화재 확산을 막은 뒤 물을 쏟아부어 진압하는 방법도 있다.
오 교수는 소방설계기술 회사인 안국엔지니어링과 함께 인공지능(AI)을 이용한 화재 대응 시스템을 연구하고 있다. 그는 “일반적으로 화재가 나는 경우에는 주변 구역을 전체적으로 소화하고 있다”며 “AI로 화재 차량의 온도와 열을 감지해서 불이 난 부분을 집중적으로 소화하면 화재를 효과적으로 진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 산업계와 학계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화재 대응 기술을 개발 중이다. 오 교수는 화재와 같은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다방면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하나의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배터리 소재의 안전성 향상, 배터리 시스템 모니터링, 화재 발생 시 조기 진압 등 모든 과정이 선순환을 이루면 배터리 사고가 지금처럼 두려운 일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