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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열폭주, 수평 화염, 재발화 공포의 배터리 화재

 

8월 1일 오전 6시 8분경, 인천 청라동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 

주차된 전기차에서 흰 기체가 솟아오르더니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은 옆 차에 옮겨붙으며 속수무책으로 번지다 8시간여 만에 진압됐다. 이 사고로 지하 주차장에 주차된 차량 87대가 불에 타버렸다. 국내 전기차 화재 중 가장 큰 규모의 재산 피해였다.

최근 연이어 발생한 전기차 배터리 화재 사고는 사회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기존 내연기관차 화재보다 그 위험성과 피해가 훨씬 심각해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과연 그럴까. 전기차 배터리 화재는 무엇이 다른지,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취재했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는 화재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존의 화재와는 다른 방식으로 일어나고, 퍼지면서 일반 자동차 화재보다 훨씬 큰 피해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가 왜 그토록 위험한지, 배터리 화재를 감식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찾아가 물었다.

 

▲연합뉴스
전기차 화재에 관한 관심이 전국적으로 커지고 있다. 2022년 9월, 경북 안동시 경북소방학교 훈련장에서 소방대원들이 전기차 화재 진압 기법을 실험하고 있다.

 

8월 30일 오전 11시, 강원도 원주의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본원 주차장. 멀쩡한 승용차들 옆으로 부서져 뜯어졌거나 불타버린 자동차 두세 대가 주차돼 있다. 자동차 오른쪽엔 전동킥보드에서 나온 것부터 ‘아리셀’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것까지, 여러 무더기의 불탄 배터리팩들이 쌓여 있었다.

 

“국과수에서 12년을 근무했는데 요즘처럼 바쁜 적도 없었어요. 배터리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느라 다들 밤을 새우고 있죠.” 과학동아 취재팀을 맞이한 우승우 법공학부 안전과 화재방화연구실장이 말했다.

 

▲이창욱
8월 30일, 강원도 원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에서 법공학부 안전과 김선재 공업연구관(왼쪽)과 전홍필 연구원(오른쪽)이 불에 탄 배터리 잔해를 분석하고 있다.

 

화재 발생 빈도는 낮지만 피해액은 3배

 

우 연구관이 설명하는 동안 방진 마스크를 낀 김선재 법공학부 안전과 공업연구관이 배터리팩 무더기에서 검게 탄 배터리팩 두 개를 꺼내왔다. 배터리에서는 채 마르지 않은 소방수가 흘러나왔다. “리튬 인산철 배터리입니다. 이 배터리팩은 전력 공급을 위해 캠핑카에 설치됐던 건데 화재가 발생했어요. 원인 분석을 위해 내부를 볼 겁니다.” 설명을 마친 김 연구관은 간이 전기톱으로 검게 탄 배터리팩 외장재를 자르기 시작했다. 매캐한 냄새와 함께 배터리팩 내부에 가득 찬 타다 만 푸른색 배터리들이 보였다.

 

“이렇게 떨어져 있는 두 부분이 따로 불타서 녹았다고요?” “이 배터리팩들이 적층으로 쌓여 있었을 거예요.” “아, 그러면 이해가 되네요. 타서 녹은 윗부분 잔해가 중력으로 떨어지면서 아래도 녹였나 보네요.” 늦여름 더위에 땀을 뚝뚝 흘리며 절단 작업을 진행하던 김 연구관이 우 연구관과 심각한 표정으로 의논했다. 과연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화재에 훨씬 취약한 것일까. 여기저기 쌓인 배터리팩을 보며 이런 첫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전기차 배터리 화재가 유독 많이 보이는 이유는 전기차 보급이 늘어나면서 화재 발생 빈도수가 증가했기 때문이라 봅니다.” 우 연구관은 예상과 다른 대답을 들려줬다. “사실 배터리 화재 사고는 오래전부터 꾸준히 있었어요.”

 

실제로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화재가 더 빈번한지 알아보기 위해서는 숫자를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소방청이 2022년과 2024년 공개한 전기차 화재 발생 현황을 보면, 첫눈에는 전기차가 위험해 보인다. 2017년 겨우 1건이던 전기차 화재 사고는 2018년 3건, 2019년 7건, 2020년 11건, 2021년 24건, 2022년 43건, 2023년 72건으로 증가했다. 발생건수가 매년 1.5~3배 가파르게 상승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2024년 7월 8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23년 1만 대당 화재 발생 건수가 내연기관차 1.9건, 전기차 1.3건으로 나타났다. 내연기관차에서 화재가 발생할 확률이 더 높은 것이다. 우 연구관은 “오랫동안 배터리 화재를 봐온 입장에서, 배터리의 안전성은 과거에 비해 지금이 훨씬 높아졌다”고 말했다. “배터리 제조 공정이 초기보다 훨씬 표준화가 됐기 때문입니다. 내부 결함도 줄었죠.”

 

그런데 화재의 심각성을 놓고 보면 입장이 달라진다. 소방청이 공개한 같은 자료에 따르면 2021~2023년 사이 전기차 화재의 건당 평균 피해액은 약 2342만 원으로 같은 기간 내연기관차 화재의 평균 피해액인 약 953만 원보다 2.5배 가량 높았다. 

 

화재가 일어났을 때 소요되는 소방력도 전기차가 훨씬 크다. 8월 21일,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배터리 안전에 대한 과학적 접근’ 포럼에서 오기용 한양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전기차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내연기관차의 3배, 진압에 필요한 인력은 내연기관차의 2.5배”라며 “필요한 소화수의 양은 110톤(t)으로, 내연기관차 화재를 진압하는 데 필요한 소화수의 무려 110배에 달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작지만 한 번 불이 붙으면 훨씬 끄기 어렵고 재산 피해도 큰 화재.’ 이것이 전기차 화재의 특징이다.

 

▲동아일보
8월 8일 인천 서구의 한 자동차 공업소에서 청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 화재 사고의 발화점으로 지목된 벤츠 전기차량에 대한 2차 합동 감식이 진행되고 있다.

 

‘열폭주’ 연쇄 화학 반응 일어나면 순식간에 화재로 발전

 

그렇다면 전기차 화재는 왜 피해가 클까. 이를 알아보려면 전기차 화재가 시작되는 부위인 리튬 이온 배터리를 들여다봐야 한다.

 

“언론을 비롯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배터리 ‘화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방학계에서는 리튬 이온 배터리 화재를 ‘반응’이라 부르는 게 맞다고 봅니다.”

 

8월 21일, ‘배터리 안전에 대한 과학적 접근’ 포럼에 참석한 나용운 국립소방연구원 연구사는 배터리 화재를 화학 반응으로 정의했다. 실제로도 배터리 화재는 배터리 내부의 화학 반응으로 발생한다. 

 

리튬 이온 배터리는 리튬 이온(Li+)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움직이면서 전기를 저장하거나 내뿜는 장치다. 양극에 저장된 리튬 이온이 음극으로 흐르면 충전이, 다시 음극에서 양극으로 흐르면 방전이 이뤄진다. 이 흐름을 통제하기 위해 배터리 내부는 복잡한 구조로 설계된다. 리튬 이온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움직이는 매개체인 ‘전해질’, 양극과 음극을 나눠 내부의 화학 반응을 막고 외부로 전기가 흐르도록 하는 ‘분리막’ 등이 대표적이다. 

 

배터리 화재는 여러 이유로 이 구조에 결함이 생길 때 발생한다. “화재의 원인은 크게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의 두 가지로 나눕니다.” 우 연구관이 설명했다. 내부적 요인은 배터리를 만들 때 생긴 내부 결함을 의미한다. 분리막이 찢어졌거나, 이물질이 들어갔다거나 하는 이유로 내부 화학 반응이 진행되고 단락이 일어나는 경우다. 외부적 요인은 접촉 사고 등으로 배터리가 충격을 받거나, 옆 차의 화재 등으로 배터리가 과열되는 등의 환경적 요인이다.

 

이런 요인들로 인해 배터리 내부에서 급격한 화학 반응이 일어나고, 이로 인해 배터리가 과열되면 더 격렬한 화학 반응이 이어지며 피해가 커지기 시작한다. “배터리 내부의 화학 반응이 큰 화재로 이어지는 이유는 ‘열폭주 현상’ 때문입니다.” 오 교수는 21일 포럼에서 전기차 배터리 화재의 큰 특징으로 열폭주 현상을 꼽았다. 열폭주는 특정 온도에 다다른 배터리 내부에서 화학 반응이 연쇄적으로 급격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리튬 이온 배터리의 온도가 60~130℃에 다다르면, 먼저 음극재 표면에 생긴 얇은 막인 SEI(Solid Electrolyte Interphase)가 녹기 시작하면서 화학 반응을 일으킨다. SEI가 녹으면서 배터리 내부 온도가 120~150℃로 올라가면 다음으로 분리막이 녹는다.

 

분리막이 없어지면 양극과 음극이 만나면서 화학 반응이 더 활발해지며 양극이 녹는다. “양극에서는 금속 산화물이 반응하면서 산소가 발생합니다. 아시다시피 산소는 연소를 촉진하는 물질이죠. 양극이 화학 분해되며 배터리 내부 온도가 230~350℃까지 오르면 전해질이 녹으면서 수소와 가연성 물질이 발생합니다.” 산소, 수소, 가연성 물질까지 만들어진 이 단계에서는 배터리 화재를 막기 힘들어진다. 처음엔 미약하게 시작된 화학 반응이 연쇄적으로 커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화재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창욱
불타고 난 리튬 이온 배터리의 잔해. 여러 개의 셀이 하나로 합쳐진 모듈 형태로 포장돼 있다. 한 셀에서 열폭주 현상이 일어나면, 주변 배터리 셀도 열을 받아 화학 반응이 가속된다.

 

배터리 열폭주 현상의 원리
 
 
 

 

불을 끄는 유일한 방법 ‘냉각’ 산소 차단은 오히려 위험

 

전통적인 의미의 화재는 ‘연료, 열, 산소’의 3요소가 맞을 때 발생했다. 바꿔 말하면 이 중 하나를 차단하면 불을 끌 수 있다는 의미다. 때문에 기존에는 화재를 진압할 때 탈 수 있는 가연성 물질을 치우거나, 물을 끼얹어 열을 냉각하거나, 담요를 덮어 산소를 차단하는 방법을 썼다.

 

반면 연쇄적인 화학 반응에 의해 발생하는 배터리 화재는 기존의 화재 진압 방법을 쓸 수 없다. 배터리가 녹으면서 산소와 연료 물질이 계속 생성되고 산소를 차단해도 화학 반응이 계속 일어난다. 

 

나 연구사는 포럼에서 국립소방연구원이 진행한 배터리 화재 소화 실험 영상을 공개했다. 불이 붙은 리튬 이온 배터리 위에 두꺼운 질식소화포를 덮는다. 질식소화포는 산소를 차단해 불을 끄는 데 쓰는 담요다. 질식소화포를 덮은 지 1~2분 후, 담요 사이로 흰 기체가 흘러나와 실험장 바닥을 덮기 시작했다. 미처 타지 않은 가연성 기체다.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해 보니 배터리는 여전히 뜨겁게 달궈져 있다. 배터리의 불길이 전혀 잡히지 않았다는 뜻이다. 화면을 보여주던 나 연구사가 설명했다. “이 반응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은 ‘냉각’밖에 없다는 것이 지금까지 나온 결론입니다.” 유일한 소화 방법은 물을 뿌리는 등 배터리를 냉각시켜 화학 반응을 늦추는 길뿐이라는 것이다. 

 

국립소방연구원의 배터리 화재 소화 실험에선 전기차 배터리 화재의 또 다른 특징들도 살펴볼 수 있었다. ‘수평화염’ ‘폭발 위험’ ‘재발화’ 등이다. 전기차 아래에 평평하게 배터리를 쌓는 구조로 인해 배터리는 위쪽 압력이 세고, 불이 붙으면 위가 아니라 옆으로 번진다. 이를 ‘수평 화염’이라 부른다. “화재가 난 전기차가 내뿜는 열량은 내연기관차보다 높지 않습니다. 그런데 화염이 수평으로 퍼지면 불이 쉽게 옆 차로 옮겨붙습니다.” 나 연구사는 수평화염의 특성을 설명하며 “이렇게 차 3~4대 정도에 불이 붙으면 소방관이 진입하기도 어려워진다”고 설명했다.

 

배터리 화학 반응으로 가연성 기체가 나오는 것도 전기차 배터리 화재의 특성이다. 배터리 화재를 막기 위해 질식소화를 시도하다가 타지 않은 가연성 가스가 쌓이면, 갑작스러운 폭발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배터리 화재는 기껏 화재를 진압한 배터리에서 다시 불이 붙는 경우가 빈번하다. 물을 뿌려 온도를 떨어뜨렸지만 이후에 다시 화학 반응이 진행되며 불이 붙을 수 있다. 또한 하나의 배터리 모듈에서 일어난 화재를 진압했다 하더라도, 그사이 가열된 다른 모듈에서 열폭주 현상이 일어나서 다시 화재가 일어날 수도 있다. 나 연구사는 “실제로 전기차 배터리 화재를 진압하고 22시간이 지난 후에 재발화가 일어난 사례도 있었다”고 밝혔다.

 

▲국립소방연구원
1, 2 국립소방연구원이 진행한 배터리 화재 소화 실험. 불이 붙은 리튬 이온 배터리에 질식소화포를 덮고 적외선 카메라로 촬영했다. 배터리의 온도가 전혀 떨어지지 않고 타지 않은 가연성 가스가 흘러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아일보
3 다 타버린 전기차 배터리. 전기차 배터리 화재는 기존의 차량 화재와 다른 점이 존재한다. 배터리의 위쪽 압력이 강해 불이 옆으로 번지는 ‘수평 화재’도 그중 하나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 소방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

 

전기차 배터리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서는 기존과는 다른 소방 전략이 필요하다. 나 연구사는 “대부분 지하 주차장은 화재 감시 장비가 천장에 설치돼 있어 수평 화재를 감지하지 못한다”며 “다른 방식의 화재 감지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해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전기차 주차 구획에 칸막이만 설치해 놔도 수평 화재 확산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배터리 화재는 앞으로 더 빈발할 것”으로 예측했다. 보조 배터리부터 전동 킥보드, 크게는 전기차까지 배터리가 갈수록 일상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화재의 원인과 양상이 달라진다면 화재를 예방하는 방법, 진압하는 소방법도 바뀌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배터리 소재, 배터리 시스템, 화재 대응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개선책을 제시한다. 다음 파트에서는 배터리 화재를 막기 위한 연구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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