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소의 막강한 파워는 자연에서 얻어지는 것 뿐 아니라 인공효소에서도 기대되고 있다. 국내에서 인공효소 개발에 매진하는 서울대 화학과 서정헌 교수를 만나보았다.
지난 해 12월 제4회 한국과학상 대상을 수상한 서울대 화학과 서정헌(徐正憲·45) 교수의 연구분야는 인공효소다. 그는 효소중 금속이 필수적으로 참여하는 금속효소를 모방한 인공촉매를 만드는 기본개념을 정립한 공로로 이 상을 받았다.
수상논문은 '유기반응에 대한 금속 이온의 루이스산 촉매작용'의 무기화학 및 유기화학적 연구. 이를 통한 생체반응에서 금속이온의 촉매작용 메커니즘 규명에 단서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인공효소란 무엇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서정헌 교수를 만나보았다.
천연효소의 한계를 뛰어넘어
"본래 효소는 살아있는 생물체에서 작용하고 얻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나 인공효소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효소를 말합니다. 그래서 천연효소는 생체와 비슷한 조건 아래서만 반응이 이루어지는 한계를 가지는데, 인공효소의 경우 이러한 제한조건이 훨씬 적을 수 있지요."
또 물질개발 과정에는 생체와 상관없는 화학적 과정이 많이 있는데, 이 같은 과정에 인공효소라면 직접 적용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인공효소를 만드는 방법은 철저하게 손으로 만드는 것과 일부는 사람이 조작하고 일부는 생체에 의존하는 방법이 있다. 현재 인공효소 연구는 다른 나라에서도 몇 군데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접근방식이 각기 다르다. 그 중에서도 미국 버클리대 피터 슐츠 교수는 항체를 이용해 인공효소를 개발하고 있다.
피터 슐츠 교수가 개발하고 있는 항체효소의 경우 쥐를 이용해 단일클론항체를 만들어 효소와 같은 촉매 작용을 하도록 하는 것.
"항체와 효소는 두가지 다 단백질로 구성돼 있지요. 그러나 생체에서의 기능은 다릅니다. 본래 항체는 이물질을 인식하여 제독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고 효소는 화학반응을 촉매하는 것이지요. 피터 슐츠 교수가 개발하는 항체촉매란 항체를 만들어내되 원하는 화학반응의 전이상태를 낮춰 반응 속도를 빨라지게 하는 원리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인공효소가 실용화될 수 있는 길은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질병치료, 식품개발, 생물물질의 합성, 환경오염 방지, 대체에너지원 개발, 생명현상의 기본에 대한 연구와 활용 등 효소 개발에서 기대되는 모든 산업에 활용될 수 있다. 여기에 생체와 관계없는 부분에도 이용될 수 있다. 한 마디로 화학과 관련된, 새 물질을 만들어내는 데는 어디든지 쓸모가 있다고 말해도 된다는 것이다.
현재 산업화를 목표로 개발이 기대되는 분야는 수술중 생기는 독소파괴용 의약품 개발, 화학전에서의 유독가스 제독, 엽록소를 모방하여 탄산가스로부터 녹말을 만드는 일, 질병치료를 위한 핵산 가수분해, 바닷물 속 우라늄 이온 추출 등이 있다.
서정헌 교수는 간단한 공정의 경우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된다면 향후 10년 이내에 실용화가 가능할 것이라 보고 있다.
지난 87년 제정된 한국과학상은 한국과학재단이 세계정상수준의 기초과학분야 우수연구성과자에게 주는 것으로 '한국의 노벨상'이라 불리기도 한다.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 절실
서정헌 교수는 인공효소 분야를 연구하기 시작한 동기를 한마디로 '도전 할 것이 많기 때문'이라 말한다. 천연 효소에 대한 연구의 경우 있는 자연현상을 발굴하고 정리해내는 것인 데 반해 인공효소는 새로운 것을 창출해 낸다는 점에서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등산으로 치자면 '산이 높아야 오를 맛이 난다'는 것.
"과학연구작업을 하는 보람은 학문적 개념적 발전을 이루는 점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누어지는데, 인공효소는 개념적으로 성취할 게 많습니다. 그 점이 제게는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지원이 미흡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이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목소리는 높아진다.
"기초과학은 개념적 학문적 발전이라는 동기도 있을 뿐더러 현재는 쓸모가 없어도 장기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낳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당장 눈앞의 경제성만을 따지다 보면 50년 후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선진국 과학기술의 꽁무니를 쫓아가는 모습일 수밖에 없지요."
그는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나무를 심는 것에 비유하면서 이 점에 대한 정부고 기업이고 발상의 전환이 되어야 우리의 미래가 밝다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산학협동 프로젝트 등의 경우도 현재 진행되는 방식은 문제라고 한다. 당장의 성과에 급급해 기업 측의 요구만 강조되는 현실에서는 창의적인 과학세계를 열어갈, 그래서 한국에서도 노벨상을 기대할 만한 재목은 키울래야 키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그의 연구는 교육부와 과학재단의 지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기업의 경우는 이런 장기적이고 기초적인 분야에 대한 투자는 하지 않으려 한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