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가운을 입고 모자를 쓴 직원 20여 명이 어두컴컴한 방에 앉아 있다. 현미경 불빛 위로 써클렌즈(미용콘택트 렌즈의 한 종류로 착용하면 홍채 부분이 더 넓어 보인다)를 확대한 영상이 한 번 떠올랐다가 다시 뒤집혀 떠오른다.
“품질 검사를 하는 중입니다. 완성된 렌즈를 하나씩 현미경으로 관찰하며 디자인이 잘 나왔는지 확인하는 과정이죠.”
여기는 광주 북구 월출동의 한 미용콘택트렌즈 공장. 18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규모다. 이 공장의 서광진 홍보실장은 기자에게 공장 여기저기를 보여주며 공정 전체를 설명했다. 새로운 렌즈를 개발하는 연구시설과 렌즈를 만드는 공정시설은 물론 품질검사와 발송 단계도 볼 수 있었다.
서 홍보실장은 “연예인들이 미용렌즈를 끼고 TV나 영화에 출연해 미용렌즈를 찾는 사람이 많다”며 “요즘은 한류를 따라 중국, 대만 등으로도 많이 수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날도 발송할 렌즈 상자가 창고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지게차로 끊임없이 실어 나르는 렌즈 상자를 보니, 이 곳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이유를 실감할 수 있었다.
공장의 인기상품은 ‘별자리 렌즈’. 자신의 별자리를 콘택트렌즈 안에 새겨 넣은 것이다. 나만의 렌즈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이 렌즈를 꾸준히 찾고 있다. 양쪽 렌즈의 무늬가 달라 렌즈의 왼쪽 오른쪽을 구분하기도 쉽다.
이밖에 다양한 무늬를 가진 미용콘택트렌즈를 생산해 지난해에만 100억 원을 벌었다. 이중 수출로 번 금액이 500만 달러(한화 50억 원)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기술아, 무럭무럭 자라렴”
공장은 놀랍게도 단 하나의 기술에서 출발했다. ‘산소를 투과시키는 색소’다. 2000년 당시 콘택트렌즈 영업을 하던 박화성 사장은 이 색소를 이용해 미용렌즈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기존 미용콘택트렌즈는 산소를 투과시킬 수 없어 오래 착용하면 눈에 부종이 발생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이 색소를 미용콘택트렌즈에 도입하면 이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 하나만 믿고 사업을 시작하는 건 결코 호락 호락하지 않았다. 박 사장은 기술이 기업이 되도록 모든 지원을 해 주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로 GIST 내 ‘창업기술사업화센터’다. 여기서는 처음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사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빌려주고 경영, 기술, 법률 컨설팅 등 창업에 필요한 모든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지원 서비스뿐 아니라 홍보나 투자에 이용할 수 있게 비용의 일부도 지원한다.
“저희 GIST 창업기술사업화센터에서는 창업 미니스쿨도 개최하고 있습니다.”
전문구 센터장이 창업 미니스쿨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줬다. 창업 미니스쿨에서 예비 창업자들은 경영, 회계, 스피치 트레이닝 등 여러 수업을 듣고 실무 능력을 기를 수 있다.
이미 93명이 이 과정을 수료해 창업 준비에 도움을 받았다.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수업은 ‘중국어’. 전 센터장도 이 수업을 듣고 있는데 배움의 열기가 아주 뜨겁다고 전했다.
또 교수-학생 지원 프로그램으로 학내 학생의 참여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실제 이곳 생명과학부 대학원생이 연구하던 기술로 기능성 화장품을 만들어 상품화한 사례도 있다. 이미 전남 화순에 공장을 세워 화장품을 생산하고 있고, 지금 공장을 하나 더 설립하고 있다.
또 다른 신화창조를 꿈꾸며
“우리 센터 내에서 꿈을 키우는 기업을 직접 보는 게 어떨까요?”
박종엽 창업기술사업화센터 소장이 기자를 2층으로 안내했다. 이곳에 총 36개 벤처가 입주해 있다. 2010년 한 해 동안 이곳 입주 기업의 매출액은 총 97억 원. 178명이 새로 일자리를 얻었다. 바로 옆에 B동도 짓고 있는데, 여기 벤처기업 20개가 새로 들어올 예정이다. 입주한 기업 중에서 가장 ‘핫’한 기업은 2007년 7월 이곳에 자리를 잡은 ‘랩코’다. 랩코는 빛을 투과시켜 공기 중에 미세 분진이나 입자가 얼마나 있는지 실시간으로 셀 수 있는 기술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미세먼지 측정기를 만들었다. 이 측정기는 광주지하철 역 안에 설치됐다. 최근에는 지름이 0.1μm(마이크로미터, 100만 분의 1m) 정도인 미세먼지까지 측정할 수 있지만 본체는 7mm 밖에 되지 않는 기계를 만들기도 했다. 박 소장은 “이 기계는 이미 국내 반도체 공장, 병원의 수술실, 제약회사, 나노 연구소 등에서 사용하고 있다”며 “랩코도 사업을 확장해 더 많은 제품을 만들 날이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