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수상한 검은 물체
까만 종이가 검은 이유는 대부분의 가시광선을 흡 란 가마에 작은 구멍을 내보면, 구멍이 검게 보인다.
까만 종이는 가시광선 영역에서만 검지만, 큰 가마 에 있는 작은 구멍은 모든 파장의 빛에서 검다. 이 부분 이 중요하다. 자, 이제 가마에 불을 지펴보자. 가마가 한다. 자세히 보면 온도가 올라갈수록 나오는 빛의 색 이 변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가마 안에서 전자기파와 내 부의 뜨거운 물질이 열적 평형 상태를 이루면, 그 온도 에 맞는 파장의 빛이 구멍을 통해 나온다. 빛이라곤 찾 아볼 수 없는 흑체에서 빛이 나온다는 뜻이다.
19세기 후반 물리학자들은 자연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는 자신감에 차있었다. 온도와 열은 열역학으로, 빛은 맥스웰 방정식으로 쓰여진 전자기학이면 너끈 히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흑체 복사도 마찬가지였 다. 열역학과 전자기학만 있으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 제라고 확신했다. 1879년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요제프 슈텐판은, 실험을 통해 온도에 따라 흑체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봤다. 1초에 나오는 에너지의 밀 도가 절대온도의 네제곱에 비례한다는 결과가 나왔 다. 비례관계를 보여주는 슈테판 상수값도 실험적으 로 구해냈다.


1884년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루드비히 볼츠만 은 슈테판의 실험결과를 이론적으로 증명했다. 열역 학을 이용해 슈테판의 관측 결과와 똑같은 결과를 도 출했다. 이후 흑체 복사 에너지와 온도의 관계식을 슈 테판-볼츠만 법칙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 볼츠만도 슈테판의 상수값을 이론 적으로 계산해내지는 못했다.
1893년엔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빈이 흥미로운 연 구결과를 세상에 내놓았다. 핵심만 이야기하면, 흑체 에서 나오는 빛 중 가장 큰 에너지를 방출하는 빛의 파 장이 온도에 반비례한다는 내용이었다. 온도가 올라 갈수록 더 짧은 파장의 빛이 주로 방출된다는 의미다. 빈의 이론은 당시까지 나온 실험결과들과 잘 맞아떨 어졌다. 하지만 이 법칙을 만족하는 함수가 정확히 어 떤 꼴인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1900년에는 당시의 물리학 지식을 총동원해, 흑체 에서 방출되는 에너지 밀도를 가장 수학적으로 표현 한 레일리-진스 공식이 발표됐다. 레일리-진스 공식 은 파장이 긴 영역에서 흑체를 다룬 실험결과들을 매 우 훌륭히 설명했다. 또한 모든 파장영역에서 빈의 법칙(축척법칙)과도 일치했다.
하지만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레일리-진스의 이론 에 따르면, 흑체에서 나오는 모든 파장의 복사 에너지 를 합하면 무한대가 된다. 슈테판-볼츠만의 법칙과 모순되는 결과다. 유한한 온도의 흑체에서 무한한 에 너지를 얻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레일리-진스 이론에 서 에너지가 무한하게 발산하는 이유는 파장이 0에 가까워질수록 에너지 밀도가 무한하게 커지기 때문 이다. 이를 짧은 파장 영역에서 생기는 심각한 문제라 는 뜻에서, '자외선 파국'이라 부른다. 수학적으로 탄 탄한 레일리-진스 이론도 정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 무리 눈을 비비고 살펴봐도, 계산에는 실수가 없었다. 결국 당시의 열역학과 전자기학 중 무언가에 근본적 인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막스 플랑크

대망의 20세기가 밝았지만, 물리학계는 큰 시름에 잠겼다. 세상을 완벽히 설명해준다 믿었던 물리학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위기의식이 점점 퍼져갔다. 이 런 어지러운 상황 속에서 이제 오늘의 주인공, 막스 플 랑크가 등장했다. 난세의 영웅, 플랑크는 아무도 생각 하지 못한 방법으로 한계에 부딪힌 물리학이 나아갈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플랑크는 한참 체계를 갖춰가던 볼츠만의 통계역 학을 이용해 흑체복사를 설명했다. 당시만 해도 통계 역학은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이론이었다. 맞는지 틀 린지도 모르는 이론으로 논쟁적인 문제를 설명한다 는 건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영웅이 그렇 듯, 플랑크는 용감했다. 플랑크는 빛의 에너지를 진동 수의 정수배로 나타냈다. 이 때 진동수를 에너지로 바 꿔줄 플랑크 상수(h)를 도입했다. 진동수는 파장에 반비례하므로, 에너지가 파장에 반비례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감히 누구도 하지 못한 파격적인 생각이었다. 플랑크는 띄엄띄엄 놓인 빛의 에너지(진동수의 정 수배)를 통해 흑체 복사에 매달려 있던 문제들을 완 벽하게 설명했다. 슈테판 상수를 확인했고, 빈의 법칙 속 함수의 정확한 모습도 알아냈다. 파장이 길다고 어 림하면, 레일리-진스 공식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자 외선 파국의 문제도 사라졌다.

비어있던 물리학의 퍼즐이 플랑크 상수를 통해 순 식간에 모두 맞춰졌다. 플랑크는 자신의 공식을 당시 의 실험결과와 비교해, 플랑크 상수와 볼츠만 상수 값 을 계산해 냈다. 이 때 플랑크가 계산한 값은 현재 알 려진 값과 1% 밖에 다르지 않다. 물리학자들은 볼츠 만 상수와 기체상수를 비교해 아보가드로수(1몰에 해당하는 분자 개수)를 알아냈다. 당시에 이미 알려 진 전자 1몰당 전하량을 아보가드로수로 나눠주니 전 자 1개의 전하량도 알 수 있었다. 일석이조를 넘어 돌 멩이 하나로 적어도 새 일고여덟 마리는 잡은, 한마디 로 대박이었다.
하지만 플랑크는 자신이 만들어낸 상수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에너지가 불연속적이라는 결론이 진정 어떤 의미인지는 꿰뚫어 보지 못했다. 스스로 고 백했듯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플랑크는 자신이 당시까지의 물리학을 송두리째 뒤흔들 양자 역학의 문을 열었다는 걸 꿈에도 몰랐다.


양자 역학
물리학자들을 괴롭혀온 흑체 복사는 해결됐지만, 진짜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새로운 에너지 개념을 둘러싼 엄청난 혼돈이 시작됐 다. 가까스로 흑체 복사 문제를 해결한 물리학은 기 운을 차리자마자 양자역학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신 형독감과 마주한다.
매일매일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는 세상은 부드럽 게 이어진다. 즉, 연속적이다. 볼륨버튼을 누르면 소리 는 끊기지 않고 커지거나 작아진다. 얼마나 빨리 뛰는 지에 따라 백 m 달리기의 기록은 연속적으로 달라진 다. 전등에서 나오는 빛도 마찬가지다. 전구의 저항 값을 조절하면 원하는 빛의 세기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 다(고 우린 믿는다).
그런데 플랑크가 제안한 새로운 에너지 공식에 따 르면, 빛의 에너지는 진동수와 플랑크상수를 곱한 값 의 정확히 정수배만 될 수 있다. 하지만 정수배 사이 의 에너지는 하늘이 무너져도 가질 수 없다. 이 설명이 이해가 되는가? 플랑크가 사용한 치료약은 흑체복사 에 대해서는 만병통치약이었지만, 그 약은 우리를 요 지경 세상으로 이끌었다. 그곳이 바로 양자역학과 현 대물리학의 세상이다.

2015년 06월 과학동아 정보

  •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
  • 에디터

    이한기 기자

🎓️ 진로 추천

  • 물리학
  • 천문학
  • 수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