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당. 말 그대로 혈액 속 포도당의 농도입니다. 당뇨환자 등 일부 사람들만 관심을 갖던 이 용어가 최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혈당 스파이크’라는 말로요. 혈당 스파이크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화제일까요? 기자가 직접 열흘 동안 혈당 변화를 지켜봤습니다.
혈당 스파이크 관찰 첫 번째 단계는 연속혈당측정기(CGM・Continuous Glucose Monitoring)를 부착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혈당 측정은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고, 그 피를 매번 시험지에 묻혀 혈액 속 포도당의 농도를 파악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기술이 발전하면서 훨씬 덜 공포스러운 방법이 개발됐습니다. 팔뚝이나 배와 같은 피하지방이 많은 부위에 부착하기만 하면 센서로 조직액(세포 사이에 차 있는 액체) 속 포도당 농도를 측정해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기계가 나온 겁니다.
SNS에서는 CGM으로 혈당을 실시간 확인하며 체중을 관리하는 광고가 화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혈당 관리(를 통한 기삿거리)와 체중 감량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시중에 나와있는 여러 CGM 제품 중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과 연동돼 혈당 측정값을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제품을 골라 구매했습니다(내돈내산!).
2월 28일, 손바닥 정도 크기의 CGM 어플리케이터(부착기)와 사용 설명서가 도착했습니다. 부착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붙이려는 부위에 CGM이 들어있는 어플리케이터를 대고 버튼을 누르면 끝.
손을 씻고 알코올 솜으로 팔뚝 아랫부분을 꼼꼼히 닦았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어플리케이터를 개봉하니 5mm정도 되는 아주 얇은 바늘이 달린 CGM이 들어있었습니다. 바늘을 보고 살짝 당황했지만, 눈을 질끈 감고 어플리케이터를 팔뚝 아랫부분에 댄 채 버튼을 눌렀습니다. ‘퉁’. 스프링 튕기는 소리와 함께 부착이 완료됐습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바늘에 찔리는 고통은 전혀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카카오헬스케어에서 출시한 혈당 관리 앱 ‘파스타’를 다운로드받아 CGM과 연동시켰습니다. 앱은 CGM이 작동하는 열흘 동안 측정한 수치를 블루투스로 전송받아 보여줄 겁니다.
52mg/dL. 첫 결과는 충격적인 저혈당이었습니다. 대한당뇨병학회에 따르면 공복혈당의 정상수치는 70~100mg/dL, 식후 2시간 혈당의 정상수치는 90~140mg/dL입니다. 정상수치 보다 높은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낮은 것도 문제입니다. 다행히 이날은 감기에 걸려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일시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앱에서는 “오렌지 주스나 사탕을 먹으세요”라는 알람이 울렸습니다. 급히 망고젤리를 먹었더니 15분 만에 수치가 78mg/dL으로 올랐습니다.
기자는 약 5년 동안 꾸준히 건강검진을 받고 있지만, 당뇨병 진단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 기자의 혈당은 70mg/dL~140mg/dL 사이, 대부분 정상 범위에서 움직였습니다. 식사를 하면 140mg/dL 정도까지 혈당이 올랐고, 2시간 안에 다시 100mg/dL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몸 안에서 인슐린이 정상적으로 분비돼 혈중 포도당을 사용하거나 저장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착용 5일째인 3월 3일,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일요일 아침, 간편하게 한 끼를 때우려 잔치국수를 먹었는데 1시간 뒤, 혈당이 식전 101mg/dL에서 식후 189mg/dL까지 치솟았습니다. ‘혈당 스파이크’가 온 것입니다.
혈당 스파이크가 무엇인가 하는 의학적으로 정확한 기준은 아직 없지만, 통상 식후 1시간 뒤 혈당이 50mg/dL 이상 상승한 경우, 또는 식후 2시간 혈당이 150~160mg/dL인 경우 혈당 스파이크라고 부릅니다. 이번 혈당 스파이크는 채소는 거의 없고 단백질이라곤 작은 지단이 전부였던 잔치국수의 소면을 흡입한 결과였습니다. 소면은 혈당지수가 특히 높은 음식입니다.
혈당 스파이크는 CGM을 부착한 열흘 동안 총 네 번이나 찾아왔습니다. 한국인의 소울푸드(?)인 라볶이를 먹은 날(3월 1일 점심, 182mg/dL), 케첩을 잔뜩 뿌린 오므라이스를 사 먹은 날(3월 1일 저녁, 186mg/dL), 오후 간식으로 탕후루를 먹은 날(3월 5일, 202mg/dL)에도 혈당 스파이크가 발생했습니다. 이들 메뉴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다른 영양소에 비해 탄수화물이 매우 많다는 점이죠.
그중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건 탕후루였습니다. 수치만 봤을 땐 당뇨병 진단도 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당뇨병 진단의 정확한 기준은 임의로 혈당을 측정했을 때 혈당 수치가 200mg/dL이 넘고, 당뇨병 증상들이 함께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반대로 쌈밥이나 찜닭 등을 푸짐하게 먹었을 때의 혈당은 140~150mg/dL 수준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 베타세포 연구자인 김하일 KAIST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탄수화물만 섭취하지 말고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혈당 스파이크를 막는 방법”이라며 “단백질과 식이섬유는 소화 과정을 느리게 만들어 탄수화물의 소화와 포도당의 흡수가 점진적으로 이뤄지도록 한다. 이는 급격한 혈당의 상승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이때 단 음식이나 탄수화물이 가득한 음식을 찾게 된다”며 “알코올 섭취와 이런 식습관은 반복되면 췌장에 무리를 주고, 췌장 기능 저하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술을 먹고 잠이 든 밤, 기자의 혈당은 68mg/dL까지 떨어졌다가 아침에 87mg/dL로 올랐습니다. 평소 자는 동안 혈당 수치가 110mg/dL~120mg/dL 사이였던 것에 비하면 꽤 낮았죠. 몸은 자는 동안에도 혈당이 떨어지면 교감신경계가 활성화 돼 혈당을 올리는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그리고 과도한 호르몬 분비는 숙면을 방해합니다. 이날이 딱 그랬습니다. 저혈당에 수면 방해까지, 술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김하일 교수는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 당뇨병 환자가 아닌 사람들도 혈당이 크게 오를 수 있다”며 “정상인은 당뇨병 환자와 달리 혈당이 오르기는 하지만 과도하게 오르지 않고 일정한 범위에서 조절이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기자에게 혈당을 조절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운동이었습니다. 운동 효과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제 경우엔 어묵국과 밥을 먹고 혈당 수치가 108~136mg/dL까지 올라도 20분 정도 조깅을 한 뒤엔 93mg/dL로 금방 떨어졌습니다. 오창명 GIST 의생명공학과 교수는 “운동을 하면 우리 몸속에 필요한 에너지가 더 많아져 포도당을 더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혈당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밥을 먹고 혈당이 오르기 전, 식후에 즉시 움직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오 교수는 “소장에 음식물이 도달하면 인슐린의 작용을 돕는 인크레틴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가벼운 운동은 소화 과정을 촉진해 음식물이 빠르게 소장에 도달하도록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재밌는 건 강도 높은 근력 운동은 혈당을 소폭 높인다는 점이었습니다. 운동 전에 91mg/dL이던 혈당 수치가 바벨 런지(10kg), 랫풀다운(20kg), 벤치프레스(25kg) 운동을 각각 10회씩 4세트를 했더니 106mg/dL로 살짝 올랐습니다. 김유미 세종충남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고강도 운동은 교감신경을 활성화해 아드레날린, 코르티솔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증가시킨다”며 “두 호르몬은 혈중 포도당 수치를 높여 일시적인 혈당 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혈당 오르는 게 두려워 근력 운동을 피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김유미 교수는 “일시적으로 혈당 수치가 오를 수는 있어도 운동은 인슐린 감수성을 증가시켜 혈당 조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습니다.
술은 만병의 근원이라 했던가요. 알코올 섭취가 혈당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지 마침 실험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을 주기 위해 친구와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서 술을 마시게 된 겁니다. 기사를 쓰기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맥주, 제로 소주, 위스키, 와인을 종류별로 마셔봤습니다. 사람에 따라 또 주종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기자의 경우엔 술을 마셨을 때 오히려 혈당이 떨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김하일 교수는 “술에서 나는 단맛은 대부분 감미료이기 때문에 당이 그리 많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위스키 같은 증류주는 증류 단계에서 포도당이 모두 걸러집니다. 증류는 알코올의 끓는점(78.37℃)과 물의 끓는점(100℃)이 다른 원리를 사용해서 순수한 알코올만을 추출해 술의 알코올 도수를 높이는 작업입니다. 먼저 끓는 알코올은 따로 모아 술로 만들고, 나중에 끓는 물과 기타 불순물은 걸러내는 방식이죠. 이때 포도당은 끓는점에 도달하지 못한 물과 남게 돼 술 자체에는 포도당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심하고 술을 마셔선 안됩니다. 혈당을 올리지 않을 뿐 건강에 아무 영향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술을 마시면 혈당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간이 바빠집니다. 우리 몸은 혈당이 떨어지면 간세포에 저장된 다당류 글리코겐을 포도당으로 분해해 혈당을 높이려 합니다. 글리코겐 분해가 일어나는 거죠. 그런데 술을 마시면 간이 알코올을 분해하느라 이 작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알코올은 위 점막을 자극해 소화 효소 분비를 감소시키고 이는 영양소 흡수를 방해 해 저혈당이 올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은 저혈당 상태가 되면 추가적인 에너지를 찾으려 애씁니다. 문준호 분당서울대병원 내
열흘 동안 CGM을 부착하고 생활하며 알게 된 것은 ‘당뇨병 진단을 받지 않은 건강한 사람도 생각보다 혈당 수치 변화가 크다’는 점이었습니다. 걱정하는 기자에게 김하일 교수는 “혈당이 급격히 오르는 것이 한 두번 발생하는 것은 일반인에게 큰 문제가 아니다”라며 “다만 그런 현상이 지속적으로 반복됐을 때 췌장 안에 있는 내분비세포 덩어리, 췌도 속의 베타세포 기능이 저하돼 인슐린 분비가 어려워질 수 있고, 이는 혈당 조절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혈당의 변화를 수치로 직접 확인하는 것이 건강관리에 큰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습니다. 지나치게 달달한 간식, 탄수화물이 편중된 식사를 했을 때 치솟는 수치를 보며 다음 식사 때는 좀 더 탄단지 영양 균형이 잘 잡힌 메뉴를 고르게 됐달까요.
CGM 측정 수치를 블루투스로 전송받아 보여주는 스마트폰 앱 파스타의 음식 자동 인식 기능도 유용했습니다. 카메라로 식단을 촬영하면 인공지능(AI)이 먹은 음식을 자동으로 파악해, 해당 음식의 열량과 당 함유율을 기록해줬습니다. 이런 기능 덕에 하루에 섭취한 총 열량을 보며 체중 감량에도 더욱 신경 쓸 수 있었죠.
또 식사 후엔 단 10분이라도 걷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혈당이 치솟는 걸 가만히 앉아 지켜보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아 참, 그리고 CGM은 부착할 때보다 뗄 때가 더 아팠습니다. 일상 생활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주 강력한 접착제가 도포돼 있다는 걸 마지막날에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붙일 거야?” CGM을 떼는 날 주변에서 물어왔습니다. 제 대답은 “글쎄”였습니다. 솔직히 가격이 부담입니다. 열흘 동안 사용하고 다시 갈아야하는 장비 하나가 10만 원 가량 하니까요. 현재 한국에선 베타세포가 파괴돼 인슐린이 거의 분비되지 않는 제1형 당뇨병 환자들만 구매 시 보험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행히 CGM이 혈당을 관리하는 데 필수적인 도구는 아닙니다. 김 교수는 “CGM은 고혈당이 여러 합병증을 일으키는 당뇨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기기”라며 “당뇨병 혹은 전당뇨 상태인 사람에게 혈당 조절에 경각심을 줘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어 “건강검진에서 당뇨병 판정을 받지 않은 사람일 경우, 건강한 생활 습관만으로도 혈당 관리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덧붙였습니다. CGM이라는 새로운 기기가 우리에게 많은 정보를 주지만, 건강한 사람에게 수치를 기록하는 수준의 혈당 관리까지는 필요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혈당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다음 파트에서는 우리가 혈당을 관리해야하는 이유과 그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