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의 기준으로 동물의 세계를 이해하려 한다.그래서 인간처럼 복잡한 언어 체계를 갖고 있지 않은 동물은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과연 이러한 생각은 맞는 것일까.
사람은 언어를 통해 경험한 일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다. 동물도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흔히 인간과 닮은 유인원 정도여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1m㎥도 채 안되는 뇌를 가진 꿀벌조차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꿀벌은 꼬리를 흔드는 방식의 언어로 방금 자신이 찾은 밀원의 방향과 거리를 다른 일벌들에게 정확히 전달한다. “얘들아, 나 방금 태양에서 오른쪽 30도 방향, 여기서부터 1.5km 지점에서 맛있는 아카시아 꿀을 발견했어. 너희들도 그쪽으로 가보지 않겠니?”하면서 춤을 춰보인다. 그러면 이 언어를 이해한 일벌들은 한치의 오차 없이 춤벌사람은 언어를 통해 경험한 일을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다. 동물도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흔히 인간과 닮은 유인원 정도여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1m㎥도 채 안되는 뇌를 가진 꿀벌조차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꿀벌은 꼬리를 흔드는 방식의 언어로 방금 자신이 찾은 밀원의 방향과 거리를 다른 일벌들에게 정확히 전달한다. “얘들아, 나 방금 태양에서 오른쪽 30도 방향, 여기서부터 1.5km 지점에서 맛있는 아카시아 꿀을 발견했어. 너희들도 그쪽으로 가보지 않겠니?”하면서 춤을 춰보인다. 그러면 이 언어를 이해한 일벌들은 한치의 오차 없이 춤벌이 일러준 아카시아 꽃에 도달한다.
원숭이가 매 등장 알리는 법
동트기 직전, 남미 밀림에서는 짖는원숭이들이 시끄럽게 합창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소리는 목구멍에 있는 큰 공기주머니에서 나오는데, 1km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크다. 이들이 이른 아침부터 이처럼 시끄러운 교향곡을 연주하는 이유는 다른 짖는원숭이 무리가 가까이 접근하지 못하게 경고해서 먹이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다.
과학자들은 동물이 내는 소리 속에 어떤 뜻이 담겨져 있는가에 관심을 기울였다. 서배너원숭이를 대상으로 이들이 내는 경계음을 녹음해서 무리가 사는 숲 속에 감춰 놓고 들려줬다.
먼저 비교적 긴 음조로 구성된 소리에 대한 반응은 한결같이 곧바로 나무 꼭대기로 피하는 것이었다. 이 소리는 ‘표범이 나타났으니 나무로 올라가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짧은 음조로 구성된 소리는 매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로, 원숭이들이 모두 하늘을 쳐다보며 덤불 숲으로 피신했다. 또 짧게 단절된 음으로 구성된 소리는 뱀이 나타났다는 의미로, 무리들이 땅 아래쪽을 살펴보는 행동을 취했다. 즉 이들이 내는 경계음은 위험 발생의 예고뿐 아니라 위험의 실체에 대한 정보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새에게도 언어가 있다. 휘파람새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노래를 부른다. 배우자인 암컷에게는 길고 짧은 음을 절반씩 섞어서 부른다. 하지만 경쟁자인 이웃 수컷이 나타났을 때는 긴 음으로 노래를 불러 “이곳은 내 땅이니 빨리 나가줄 수 없겠니”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그 땅에 개나 사람과 같은 외부침입자가 들어오면, 휘파람새는 덤불 밑으로 처박히듯 날아가 이상한 외마디 소리를 낸다. “나 여기 있으니 잡아봐라” 는 식의 표현이다. 이때 외부침입자가 가까이 다가오면 휘파람새는 곧바로 멀리 날아가버린다. 이럴 경우 둥지로부터 어느 정도 떨어진 안전한 지점에서 소리를 내는데, 마치 둥지가 있는 것처럼 속여 적을 따돌리기 위해서다. 이처럼 새의 경우 같은 종에게 보내는 언어와 이를 알아듣지 못하는 외부침입자에게 보내는 언어가 다르다.
사람 어미와 갈매기의 의사소통
동물과 사람과의 의사소통도 가능할까. 필자는 알에서 깨어난 7마리 괭이갈매기를 “갈갈” 소리를 내서 학습시킨 적이 있다. 그러자 생후 3일째부터 필자의 소리를 알아듣고 달려왔다. 만약 다른 사람이 비슷하게 “갈갈” 소리를 내봐도 필자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새끼들은 금방 알아차렸다. 실험적으로 필자와 필자의 조교가 같은 거리에서 멀리 떨어져 동시에 “갈갈”하고 불러보아도 새끼들은 기가 막히게 구별해내는 것이다.
한달이 지나 비행을 시작할 무렵 이들을 물가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물 한가운데서 배를 타고 부르자 모두 곁으로 날아왔다. 어떤 놈은 머리에 앉기를 마다하지 않을 정도였다.
자연에서 갈매기가 태어나 처음 듣는 소리는 어미 목소리다. 따라서 실험실에서 태어난 갈매기들이 처음 들은 필자의 목소리를 어미의 목소리로 여긴 것은 당연하다. 이들은 비행 후 3주가 지나면서 어미(필자)의 보살핌에서 벗어나 홀로서기의 길에 나섰다. 이때 그동안 필자와 이들의 연을 맺어준 “갈” 소리의 효과는 더 이상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의 소리를 알아듣는 괭이갈매기의 수준을 뛰어넘어 많은 새들은 사람이 가르쳐준 소리를 흉내낼 줄 안다. 대표적으로 어치, 구관조, 그리고 앵무새가 잘 따라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흉내내는 것일까.
애리조나 대학의 페버 베르크 박사는 사람의 말을 흉내내는 능력을 가진 앵무새가 과연 이해하고 흉내내는지, 아니면 아무 뜻도 모르고 무심코 따라하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을 수행했다. 대상은 알렉스라는 이름을 가진 아프리카 회색앵무새.
베르크 박사는 알렉스에게 물건을 가리키면서 질문해 정확히 알아맞추도록 훈련시켰다. 예를 들어 초록색 열쇠를 쥐고 “이게 뭐지?”라고 물으면, 알렉스는 “초록색 열쇠”라고 대답한다. 알렉스는 파란색 오각형 나무토막을 들고서 “무슨 색깔이지?”라고 물으면, “파란색”이라고 답할 수 있다. 같은 것을 들고 대신 “어떤 모양이지?”라고 물으면, “모서리가 다섯 개인 나무”라고 말한다. 결국 알렉스는 단순히 아무 뜻도 모르고 사람의 말을 흉내내지는 않은 셈이다. 그렇다면 앵무새도 인간처럼 사고를 하는 것일까.
인간 혀가 자유로운 이유
언어는 사고를 동반한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과연 동물의 언어가 인간의 언어처럼 사고를 담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져왔다. 인간이 다양한 언어를 발달시킨 한가지 이유는 직립보행을 함으로써 목에 공간이 늘어나 성대가 커져 혀의 움직임이 아주 쉬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립이 완전하지 못한 영장류들은 혀를 놀릴 공간이 없어서 인간과 같은 언어 발달을 이루지 못했다. 물론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사고력은 가능하다.
1947년 미국의 심리학자들은 새끼침팬지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쳤다. 6년 동안 학습한 결과 ‘마마’, ‘파파’, ‘컵’ 등을 알아들었다. 또한 연구자들은 이들에게 85가지 수화를 가르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이 수화교육에 의문이 제기됐다. 침팬지는 단순히 사람을 따라하는 것으로 사람이 신호를 주면 그저 똑같거나 비슷하게 반응할 뿐이라는 설명이다. 침팬지의 언어는 인간과 같이 사고력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러나 지금까지 과학자들이 믿고 있던 생각에 충격을 준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피그미침팬지의 발견이었다. 피그미침팬지는 침팬지에서 분화된 종으로, 1970년까지도 과학자들은 일반 침팬지와 이를 구별하지 못했다. 침팬지보다 크기가 조금 작고 성격이 아주 온순한데, 일명 ‘보노보’라고 불리며, 현재 중앙아프리카 콩고분지에 약 2만마리 정도 서식한다.
보노보는 유전학적으로 인간과 가장 유사한 것으로 밝혀져 인간 조상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인간처럼 직립일 뿐 아니라 마주보고 섹스한다. 더욱이 이 섹스가 순전히 자식을 낳기 위함이 아닌 암수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2백16개 기호판으로 감정까지 표현
1970년부터 미국의 조지아주 주립대 언어연구소에서는 보노보의 언어를 연구했다. 그 중에 13살의 ‘칸지’라는 이름을 가진 보노보에 지극한 정성을 쏟았다. 칸지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언어로 ‘숨겨진 보석’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칸지는 연구자의 옆에서 TV 켜고 끄기, 요리할 때 물 넣기와 같은 시중을 들 정도로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다. 연구자들은 칸지의 나이 2살 반이던 해, 칸지의 유모 보노보에게 언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당시 칸지가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칸지에게 언어를 따로 가르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연구자가 “사과”라고 말하자 칸지는 웃으면서 사과를 들고 돌아다녔다. 칸지는 사람의 아기처럼 자기 스스로 말을 배워 단어와 긴 문장을 이해했던 것이다.
“칸지, 강아지한테 주사놔줘”라고 말하면, 칸지는 주사기를 들고 옆에 놓인 장난감 강아지에게 주사를 놓아주었다. “문밖에 있는 공 가져와”하면 칸지는 보이지 않은 것도 찾아올 정도다.
연구자들은 칸지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지 의문스러웠다. 때문에 용접용 산소마스크를 쓰고 목소리만 들리게 해서 실험해보았다. 놀랍게도 칸지는 소리만 듣고도 물건을 찾아왔다. 실험자의 표정이나 입술움직임이 없이도 순수한 인간의 소리언어를 사물과 상황에 연결해 이해하고 있던 것이다.
더욱 놀랍게도 칸지는 자신의 의사를 인간에게 표현할 줄 안다. 표현 방법은 2백16개로 이루어진 기호판을 누르는 것이다. 이 기호는 사물의 모양과 전혀 다른 시각적 이미지로 이뤄졌다. 즉 사과의 모양과 전혀 다른 사과를 의미하는 문자를 안다는 말이다. 또한 기호판에는 형용사와 감정까지 포함돼 있어서, ‘좋다’, ‘나쁘다’라는 뜻까지 표현할 수 있다.
한 예로 칸지는 잠긴 유리문을 사이로 옆방에 있는 친구와 놀고 싶은 감정을 기호판으로 표현했다. 순서는 다르지만 “열쇠로 문을 열어주면 놀 수 있으니 행복하다”를 나타냈다.
동물들이 이간과 같은 언어를 갖지 못한다고 해서 사고력마저 없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도 공감한다는 것은 단지 인간이 그들만의 언어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뿐이다.사람은 동물의 언어와 사고력에 대한 객관적인 이해 방법을 갖고 있지 않다.따라서 동물이 갖는 언어가 인간의 언어와 다르다고 해서 사고력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