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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Part1. 가벼운 블랙홀일까, 무거운 중성자별일까

 

2023년 1월, 영국 맨체스터대와 독일 막스플랑크전파천문학연구소 등의 천문학자들은 남반구의 비둘기자리에 있는 구상성단 NGC 1851에서 미세한 전파 신호를 포착했다. 초당 179회 이상 회전하는 밀리초 펄사 ‘PSR J0514−4002E’였다.

 

펄사는 엄청나게 빨리 회전하면서 전자기파를 뿜어내는 중성자별이다. 강한 전자기파를 양극의 좁은 방향으로 내보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회전하면서 전자기파의 방출 방향이 지구를 향할 때 전파를 관측할 수 있다. 펄사의 회전 속도가 워낙 빠르다 보니 지구에서는 펄사의 자전주기에 맞춰 명확히 ‘깜빡깜빡’ 껐다 켜지는 전파 신호를 관측할 수 있다.

 

펄사 주변에 쌍성계를 이루는 천체가 있다면 전파 신호는 다르게 관측된다. 쌍성계는 빛을 내는 항성인 두 천체가 중력으로 묶여 공통 질량중심을 도는 경우를 의미한다. 만약 펄사가 동반성과 함께 있는 쌍성계를 이루고 있다면, 동반성의 중력에 의해 펄사가 뿜는 전파의 속도가 늦어지며 특별한 패턴을 띠는 신호가 나타난다. 연구팀이 발견한 PSR J0514−4002E의 신호는 펄사가 이런 쌍성계 이루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과연 펄사의 동반성은 어떤 천체일까. 연구팀은 미지의 동반성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1월 18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doi: 10.1126/science.adg3005

 

가능한 후보를 추리는 기준

공전 주기

 

먼 우주에 있는 천체의 정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직접 찾아갈 수 없는 인간이 고안한 방법은 천체가 뿜어낸 신호를 관측하는 것이다. 먼 우주에서 벌어진 큰 사건의 흔적인 중력파를 관측할 수도 있고 전파, 적외선, 자외선, 엑스선, 감마선에 이르는 다양한 파장의 전자기파를 관측해 천체의 종류를 분석할 수도 있다.

 

연구팀이 펄사 PSR J0514−4002E의 전파 신호에서 특별한 패턴을 찾은 것도 전자기파를 분석하는 ‘펄사 타이밍’이라 불리는 분석 방법의 일환이다. 펄사가 다른 천체와 공전하고 있다면, 펄사에서 방출된 전자기파가 동반성 근처의 강한 중력장을 지나면서 속도가 느려지는데, 이 속도 차이로 발생하는 특이한 펄사 신호를 분석해 두 천체의 공전 주기를 구할 수 있다.

 

분석 결과 PSR J0514−4002E의 동반성의 공전 주기는 약 7일. 두 별이 상대적으로 근접한 궤도를 가지고 빠르게 공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에 따르면, 두 물체 사이의 중력은 각 물체의 질량 곱에 비례하고 두 물체 사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즉, 두 천체가 서로 가까울수록 중력 상호작용은 더 강력해진다. 중력파 천체물리학자인 김정리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는 “두 천체 사이의 거리가 가깝다는 것은 강력한 중력 상호작용의 근거”라며 “강하게 끌어당기면서도 충돌하지 않으려면 그만큼 무거운 질량을 가진 별들이어야 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즉, 동반성은 핵융합 반응이 모두 끝난 항성의 최종 진화 형태로, 무겁지만 매우 작게 압축된 ‘밀집성’으로 이루어진 ‘밀집쌍성’이라는 것이다. 밀집성의 후보에는 3가지 천체가 있다. 백색왜성, 중성자별, 블랙홀. 미스터리 천체의 정체가 이 3가지로 좁혀졌다.

동반성을 구분하는 핵심 증거

질량

 

다음으로 확인할 것은 쌍성을 구분하는 핵심 증거인 질량이다. 전파망원경으로 관측한 별은 카메라로 영상을 찍는 것처럼 선명한 이미지로 나타나지 않는다. 때문에 확인한 전파 신호를 토대로 별의 정체를 파악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정보가 질량이다. 각 천체가 가질 수 있는 질량의 한계가 있고, 그 한계에 따라 천체의 종류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색왜성의 질량 한계를 계산한 찬드라세카르 한계에 따르면 백색왜성은 태양 질량의 1.4배, 중성자별의 질량 한계를 계산한 톨먼-오펜하이머-볼코프 한계에 따르면 중성자별은 태양 질량의 약 2.16배를 넘어설 수 없다.

 

그렇다면 천체의 질량은 어떻게 구할까? 쌍성의 경우에는 요하네스 케플러가 만든 행성의 운동 법칙 제3법칙이 사용된다. ‘행성의 공전 주기의 제곱은 그 행성의 타원 궤도 긴 반지름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제3법칙은 원래 태양계 내 행성들의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두 별의 공전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 공식에 따르면 쌍성의 궤도 주기, 궤도의 이심률, 궤도의 경사라는 정보로 쌍성을 이루는 두 별의 질량 합을 계산할 수 있다.

 

연구팀이 펄사 타이밍을 통해 상대성 이론에 의한 보정까지 모두 고려해 측정한 두 천체의 질량합은 태양의 3.89배이다. 펄사, 즉 중성자별의 질량을 질량합에서 제외하면, 미스터리 천체의 질량이 태양의 1.69​배에서 2.45배 사이임을 알 수 있다. 이 질량이라면 블랙홀, 백색왜성, 중성자별 세 후보 중 백색왜성은 탈락이다. 백색왜성의 질량은 앞서 말한 찬드라세카르 한계인 태양 질량의 1.4배를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후보는 블랙홀과 중성자별만 남는다.

 

천문학자들을 혼란에 빠뜨린

미스터리 천체의 질량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쌍성 공전궤도의 경사각’에 주목해야 한다. 공전궤도 경사각은 쌍성의 궤도면이 시선방향에 대해 기울어진 정도를 말한다. 궤도 경사각에 따라 궤도 모양이 다르게 관측되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지 않고 쌍성 운동을 분석하면 쌍성의 질량을 잘못 측정할 수 있다. 때문에 공전궤도 경사각은 정확한 질량을 파악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 요소다. 이 역시 펄사 타이밍을 분석해 확인한다. 다만 정확한 경사각을 예측하기 어려워 오차 범위를 둔다.

 

연구팀은 공전궤도의 경사각에 따른 동반성의 질량을 더욱 자세히 분석한 결과, 미스터리 동반성은 궤도의 경사가 42.9도에서 62도일 때, 질량이 태양 질량의 약 2.09배에서 2.71배인 천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결과를 두고 맨체스터대와 막스플랑크전파천문학연구소 등이 함께한 국제공동연구팀은 혼란에 빠졌다. 이런 질량을 가진 밀집성은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밝혀진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의 5배 이상, 중성자별의 질량은 2.2배 이하이다. 중성자별도, 블랙홀도 아닌 그 사이 질량인 태양질량 2.2~5배의 질량 범위 구간을 천문학자들은 ‘매스 갭(Mass Gap)’이라 부른다. 블랙홀이라고 하기엔 너무 가볍고, 중성자별이라기엔 너무 무겁다. 그런데 PSR J0514−4002E의 동반성은 매스 갭에 속한 질량을 가지고 있었다.

 

매스 갭에 포함된 천체를 관측한 건 이번이 두 번째다. 2019년에 발견된 쌍성의 신호 GW190814의 질량 역시 매스갭에 속해 있어 여전히 미스터리한 천체로 남아있다. 약 5년 동안, 이 천체의 질량 오차값을 줄여가고 있지만 여전히 그 질량이 매스 갭에 속해 정체를 밝히지 못했다. 그렇다면 PSR J0514−4002E의 동반성의 정체도 미궁 속으로 빠지는 걸까?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마지막 조각, 쌍성 생성 시나리오를 따라가 보자.

‘매스 갭’

*매스 갭(Mass Gap): 중성자별과 블랙홀이 잘 관측되지 않는 태양질량 2.2~5배인 질량 구간을 매스 갭이라 한다. 이번 연구팀은 매스 갭이 태양질량의 약 2.1~2.4배일 가능성을 제시했다(위 그래프 속 초록색 음영).

 

천체 생성 시나리오 추측법

이심률

 

미스터리 천체의 윤곽을 더 또렷하게 드러낼 다른 방법으로 시나리오 추측이 있다. ‘펄사-블랙홀’ ‘펄사-중성자별’이 탄생하게 된 과정을 역추적해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이론과 충돌하는 모순이 발생하는지 검증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값은 천체가 도는 궤도가 얼마나 타원에 가까운지를 나타내는 ‘이심률’이다. 궤도의 이심률이 0이면 완벽한 원이며, 1에 가까울수록 찌그러진 타원형에 가까워진다. 이심률이 중요한 것은, 이심률에 따라 쌍성의 탄생 과정을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쌍성은 어떻게 태어날까. 현재 우주의 탄생을 기술하는 ‘표준 모형’에 따르면, 처음부터 함께 짝지어 탄생한 쌍성은 거의 원에 가까운 궤도를 그리며 공전한다. 그렇다면 이심률이 매우 큰, 심하게 찌그러진 궤도를 그리는 쌍성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김 교수는 “이심률이 큰 쌍성은 외부의 다른 별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형성됐을 거라 추측한다”고 설명했다. 따로 태어난 별들이 서로의 중력에 이끌려 쌍성이 됐다는 뜻이다. 이를 ‘역학적 기원(Dynamical origin)’이라 부른다.

 

이번 PSR J0514−4002E와 동반성의 이심률은 0.71로 심하게 찌그러진 원의 모양이다. 김 교수는 “이 정도의 이심률은 강한 중력을 가진 외부 천체와 상호작용하며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 경우 펄사와 함께 있는 천체가 블랙홀과 중성자별일 경우 모두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답변했다.

 

실제로 국제공동연구팀은 블랙홀 또는 중성자별이 밀리초 펄사와 백생왜성으로 이뤄진 쌍성계와 만나 백색왜성과 교환됐을 것이라 추측했다.

미스터리한 짝별

상대성 이론 증명할까

 

공전 주기, 질량, 공전궤도 경사각, 기원 시나리오를 분석한 결과 펄서 PSR J0514−4002E의 동반성은 ‘무거운 중성자별’, 혹은 ‘가벼운 블랙홀’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까지 밝혀진 정보만으로는 당장 둘 중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힐 수 없다.

 

그럼에도 이번 발견은 천체가 어느 쪽이건 큰 의미가 있다. 우선 미스터리 천체는 지금까지 관측되지 않은 매스 갭에서 발견돼, 기존의 밀집성 생성 시나리오를 바꿀 수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밀집성의 질량 한계는 기존의 천체 물리 모델과 항성 진화 이론에 따라 만들어졌다. 무거운 중성자별 또는 가벼운 블랙홀의 발견은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모델의 수정 또는 항성의 새로운 진화 이론을 제시할 수 있다.

 

작은 블랙홀이라면 어떨까? 별은 질량에 따라 초신성 폭발로 이어지거나, 중력붕괴를 통해 블랙홀로 탄생하기 때문에 지금껏 발견된 적 없는 작은 질량의 블랙홀은 별의 최후를 추측하는 데 좋은 연구 대상이 된다. 또한 암흑물질을 밝히는 연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손봉원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본부 책임연구원은 “질량은 갖지만 관측되지 않는 암흑물질이 아주 작은 블랙홀일 수 있다는 추측도 있다”며 “직접적으로 연결 짓긴 어렵지만 암흑물질의 실마리로 연결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번 동반성 발견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다시금 증명할 좋은 기회임을 강조했다. “지금 발견된 펄사의 동반성이 무엇이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테스트하기 좋은 천체인 건 확실합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중력을 시공간의 곡률로 설명하는 이론으로, 극단적인 중력 환경에서 예상한 물리 예측이 잘 맞아떨어진다면 상대성 이론을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은하 내 구상성단에서 발견된 최초의 ‘펄사+블랙홀’ 또는 두 번째로 관측된 ‘펄사+중성자별’이라는 의의도 있다.

 

앞으로 이 천체의 정체를 밝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교수는 펄사 타이밍 오차를 줄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천체가 블랙홀이라고 가정했을 때의 모델을 두고 전파 신호가 들어맞는지 확인하고, 중성자별일 때의 모델을 두고 전파 신호가 들어맞는지 계속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적용할 수 있는 여러 방정식이 있는데, 그 방정식을 대입해 보며 짝별의 정체를 밝혀가야 해요. 그렇다면 수년 내에 이 천체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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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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