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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의 힘] 고품질 그래핀 4층으로 쌓았다

IBS 나노구조물리 연구단

탄소가 육각형 그물 모양으로 평면 구조를 이루고 있는 그래핀은 전기전도도가 높고 투명하며 유연성도 뛰어나 ‘꿈의 신소재’로 불린다. 최근 연구자들은 이런 그래핀을 여러 겹으로 쌓는 연구에 도전하고 있다. 다층 그래핀으로 소자를 만들면 반도체의 집적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반도체 내 전류가 흐르는 데 필요한 최소 에너지인 밴드갭(Band Gap)을 조절할 수 있다. 


필자가 속한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구조물리 연구단은 지난 7월 다층 그래핀 분야에서 새로운 도약이 될 발판을 마련했다. 고품질의 그래핀을 4층으로 쌓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번에 고안해낸 합성법을 이용하면 다층 그래핀을 수십~수백cm2의 대면적으로 생산할 수도 있다. 

 

탄소 용해도를 높이는 합금을 찾아라

 

그래핀을 가장 쉽게 얻는 방법은 흑연을 이용하는 것이다. 흑연을 물리적으로 한 층만 분리해낸 것이 바로 그래핀이다. 흑연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떼어내는 것만으로 그래핀 조각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으로는 넓은 면적의 그래핀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대면적 그래핀을 합성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화학기상증착법(CVD·Chemical Vapor Deposition)이 대표적이다. 


화학기상증착법은 열이나 플라스마를 이용해 화학물질을 증발시켜, 그 증기를 물체 표면에 얇은 막으로 입히는 방법이다. 고온에 금속 기판을 두고 메탄(CH4)과 같은 탄화수소를 주입하면, 탄화수소에서 탄소가 떨어져 나와 그래핀을 형성한다. 탄화수소가 탄소를 공급하고, 이를 금속 기판이 촉진하는 것이다.


이때 사용하는 금속이 탄소를 얼마나 잘 녹이는지에 따라 그래핀의 층수가 조절된다. 구리처럼 탄소 용해도가 낮은 금속은 금속 표면에 한 층의 그래핀이 합성된다. 반면 니켈처럼 탄소 용해도가 높은 금속에는 탄소 원자가 많이 생성돼 다층 그래핀이 만들어진다. 


니켈은 다층 그래핀을 합성할 수 있지만 생성된 그래핀의 층수가 불균일해 고품질 그래핀을 만들기 어려웠다. 이런 한계점을 보완하기 위해 니켈과 구리를 섞는 방법도 고안됐으나, 이 역시 그래핀을 2층까지밖에 쌓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3층 이상의 그래핀을 쌓기 위해서는 새로운 금속을 찾아내야 했다. 


우리 연구팀은 균일한 다층 그래핀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합금으로 실험했다. 구체적인 목표는 구리 기판의 탄소 용해도를 높일 수 있는 미지의 금속을 찾는 것. 여러 시도 끝에 탄소와 결합하기 쉬운 물질 중 하나인 실리콘(Si)을 이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다음 과제는 실리콘과 구리를 합금으로 만드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래핀이 합성되는 석영관(SiO2)에 실리콘이 포함됐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필요한 준비물은 구리와 충분히 높은 온도뿐이었다. 


우리 연구팀은 석영(SiO2)관 안에 구리 기판을 넣고 900℃로 가열했다. 그 결과 석영관의 실리콘이 승화되며 구리-실리콘 합금이 형성됐다. 


여기에 탄소 공급원인 메탄 기체를 주입하자 구리 표면에 균일한 실리콘-탄소(Si-C) 층이 생겼다. 1075℃까지 온도를 더 올리자 구리와 실리콘은 승화하고 탄소 사이의 결합이 생기며 그래핀 결정핵이 만들어졌다. 그래핀 결정핵은 이후 균일한 그래핀으로 성장했다. 높은 탄소 용해도를 가진 구리-실리콘 합금으로 균일한 그래핀을 얻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래핀의 층수는 메탄의 농도로 조절할 수 있었다. 메탄의 농도가 높을수록 메탄에서 분해되는 탄소 원자의 양이 많아져 그래핀의 층수가 높아진다. 메탄의 농도가 0.01%일 땐 1층, 0.03%일 땐 2층, 0.06%일 땐 3층, 0.1%일 땐 4층 그래핀이 생겼다.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 7월 27일자에 실렸다. doi: 10.1038/s41565-020-0743-0

 

 

대면적의 그래핀 합성 가능해져


 
이번 연구는 구리-실리콘 합금을 응용해 세계 최초로 4층의 균일한 그래핀을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가 크다. 이뿐만 아니라 그래핀을 합성하는 공간에서 합금을 만든다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는 의미도 있다.


또 반도체 웨이퍼에 견줄 수 있는 크기의 고품질 다층 그래핀을 만들었다는 의미도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실험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장비 크기의 한계가 있어 직접 시도하지 않았지만, 기업 등에서 석영관의 크기를 키우면 면적이 수십~수백cm2인 대면적 그래핀도 합성할 수 있을 전망이다. 


좋은 결과를 얻어서 다행이지만, 아이디어를 내고 성공하기까지 2년이 넘는 고된 실험이 있었다. 실험을 얼마나 많이 했던지 석영관의 내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부식된 적도 있다. 고온 열처리로 석영관의 실리콘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석영관 내에 산화물이 쌓여서다. 


실험에 사용한 구리 기판은 사파이어 기판 위에 증착된 필름 형태다. 그렇다 보니 고온에서 구리 필름이 벗겨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실험을 다시 시작하는 시행착오를 거쳐 우리 연구팀은 구리 필름이 견딜 수 있는 적정 온도를 찾고, 최종 온도까지 몇 단계에 걸쳐 온도를 증가시키는 묘수를 찾아냈다. 


현재 석영관을 고온 처리해 실리콘을 얻는 방법은 실리콘-구리 합금 합성량을 정확히 맞추기가 어렵다. 향후 추가 연구를 통해 실리콘-구리 합금을 만드는 방법도 개선해나갈 계획이다.

 
다층 그래핀을 반도체나 회로 등 다양한 소자에 적용하면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물리적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필자를 포함한 IBS 나노구조물리 연구단은 이렇게 다층 그래핀에서 특이적인 현상을 관찰하는 연구 또한 앞으로 계속 해나갈 계획이다. 

 

2020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상협 IBS 나노구조물리 연구단 연구위원
  • 에디터

    박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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