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특집] 쓰임 다한 배터리가 모이는 곳 미래폐자원 거점수거 센터에 가다

 

‘와, 크다.’

 

8월 8일 찾아간 수도권 미래폐자원거점수거센터(이하 수거센터)의 첫 인상은 배터리들이 모여 사는 거대한 아파트 같았습니다. 사람 키만한 배터리 998개가 하나씩 들어갈 수 있는 보관셀이 위아래, 양옆으로 쭉 펼쳐져 있었습니다. 수거센터에서 만난 김형준 한국환경공단 수도권서부환경본부 과장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회수된 사용 후 배터리의 절반 이상인 781개가 수도권 수거센터를 거쳤다”고 말했습니다.

 

“전기차 소유주가 폐차 의사를 밝히면 해당 폐차장에서 지자체에 (소유주를 대신해) 반납신청을 합니다. 반납신청을 받은 지자체는 배터리 회수 요청 공문을 저희 수거센터에 보내죠. 폐차장에서는 차종, 차량 연식 등의 정보가 담겨있는 반납 신청서를 우리 수거센터로 제출하고요. 이후 폐차장의 재활용업자가 배터리를 수거센터로 가져옵니다.”

 

김형준 한국환경공단 수도권서부환경본부 과장은 이런 역할을 하는 수거센터가 전국에 총 6곳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각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경북 테크노파크와 제주 테크노파크, 그리고 한국환경공단이 운영하는 미래폐자원거점수거센터 4곳(수도권, 충청권, 호남권, 영남권)입니다. 한국환경공단 소속 4개 수거센터는 2022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습니다. 사용 후 배터리 사업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입증하듯, 김 과장은 “물류를 보러 오는 대기업부터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기 위해 오는 업체들까지, 견학 스케줄이 빡빡하게 차 있다”고 말했습니다.

 

수도권 사용 후 배터리

2022년부터 781개 거쳐가

 

기자가 방문한 수도권 미래폐자원거점수거센터(이하 수거센터)의 배터리들은 서울과 인천, 경기, 강원 지역에서 발생한 것들입니다. 수거센터 안으로 들어가니 반납된 배터리들을 지게차로 나를 수 있는 넓은 공간(반입검사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한쪽에는 사용 후 배터리를 보관하는 자동화보관설비 시설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검사실과 상황실, 회의실 등이 마련돼 있었습니다.

 

자동화보관설비는 교실 사물함 혹은 지하철 물품보관함을 크게 부풀려 놓은 것만 같은 시설이었습니다. 사용 후 배터리 998개를 각각 보관할 수 있는 셀이 위아래, 양옆으로 쭉 펼쳐져 있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화재에 취약한 리튬이온 배터리 특성을 고려해 자동화재감지 및 진화시스템이 준비돼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김 과장은 “보관셀 각각의 천장에는 열이나 연기를 감지하는 센서가 있다”며 “화재가 나면 해당 위치로 산업용 로봇이 달려가 물이 가득 담긴 수조에 불이 난 배터리를 침수시킨다”고 설명했습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완전히 연소되거나 통째로 물에 담그기 전까진 불이 잘 꺼지지 않습니다.

 

보관셀에 들어있는 배터리는 자동차 바닥만한 크기였습니다. 2012년도 출시된 테슬라 모델S를 시작으로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차에 리튬이온 배터리를 넣는 개조전기차 형식에서 하부에 배터리를 통째로 넣는 전기차 배터리 전용 플랫폼으로 점차 변화했습니다. 전기차에 대형 배터리가 깔려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물로 보니 더욱 놀라운 규모였습니다. 무게도 엄청났습니다. 한 번 충전해서 400km 정도를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 배터리 무게는 400~450kg입니다. 내연기관차의 가솔린 엔진 무게가 2L 기준 평균 150kg 정도인 것과 비교해 보면 굉장한 무게입니다.

재활용 vs. 재사용

운명 가르는 3단계 평가

 

방문 당시 수거센터에는 대략 230개의 사용 후 배터리가 모여 있었습니다. 사용 후 배터리들은 상태 평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평가 결과에 따라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자전거, 전동킥보드 등에 다시 사용되기도 하고(재사용), 배터리를 분쇄해 리튬(Li), 니켈(Ni), 망간(Mn) 등 유가 금속으로 되돌리기도 합니다(재활용).

 

외관에 이상이 없고, 절연저항이메가옴) 이상이며, 잔존수명(SOH)이 60% 이상인 배터리는 재사용이 가능합니다. 이외 것들은 모두 재활용 공정을 밟습니다.

 

평가는 크게 세 단계로 이뤄집니다. 먼저 외관 검사입니다. 눈으로 균열이 생긴 곳은 없는지 살피고, 배터리 케이스를 떼어내서(탈거) 안에 있는 배터리 셀이 찌그러지거나 쏠림 없이 온전하게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합니다. 외관 평가를 기다리고 있는 배터리 중에는 문외한인 기자가 보기에도 검사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들이 꽤 있었습니다. 김 과장은 한 ‘흙빛’ 배터리 앞으로 기자를 안내했습니다.

 

“침수차에서 나온 배터리입니다. 색깔부터 다르죠? 이런 것들은 외관 검사에서 탈락해 바로 재활용으로 분류됩니다. 그 밖에도 화재 차량에서 나온 배터리는 그을음이 묻어있기도 하고, 사고 차량에서 나온 배터리들은 찌그러져 있기도 해요. 그런 것들은 화재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곧바로 재활용으로 빼버립니다.”

 

외관 검사를 통과한 사용 후 배터리는 다음으로 2단계 전기적 검사를 받습니다. 전기적 검사는 두 단계로 나뉩니다. 먼저, 전기가 통하지 않는 상태에서 개방회로전압(OCV嘓pen Circuit Voltage)을 측정합니다. 김 과장은 현대차 포터 차량의 사용 후 배터리 앞으로 다가가 두꺼운 주황색 절연장갑을 낀 뒤 +극과 -극에 OCV 측정 장치를 댔습니다. ‘삐비빅’ 290.7V 숫자가 떴습니다. 통과입니다. 김 과장은 “OCV는 전압이 안 나오거나 갑자기 스파크가 튀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회로에 흐르는 전압을 측정하는 것”이라며 “250~300V 정도 나오면 통과”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절연저항을 측정합니다. 절연저항이란 전기가 흐르면 안 되는 곳의 저항으로, 값이 클수록 좋습니다. 감전 사고와 화재 등을 예방하기 위해 측정합니다. 절연저항이이상 나왔다면, 완전 방전을 시킨 뒤 마지막인 3단계 검사를 시행합니다.

 

3단계 검사는 잔존수명 평가입니다. 잔존수명 평가는 배터리 외관을 검사하는 반입검사실 한쪽의 성능평가실(배터리검사실)에서 진행됩니다. 성능평가실에 들어서니 거대한 항온항습 챔버와 성능평가 장비(셀을 충방전시키면서 잔존수명 측정)가 보였습니다. 항온항습 챔버는 배터리 주변의 온도와 습도 환경을 조절해 주는 시설입니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이산화탄소 기체 분사기가 있고 방폭 기능도 겸비하고 있습니다. 항온항습 챔버 문 안쪽에는 마지막 평가를 받은 쉐보레 볼트EV 차종의 사용 후 배터리가 들어있었습니다.

 

항온항습 챔버에 들어온 완전 방전된 사용 후 배터리는 다시 완전 충전, 완전 방전을 거치며 배터리 용량 평가를 받습니다. 김 과장은 “잔존수명 평가를 통해 해당 배터리의 용량이 처음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남아있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측정을 항온항습 챔버 안에서 하는 이유는 배터리에 전류를 흘릴 때 셀 온도가 상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 과장은 “사용 후 배터리를 검사할 때 가장 위험한 단계가 바로 이 잔존수명 평가”라며 “40℃ 이상 올라가면 배터리가 부풀어 오르거나 열 폭주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온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면 자동으로 성능평가 장비가 셧다운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평가를 마친 배터리들은 매월 넷째 주 수요일 순환자원정보센터 공개입찰 홈페이지(www.re.or.kr)에 올라갑니다. 여기서 낙찰된 배터리들은 연구실이나 공장 등으로 옮겨집니다. 이후 재사용 혹은 재활용되며 또 다른 쓰임을 맞이하게 되죠. 물론 누구나 사용 후 배터리를 구매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정부 지원 연구 참여자이거나, 폐기물재활용업 허가를 받는 등 자격을 충족해야 합니다. 한국환경공단 매각 담당 관계자는 “고용량 배터리는 위험할뿐더러, 지금은 배터리 재사용과 재활용 산업 기술 개발 단계로, 관련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서 자격에 제한을 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리튬, 배터리,

그리고 다시 리튬

 

3단계 평가를 거쳐 재사용이 어렵다는 평가를 받은 ‘폐배터리’들은 재활용 공정으로 넘어갑니다. 재활용 공정은 한 마디로 배터리에 들어간 유가 금속을 회수하는 공정입니다. 폐배터리를 완전히 방전시킨 후 파쇄와 분쇄 과정을 거쳐 ‘블랙매스’를 만드는 전처리 공정과, 블랙매스에서 유가 금속을 추출하는 후처리 공정으로 나뉩니다.

공정을 둘로 나눈 이유는 폭발 위험 때문입니다. 전기차에 사용됐던 리튬이온 배터리는 완전 방전된 상태라고 해도 잔여 전력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때문에 전처리 공정에서는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폐배터리를 염화나트륨(NaCl) 수용액 등 전도성 용액에 침전시킵니다. 충분히 방전된 배터리 셀은 분쇄기에 넣습니다. 파분쇄 공정을 거치면 리튬, 니켈, 코발트(Co) 등 유가 금속이 포함된 검은색 분말, 블랙매스가 만들어집니다.

 

후처리 공정에서는 블랙매스에서 유가 금속을 추출합니다. 추출 방법은 건식제련과 습식제련, 두 가지로 나뉩니다. 건식제련은 블랙매스를 700℃가 넘는 고온으로 열처리해 탄소 등 재활용할 필요가 없는 물질들을 제거합니다. 이후 열처리한 블랙매스를 물에 넣어 리튬 수용액으로 만들고 수용액 내 코발트, 망간과 같은 다른 금속 산화물은 여과해서 분리합니다. 마지막으로 리튬 수용액에서 물을 증발시켜 탄산리튬(Li2CO3)을 얻습니다.

 

또 다른 추출 방법인 습식제련은 유가 금속 회수율이 좋아 대부분의 재활용 공장에서 채택하는 방법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는지 습식제련 공장을 운영하는 포스코HY클린메탈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포스코HY클린메탈의 습식제련 공장은 크게 5가지 공정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원료 분리 보관, 침출, 추출, 결정화, 탄산리튬화 순입니다. 아직 폐배터리가 시장에 본격적으로 나오기 이전인 만큼, 현재는 주로 ‘스크랩(배터리 생산 중 발생한 불량품)’을 활용해 유가 금속을 추출하고 있었습니다. 전처리 공장에서 블랙매스가 도착하면, 원료창고에서는 블랙매스를 성분별로 분리 보관합니다. 참고로 음극활물질과 전해액이 없는 스크랩을 분쇄해 만든 검정 가루는 블랙파우더, 음극활물질과 전해액이 들어있는 사용 후 배터리를 갈아 만든 가루는 블랙매스라고 부릅니다.

 

포스코HY클린메탈 관계자는 “블랙매스 또는 블랙파우더를 성분에 따라 분리해서 원료창고에 보관하고, 이후에 적절한 성분으로 혼합해 혼합 블랙매스 형태로 다음 순서인 침출 공정에 보낸다”고 설명했습니다.

 

침출 공정은 리튬과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의 유가 금속을 이온화하는 과정입니다. 이를 위해 혼합 블랙매스를 황산과 섞습니다. 포스코HY클린메탈 관계자는 “고온, 고압의 산소를 가해 미처 황산에 녹지 않은 유가 금속을 최대한 녹여낸다”며 “금속 원소와 황산이 반응하면서 반응열이 발생하기 때문에 침출 공정 설비들은 모두 내열성 있는 재료로 만들어진다”고 덧붙였습니다.

 

추출 공정에서는 유가 금속이 녹아 있는 황산 침출액에서 망간과 코발트, 니켈을 각각 분리해 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추출제를 이용합니다. 각각의 유가 금속이 잘 녹는 추출제를 넣어서 유가 금속 이온이 추출제로 이동하게 합니다. 그런 다음 층 분리 원리를 이용해 원하는 성분을 분리합니다. 예를 들어 망간이 잘 녹는 추출제를 황산 침출액과 섞은 뒤 가만히 두면 망간과 추출제가 섞인 층이 따로 생깁니다. 이 층을 분리해 다시 황산을 넣어주면 황산망간(MnSO4) 용액이 탄생합니다. 같은 방식으로 황산코발트(CoSO4), 황산니켈(NiSO4), 황산리튬(Li2SO4) 용액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다음은 결정화 공정입니다. 결정화 단계에서는 각각의 용액을 증발시킵니다. 포스코HY클린메탈 관계자는 “물을 증발시켜 과포화 상태로 만들면 용액과 (소금 형태의) 결정이 공존하는 상태가 된다”며 “이것을 원심분리기에 넣어 포화용액과 결정을 분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분리한 결정은 다시 배터리 양극활물질의 기초 재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황산리튬 용액은 탄산리튬화 공정이라는 단계를 최종적으로 한 번 더 거쳐야 합니다. 막 만들어 낸 탄산리튬 고형물에는 인이나 플루오르, 나트륨 등의 불순물이 포함돼 있어 이것들을 제거하는 공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황산리튬 용액에 탄산나트륨(Na2CO3) 용액을 섞어 탄산리튬 고형물을 얻어내는 과정까지 거치면 다시 배터리의 원료로 사용할 수 있는 탄산리튬이 탄생합니다.

2년 뒤 쏟아질 사용 후 배터리

재활용 산업은 이제 시작

 

사용 후 배터리는 2025년경부터 시장에 쏟아질 전망입니다. 한국에 전기차가 본격 보급되기 시작한 것이 2013년인데, 전기차의 수명은 평균 10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시장조사업체 SNE 리서치는 올해 5월, 전 세계 전기차 폐차 대수를 2025년 56만 대, 2030년 411만 대, 2040년 4227만 대로 전망했습니다.

 

이에 대비한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은 한국에 이제 하나둘 생기는 단계입니다. 포스코홀딩스 관계자는 “1세대 전기차들이 나오는 시기에 발맞춰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도 이제 막 싹트는 시기”라며 폐배터리 재활용 산업의 현재를 설명했습니다.

 

포스코홀딩스는 2022년 8월 폴란드에 전처리 공장인 PLSC(Poland Legnica Sourcing Center)를 설립하고, 올해 7월 초 전남 율촌산업단지에 후처리 공장인 포스코HY클린메탈을 준공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포스코홀딩스 관계자는 “전처리와 후처리 모두 가능해져 배터리 재활용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게 됐다”며 “앞으로의 목표는 환경친화적이고 효율적인 유가 금속 추출 기술을 적극 개발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2023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수란 기자
  • 사진

    남윤중

🎓️ 진로 추천

  • 환경학·환경공학
  • 화학·화학공학
  • 전기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