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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7년 만에 보여준 미래 'VISION' XR 삼국지가 펼쳐진다

 

6월 5일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확장현실(XR) 기기 ‘비전 프로’를 공개하면서 XR 시장이 뜨겁게 달궈졌다. 쿡 CEO는 비전 프로를 공개하며 “맥이 개인 컴퓨터의 시대를, 아이폰이 모바일 컴퓨터의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애플 비전 프로는 우리에게 공간 컴퓨터의 시대를 보여줄 것”이라고 선포했다. 한편 오랫동안 관련 시장을 주도하던 메타는 그보다 앞선 6월 1일 신제품 ‘퀘스트 3’을 공개한 상황. 삼성도 가까운 미래에 XR 기기 ‘갤럭시 글래스’를 출시할 전망이다. 천하를 삼분할 하겠다는 삼국지 속 제갈량의 계책이 떠오르는 이 시점에 XR ‘천하삼분지계’를 정리했다.

 

“우주인이 된 것 같아요!”

 

6월 30일 서울 용산 과학동아 편집실, 금요일 오후의 나른한 공기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편집실에 도착한 상자 두 개 덕분이다. 상자 안에는 메타에서 보내온 확장현실(XR) 헤드셋 ‘퀘스트 2’와 ‘퀘스트 프로’가 각각 들어있었다. 퀘스트 2를 착용한 이수린 기자는 “우주 화면을 켰더니 예전에 몽골 여행을 했을 때 봤던 것과 같은 실감나는 밤하늘이 펼쳐져 추억에 잠겼을 정도”라고 말했다.

 

XR 헤드셋은 쉽게 말해 머리에 쓸 수 있는 디스플레이다. 메타의 퀘스트 시리즈는 렌즈 대신 디스플레이가 장착된 고글처럼 생겼다. 하지만 이 기기의 역할은 단순한 ‘디스플레이’ 그 이상이다. 퀘스트 프로를 착용하고 ‘리치의 널빤지 경험(Richie’s Plank Experience)’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했다. 리치의 널빤지 경험은 고층빌딩 80층에서 나무판자 위를 걸어보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이용자들의 반응을 담은 영상을 SNS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잠시 뒤 주변에 혼잡한 빌딩숲이 펼쳐졌다. 고개를 어느 곳으로 돌려도 풍경이 실감나게 이어져 정말 새로운 공간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XR 헤드셋에서 차가 다니는 소리가 재생돼 현실감을 더했다. 이렇게 컴퓨터로 구현한 가상 세계를 ‘가상현실(VR)’이라고 한다. 

 

가상 공간 속 건물에 말 그대로 ‘걸어 들어가’ 엘리베이터에 탔다. 컨트롤러를 쥐고 손을 움직이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수 있다. 80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건물 외벽에 붙어있는 나무판자가 보였다. 속으로 ‘지금 걷는 곳은 안전한 사무실 복도’라고 되뇌었지만, 무서웠다. 휘청거리며 나무판자 위를 걸었다. 

 

 MR 시장의 터줏대감

 메타의 ‘퀘스트 3’  

 

퀘스트 프로로 할 수 있는 일이 단순히 ‘체험’ 뿐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퀘스트 프로는 메타가 퀘스트 2를 출시한 지 2년 만인 2022년 10월 출시한 제품이다. 메타의 2년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퀘스트 2보다 가벼우면서 시야도 더 선명하다. 헤드셋 안쪽에는 적외선 시선 및 얼굴 트래킹 센서가 배열돼 헤드셋 속 사용자의 얼굴 표정을 아바타에 구현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퀘스트 프로에 풀 컬러 혼합현실(MR)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그게 뭐가 특별한 건지 실감하기 위해서 메타가 ‘퀘스트 프로로 사용하면 더 좋은 앱’이라고 소개한 디자인 앱 ‘아키오(Arkio)’를 실행했다. 아키오는 MR 공간 속에서 3차원(3D) 모델링을 통해 물리적 제약 없이 도시, 빌딩, 사무실 등을 설계하고 인테리어를 꾸밀 수 있는 앱이다. 레고로 건축물을 만드는 것처럼 건물의 높이, 지붕 각도, 조경 등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 컨트롤러 없이 허공에서 손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각 요소를 조절할 수 있다는 점도 레고 놀이 같다. 건물 한 귀퉁이를 손가락으로 ‘잡고’ 위로 쭉 당기자 건물의 높이가 높아졌다. 모드를 전환하면 자신이 만들던 건물 안에 들어가거나, 건물의 높이, 넓이 등을 측정할 수 있다.

 

편집실에 책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수 년째 해왔다. 오랜 염원을 풀고자, 아키오를 이용해 편집실에 책장을 놓아봤다. 풀 컬러 MR 모드 ‘컬러 패스스루+’로 전환하면 퀘스트 프로의 외부 카메라가 주변환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전 모델인 퀘스트 2에선 흑백으로만 작동하던 기능이다. 기자는 컴퓨터 속 ‘또다른 편집실’ 위에 가구를 배치하고 벽지 색을 바꾸는 등 그래픽을 덧입혀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결국 어떻게 해도 책장을 놓을 공간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이처럼 실제 환경에 가상의 물체 또는 정보를 합성하는 기술을 ‘증강현실(AR)’이라 부른다. 현실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VR과는 다른 개념이다. 기자는 아키오를 통해 컴퓨터로 구현한 현실 공간 위에 가상의 물체를 합성했다. 이런 기술을  AR과 VR을 합친 혼합현실, MR이라고 부른다. XR는 VR, AR, MR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메타는 퀘스트 프로를 통해 자사의 첫 풀 컬러 MR 모드를 성공적으로 선보였다는 평을 듣는다.  

 

메타는 2014년 미국의 VR 기기 개발 기업 ‘오큘러스’를 인수한 이후로 VRAR 시장을 선도해온 터줏대감이다. 2021년 페이스북이었던 기업명을 메타버스에서 유래한 ‘메타’로 바꾼 것도 VRAR 기술을 통해 메타버스를 미래 먹거리로 삼겠다는 뜻이 담겼다. 미국의 기술 시장 분석 및 컨설팅 기업 IDC가 지난 3월 24일 발표한 시장조사결과에 따르면, 2022년 메타는 전체 VRAR 헤드셋 시장의 약 80%를 차지했다.

 

VRAR 시장은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는 않은 상태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팬데믹이 수그러들며 VR에 대한 수요도 줄어드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메타에서 XR 헤드셋과 관련 콘텐츠 개발 등 메타버스와 관련된 업무를 맡은 사업부인 ‘리얼리티 랩’은 올해 1분기 39억 9000만 달러(약 5조 3400억 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메타의 전략은 이용자 수를 늘려 생태계를 확대하는 것이다. 6월에는 퀘스트 2 가격을 낮춰 진입장벽을 없애는 한편, VR 게임을 구독하는 서비스 ‘메타 퀘스트 플러스’를 공개했다. 메타의 XR 헤드셋을 구매해야만 하는 이유가 될 ‘킬러 콘텐츠’를 확보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지테쉬 우브라니 IDC 모빌리티 및 소비자 분석팀 연구원은 “아직 AR이나 VR 시장이 성장하긴 이른 시점이지만, 메타는 이 시장에 다른 기업들이 뛰어들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시장에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더해 6월 1일엔 메타의 야심작 ‘퀘스트 3’도 공개됐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우리의 가장 강력한 헤드셋이 올 가을에 온다”고 예고했다. 이어 “높은 해상도의 풀컬러 MR을 적용한 우리의 첫 보급형 헤드셋”이라고 설명했다. 퀘스트 3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9월 27일 메타의 커넥트 컨퍼런스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7년 만에 나온 게임체인저

  애플의 ‘비전 프로’  

 

6월 5일, 메타가 장악하던 VRAR 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애플이 개최하는 ‘세계 개발자 회의(WWDC)’에서 팀 쿡 애플 CEO가 공개한 애플의 XR 헤드셋 ‘비전 프로’다. 쿡 CEO는 “비전 프로는 수년을 앞선 완전히 새로운 혁명적인 입력 시스템과 수천 개 이상의 획기적인 기술 혁신을 선보인다”며 “예전에 봐왔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애플이 2017년 AR 기반 헤드셋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한 지 7년만의 일이다.

 

비전 프로는 메타의 XR 헤드셋과 동일하게 고글 모양으로 생겼다. 착용하면 사용자 주변 공간에 앱을 띄울 수 있다. 앱은 목소리, 시선, 손가락 움직임으로 조작할 수 있다. 기존 XR 헤드셋과 달리 별도의 컨트롤러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키보드도 없다. 가상 공간에 떠오른 디지털 키보드를 이용하는 식이다. 비전 프로를 착용하지 않은 주변 사람의 눈에는 그저 허공에서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헤드셋에 가려진 사용자의 얼굴은 헤드셋 내부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촬영해 헤드셋 외부에 나타낸다. “비전 프로를 착용한 채로 주변 사람들과 연결된 느낌을 유지하도록 한다”는 게 애플의 설명이다.

 

애플은 본사에서 비전 프로를 체험해볼 수 있는 데모 세션을 운영하고 있다. 비전 프로를 실제로 체험해본 사람들의 후기를 살펴보면 “시선, 음성, 손동작을 아주 정확하게 인식하는 점이 인상깊고, 해상도가 높아 주변 환경을 보여주는 패스스루 기능(메타의 컬러 패스스루+와 같은 개념)은 실제 눈으로 보는 주변 환경과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라는 의견이 공통적이다.

 

쿡 CEO는 “맥을 발표하며 개인 컴퓨터의 시대를, 아이폰을 통해 모바일 컴퓨터의 시대를 열었듯, 비전 프로를 통해 공간 컴퓨터의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마이크 록웰 애플 기술개발 그룹 부사장은 “최초의 공간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시스템의 거의 모든 면을 새롭게 개발해야 했다”고 했다. 공간 컴퓨터란 인간과 2차원 화면이 아닌 3차원 공간을 통해 상호작용할 수 있는 컴퓨터다. 허공에 떠 있는 가상 키보드로 문자를 입력하는 일, 시선을 통해 앱을 선택하는 일 모두 공간을 통해 이뤄지는 인간과 컴퓨터 간 상호작용의 예시다.

 

 

비전 프로가 공개되자마자 세계가 술렁였다. 검색 빈도로 키워드의 관심도를 분석해주는 구글 트렌드 데이터를 살펴보면 그 영향을 파악할 수 있다. 애플이 비전 프로를 공개한 6월 5일 관련 검색어인 ‘VR 헤드셋’ ‘혼합현실’ ‘공간 컴퓨팅’ 등은 최근 5년 중 가장 높은 검색 빈도를 기록했다. 5년 사이 그 어떤 회사의 신제품도 이만큼의 관심을 이끌어내진 못했다.

 

한편 과학동아와 인터뷰를 진행한 전문가들은 애플이 비전 프로를 통해 구현한 공간컴퓨팅 이 완전히 새로운 기술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이미 상용화된 적도 있으나, 그 수준이 조금 더 개선된 정도라는 것이다. 정일권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초실감메타버스연구소 콘텐츠연구본부장은 “기존에도 메타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관련 기술을 구현한 바 있다”면서 “시각적인 부분에서 해상도가 대폭 개선되면서 혁신을 일으킨 것”이라고 풀이했다.

 

공간 컴퓨팅을 연구하는 권순철 광운대 스마트융합대학원 정보융합시스템학과 교수는 “요소 기술 자체는 어느 정도 궤도권에 올라온 상태라, 이를 각 회사가 하드웨어적으로 어떻게 나타내느냐의 문제”라고 했다. 강원대 인간공학 메타버스 연구실을 이끄는 김우주 교수는 “메타에서도 (가격을 높이는 대신 높은 수준의 기술을 구현하는) 애플과 같은 방향성을 가진 제품 개발을 진행한다면 금세 비슷한 수준의 제품을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면서 “현 단계에서는 애플이 잘하는 것으로 알려진, 정돈된 사용자 경험(UXUser Experience)을 제공하는 데 성공한 것이라고 본다”고 했다.

 

애플의 발표로 가장 동요(?)하고 있을 것이라 예상되는 메타의 반응도 비슷하다. 저커버그 CEO는 애플의 비전 프로 발표 이후인 6월 9일 전사 회의를 통해 “좋은 소식은 애플이 우리가 그간 고민해온 문제에 대해 마법 같은 해결책을 들고 온 건 아니라는 것”이라고 했다. 저커버그의 말을 그대로 번역해왔다.

 

“나는 그들의 발표가 우리 회사와 그들의 가치 및 비전의 차이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제품을 가능한 모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저렴하게 만들기 위해 혁신을 추구합니다. 그게 우리의 핵심가치 중 하나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리는 메타버스에 대한 비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입니다. 이는 사람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상호작용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가까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그들이 보여준 영상에는 혼자 소파에 앉아있는 사람만 보였어요. 그게 컴퓨팅의 미래 비전이 될 수도 있지만, 내가 원하는 비전은 아니예요.”

 

비전 프로의 출시 시점은 내년 초로 예상된다. 가격은 3499달러(약 451만 2310원)다. 참고로 퀘스트 3은 499달러(64만 3510원)다.

 

 세 강자의 XR 도원결의

 삼성의 ‘갤럭시 글래스’  

   

메타, 애플의 XR 헤드셋이 공개된 가운데, 삼성전자가 곧 XR 헤드셋을 내놓을 거란 예측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2월 1일 ‘갤럭시 언팩 2023’ 행사에서 퀄컴, 구글과의 파트너십을 발표하며 XR 시장으로 진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퀄컴은 미국의 무선 전화통신 연구 및 개발기업이다. 퀄컴의 MR용 칩셋(집적회로 묶음) ‘스냅드래곤’은 메타의 퀘스트 3에도 사용될 정도로 관련 기술력이 상당하다. 그런 퀄컴이 XR 플랫폼 전용 칩셋을 만들고, 소프트웨어는 구글이, 하드웨어는 삼성이 만드는 식이다.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CEO는 갤럭시 언팩 2023에서 “삼성, 구글과의 협력을 통해 스냅드래곤 XR 기술로 현실과 가상공간의 경계를 허물며 공간 인터넷의 미래를 견인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히로시 록하이머 구글 플랫폼&에코시스템 담당 전무는 “구글은 ARVR과 같은 분야에 투자하며 여러 앱과 서비스에 AR 기술을 활용하는 등 컴퓨팅과 XR 기술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다”며 “이를 위한 더욱 고도화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을 개발하고자 삼성, 퀄컴과의 협업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고 했다.

 

2월 ‘XR 도원결의’를 맺은 삼성은 같은 달 ‘갤럭시 글래스’라는 이름의 상표권을 출원했다. 이어 5월엔 XR 헤드셋 생산에 필수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OLED 기업 ‘이매진’을 인수하는 등 바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갤럭시 글래스라는 이름을 가질 것으로 예상되는 삼성의 XR 헤드셋은 내년 중으로 공개될 전망이다.

 

정 본부장은 “XR, 그리고 메타버스로 향하는 기술의 방향성은 확실하다”면서 “메타, 애플, 삼성의 움직임이 그 과정을 가속할 텐데, 어느 정도로 가속할지는 앞으로 최소 1년은 지켜봐야 할 일”이라고 내다봤다. 

2023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소연 기자 기자
  • 디자인

    이한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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