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현미경은 물질의 내부구조를 들여다보게 하고, 전자를 이용한 가속기는 물질을 이루는 기본입자가 무엇인지를 밝혀내고 있다. 전자를 이용한 또 하나의 물질 연구분야가 있다면 방사광가속기다. 빛을 만드는 전자공장은 어떤 것이고 무엇을 연구하는지 알아보자.
포항 가속기 연구소에 설치된 방사광 가속기는 '빛공장'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빛을 만드는 원료가 바로 가속된 전자임은 그리 알려진 것 같지 않다. 톰슨(J.J.Thomson)이 전자를 발견한지 올해가 1백년이 되는 해인 만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전자공장을 소개한다. 어떻게 전자를 생산하고 생산된 전자를 어디에다 이용하는지 알아보자.
포항 방사광가속기는 방사광 발생장치인 20억eV(전자볼트)급의 저장링과 여기에 가속된 공급하는 선형가속기로 구성돼 있다. 선형가속기의 임무는 전자를 만들어서 20억eV까지 가속시키는 것이다. 전자가 만들어지는 곳을 전자총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이름조차 생소한 3극 진공관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3극 진공관과 마찬가지로 삼극형 전자총은 음극에 해당하는 열음극(필라멘트), 조절융 그리드(grid), 그리고 양극으로 구성된다. 대부분의 경우 금속을 가열하면 표면에서 전자가 튀어나온다. 따라서 금속의 경우 모두 열음극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효율성이나 사용면에서 최적인 전자총이 되려면 열음극의 재질과 기하학적인 구조가 크게 문제가 된다. 포항의 선형가속기에서 전자가 방출되는 것인 열음극은 스폰지 같이 엉성한 구조의 텅스텐 모재에 알카리 금속의 산화물을 일정한 비율로 섞어 만든 것이다. 비교적 낮은 온도(약 1천50℃)에서 오랜시간 동안(약 1만시간)많은 양의 전류(7.5A/㎠)를 얻을 수 있다.
현재 포항 가속기연구소에서 사용중인 열음극의 최대 방출전류는 15A이다. 열음극에서 튀어나오는 전자의 속도는 매우 느리므로 적절한 고전압을 가해서 전자를 가속시킬 필요가 있다. 전자총은 열음극과 양극 사이에 8만V의 고전압을 가해 초기에 열음극에서 튀어나오는 전자를 가속시킨다. 이때 가해지는 전압만으로 전자는 이미 광속의 절반에 해당하는 속력을 얻는다.
매초 1천억개 전자 얻어
열음극을 1천 50℃까지 가열시키는 것은 바로 필라멘트 전류이다. 열음극에 전류가 흘러 계속 가열될 때 전자는 지속적으로 방출된다. 그리드는 전자의 방출량을 조절해 저장링에서 전자를 받아들이기 편리하도록 한다. 포항의 전자총에서 열음극 그리드간 간격은 겨우 0.17mm이다. 그래서 보통의 경우 전자가 양극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열음극과 그리드 사이에 직류 약 1백V의 전압을 걸어준다. 필요한 경우만 이 그리드 전압을 써서 전자가 선형가속기 본체로 입사되도록 한다. 선형가속기가 정상적으로 운전되면 매회 만들어지는 전자의 양은 약 2nC(2×${10}^{-19}$이다. 전자수로 따지면 약 1백억개에 달한다. 이러한 전자총의 동작이 매초 10회씩 이루어지므로 저장링으로 보내지는 전자의 수는 매초 1천억개에 이른다.
가속기 운전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 여기에서 등장한다. 가속기와 같이 거대한 설비는 모든 구성품의 동작시간이 정확하게 일치해야 제대로 작동된다. 가속기의 동작은 첫째 전자빔의 생성에 따라 모든 작동이 순차적으로 연결되는데 이때 전자총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 바로 그리드 전압을 상쇄시키는 펄스 전압의 발생이다. 현재 포항에서 사용중인 펄수발생기는 폭이 10억분의 1초로 매우 정교하다.
전자총에서 전자빔이 이렇게 만들어져도 전자빔의 통로가 양질의 진공도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전자는 잔류기체와 충돌하여 소멸된다. 따라서 전자총 내부의 진공도는 1천억분의 1기압(${10}^{-8}$토르) 이내로 유지돼야 한다. 전자총이 설치된 용기는 내부적으로 초고진공 상태를 유지하면서 외부적으로 8만V의 전압을 견딜 수 있는 통이어야 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전자는 전자총에서 만들어져 선형가속기로 입사된다. 선형가속기에서는 고주파를 이용해 전자를 가속시키는데, 이때 사용되는 고주파의 주파수는 2천8백56MHz이다. 전자는 이고주파에 실려서 가속된다. 전자를 효율적으로 고주파에 태우기 위하여 전자총과 선형가속기의 첫 번째 가속관 사이에 프리번처(Prebuncher)와 번처(각각 전자를 다발로 묶어주는 장치)라는 특별한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이 장치를 통과하면 전자빔은 2천8백56MHz에 알맞도록 뭉쳐진다. 이후 42개의 가속관을 지나면 전자는 드디어 20억eV까지 가속된다. 이후 길이 96m의 빔 전송선을 지나 전자는 마침내 저장링에 도달하게 된다. 이때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불과 1백만분의 1초도 되지 않는다.
선형가속기에서 가속된 전자를 아무렇게나 보내서는 저장링에 들어가지 않는다. 마치 야구에서 투수와 포수 사이에 호흡이 맞아야 하듯이 저장링과 선형가속기도 시간적으로 딱 맞아야 한다. 저장링에는 전자를 받아들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구니가 있는데, 그 크기는 시간적으로는 5억분의 1초이며 모두 4백68개가 있다. 선형가속기에서는 포수인 저장링이 보내는 신호에 따라 정해진 바구니 속으로 전자빔을 입사시킨다.
저장링에 들어간 전자빔은 둘레 2백80m의 원궤도를 돌게 된다. 전자의 속도가 이미 광속이므로 전자빔은 저장링을 매초 1백만번 이상 회전한다. 저장링 주위에는 전자빔의 궤도를 10도씩 틀어주는 2극 전자석 36대가 설치되어 있다. 전자빔은 이곳을 지나면서 부채살처럼 방사광을 발생시킨다. 그러나 실제로 방사광을 뽑아내는 통로인 빔라인을 지나는 방사광은 이중 일부이며 나머지는 전부 열로 바뀌어 소멸된다. 빔라인을 지나는 방사광은 적외선에서 X선에 이르는 모든 파장이 섞인 빛이다. 그래서 사용자는 단색분광기를 이용해 원하는 특정한 파장의 빛을 골라내 연구하고자 하는 시료에 도달하게 한다.
신약개발에 효과적
포항가속기 연구소가 1995년 9월 사용자에게 설비를 개방할 당시 2대뿐이었던 빔라인은 현재 6대로 증가했다. 지난해 10월 LG반도체는 X선 빔라인을 이용해 세계최초로 0.13미크론급 반도체 패턴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는 4G DRAM급의 반도체를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한 획기적인 업적이다.
한편 수직입사분광기 빔라인은 방사광의 파장이 가장 긴편에 속하므로 기체상태의 시료를 주로 연구한다. 이 빔라인에서 수행된 실험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CFC대체할 물질을 개발하려면 최종적으로 성층권의 환경에서 오존과 반응하는 성질이 없다는 것이 검증돼야 한다. 그런데 포항 방사광가속기는 바로 자외선이 풍부한 성층권 환경을 쉽게 재현시켜 준다.
현재 우리와 경쟁 중인 해외의 방사광가속기에서는 응용분야를 제약분야로 확대시키고 있다. 강력한 방사광을 이용하면 유전자를 구성하는 단백질의 구조를 쉽게 규명할 수 있고 파악된 단백질 구조에 작용하는 적합한 약을 쉽게 설계할 수 있다. 결국 장시간이 필요한 임상연구 기간을 급격히 단축시켜주므로 새로운 약품이 아주 빠른 속도로 개발될 수 있게 된다. 약품은 단위무게 당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분야 중의 하나이므로 선진국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우리도 하루빨리 포항에 설치된 방사광가속기를 이용한 신약연구개발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미시세계를 개척한 전자현미경
미시세계를 연구하는데 필수적인 현미경은 지금으로부터 4백여년 전에 발명됐다. 1590년 네덜란드 안경사인 얀센부자가 두개의 렌즈를 조합해 만든 것이 시초였다. 이후 렌즈를 사용하는 광학 현미경은 꾸준히 발전했지만 물체를 2천배 이상 확대해 볼 수는 없었다. 광학현미경은 빛의 파장(4000-7500Å)보다 작은 물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1932년 독일의 루스카는 전자를 이용해 이러한 광학현미경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전자빔의 파장은 0.05Å로 매우 짧기 때문이다. 전자현미경은 광원대신 전자총(음극선관)을 사용하고, 유리렌즈 대신 전자빔을 모으는 전자렌즈를 사용한다는 것뿐 광학렌즈와 그 원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자현미경에는 투과형(TEM)과 주사형(SEM)등 크게 두종류가 있다. 투과형은 전자를 물체에 투과시켜 상을 보는 반면, 주사형은 전자빔이 물체에 주사된 후 발생하는 2차 전자를 이용한다. 결국 주사형 전자현미경은 수십만배, 투과형 전자현미경은 수백만배의 미시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게 했다. 1981년에는 양자역학을 이용한 주사형터널링현미경(STM)이 등장해 원자도 볼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