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기획] 2050년 탄소 중립, 핵융합이 해내려면

 

순에너지 획득으로 인류는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에 한 발짝 다가섰다. 앞으로 상용화까지 몇 발짝을 더 나가야 하고, 그 걸음에 우리가 넘어야 하는 산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전 세계 공통의 목표인 ‘탄소중립 2050’에 맞춰 핵융합 에너지가 대전환을 이끌 수 있는지, 상용화까지 남은 시간도 가늠해본다.

 

핵융합이 최초의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흑자가 난 만큼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단 뜻이다. 하지만 이번에 미국 에너지부 산하 국립점화시설(NIF)이 차익을 낸 에너지는 3.15 - 2.05 = 1.1MJ로, 하나의 가정 주택에서 20분 정도 쓸 수 있는 전기 양에 불과하다.

 

에너지 상용화를 위해서는 한 주택이 아닌 한 국가가, 20분이 아닌 최소 1년은 쓸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해야 한다. 킴 부딜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 소장이 “핵융합 기술이 상업적으로 실현되려면 많은 일을 해야 한다”며 “실현까지 수십 년이 걸릴 것”이라 예측한 이유다.

 

에너지 상용화까지 가는 길은 험난할 예정이다. NIF의 ‘관성 가둠 핵융합’ 연구는 수소 폭탄 개발에서 태동해 현재도 무기 개발을 목적으로 수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황용석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NIF가 즉 무기 개발 비중을 줄이고 에너지 상용화에 좀 더 무게 중심을 둘까 걱정하는 미국 내 여론도 있다”고 말했다.

 

권재민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통합 시뮬레이션연구부장은 “관성 가둠 핵융합 방식으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상용화 프로젝트 로드맵부터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

 

로드맵을 그린 다음에는 드라이브의 효용을 높여야 한다. 드라이브란 관성 가둠 핵융합에서 연료를 압축하고 가열하기 위한 장치다. NIF는 드라이브로 레이저를 사용한다. 현재 NIF는 하루에 한두 번 정도 ‘레이저 샷’을 쏠 수 있다. 일주일에 평균 10회 정도 핵융합 실험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정현경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정책전략부 부장은 “상용화를 위해선 레이저를 1초에 10 샷 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단순 계산으로만 드라이브의 효용이 지금보다 57만 6000배 정도 개선돼야 한다.

 

1초에 10 샷을 쏘기 위해선 연료 캡슐 등 타깃의 경제성도 높여야 한다. NIF가 사용하는 캡슐 타입의 타깃은 고르게 폭발시키기 위해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고 형태도 완벽한 대칭이어야 한다. 이 때문에 캡슐 하나를 만드는 데 돈이 많이 들고 제작 방법도 까다롭다. 하지만 활로는 있다. 정 부장은 “최근 민간 핵융합 기업에선 폼(거품) 형태로 캡슐을 만드는 기술을 연구해 타깃을 대량 생산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효율에도 개선이 필요하다. NIF는 이번 실험에서 2.05MJ의 에너지를 전달해 3.15MJ의 핵융합 에너지를 출력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2.05MJ 레이저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3~400MJ 정도의 파워를 넣어야 한다. 3~400MJ 파워는 1053nm의 적외선 파장 레이저로 변환되며 효율이 100분의 1로 줄어들고, 다시 자외선 파장 레이저로 변환되며 효율이 2분의 1로 줄어든다. 이런 요소를 모두 계산하면 핵융합을 위해 사용한 전체 에너지 대비 출력 에너지의 효율은 0.5% 수준이다. 아직 진정한 의미의 ‘흑자’라 보긴 어렵다.

 

20년 전 건설해 현재까지 쓰고 있는 레이저를 최신 기술이 반영된 걸로 바꾸기만 하더라도 에너지 효율을 0.5%에서 10~20% 수준으로 높일 수 있다.

 

세계는 지금, 공격적인 핵융합 연구 중

 

우리가 넘어야 하는 산에는 길이 여러 갈래 있다. ‘관성 가둠 핵융합 방식’뿐 아니라 ‘자기 가둠 핵융합’ 방식도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인도, 러시아 등 35개국이 참여한 국제핵융합실험로(ITER이터)가 채택한 방식이다.

 

ITER는 현재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의 최전선에 서 있다. 다만 공사 기간이 늦어지고 있다. ITER는 2017년 완공을 목표로 2010년 본격적인 건설을 시작했지만 2023년 1월 현재 공정률은 약 70% 수준에 불과하다. 그동안 지어본 적 없는 역대 최대 규모의 토카막이다 보니 건설이 다소 지연되고 있다. 또한 프랑스가 엄격한 원자력 규제를 ITER 건설에 적용하고 있는 점도 건설 기간을 늘리고 있다. 정 부장은 “ITER는 나사를 하나 조이는 것까지 규제 대상”이라 설명했다.

 

ITER 목표는 에너지 증폭률(Q) 10 이상을 달성하는 것이다. Q값은 투입 에너지 대비 출력 에너지 비율을 나타낸다. ITER의 목표를 Q 10 이상으로 설정한 것은 ‘연속 플라스마’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다.

 

핵융합으로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결합시키면 헬륨과 중성자가 만들어진다. 에너지의 5분의 1은 헬륨이, 5분의 4는 중성자가 들고나온다. 중성자가 들고나온 운동에너지는 열에너지로 변환된다. 이후 중성자를 리튬과 부딪히게 하면 다시 삼중수소로 만들 수 있다. 20%의 헬륨 에너지도 다시 핵융합의 연료가 된다. 즉 Q값이 10 이상 되면 핵융합으로 만들어낸 에너지로 다시 핵융합을 만들어낼 수 있다.

 

ITER는 2035년, 연속 플라스마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다. 연속 플라스마를 만들어내면 핵융합은 또 한 번 거대한 도약을 이룰 수 있다. 황 교수는 “ITER가 Q 10을 넘긴다면 NIF의 순에너지 획득과 마찬가지로 공학적 실현 가능성을 확인하게 된다”며 “그 이후엔 ITER 회원국들이 ITER 건설 및 운영에서 얻게 된 자료를 활용해 발전소 설립의 초석을 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기 가둠 핵융합에서 에너지 상용화 Q 값은 대략 20 수준이다.

 

민간 핵융합 연구 회사들도 핵융합 에너지로 가는 길을 앞당기고 있다. 미국 융합산업협회에 발간한 융합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민간에서 미국 핵융합 벤처 기업 35개로 투자한 금액은 5조 원이 넘는다. 미국의 핵융합 에너지 연구는 공공이 아닌 민간이 주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발맞춰 미국 백악관은 2022년 3월 17일 ‘상업용 핵융합 에너지를 위한 대담한 10년 비전’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정부 지도자는 물론 정책 입안자와 과학자 그리고 투자자들이 모여 지원 주관 부서를 정립하고 자금 지원 방안에 대해 논의한 것이다. 거액의 투자금이 핵융합 연구로 지원되는 까닭을 묻자 정 부장은 “핵융합 에너지가 지구를 살리는 대체 에너지일 뿐만 아니라, 과거 아폴로 프로젝트처럼 미래 과학과 공학 기술 발전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에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영국도 공격적으로 핵융합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민간 핵융합 연구회사 ‘제너럴 퓨전’은 현재 영국 옥스퍼드 인근에 실증로를 짓고 있다. 제너럴 퓨전은 캐나다에서 설립된 회사지만 영국을 실증로 건설 장소로 낙점한 것은 2019년 9월 보리스 존슨 당시 영국 총리가 취임 후 두 달 만에 “인류 최초의 상업용 핵융합 에너지 시설을 영국이 짓겠다”며 적극적인 지원을 시작한 결과였다. 영국은 2021년 10월 “앞으로 핵융합에 원자력법이 아닌 ‘ES&H(Environment, Safety&Human)’를 기준으로 규제할 것”이라며 선제적으로 각종 빗장을 풀기도 했다. ES&H란 환경 보호 및 직장에서의 건강과 안전을 유지하는 수준의 규제다.

  

에너지 패러다임의 전환 2050년보다 일찍 오나

 

“벤처 회사 성공률이 보통 5% 정도라고 합니다. 적어 보이는 숫자지만, 만약 스무 개의 민간 회사가 핵융합 발전에 뛰어들었다면 그중 하나가 성공하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핵융합 에너지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언제쯤 가능할 것 같냐는 질문에 황 교수는 말을 골랐다. 황 교수는 “2050년 탄소중립이란 목표가 결코 인류에게 당연히 오는, 쉬운 과제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이어 “특히 지금까지의 과학과 공학 발전만을 놓고 본다면 우리가 2050년에 핵융합 에너지를 쓰고 있을 거라 말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전 세계가 대체 에너지로, 그리고 지구를 지키는 방안으로 핵융합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현재를 기준으로 미래를 재단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투자와 관심은 발전 속도를 당겨줍니다. 지금은 불가능해 보이지만 2050년보다 이르게 ‘그날’이 올 수 있겠죠.”

202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태희 기자

🎓️ 진로 추천

  • 에너지공학
  • 물리학
  • 환경학·환경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