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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m 캡슐이 만들어낸 커다란 도약

미국 에너지부 산하 국립점화시설(NIF)이 핵융합 반응을 만들어냈다. 이전과 달랐다. 투입된 에너지보다 생산된 에너지가 더 컸다. 순에너지 생산이다. 순에너지 생산은 그동안 왜 어려웠을까. NIF는 어떻게 순에너지를 만들었을까. 2mm 캡슐이 터지며 만들어낸 에너지가 연구자들에겐 이정표를, 인류에겐 커다란 도약을 선물했다.

 

인류가 최초로 핵융합 ‘순에너지’를 생산했다. 2022년 12월 5일(현지 시간) 미국 에너지부 산하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 연구시설인 국립점화시설(NIF)의 성과다. 같은 달 13일 제니퍼 그랜홈 미국 에너지부 장관과 NIF 과학자들이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순에너지를 생산했다는 말은 핵융합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투입한 에너지보다 생산된 에너지가 더 많았다는 뜻이다. NIF는 12월 5일 실험에서 2.05MJ(메가줄은 100만 J)의 에너지를 넣어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고 3.15MJ의 에너지를 얻었다. 입력 에너지 대비 출력 에너지를 뜻하는 에너지 증폭률(Q)이 1.5다. 그랜홈 장관은 이번 성과를 “21세기의 가장 인상적인 과학 업적 중 하나”라 자평했다.

 

핵융합 기술은 흔히 ‘인공태양’에 비유된다. 태양이 핵융합으로 빛과 열을 만들기 때문이다. 태양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핵은 온도가 1500만K에 달하는 초고온 초고압의 상태다. 수소 원자들이 플라스마(원자가 고온고압의 환경에서 전자와 원자핵으로 분리된 상태)로 존재한다. 플라스마 상태에서는 가벼운 원자핵끼리 융합해 더 무거운 원자핵을 만들 수 있는데, 태양의 경우 수소 원자핵 4개가 융합해 1개의 헬륨 원자핵을 만든다. 이때 질량이 미세하게 줄어드는데, 이것이 곧 핵융합으로 발생하는 에너지다. 아인슈타인의 그 유명한 공식 ‘E=mc2’에 의해 사라진 질량이 에너지로 바뀌기 때문이다. 1939년 미국의 핵물리학자 한스 베테가 이를 발견한 뒤 인류는 지구에서 핵융합을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지구에 없던 환경을 창조하는 일

 

태양에서나 벌어지는 일을 재현하려면, 지구에 없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원자핵은 양전하(+)를 띠고 있어, 서로 밀어낸다. 그러나 태양 중심에서는 강한 중력으로 수소 원자핵들이 물리적으로 서로 가까이 있다. 그래서 1500만K에서도 핵융합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지구에서는 태양보다 핵융합을 일으키기가 더 까다롭다. 태양 중심만큼의 고압 환경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원자핵이 가진 쿨롱 반발력을 이겨내기 위해 핵융합 장치는 태양보다 훨씬 뜨거운 초고온 플라스마를 생성한다. 초고온 환경에서는 원자핵의 운동에너지가 증가해 원자핵들이 충돌할 수 있기 때문이다. NIF는 핵융합을 이끌어내기 위해 4000만K까지 온도를 높인다. 토카막(자기장으로 플라스마를 가두는 방식의 핵융합로)은 1억℃의 온도가 필요하다.

 

플라스마의 ‘불안정성’은 가장 큰 어려움이다. 플라스마는 온도와 밀도가 높을수록 에너지가 크기에, 특정 공간에서 플라스마를 만들수록 엔트로피 법칙에 따라 밖으로 도망가려 한다. 플라스마 상태에서 전자가 움직이며 전류가 발생하는 것도 또다른 불안정성이다. 전류가 흐르면 원자핵이 고르게 분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플라스마가 갖는 기본 물성을 제어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물리 이론을 탐구하고 공학적으로 실현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1985년에는 핵융합 순에너지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일본 토카막 장치 JT-60이 순에너지 생산을 목표로 중수소(Deuterium) 원자핵을 결합(D-D)하는 핵융합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에서 얻은 결괏값을 중수소와 삼중수소(Tritium)를 이용한 핵융합(D-T)으로 환산한다면 Q 값이 약 1.25정도였다. 플라스마를 자기장으로 가둬 충돌을 야기하는 자기 가둠 핵융합 방식에서 이론적으로나마 핵융합으로 손익분기점을 넘겼던 것이다.

 

NIF는 관성 가둠 핵융합 방식, 그 중에서도 간접 방식으로 순에너지를 만들어냈다. 관성 가둠 핵융합이란 핵융합 연료 캡슐을 정지 상태로 만든 뒤, 레이저나 이온빔 등으로 에너지를 가해 캡슐을 폭발시켜 핵융합을 일으키는 방식이다. 주로 무기 개발을 목적으로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 연구하고 있다.

 

NIF는 미식축구장 3개를 이어 붙인 크기(1만 3500㎡)의 거대한 실험실에 직경 1m의 레이저 빔을 총 192개 설치했다. 연료 캡슐은 지름 2mm로 금속 원통(hohlraum) 안에 들어 있다. 구 모양의 연료 캡슐은 핵융합을 일으키는 연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로 가득 차 있다. 금속 원통에 에너지가 집중되면 금 성분이 엑스선을 방출해 정중앙에 연료 캡슐 표면의 온도가 4000만K까지 급상승하며 폭발한다. 이때 힘의 반작용으로 인해 캡슐 안쪽이 강한 압력을 받는다.

 

이 압력에 의해 연료 중심부는 1억℃ 이상의 초고온, 납의 밀도의 100배에 달하는 초고압 상태가 된다. 그 결과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결합하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난다.

 

“2021년 겨울에 참석한 미국물리학회 학회장에서 과학자들의 흥분이 느껴졌습니다.”

 

권재민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통합 시뮬레이션 연구부장은 ‘NIF가 조만간 사고를 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권 부장의 예상은 현실이 됐다. NIF는 2021년 8월에 진행한 실험에서 큰 성과를 냈다. 당시 1.9MJ을 투입해 1.35MJ의 에너지를 생산해냈는데 Q값은 약 0.7에 불과했지만, 이는 NIF가 그전까지 달성한 생산 에너지의 8배에 해당하는 기록이었다.

 

마크 허만 LLNL 융합 프로그램 책임자는 당시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실험 결과를 확인하고 기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분명한 성과인 것을 확인하고 샴페인을 한 병 땄다”고 말하기도 했다.

 

권 부장은 “당시 실험으로 NIF는 그동안 파악하지 못했던 발화에 대한 과학공학 지식을 획득했을 것”이며 “이후 1년 4개월은 연료 캡슐 제조 방식과 레이저 조사 방식 등을 조절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라 설명했다.

 

핵융합이 ‘실현 가능한 에너지’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1958년 스위스에서 열린 핵융합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국제학술대회를 시작으로 에너지원으로서 핵융합 연구가 시작된 이후 약 64년 만의 성과다. 그랜홈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NIF의 이번 성과가 미국 안보를 공고히 함과 동시에 청정에너지로 나아가는 길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 말했다.

국내 핵융합 전문가들도 인류 최초의 핵융합 순에너지 획득이, 앞으로 관성 가둠 핵융합 연구는 물론 자기 가둠 핵융합 연구에도 이정표가 될 수 있다고 입 모아 얘기한다.

 

황용석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이번 성과에 대해 “핵융합이 과학 기술적으로 실현가능한 에너지라는 것을 확인한 연구”라고 말했다. LLNL에서 7년간 연구원으로 근무한 적 있는 정현경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정책전략부장은 “핵융합이 된다는 것을 알고 가는 길과 모르고 가는 길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특히 “순에너지 획득은 물리 이론은 물론 공학적인 뒷받침이 완성됐을 때나 도달할 수 있는 목표였던 만큼, 이번 성과가 핵융합 연구자들에게 희망을 준다”고 인류 최초 순에너지 획득의 의의를 설명했다.

 

“때로는 우리가 뭔가를 알고 있다 해도 그걸 사용할 수 있는 걸로 전환하는 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아라티 프라바커 미국 대통령 과학 고문이자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 이사는 NIF의 순에너지 획득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핵융합 순에너지를 획득함으로 인류가 과학과 기술의 진보를 이룬 것은 분명하지만 핵융합 에너지를 쓸 수 있는 미래가 코앞에 다가온 것은 아니란 뜻이었다. 다음 기사에서는 핵융합 에너지 상용화로 가는 길에 우리가 넘어야 하는 단계는 무엇이 있는지 살펴본다.

 

2023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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