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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약 6억 6500만 광년 떨어진 은하,  2MASS J10065085+0141342의 블랙홀에서  조석교란현상이 발생했다. 조석교란이란 별이  블랙홀 사건의 지평선에 가까이 갔을 때 중력이 미치는 정도가 달라 별이 부서지는 현상이다. 이 조석교란현상에는 AT 2018hyz라는 이름이 붙었다. 푸른별 지구에서는 2018년 11월  세바스찬 고메즈 당시 미국 하버드대 하버드-스미소미언 천체물리학센터(CfA) 박사과정생이  광학(가시광선) 파장 관측에서 이를 처음 발견했다. doi: 10.1093/mnras/staa2099

첫 관측이 이뤄졌던 시기 AT2018hyz는 특별히 재밌는 현상이 아니었다. CfA연구팀은 가시광선 관측으로 초대질량 블랙홀이 별을 파괴할 때 나타나는 플레어를 관측했고,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초대질량블랙홀이 태양질량의 500만 배에 달하는 규모이고 당시 블랙홀이 삼킨  별은 태양질량의 0.1배 정도로 작은 별인 것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연구팀은 광학 관측이 이뤄지는 기간 동안 전파 관측도 시도했지만 어떤  신호도 받지 못했다. 

첫 관측으로부터 약 2년 8개월이 지난 2021년 6월, 연구팀은 AT2018hyz를 다시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첫 관측에서는 받지 못한 전파가, 놀랄 만한 세기로 관측됐기 때문이다. 조석교란현상이 발생한 뒤 뒤늦게 전파가 방출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별의 잔해가 강착원반에 높은 밀도로 압축돼 있다가 강착원반의 가스나  자기장이 만들어준 노즐 때문에 밀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빠르게 방출되는 경우 등  이다. 이때 지구에서는 약한 전파가 감지된다. 

하지만 연구팀이 2021년 관측한 전파는 일반적인 약 한 전파로 간주하기엔 밝았다. 관측 전문학에서 전파의 세기는 블랙홀이 방출한 전파가 제트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경험적 기준이다. 

블랙홀이 별을 삼킨 뒤 시간 차를 두고 제트를 방출하는 현상은 그동안 관측된 바 없다. 우리가 몰랐던 블랙홀의 새로운 식사 방식을 처음으로 발견한 걸까. 연구팀은 이 뒤늦은 전파 방출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 했다.


 감독 재량 시간을  얻어낸 연구팀


연구팀은 곧바로 몇몇 주요한 전파망원경연구소에 연락을 돌렸다. 감독 재량 시간(Directors Discretionary Time)을 얻기 위해서였다. 전파  망원경은 기본적으로 사용 스케쥴이 사전에 정해진다. 그런데 모든 시간이 다 배분되는 건 아니다. 예정에 없던 관측도 가능하게끔 5~10%를 남겨둔다. 이것이 감독 재량 시간이다.

이번 연구의 주저자인 이베트 센데스 CfA 연구원은 감독 재량 시간을 얻기 위해 “구걸하고  또 구걸했다(beg again and again)”고 말했다. 

미국에 있는 장기선 간섭계(VL A)와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 있는 아타카마 대형 밀리미터 집합체(ALMA) 관측소 등에서 요청을 받아들였다. 연구팀은 2021년 11월부터 202 2년 5월까지 AT2018hyz 전파 를 추가로 관측할 수 있었다.

추가 관측 결과는 뒤늦은 전파 방출이 강착원반에서 노즐을 통해 방출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연구팀의 생각에 힘을 실었다. 전파는 처음 관측된 이후 수백 일에 걸쳐 3~4배 이상 밝아지는 등 밝기 스펙트럼이 일반적이지 않았기때문이다. doi: 10.3847/1538-4357/ac88d0
 


처음부터 전파가 방출됐는데  관측만 늦었던 게 아닐까?


혹시 블랙홀은 전파를 방출하고 있었는데, 어떤 이유로 우리 눈에 안 보였던 것은 아닐까. 연구팀은 전파가 방출됐지만 곧바로 관측되진 않았을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했다. 

우선 블랙홀 극축을 따라 방출되는 제트가  무언가와 충돌해 방향이 바 뀌었을 경우다. 제트의 방출 방향이 지구를 향하지 않아 신호를  감지할 수 없었는데, 주변 가스나 먼지구름 등에 부딪혀 방향이 바뀌었을 수 있다. 

하지만 검토 결과 이는 아니었다. 전파가 처음 관측된 뒤 장시간 밝아지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김재영 경북대 천문대기과학과 교수는  “이번에 관측된 전파는 관측 이후 약 300일 동안 밝아졌다. 연구팀은 제트가 벽에 부딪혔을  경우를 시뮬레이션 했는데 이 경우 30일 정도 밝아졌을 거란 결과가 나왔다. 즉 시선방향에서  빗겨간 제트가 서서히 느려지며 관측된 게 아니라, 새롭게 뭔가 분출되는 형태여야만 장시간  지속적으로 밝아지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다른 가능성도 살펴봤다. 블랙홀에서 고온의 물질이 사방으로 방출되다가 높은 밀도로 이뤄진 성간 물질 등과 충돌해 전파 신호가  나왔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아니었다. 충돌이 있었다면 전파의 속도가 줄어야 한다. 빛을 내면 에너지를 잃기 때문이다. 연구팀이 전파를 관측하는 동안 전파는 오히려 가속했다.

블랙홀 주변 밀도가 높았다가 낮아져 오해가  생겼을 가능성도 있다. 손봉원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본부 책임연구원은 “주변 밀도가 높으면 전파가 흡수돼 바깥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밀도가 낮은 영역까지 오면 그제야  전파 신호가 드러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해당 블랙홀 주변의 밀도 스펙트럼을 관측했는데 오히려 블랙홀 가까운 곳의 밀도가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여러 경우를 꼼 꼼히 따져봐도 이번 발견은 ‘조석교란현상과 함께 어떤 전파가 방출됐지만 뒤늦게 관측된 사례’가 아니었다.
 


애초에 시간 차를 두고  트림이 시작된 것은 아닐까


새로운 가설이 필요했다. 연구팀은 처음부터 전파가 늦게 방출된 것이 아닌지 살펴봤다. 물질은 블랙홀 근처로 갈수록 뜨거워지고 빛을 낸다. 그런데 온도와 압력이 증가하다 물질이 블랙홀 중력에 맞먹을 정도로 에너지가 커지면 블랙홀로 빨려들어가지 않고 튕겨나갈 수 있다. 

연구팀은 조석교란현상이 발생한 이후 강착원반 에 머물러있던 물질이 시간이 지난 후 충분한 에너지를 얻어 제트로 방출됐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진정한 의미의 ‘시간 차 트림’인 것이다.

손 책임연구원과 김 교수는 이 이론이 “타당하다”고 입모아 얘기했다. 블랙홀에서 제트가  만들어지는 것은 블랙홀의 강한 중력이 시공간과 함께 자기장을 휘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블랙홀의 적도에 가까울수록 자기장이 강하게 휘고, 멀수록 덜 휘는 모양새다. 휘어지는 정도의 차이는 스프링처럼 자기장을 따라 에너지를 압축시키는데, 이 에너지가 블랙홀의 중력보다  커지는 순간 제트 방출이 만들어진다. 즉 조석교란현상이 발생한 직후에는 충분한 에너지를 모으지 못했다가 뒤늦게 제트가 방출됐을 수 있다.

블랙홀의 트림이 사실은 일반적인 현상일 수 있다는 연구팀의 추측에도 모두 동의했다. 김  교수는 “다른 조석교란현상에서도 시간 지연이  있는 제트 방출이 있었지만 그동안 천문학자들이 놓쳤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타당한 가설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이론은 어떻게 확실하게 검증할 수 있을까? “분해능이 높은 시설이 필요합니다.” 손 책임연구원은 추가 연구를 위해선 단일 전파 망원경보다 성능이 좋은 초장기선 전파간섭계(VLBI)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VLBI란 멀리 떨어진 전파 망원경이 각각 수신한 전파를 합성하는 관측 기술 혹은 관측 장치를 뜻한다. VLBI에서 전파 망원경의 거리가 곧 가상 망원경의 구경이다. 즉 분해능이 매우 높다.

VLBI 관측을 하면 블랙홀의 트림이 구형 방출 형태인지, 제트 형태인지 알 수 있다. 각각의  성분을 분석해 물질 방출 궤적과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확인하면 블랙홀의 시간 차 트림이 왜 발생했는지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CfA연구팀도 이를 위해 11월 초 VLBI의 사용  허가 를 받았다. 다만 손 책임연구원은 “관찰을 해야하는 천체가 밝은 편이 아니고 점점 어두워  지고 있어 쉬운 연구는 아닐 것”이라 말했다.

지금까지 조석교란현상은 별이 끌려가고, 부서지고, 스파게티화되는 세 개의 단계만 보편적인 단계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이 때문에 조석교란현상은 제트가 분출되는 경우와 제트가  분출되지 않는 경우로 구분된다. 그런데 후속  연구로 ‘제트가 반드시 나오긴 하지만 그게 지연되거나 관측되지 않았을 뿐’이란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면 제트가 분출되지 않는 조석교란현상은 사리지게 된다. 깜깜한 우주가 감춘 블랙홀의 식습관을 밝히기 위한 여정이 다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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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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