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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공대] 조선해양공학과, 72년의 역사 ‘세계 최고’의 자부심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는 한국이 세계 조선업계 최대 강국이 되기까지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장을 맡고 있는 김용환 교수는 학과의 주요 성과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세계 최초 개발’ 같은 대표적인 연구 성과를 기대했는데, 그보다 ‘스케일’이 큰 답이 돌아와 내심 놀랐다. 하지만 김 교수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오랜 역사가 그 증거다.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는 1946년 서울대 출범과 동시에 설립됐다. 올해로 학과 설립 72주년을 맞았다. 설립 당시 국내에서 유일한 조선해양공학 전공학과였고, 관련 산업 자체가 전무했다. 한국의 조선 산업이 서울대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교수진_선박 생산 공정, 학문으로 첫 정립

 

2017년 12월 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대한민국 과학기술유공자 32명을 지명했다.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과학기술인을 국가유공자로 예우하기 위해 관련 법령을 제정한 뒤 첫 사례였다.


32명의 과학기술유공자 가운데 두 명이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출신이다. 한국인 1호 조선공학자였던 고(故) 김재근 교수와 한국 조선 산업계를 대표하는 민계식 전(前)현대중공업 회장이다.


1940년대 당시 작은 고깃배조차 스스로 설계할 능력이 없었던 한국에서 김재근 교수는 독학으로 선박 설계 기술을 익힌 뒤 미국 유학을 거쳐 한국 조선공학의 기반을 닦았다. 그의 연구팀은 1t(톤)급 어선에서부터 64t급에 이르는 64종의 선박 설계 표준을 만들었다. 또 거북선을 비롯한 조선시대 군선을 연구해 한국 선박의 역사를 집대성하기도 했다. 김 학과장은 “김재근 교수님은 (조선 기술 측면에서만 보면) 이순신 장군에 비견할 수 있다”며 “대한민국 조선산업의 시조와 같은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민 회장은 김재근 교수가 닦은 조선공학의 기반 위에서 한국을 세계 최고의 조선 강국으로 발돋움시킨 주인공이다. 1999년 7년의 연구개발 끝에 독자 기술로 ‘힘센(HiMSEN)’이라는 중형 선박용 엔진을 개발했다. 가볍고 내구성이 좋으며 기름이 적게 들어가는 친환경 엔진인 힘센은 지금도 세계 선박용 엔진 시장에서 약 30%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밖에도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과 초대형컨테이너운반선, 해양플랜트 등을 개발해 조선 산업계 선두 자리를 견고히 다지는 데 공헌했다.

 

이들로부터 시작된 혁신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 교수진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하지 못한 ‘선박 생산 공정’이라는 분야를 학문적으로 정립했다. 김 학과장은 “이전까지 그저 현장의 경험에 의존해 왔던 선박 생산 공정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 프로그램_기초 다진 뒤 심화 학습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의 연구분야는 유체공학과 구조공학, 생산 및 설계공학, 해양플랜트 등 크게 4개로 나뉜다.

 

유체공학은 바다 위에서 움직이는 배의 저항과 운동을 최소화하는 기술이나 배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기술의 토대가 된다. 구조공학은 배를 어떻게 튼튼하면서도 가볍게, 그리고 짐을 많이 싣도록 만드는지 연구하는 분야다. 설계 및 생산공학은 배를 설계하고, 설계된 배를 빠르고 정확하게 만드는 효과적인 방법을 개발하는 연구를 말한다. 해양플랜트는 해저의 석유와 가스를 탐사하고 시추, 생산까지 할 수 있어 ‘바다 위에 떠있는 공장’이라고 불린다.

 

김 학과장은 “각각 독립적인 연구 분야처럼 보이지만, 배라는 최종 산물(end product)을 만든다는 점에서 모두 연관돼 있다”고 설명했다. 가령 배를 효율적으로 설계하려면 유체공학과 구조공학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가볍고 튼튼하면서 짐을 많이 실을 수 있는 구조 역시 유체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개발하기 어렵다.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는 학부 1~2학년에서는 4개 분야의 기초가 되는 수학, 물리학, 유체역학과 구조역학 등의 기초 과목을 가르친 뒤 3학년부터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분야를 선택해 심화 학습을 할 수 있도록 교과과정을 설계했다. 김 학과장은 “조선해양공학은 ‘시스템 학문’”이라며 “학생들이 배와 배를 만드는 시스템 전체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교과과정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가 운영 중인 슬로싱 실험 장치. 슬로싱이란 용기에 담긴 액체가 용기의 벽에 부딪히면서 충격을 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진로 지원_유학 안 가고 해외 선급협회 취업

 

조선해양공학은 한국이 산업에서뿐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세계를 선도하는 몇 안 되는 분야 중 하나다. 따라서 조선해양공학과를 졸업한 학생은 굳이 해외 유학을 갈 필요도 없고, 해외 취업을 선호하지도 않는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 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꿈인 다른 공학 분야와는 상황이 다르다. 한국 기업이 세계 최고이기 때문이다.

 

김 학과장은 “과거에는 선진 기술을 배우기 위해 미국 등 선진국에 유학을 갔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며 “다른 분야로 진출하려는 게 아닌 이상 유학을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는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국내 산업계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한국이 상대적으로 약한 글로벌 선급협회에서 학생들이 인턴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선급협회는 나라별로 배를 검사하고 배와 관련된 각종 규정을 만드는 기관으로, 미국과 영국, 노르웨이, 프랑스의 선급협회가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과거에는 국내 조선 업계에서 경험을 쌓고 해외 선급협회에 취업했는데, 한국 조선공학의 위상이 높아져 지금은 실무 경험 없이도 대학원을 졸업하고 바로 해외 선급협회에 취업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김 학과장은 “국내 조선업계 실무자 초청 강연을 자주열고, 학생들이 방학을 이용해 국내 기업과 해외 선급협회, 연구소, 대학 등에서 인턴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재상_부분보다 전체 보는 사고방식 필요

 

김 학과장은 조선해양공학과에서 원하는 인재상으로 네가지를 꼽았다. 우선 조선해양공학의 기초인 수학과 물리학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시스템 학문’의 성격을 띤 조선해양공학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분보다 전체를 볼 수 있는 사고방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 또 해외 진출 기회도 많은 만큼 영어 등 어학능력을 갖추면 도움이 된다.


김 학과장은 “입시에서 학생들의 서류를 검토할 때도 수학2나 물리2 과목을 들었는지 등을 눈여겨본다”며 “조선해양공학에 관심을 갖고 미리 관련 책 등의 자료를 찾아보는 것이 진학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언_조선 산업 재도약


김 학과장은 최근 몇 년간 조선 산업이 불황이라는 점 때문에 조선해양공학으로 진학을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조선 산업의 불황은 장기적인 것이 아니며 역사적으로 일정 기간을 두고 반복돼 왔다. 김학과장은 “최근에는 각종 지표가 조선 산업의 재도약을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 학과장은 서울대에 부임하기 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조선해양공학 연구에서는 서울대가 세계에서 최고 수준”이라며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에 진학해 세계를 선도하는 조선해양공학연구자의 전통을 계속 이어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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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최영준 기자
  • 사진

    이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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