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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우연히 블랙홀과 함께 밥을 먹을 순 없겠죠? 이해를 돕기 위해 블랙홀이 항성을 흡수하는 과정을 식사에 빗대 설명했습니다.

블랙홀과 식사를 함께했다. 더 알아가고픈 사람이 있을 때 우리는 함께 밥을 먹는다. 식탁 위에선 상대가 어떤 사람이고 뭘 좋아하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다. 그러니 인류가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천체인 블랙홀과 밥 약속을 잡는 건 당연했다. 어땠냐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기자는 두 번 다시 블랙홀과 식사하지 않기로 했다. 그 이유를 귀띔한다.


“스파게티 어때, 스파게티.”

블랙홀이 거만하게 말했다. 초면에 반말이라 니. 하지만 블랙홀과 싸울 생각은 않는 게 좋다.

블랙홀은 힘(중력)이 세다. 빛도 빨아들일 수 있을 만큼. 이렇게 아주 강한 중력으로 물질을 끌어당긴 다음 내부의 한 지점으로 무한히 수축시키는 게 블랙홀의 주특기다. 기자도, 태양도 블랙홀 안에선 똑같은 처지다. 부피가 0이 될 때 까지 수축할 테다.

게다가 기자와 밥을 먹기로 한 건 블랙홀 중에서도 무겁고 커다란 초대질량블랙홀이다. 블랙홀은 질량에 따라 크게 별질량블랙홀과 초대 질량 블랙홀로 나뉜다. 블랙홀의 반지름은 보통 질량에 정비례하므로, 무거울수록 큰 블랙홀이다. 초대질량 블랙홀의 질량은 태양의 수백만 배에서 수십억 배 정도다. 물론 별질량블랙홀이었대도 태양 질량의 열 배 안팎이니 만만치 않은 상대긴 마찬가지다.
 

아득히 무거운 검은 천체다. 블랙홀이 왜 생겨났는지, 블랙홀 안팎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아직 다 알지 못한다. 그런 천체가 콕 짚어 스파게티를 먹자고 한다. 군말 없이 따라가기로 했다.

“네, 스파게티 좋죠.” 

생각보다 입이 ‘짧은’ 그대

 

주문한 ‘음식’이 식탁에 올라왔다. 별도 빛도 빨아들인다는 우주의 검은 입은 우아하게 가까이 있는 접시를 끌어당겼다. 어라, 좀 의외다. 눈에 띄는 음식을 모조리 쓸어 입에 넣을 거라 생각했었다.

“나도 매너가 있다고. 손에 닿는 것만 먹어.” 
기자의 표정을 읽었는지, 블랙홀이 머쓱해하며 말했다.

 

이름 때문인지, 흔히 블랙홀을 닥치는 대로 빨아들이는 구멍으로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구멍이란 비유는 반만 맞다. 블랙홀이란 이름은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안에서 밖으로 그 어떤 정보나 물질이 나갈 수 없어서 붙었다. 빛이 나갈 수 없으니, 말 그대로 ‘검은 구멍’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사건의 지평선이란 표현은 최근 자주 들어 익숙할 것이다. 이를 제목으로 한 가수 윤하의 노래가 음원차트 1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원래 이 용어는 일반상대성 이론에서 내부의 사건이 외부에 영향을 줄 수 없는 경계면을 부를 때 쓰는 말이다. 블랙홀에선 탈출 속도가 광속보다 커져 빛을 포함한 어떤 물체도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빠져나올 수 없는 경계면을 말한다.


사건의 지평선 밖으로는 그 어떤 정보도 나오지 않으니 블랙홀은 검은 구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블랙홀의 크기를 논할 땐 대부분 사건의 지평선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사건의 지평선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노랫말에도 나오지 않는다. “사라진 별의 자리 아스라이 하얀 빛”이란 노랫말은 사건의 지평선 바깥 영역에서 관측되는 모습을 말한다.

 

하지만 사건의 지평선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은 알 수 있다. 블랙홀의 중력이 사건의 지평선 밖에 미치는 영향권은 질량이 같은 별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태양이 있는 위치에 태양과 같은 질량의 블랙홀이 생긴다고 가정해보자. 간혹 중력 범위에 지나치게 가까워진 천체가 블랙홀에 끌려 들어가겠지만, 태양계의 모든 행성과 혜성은 전과 같은 궤도로 공전할 것이다. 블랙홀도 손에 닿는 물체만 먹는다.

포크 가득 별을 집어올리다

 

“식기 전에 어서 들자고 .”

포크를 들어 올린 블랙홀이 기자 쪽으로 눈짓했다.

“스파게티 먹자면서요.”

눈앞에 있는 건 스파게티가 아니라 별이다.

블랙홀은 ‘으쓱’하고는 거대한 포크로 별을 집어 올렸다. 포크 끝에서 별이 길게 늘어졌다.

 

썰물과 밀물이 일어나는 이유는 달이 바닷 물을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이 현상을 조석현상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초대질량 블랙홀이 별을 끌어당길 때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한다. 조석교란현상(TDE)이다. 손봉원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본부 책임연구원은 “조석교란이란, 천체가 자신보다 중력이 더 센 다른 천체의 중력에 빨려 들어가면서 형태가 망가지는 현상을 말한다”고 했다.

 

쉽게 말해 찹쌀떡이다. 찹쌀떡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린다고 생각해보자. 찹쌀떡에 가해지는 힘은 손가락 근처에서 가장 크고, 손가락과 멀어질수록 작아진다. 마찬가지로 별도 블랙홀에 가까운 부분은 큰 중력을 받고, 먼 부분은 중력의 크기가 작아진다. 이 힘 차이 때문에 찹쌀떡이 늘어지듯 별도 늘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블랙홀이 흡수하는 모든 물체가 다 조석교란현상을 겪진 않는다. 김재영 경북대 천문대기과학과 교수는 “중성자별의 경우, 작고 딱딱하기 때문에 조석교란현상을 겪지 않고 모 양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크기가 작으니 중 성자별의 각 부분이 받는 중력의 차이가 크지 않고, 딱딱하니 쉽게 형태가 변형되지 않는 것 이다.

별의 마지막 비명과 함께 호로록

 

별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니, 비명이 밝게 빛났다는 말이 더 맞겠다. 별이 블랙홀 주변을 휘감으며 국수 가락처럼 길게 늘어났다. 별의 파편은 블랙홀에 가까워질수록 서로 마찰하며 밝게 빛났다. 기자는 사라져가는 별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거봐, 스파게티 맞지?”

블랙홀은 태연했다.

 

2019년 봄, 사진 한 장에 세계가 술렁였다. ‘사건지평선망원경(EHT)’ 국제 공동 연구팀이 블랙홀 M87*의 이미지를 공개한 것이다. 이어 지난 5월에는 우리은하 중심에 있는 초대질량 블랙홀 궁수자리 A*의 이미지도 공개됐다. 그런데 이상하다. 앞서 말했듯 사건의 지평선 밖에서 관찰한 블랙홀은 검은 구처럼 보여야 한다. 사진에는 밝은 고리가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블랙홀은 사실 ‘블랙’이 아니었던 걸까.

두 장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밝은 고리는 사실 블랙홀이 빨아들이고 있는 별의 파편이다. 손 책임연구원은 “초대질량블랙홀은 아주 강한 힘으로 주변 물질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강착원반이 크게 발달해 밝게 빛난다”고 했다. 강착원반은 조석교란현상을 겪은 물체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때 블랙홀 주변을 회전하며 만들어진 가스 고리다. 이때 원래 덩어리 형태던 물체는 블랙홀의 중력에 의해 강착원반을 따라 국수 가락처럼 길게 늘어난다. 이를 ‘스파게티화(spaghettification)’라고 부른다.

강착원반이 밝게 빛나는 이유는 마찰력 때문이다. 김 교수는 “손을 빨리 비비면 열이 발생하듯, 강착원반에서 입자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서로 부딪혀 X선이 발생한다”고 했다. 강착원반을 회전하는 물체는 원래 지니던 운동에너지의 상당량을 빛의 형태로 내보내며 블랙홀에 점차 가까워지다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김 교수는 “블랙홀을 찾으려면 빛을 먼저 찾아야 한다”며 “강착원반에서 나오는 빛은 일반적인 별은 낼 수 없는 강한 X선이라 별빛과 구별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강착원반이 형성되려면 블랙홀이 물체를 활발히 흡수해야 하는데, 초거대블랙홀 중에서도 강착원반이 형성돼 빛을 잘 방출하는 건 10% 정도다”라고 했다. 블랙홀이 게걸스레 식사한 흔적이 천문학자들에 겐 호재인 셈이다.

우주에서 제일가는 트림쟁이

폭풍 같은 식사가 끝났다. 물론 기자는 한 술도 뜨지 못했지만. 별 하나를 맛있게 먹은 블랙홀이 배를 두드리다가 갑자기 머리 위아래로 강한 빛을 내뿜었다.
“뭐, 뭐하신 거예요?”
“보면 몰라, 트림이지 트림.”


블랙홀의 트림은 정수리에서 나온다. 앞서 블랙홀이 물체를 끌어당김에 따라 물체가 부서지고, 이렇게 부서진 물체는 강착원반을 형성하며 회전한다고 했다. 이때 마찰 때문에 높은 열이 발생한다. 물질이 일정 온도 이상으로 뜨거워지면, 원자와 전자가 분리되면서 이온화한다. 이 상태를 플라스마라고 부른다.

강착원반이 회전하면 플라스마 속 전자도 함께 회전한다. 전자가 움직이는 걸 우리는 ‘전류가 흐른다’고 한다. 강착원반이 일종의 코일이 되는 셈이다. 전류가 원형 도선을 따라 흐르면, 도선의 수직 방향으로 자기장이 유도된다. 앙페르의 오른나사 법칙이다. 블랙홀의 경우 강착원반과 수직 방향으로 자기장이 유도된다.

자기장을 따라 블랙홀의 위아래에 속도가 매우 빠르고 에너지가 높은 전자가 모인다. 이렇게 전자가 모이다가 어느 순간 빠른 속도로 방출되는 것이 블랙홀의 트림 ‘제트’다. 손 책임연구원은 “호스를 누르면 물이 세게 나가는 것 처럼 전자가 빛의 속도에 가까울 정도까지 가속돼 블랙홀 위아래에 고였다가 분출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때 전자가 자기장과 충돌하면서 비열적 복사의 일종인 ‘싱크로트론 복사’가 일어나 빛이 발생한다”고 했다. 매우 강한 빛이라 제트 또한 천문학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블랙홀의 목구멍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집에 돌아가기 전, 블랙홀에게 내내 궁금했던 질문 하나를 던졌다.
“그런데 블랙홀 씨, 드신 음식은 다 어디로 가나요?”
“그걸 알려주면 재미없지 않겠어?”
씩 웃는 게 얄미우면서도 매력적이라 괜히 짜증이 났다.


제트를 트림에 비유하긴 했지만, 사실 블랙 홀의 목구멍 너머에선 아무것도 나올 수 없다. 앞서 짚었듯 사건의 지평선 밖으론 물질도 정보도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사건의 지평선 안에 숨겨진 비밀을 밝히는 건 관측이 아니라 이론의 영역이다.
 

사건의 지평선 안, 블랙홀의 중심에는 특이점이 있다. 블랙홀에 흡수된 물질은 모두 이 지점에서 부피가 무한소로 수축한다. 특이점의 부피는 이론상 ‘0’이다. 이 지점에서 현대물리학의 두 축,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충돌한다.

염동한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는 “양자역학은 복잡한 파동 덩어리들이 부딪히는 모습을 공간 위에 올려놓고 계산해 보여주는 학문”이라며 “이 공간 자체를 기술해주는 게 일반상대성이론”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데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해 공간이 한 점으로 모이는 특이점이 제시된 것”이라며 “그간 알고 있던 양자역학 법칙이 특이점에서 어떻게 바뀔지 설명하기엔 아직 우리의 이론적 도구들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실마리는 있다. 사건의 지평선에선 ‘호킹 복사’란 이름의 열복사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발생 원리가 독특하다. 물질이 아무것도 없는 우주 공간에서도 입자와 반입자는 동시에 생성됐다가 서로 충돌해 소멸하기를 반복한다. 생성됐다가 소멸하기까지 시간이 10-44초로 매우 짧지만. 그런데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 입자와 반입자가 생성된다면 어떨까. 만약 이 중 하나만 블랙홀 안으로 빨려들어 간다면? 

 

과학자들은 만약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 입자와 반입자가 생성될 경우 블랙홀 안에는 음의 에너지를 가지는 입자만 흡수될 거라고 예상한다. 그 결과 시간이 흐르고 나면 블랙홀 안에는 음의 에너지를 가지는 입자가 쌓이고, 블랙홀 밖에는 양의 에너지를 가지는 입자가 튀어나온다. 이 양의 에너지를 가지는 입자의 흐름이 바로 호킹 복사다. 결국, 큰 틀에서 보면 블랙홀 내부의 에너지가 점차 줄어드는 셈이다. 블랙홀 밖의 입자는 블랙홀 속 입자와 입자-반입자 관계니 블랙홀 안에서 밖으로 어떠한 정보가 나온다고 볼 수도 있다. 사건의 지평선 내부를 연구할 단서다. 


호킹 복사가 실제로 발생하는 현상이라면, 그리고 블랙홀이 물질을 흡수하지 않고 ‘단식’한다면 블랙홀은 서서히 에너지를 잃고 사라져갈 것이다. 평균적인 크기의 블랙홀이 호킹 복사에 의해 소멸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10의 66제곱 년일 것으 로 예상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테살리아의 왕인 에리 시크톤 이야기가 나온다. 에리시크톤은 데메테르 여신의 저주를 받아 아무리 먹어도 채울 수 없는 영원한 식욕을 갖게 된다. 자신의 재산을 모두 음식을 사 먹는데 탕진하고도 모자랐던 그는 음식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딸을 노예로 팔아넘기기까지 이른다. 그런데 먹어도 먹어도 배고픔은 가시지 않았다. 결국 어느날 에리 시크톤은 자신의 몸까지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만다. 이야기는 결국 에리시크톤의 치아만 남아 음식을 탐한다는 결말로 끝난다. 손 책임연구원이 생각하는 우주의 끝은 에리시크톤 이야기와 비슷하다.


“팽창우주론을 바탕으로 우주의 끝을 생각해보면, 세상의 끝에는 블랙홀 밖에 남지 않을 겁니다. 블랙홀이 우주의 모든 물질을 먹어치우고, 자기네들끼리도 먹겠죠. 더 이상 먹을 게 없어진 언젠가부터는 호킹 복사에 의해 블랙홀은 점차 작아지며 소멸할 겁니다. 그리고 결국 블랙홀이 방출한 아주 가벼운 입자만 남을 겁니다. 블랙홀도 없는 쓸쓸한 우주의 끝이죠.” 

 

2022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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