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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지간한 인류의 이름은 한 번씩 들어봤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연구가 많이 된 네안데르탈인은 여러 차례 나왔기 때문에 친숙하지요. 하지만 네안데르탈인과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데니소바인’에 대해서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데니소바인은 현생인류나 네안데르탈인과 아주 가까운 것으로 밝혀진 제3의 인류로, 요즘 고인류학계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도대체 어떤 논란일까요. 특히 우리 아시아인의 근원과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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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소바인은 러시아의 동쪽(몽골과의 경계) 알타이 산맥 근처의 데니소바 동굴에서 화석이 발견된 친척 인류입니다. 당시 고인류학자들은 유럽에서 유명한 네안데르탈인이 아시아 등 세계 다른 곳에서도 살지 않았을까 궁금해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던 1970~1980년대만 해도, 구대륙(유라시아와 아프리카)의 모든 지역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호모 사피엔스가 단계별로 차례로 나타났다고 배웠습니다. 지금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아프리카에서만 발견된다는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만 그 때만 해도 그런 인식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에서도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부단히 발굴을 했지요. 특히 중국이 자존심을 걸고 달려들었습니다. 지금도 중국에서 발간하는 학회지에는 중국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화석을 발견했다는 논문이 가끔 발표되곤 합니다(사실로 확인된 적은 없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이럴 정도니, 가장 인기가 좋은 네안데르탈인을 동북아시아에서 발견하려는 노력은 말할 것도 없이 활발했습니다. 프랑스는 지속적으로 연구팀을 보내 발굴을 했고, 중국 역시 눈에 불을 켜고 화석을 찾았습니다. 지금도 중국이나 북한, 러시아에서 나온 논문을 보면 자국에서 발견된 화석에 네안데르탈인을 의미하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 혹은 호모 사피엔스의 아종이라는 뜻의 ‘호모 사피엔스 네안데르탈렌시스’라는 말을 붙이곤 합니다. 화석에서 높은 눈두덩이나 큰 뒷머리뼈 등 네안데르탈인의 모습을 찾아 어떻게든 이름을 붙이고 있는 것이지요.
동굴 속 도구의 이상한 변화
하지만 이런 노력과 달리, 아시아에서는 진정 네안데르탈인이라고 부를 만한 화석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유럽에서 마지막 네안데르탈인이 살던 시기인 약 10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는 동북아시아에서는 인류 화석이 거의 발견되지 않아 ‘인류 화석의 암흑기’라고 불릴 정도입니다. 화석뿐만이 아닙니다. 네안데르탈인의 석기조차 발견된 적이 없습니다.
얼마 전까지 네안데르탈인이 남긴 흔적 중 아시아의 가장 동북쪽에 위치했던 것은 러시아의 서부인 코카서스 지역입니다. 이곳의 메즈마이스카야 동굴에서는 네안데르탈인 어린이의 화석과 유적이 발견됐는데, 연도 추정 결과 지금부터 약 4만 년 정도 전이었습니다. 이보다 동쪽에는 동북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통틀어 네안데르탈인의 흔적이 발견된 적이 없었기에, 고인류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히말라야 산맥을 넘지 못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놀라운 발견이 일어났습니다. 네안데르탈인도, 현생인류도 아닌 제3의 인류가 발견된 것입니다.
데니소바 동굴이 있는 러시아의 알타이 지역에는 80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는 호모 에렉투스의 시대입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빙하기가 시작되면서 호모 에렉투스는 이 지역에서 사라졌습니다. 호모 에렉투스가 다시 이 지역을 찾은 것은 약 30만 년 전입니다. 그 이후 인류는 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계속 살았습니다. 이들은 여러 가지 석기를 남겼는데, 특이하게도 석기의 모양새가 약 8만~7만 년 전부터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일명 ‘현생인류의 석기’라고 불리는, 후기 구석기의 날석기입니다. 하지만 이 지역에 현생인류가 나타난 것은 길게 잡아야 4만 년 전부터지요. 그렇다면 이 석기를 만든 주인공이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5만 년 전에서 3만 년 전까지의 기간도 특이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다른 문화의 흔적이 섞여 있습니다. 모두 현생인류가 남겼음직한 흔적입니다. 창 끝에 촉을 매단 사냥 도구, 짐승의 이빨로 만든 목걸이, 수백km 떨어진 곳에서 나는 돌을 깎아 만든 팔찌 등입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인류의 화석이 전혀 나오지 않았고, 이들을 만든 주인공의 정체도 의문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8년에 이곳에서 콩알만큼 작은 뼈가 발견됐습니다. 모양은 새끼손가락의 뼈 같았지만, 사람들은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인류의 화석이 나온 적이 없었기에 이 뼈의 주인공이 인류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동굴 곰의 뼈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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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던 아시아의 친척 인류
하지만 2010년, 고유전자 분석기술을 이용해 이 뼈에서 DNA를 추출해 연구하자 이야기가 달라졌습니다. 뼈의 주인공은 성장판이 아직 닫히지 않은 6~7살 정도의 여자 어린이였습니다. 문제는 이 어린이의 DNA가 현생인류의 DNA와 조금 차이가 났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네안데르탈인과도 같지 않았습니다. 현생인류와 차이가 나는 만큼 네안데르탈인과도 차이가 났습니다. 현생인류도, 네안데르탈인도 아닌 제3의 인류가 있었다는 거죠. 이 동굴에서는 나중에 어른 어금니의 화석도 발견됐는데, 역시 현생인류와도 다르고, 네안데르탈인과도 다르게 생겼습니다. 고인류학자들은 이 화석의 주인공에게 데니소바인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유전학자와 고인류학자들은 세계의 다양한 현생 인류 안에도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결과는 기이했습니다. 현생인류 안에도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남아있긴 했는데, 엉뚱하게도 멀리 남쪽에 위치한 파푸아 뉴기니와 솔로몬 제도 등 멜라네시아인들이 가장 많이 갖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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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DNA 중 약 4%가 데니소바인의 것이었으니까요. 이들은 네안데르탈인의 DNA도 4% 갖고 있었으니, 결국 현생인류지만 그 안에 고인류의 DNA를 8%나 갖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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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정작 데니소바 동굴과 가까운 동북아시아의 인류에게서는 이 DNA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네안데르탈인이 주로 거주했던 유럽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발견되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이 결과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가장 유력한 가설은 이렇습니다. 데니소바인은 플라이스토세(약 259만 년 전부터 1만 1000년 전까지를 나타내는 기간)에 아시아 전체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다 아프리카에서 퍼져 나온 현생인류집단과 유전자 교환을 했고(즉 피가 섞였고), 특히 적응에 유리한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현생인류 안에서 계속 살아남았다는 해석입니다.
그렇다면 아시아에서는 왜 데니소바인의 DNA가 발견되지 않을까요. 혹시 오늘날의 아시아인은 그 이후, 그러니까 인류가 멜라네시아에 이주한 뒤에야 다시 등장한 건 아닐까요. 아직은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습니다. 데니소바인의 유전자가 단지 덜 발견됐을 뿐, 사실은 아시아에도 다 퍼져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결론을 내리기에는 자료가 불충분한 셈입니다. 우리의 기원에 대한 연구를 계속 기대해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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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의 인류가 산 데니소바 동굴
데니소바 동굴에서 발견된 인류 화석은 지금까지 세 점입니다. 새끼 손가락 뼈와 어금니, 그리고 발가락뼈입니다. 발가락뼈는 DNA 분석 결과 네안데르탈인의 뼈임이 밝혀졌습니다. 생김새 역시 현재 이라크 지역의 네안데르탈인의 발가락 뼈와 가장 비슷합니다. 데니소바 동굴에서 불과 100~150km 떨어진 동굴에서는 4만 5000년 전의 네안데르탈인의 화석과 도구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데니소바 동굴은 데니소바인과 현생인류뿐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의 거주지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결과를 종합하면 이렇습니다. 8만~7만 년 전, 데니소바 지역에는 데니소바인들이 살았습니다. 이어 4만 5000년 전에 이 지역에 네안데르탈인이 진출했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도구를 남기고, 적지만 유골 화석도 남겼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4만 년 전에 모두 떠났고(사라졌고), 그 자리를 현생인류가 채웠습니다. 이렇게 알타이 지역은 짧은 시간 동안 세 종의 인류가 번갈아 가면서 차지했습니다.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서로 만나 자손을 남겼을까요. 현생인류의 DNA에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의 DNA가 포함돼 있는 것처럼, 데니소바인의 DNA에도 네안데르탈인의 DNA가 17%가 포함돼 있습니다. 세 종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복잡한 관련을 맺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우리 현생인류의 기원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연구는 점점 깊이를 더해가고 있으며, 우리의 뿌리도 그만큼 복잡하고 심오해지고 있습니다.
이상희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미국 미시건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뒤 2001년부터 UC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전공은 고인류학이며 인류의 두뇌 용량의 변화, 노년의 기원, 성차의 진화 등을 연구하고 있다.
암벽화, 화살촉 등 유적을 자료화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shlee@ucr.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