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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어디까지 알아 봤니? 전 세계 지하실험실

지하에 있는 실험실이라고 해서 다 같지 않다. 땅 속 깊은 곳에서 희미한 신호를 관찰한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 크기도 역사도 연구 주제도 제각각이다. 때론 경쟁하고 때론 협력하며 더 큰 목표에 도전하는 전 세계 주요 지하실험실들을 만나보자.

 

더 깊고 더 넓게… 스케일로 압도하는 CJPL


중국 진핑 지하실험실(CJPL)은 말 그대로 대륙의 스케일을 자랑한다. 실험실의 깊이가 2400m로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제2롯데월드) 높이의 약 5배이고, 부피는 30만m3로 18학급 이상인 고등학교 체육관 규모의 84배에 해당한다. 


CJPL은 2010년 중국 쓰촨성 진핑산 아래에 지어졌다. 진핑산 옆으로 흐르는 야롱강에 수력발전소를 짓기 위해 뚫어놓은 지하터널을  최첨단 실험실로 탈바꿈했다. 


지하실험실의 기술 수준은 지상의 우주방사선을 얼마나 잘 막아내느냐에 달렸다. 2400m 두께 암석층 아래에 있는 CJPL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우주방사선 밀도를 자랑한다. 우주방사선 감쇠 표준 척도인 미터수 등가가 6720mwe다. 이는 수심 6720m에 있는 지하실험실과 동일한 우주방사선 밀도를 가진다는 뜻이다. 지하실험실까지 도달하는 뮤온 입자는 1m2 기준, 하루에 0.2개 미만. 지상의 뮤온 밀도 1440만 개(1m2, 하루 기준)보다 훨씬 적다. 


CJPL 연구팀은 이런 환경에서 암흑물질과 중성미자를 연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게르마늄 검출기로 암흑물질을 찾는 CDEX 프로젝트, 액체 제논 검출기로 중성미자 속성을 연구하는 PandaX 프로젝트 등이 있다. 


CJPL은 2019년부터 기존에 있던 지하실험실의 50배 규모인 CJPL-II를 건설하며 확장 업그레이드 중이다. CJPL-II는 폭과 높이가 14m, 길이가 130m인 대형 실험공간 4개로 이뤄져 있다. 이곳에 고도로 정제된 물인 초순수와 액체질소를 채운 대형 탱크를 각각 두고 그 내부에서 암흑물질 검출 실험과 중성미자 이중베타붕괴 탐색 실험을 할 예정이다. 


천체물리학에서 중요한 항성의 핵 반응속도를 연구하는 진핑핵천체물리학실험(JUNA)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중국과학원은 2020년 12월 보도자료를 통해 “CJPL에 설치한 400kV 가속기로 첫 빔을 발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앞으로 항성 내부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재현해 원소의 기원을 연구할 예정이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카미오카 우주관측소


과학 분야 최고 명예로 여겨지는 노벨상을 배출한 유서 깊은 지하실험실도 있다. 캐나다 서드버리 중성미자 관측소(SNOLAB)와 일본 카미오카 우주관측소, 미국 샌포드 지하연구시설(SURF)이 그 주인공이다. 


아서 맥도날드 캐나다 퀸즈대 명예교수와 카지타 다카아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는 중성미자가 이동하면서 하나의 유형에서 다른 유형으로 전환되는 중성미자 진동을 최초로 발견해 201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이들은 각각 SNOLAB과 카미오카 우주관측소에서 실험을 했다. 


SNOLAB은 캐나다 서드버리 지역 탄광 지하 2092m에 3만7000m3 규모로 건설됐다. 맥도날드 교수는 2002년 이곳에서 물보다 무거운 중수 1000t을 채운 탱크를 이용해 태양 중성미자가 변환한 중성미자의 신호를 포착했다. 다카아키 교수는 1998년 일본 기후현 카미오카 지역 모즈미 광산 지하 1000m에 설치된, 초순수 5만t을 채운 슈퍼카미오칸데를 이용해 중성미자의 진동을 확인했다. 
이보다 앞선 2002년에는 지금은 고인이 된 미국의 물리학자 레이먼드 데이비스 교수와 일본의 물리학자 고시바 마사토시 교수가 태양과 초신성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를 관측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태양에서 온 중성미자가 관측될 확률은 1조분의 1(지구를 통과하는 중성미자 1조개 중 1개가 관측된다는 뜻)에 불과하다. 


데이비스 교수는 1965년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리드 홈스테이크 금광 지하 1500m에 염소 원자가 들어있는 탱크를 설치한 뒤 중성미자가 염소와 반응해 아르곤을 만드는 현상을 관측했다. 이 시설은 오늘날 SURF에 편입됐다. 고시바 교수는 카미오카 모즈미 광산 지하에 있는 초순수 3000t을 채운 ‘카미오칸데’에서 중성미자가 물과 반응하는 신호를 잡았다. 


카미오칸데와 슈퍼카미오칸데로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카미오카 우주관측소는 6300억 원을 들여 세 번째 노벨상을 가져다 줄 ‘하이퍼카미오칸데’를 짓고 있다. 여기엔 슈퍼카미오칸데의 5배 규모인 26만t의 물을 채울 예정이다. 


하이퍼카미오칸데 프로젝트 한국측 대표를 맡은 유종희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는 하이퍼카미오칸데 실험이 양성자 붕괴와 물질-반물질 대칭성 깨짐 등 물리학의 중요한 질문에 답을 줄 것으로 기대했다. 유 교수는 “반감기가 1034년 이상일 것으로 예상되는 양성자 붕괴를 관측하기 위해서는 양성자 수를 최대한 늘리는 게 필수”라며 “2027년 완공해 2028년부터는 실험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양한 주제로 눈을 돌린 볼비 지하실험실 


지하실험실에서 우주만 연구하는 것은 아니다. 생물학, 지질학, 공학 등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이 지하실험실에 모인다. 대표적으로 영국 잉글랜드 노스요크셔주 볼비 광산 1100m 아래에 있는 볼비 지하실험실에서는 우주생물학 연구를 비중 있게 하고 있다. 


볼비 광산은 소금광산이다. 연구팀은 광산 내에 흐르는 소금물에서 미생물을 채취해 지구와 다른 환경을 가진 행성에서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한 조건을 연구하고 있다. 지하 공간은 지상의 미생물이 살지 않고, 온도나 습도 등 환경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화성 탐사 기술도 개발 중이다. 독특한 암석이나 미량 가스가 존재하는 지하 공간에서 임무를 시뮬레이션 하며 필요한 장비나 채굴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볼비 지하실험실 연구팀은 3차원 지하 구조를 장기간 촬영할 수 있는 뮤온 단층촬영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산화탄소를 포집한 뒤 땅 속에 저장하는 탄소포집 및 저장(CCS) 프로젝트를 지원할 계획이다. 


남반구로 눈을 돌려, 아르헨티나와 칠레 국경 지하터널에는 깊이가 1775m, 부피가 7만m3인 아구아 네그라 심층실험시설(ANDES)이 2029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이다. 안데스 산맥의 아구나 네그라 고개는 전 세계에서 지진활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 중 하나다. 연구팀은 지하실험실에 민감한 지진계를 두고 진동의 크기가 1Hz 남짓으로 매우 작은 국지적인 지진을 관측할 계획이다. 


힘을 모아 더 큰 질문에 도전한다


지하실험실들은 협력을 통해 더 큰 목표에 도전하고 있다. 카미오카 우주관측소는 250km 거리의 일본 고에너지가속기연구소와 손을 잡았다. 가속기로 슈퍼카미오칸데에 중성미자 빔을 쏴 중성미자 진동을 연구 중인데, 하이퍼카미오칸데가 완공되면 이런 실험의 규모를 더 키울 계획이다. 


미국의 SURF도 1300km 떨어진 페르미연구소와 협력해 심층지하중성미자실험(DUNE)을 진행하고 있다. 페르미연구소의 가속기로 강한 중성미자 빔을 생성해 SURF에서 분석할 예정이다. 2027년 최종 운영을 목표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30개 나라에서 1400명이 넘는 연구진이 협력하고 있다. 


차세대 암흑물질 관측 컨소시엄인 ‘XLZD’도 주목할 만 하다. 무게가 40~100t이나 되는 대규모 액체 제논 검출기를 개발하기 위해 이탈리아 LNGS에서 실험하는 ‘제논(XENON)’ 팀과 미국 SURF에서 실험하는 ‘럭스-제플린(LUX-ZEPLIN)’팀 등 60개 기관의 연구자들이 모였다. 유 교수는 “검출기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는 막대한 인력과 비용이 든다”며 “연구기관들의 협력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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