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사이버스페이스' 란 현실 사회의 한 부분일 뿐이다. 당연히 이 안에서는 세상살이와 똑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통신세계의 문제점 역시 과거의 여타 테크놀러지가 겪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봉사하는 길로 해결될 것이다.
사이버 스페이스라 불리는 통신망 세계는 실제 생활이 이루어지는 생활 공간과 똑 닮아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실제든 가상이든 그 속을 살아가는 주체는 인간이란 동일한 존재들이기 대문이다. 따라서 실제 상황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똑같이 가상공간에서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가상공간은 기본적으로 통신망의 특성에 의해 유지되며 이에 따라 규정된다. 인터넷에서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통신망의 특성에 따라 지역적 거리 제한이 사라지며 전세계인이 같은 가상공간의 생활인으로 존재할 수 있다. 또한 하이텔이나 천리안 과 같은 PC통신망은 특정한 지역 내의 폐쇄적인 가입자만으로 구성되므로 세계적 관점에서는 지역적 한계가 있지만 통신망이 구성되는 지역 내에서는 가입자의 지역성이 사라져 버리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가상공간만이 갖는 나름의 고유한 특성도 지니고 있다. WWW과 같은 인터넷 서비스에 의해 초기 형태의 멀티미디어 서비스가 제공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가상공간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의사전달 매체는 사람들이 써올리는 글이다. 비록 그 언어가 우리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이루어진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사람들은 이것을 읽고 응답하는 가운데 인종과 성별과 민족, 그리고 국경까지 넘어선 채 가상공간의 문화를 공유하고 새롭게 창출해간다.
현실의 문제, 사이버스페이스의 문제
가상공간에서 생활하는 이른바 '네티즌'(netizen) 역시 현실 생활을 사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도 실제 생활의 특성이 그대로 나타난다. 관심을 가진 주제에 따라 모임이 이루어지듯이 가상공간에서도 하이텔 동호회와 같은 모임방을 만들어 낸다. 네티즌들은 다양한 주제그룹 안에서 그들의 가상공간 생활을 영위하며 그룹 특유의 문화를 느끼고 새로운 문화를 열어가는 것이다. 실제 생활에서 편지를 주고 받는 것처럼 가상공간에서도 전자우편을 주고 받으면서 그들의 정분을 쌓아간다.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곳에는 서로에 대한 예절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생활 문화다. 마찬가지로 가상공간 속의 각각 모임들 속에서도 나름의 예절이 있으며 구성원들의 문화가 있다. 그래서 인터넷의 뉴스 그룹들 가운데는 자기그룹에서 활동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예절이나 글을 올릴 때의 방법 등에 대해 따로 문서를 만들어 놓기까지 한다.
하지만 어느 집단에서나 개인의 이익을 위해 다수의 생활공간을 악용하며, 문화를 거스르는 부류는 발견된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개인의 이기적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을 분노에 빠뜨리기도 하고, 독선적인 행동과 논리로 다른 사람들과 좌충우돌하는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 또한 해킹 통해 공들여 축적해놓은 자료를 손상시키는가 하면 불법적으로 취득하는 범죄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익명의 섬' 을 움직이는 규칙
이 가운데 명백한 범죄 행위는 실정법에 의해 처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가 아닌, 도덕적 문화적 일탈의 범주에 드는 행위는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다만 다른 사람들의 비난과 비판으로 주의와 각성을 촉구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현실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상공간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 특성은 어떠할까? 역시 실생활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 언론인은 '경계의식'이라는 말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동 특성 한가지를 설명한 바 있다. 농경생활을 주업으로 하던 조상들은 유목민 출신의 서양인들에 비해 주거가 안정돼 있었기에, 살고 있던 촌락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의 생활 터전이자 공동체로서의 울타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마을 밖의 일은 거의 모르는 채 지냈고, 아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그 마을 사람들에 지나지 않아 낯선 사람들과 만나기를 주저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낯선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현대의 공중 생활에서 예절을 잘 모르는 이유를 바로 이러한 문화에서 찾고 있다. 요즘처럼 타인들 속의 생활에서 필요한 문화를 형성시킬 시간이 없었고 공중생활의 질서를 배우지도 못해 지금의 생활을 원활하게 지탱시켜 줄 새로운 가치체계를 세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도식화한 감이 없지 않지만, 가상공간에서의 사람들 생활상을 보면 이런 주장은 크게 틀리지 않다. PC통신망에 가명으로 등록해 자신의 신분이 밝혀질 염려가 없을 때, 또는 실명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어디에 살고 누구인지 알려질 우려가 없을 때 대담한 행동을 하는 경우를 우리는 쉽게 목격한다.
그러나 사이버 스페이스는 완벽하게 익명성이 보장되는 '섬'이 아니다. 인터넷 사용자가 어느 직장, 어느 학교에 있는 누구인지 밝혀내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일탈행위를 했을 때 가해지는 비난과 비판은 그 사람의 현실 공간 생활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것이다.
PC통신망의 경우 신분 확인이 불가능한 익명성을 제공한다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 따라서 누구나 어느 정도의 신분확인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공동체 질서 유지의 한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경우에는 인간의 적나라한 내면 세계가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펼쳐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로는 악의적 비난의 글이 오르며 욕설로 채워진 글들이 화면을 장식하기도 한다.
얼마 전 국내 모 인터넷 교육기관에서 초보자를 대상으로 인터넷 교육을 실시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인터넷 서비스에 대해 교육을 실시한 적이 있다. 여러 가지 인터넷 서비스에 대해 교육을 실시하던 중 뉴스그룹을 설명하고 거기에 글을 올리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기능적인 사용법에 앞서 반드시 먼저 교육되어야 할 인터넷 예절을 알려주지 않아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즉 수많은 사람들이 생활하고 있는 그곳에 '시험 중' 또는 '인터넷 교육은 재미있다' 등등 쓰레기 글들을 여러 명이 올려 놓은 것이다.
참다 못한 많은 사람들이 항의의 글을 올렸다. 이어서 직접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항의하고 공개적인 해명을 요구하는 일이 일어났고, 급기야 담당자는 공개적으로 다른 사용자들에게 사과를 해야 했다.
인터넷에도 하이텔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BBS가 많다. 지난해 어느 BBS에 '무명씨'(anonymous)라는 방이 하나 생겼다. 초창기에 이 방에는 자신의 익명성을 십분 활용하는 저열한 글들이 수없이 올라왔다.
자정의 목소리도 나왔으나, 이보다 더 큰 목소리의 다른 저급한 글들에 의해 무시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 방의 존폐 문제가 심각히 나오기 시작했고, 급기야 누구나 그 안의 글들을 지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폐해를 유발 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 있으면 마구잡이로 지워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고 만 것이다. 그래서 익명성은 여전히 보장되는 대신 다시 관리자만 올라온 글을 지울 수 있도록 했다.
요즘 이 BBS를 둘러보면 초기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여전히 저급한 글들이 올라오기는 하지만, 과거에 비해 훨씬 정화되어 있는 것이다.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 보이는가 하면 쉽게 말할 수 없는 사연들도 올라와 위로를 구하기도 한다. 이제는 익명성이란 큰 방패가 있음에도 나름대로 큰 흐름, 즉 무명씨 방 나름의 문화가 정착돼 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에겐 양심이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인류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나름의 예절이란 생활질서를 찾아낸 것처럼 통신망 상에서도 그러한 생활질서를 찾아낼 것이다. 이미 대부분의 네티즌들은 통신에서 지켜야 할 예절을 존중하고 있으며 잘 모르는 초보자라도 주위의 충고에 의해 곧바로 적응하고 있다. 인터넷 초보자들의 경우에는 네티켓을 잘 몰라서 곧잘 실수하기도 하지만 대다수 인터넷 사용자의 생활상은 정화돼 있는 편이다. 양심이란 것은 결국 삶 속에서 채득한 생활 방식으로서의 예절로 돌아오게 한다.
관점에 따라서는 통신망에서 벌어지는 일들 사이에는 마치 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악의적인 범죄행위에는 실정법이 바로 적용되므로 법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악의적인 일탈 행위자들은 관리자들에 의해 공개적인 과정으로 처리될 수 있다. 이들의 글도 근거 설명과 함께 관리자가 공개적으로 지움으로써 질서를 유지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가상공간은 인류' 제2의 생활 공간' 으로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가상공간에서 사람들의 자정능력은 충분히 믿을만한 수준에 있는 것 같다. 통신망 상의 자율통제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필자는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의 말을 떠올려 본다.
"우리의 머리 위로 참새가 지나가는 것을 막을 수 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참새가 우리 머리 위에 집을 짓는 것은 막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머리 속에 떠오르는 온갖 잡다하고 악의적인 생각들을 막을 힘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게끔 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에겐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