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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무엇이 그들을 지하로 이끌었을까? 중성미자와암흑물질

물질이란 이름의 무언가가 그 공허에 있다

태초에 빅뱅이 있었다. 빅뱅의 엄청난 에너지는 물질과 반물질을 만들었다. 그러나 0.0000000001초 뒤 반물질이 홀연히 사라졌다. 지금 우리의 우주는 물질로만 이뤄져 있다. 
첫 번째 미스터리다. 


우주에 남은 물질들은 서로 뭉쳐 별과 은하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들의 움직임이 어딘가 수상하다. 은하의 회전 속도가 너무 빠르다. 은하를 가득 채운 무언가에 지배당하듯. 
두 번째 미스터리다. 


두 미스터리는 지금까지의 과학으로는 풀 수 없었다. 어쩌면 당분간도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과학자들은 지하로 내려갔다. 모든 것이 시작된 태초의 순간을 
다시 마주하기 위해. 

 

암흑물질이란 이름의 
무언가가 그 공허에 있다

(김소연 과학동아 기자)

정원이 10명인 엘리베이터에 혼자 탔다. 그런데 갑자기 만원 표시등이 붉게 빛난다. 센서가 고장 난 것도 아니고, 내 몸무게가 보통 사람의 10배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남아있는 가능성은 하나.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저 공간에 사실은 무언가가 있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은 현상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실제로 우주에서 관측됐다. 우리가 빛(전자기파)을 이용해 관측할 수 있는 물질만 가지고는 오늘날 우주의 다양한 모습을 설명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지만, 질량이 있는 물질이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과학자들은 이 질량을 가진 ‘무언가’에 암흑물질이란 이름을 붙였다. 정체도, 모습도 암흑 속에 있어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의 우주를 만든 숨겨진 27%

 

암흑물질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처음으로 한 건 스위스의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다. 1933년 츠비키는 머리털 은하단을 관측하다가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다. 은하가 예상보다 더 빨리 회전한다는 것.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은하의 회전 속도는 은하 내부의 질량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과학자들은 은하의 질량을 은하에서 나오는 빛의 양을 토대로 계산한다. 


따라서 은하가 예상보다 더 빨리 회전한다는 건 다시 말해, 은하에 빛을 이용해 관측할 수 없으면서 질량을 가진 물질이 숨어있다는 뜻이 된다. 츠비키는 이 숨어있는 질량에 암흑물질(dunkle materie)이란 이름을 붙였다.


나선 은하의 회전 속도 분포, 총알 은하단 등 새로운 증거가 더 제시되면서 암흑물질의 존재는 정설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과학자들은 더 나아가, 암흑물질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주도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관측결과를 종합해 계산하면 암흑물질은 우리가 볼 수 있고, 알 수 있는 물질의 대략 5배. 우주 전체의 질량-에너지 분포의 27%를 차지한다. 

 

사진 한 장 없이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


과학자들은 암흑물질을 찾기 위해 지구 안에서, 그리고 지구 밖 우주에서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뭘 찾아야 할까.


우주 전체 질량-에너지 분포의 27%를 차지할 것. 수명이 우주의 나이보다 훨씬 긴 안정된 물질일 것. 전자기력(빛)과 상호작용이 전혀 없거나 지극히 약할 것. 마지막으로 질량을 가지면서 속도가 광속보다 느린 ‘차가운 상태’일 것. 암흑물질의 조건이다. 네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입자는 우리가 관측한 한 없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찾는 일인 셈이다. 


유력 후보는 셋. 윔프(WIMP·Weakly Interacting Massive Particle), 액시온(Axion), 그리고 비활성 중성미자다. 제각기 예측되는 성질이 달라 입자를 찾기 위해 고안된 방법도 다르다. 그중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이 주목하는 건 윔프다. 46년간 가장 유력한 암흑물질 후보로 꼽히던 입자다. 


윔프는 우주 전체에 균일하게 분포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리고 땅이나 사람 같은 물체를 통과할 수 있다. 이런 윔프를 잡기 위해 섬광단결정이 들어있는 검출기를 이용한다. 만약 윔프가 검출기 안으로 들어가 섬광단결정의 원자핵과 충돌한다면 충돌에너지를 얻은 원자핵이 빛과 열을 방출한다. 이 빛을 전기 신호로 바꿔 감지하는 식이다. 


1999년 시작된 킴스(KIMS·Korea Invisible Mass Search) 실험에서 IBS 지하실험연구단의 COSINE(코사인)-100 실험, 그리고 새롭게 마련된 지하 1000m 고심도 지하실험시설 ‘예미랩’에서 진행될 COSINE-200 실험까지. 국내 연구자들은 실험 규모를 키워가며 암흑물질의 수색 범위를 좁히고 있다. 예미랩에서 암흑물질을 찾았다는 함성이 울릴 수 있을까. 

 

 

반중성미자는 왜 사라졌을까

 

(이무현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 연구위원)

 

잠시 손을 들어 엄지 손톱을 바라보자. 이 손톱을 1초에 약 700억 개씩 통과해버리는 입자가 있다. 이 입자는 매순간 태양빛과 함께 지구로 쏟아지고 있지만 누구도 느끼지 못한다.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들과 어떤 상호작용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령입자(ghost particle)’라는 별명을 가진 중성미자 얘기다. 


중성미자는 그야말로 유령처럼 산다. 질량이 매우 작고 전하를 띠지 않는 데다, 오직 약한 핵력과 중력에만 반응을 한다. 결과적으로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을 거의 하지 않는다. 


중성미자가 반응하는 약한 핵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물리학의 근간인 표준모형을 알아야 한다. 물리학자들은 우주의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와, 물질 사이에서 힘을 전달하는 입자를 각각 페르미온과 보손으로 구분한다. 표준모형은 페르미온 12개와 보손 4개, 힉스(질량 부여에 관여하는 보손)까지 총 17개의 입자로 자연계를 설명한다. 약한 핵력은 중력, 전자기력, 강한 핵력과 함께 보손이 매개하는 힘의 한 종류다. 


페르미온은 다시 둘로 나뉜다. 강한 핵력의 영향을 받는 쿼크(6개)와 그렇지 않은 렙톤(6개). 렙톤은 다시 전하를 띠는 입자 3개와 그렇지 않은 나머지로 구분된다. 렙톤 중 전자, 뮤온, 타우온은 전하를 띠고, 전자 중성미자, 뮤온 중성미자, 타우 중성미자는 전하를 띠지 않는다. 즉 중성미자는 강한 핵력뿐만 아니라 전자기력에도 반응하지 않는다. 

 

우주에 가득하지만 유령처럼 찾기 힘든 입자


약한 핵력은 대표적으로 핵을 이루는 중성자가 붕괴해 양성자와 전자, 중성미자를 내보낼 때 발견된다. 이때 나오는 전자를 ‘베타선’, 중성자 붕괴 과정을 ‘베타붕괴’라 부른다. 베타붕괴는 태양 내부의 핵융합 반응, 원자력 발전의 핵 붕괴 반응, 별들이 폭발하는 우주환경 등 핵이 분열하고 융합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관찰하기는 쉽지 않다. 약한 핵력을 매개하는 입자가 아주 금방 생겼다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중성미자는 우주에서 빛(광자) 다음으로 숫자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힘을 전달하는 입자가 금방 사라지는 탓에 극히 일부만 다른 물질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  


유령 같은 중성미자의 존재를 처음 예견한 사람은 오스트리아 출신 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였다. 파울리는 1930년 중성자 붕괴 실험 결과에 주목했다. 알파입자가 붕괴될 때에는 방출된 전자의 에너지가 일정한 값을 갖는 것과 달리,  베타 붕괴가 일어났을 때에는 전자의 에너지 스펙트럼이 연속적인 분포를 보였다. 파울리는 검출되지는 않았지만 전기적으로 중성인 새로운 입자가 함께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34년 이탈리아 출신 미국의 핵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파울리의 생각을 이론적으로 가다듬었다. 중성자가 붕괴하기 전후 렙톤 수가 보존되려면, 중성자(렙톤 없음)가 양성자(렙톤 없음)와 전자(렙톤 1개)로 붕괴될 때 반렙톤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페르미는 파울리의 입자에 ‘작은 중성자’라는 뜻의 ‘뉴트리노(neutrino)’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검출기가 지하에 있는 이유


중성미자의 흔적을 찾으려면 베타붕괴를 역으로 일으키면 된다. 즉 중성미자를 양성자가 있는 검출기에 반응시켜 나오는 중성자와 양전자의 신호를 찾는 것이다. 


첫 번째로 우주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지하 수천m 아래 지하실험실이 필수다. 지상에서는 우주에서 지구로 쏟아지는 우주방사선이 대기와 부딪치며 만들어 내는 뮤온 잡음 때문에 중성미자를 관측하기 어렵다. 


검출기를 지하 깊숙한 곳에 두면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 뮤온은 걸러지고 다른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는 중성미자는 땅을 투과해 검출기에 도달한다. 다만 이 방법도 우주방사선이 대기와 부딪칠 때 생기는 중성미자를 차단하기는 어렵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은 양성자가 많은 대용량의 검출기를 사용하고 있다. 즉 다량의 양성자가 들어있는 대용량의 물이나 선형알킬벤젠(LAB) 같은 액체 섬광물질검출기를 두고 중성자가 반응하는 신호를 측정함으로써 배경 잡음을 없애려 노력 중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일본의 물리학자 고시바 마사토시와 미국의 물리학자 레이먼드 데이비스가 초신성에서 날아온 중성미자를 검출할 때 사용한 방법이다. 


한편 원자로를 이용해 중성미자를 직접 만들고 이를 검출기에 충돌시켜 베타붕괴를 역으로 유도하기도 한다. 미국의 물리학자인 고 프레데릭 라이네스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사바나리버사이트 원자로를 이용해 중성미자를 처음으로 관측했다. 


중성미자가 양성자와 충돌하면 중성자 하나와 양전자가 만들어진다. 양전자는 전자와 전하는 반대이고 질량은 같은 입자다. 양전자는 전자와 만나면 소멸돼 빛 알갱이인 광자를 만든다. 이 빛을 관측해 중성미자를 간접적으로 검출할 수 있다. 

 

관측만 한다면 세기의 발견


필자가 속한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 아모레(AMoRE·Advanced Molybdenum-based Rare process Experiment) 실험팀은 몰리브데넘의 동위원소인 몰리브데넘-100(100Mo)으로 구성된 결정을 이용해 두 개의 중성미자를 방출시키는 이중베타붕괴(double beta decay) 관측 실험을 하고 있다. 중성자가 양성자로 변환하면서 중성미자와 전자를 각각 한 개씩 방출하는 현상이 베타붕괴라면, 이중베타붕괴는 두 개의 중성자가 두 개의 양성자로 변환하면서 중성미자와 전자를 각각 두 개씩 방출하는 현상이다. 


이중베타붕괴 실험이 성공하면 궁극적으로는 중성미자 없는 이중베타붕괴(neutrinoless double beta decay)에 도전한다. 중성미자 없는 이중베타붕괴는 두 개의 중성자가 두 개의 양성자로 변환하면서 중성미자 없이 전자 두개만 방출한다. 중성미자가 사라졌다는 것은 발생한 중성미자가 그 즉시 원자핵 내부의 다른 핵자에 의해 반중성미자로서 흡수됐다는 뜻이다. 바꿔 말하면 중성미자와 반중성미자가 실제로는 같은 입자라는 것이고, 이는 중성미자가 지금까지 발견된 기본 입자와 다른 질량 구조를 갖는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중성미자의 질량 크기와 중성미자의 성질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중성미자 없는 이중베타붕괴는 관측만 된다면 세기의 발견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발생할 확률은 몰리브데넘 동위원소(100Mo) 1몰 당 1660년 중 1번으로 매우 희박하다. 캐나다 서드버리 중성미자 관측소, 일본 카미오카 우주관측소, 이탈리아 그란사소 입자물리연구소 등 내로라하는 해외 지하실험연구단에서 중성미자 없는 이중베타붕괴를 탐색하고 있지만 관측한 사례는 전무하다. 


우리 연구팀은 이러한 희귀 반응을 탐색하기 위해 우주 배경 잡음을 최소화할 수 있는 지하 1000m 아래 예미랩에서 실험을 이어갈 예정이다. 또 이중베타붕괴가 더 많이 발생할 수 있도록 2024년부터는 몰리브데넘 결정의 무게도 현재의 30배가 넘는 200kg까지 키울 생각이다. 불가능해 보이지만 한 단계씩 확률을 높이며 계속 나아갈 것이다. 

 

 

※필자소개.

이무현.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 연구위원. 1986년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일본고에너지가속기연구소(KEK)의 전자-양전자 충돌실험인 ‘AMY’ 실험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럿거스 뉴저지주립대, 서울대, 일본 KEK, 미국 메릴랜드주립대 등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다. 2014년부터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에 몸담으며 암흑물질과 중성미자 실험에 쓰이는 결정을 개발하고 있다. mhlee@ibs.re.kr

2022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소연 기자
  • 이무현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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