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첨단기술이 언제나 정답은 아닙니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세간의 이목이 모인 건 지난해 12월부터다. 그러나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투쟁은 올해로 21년째 이어져 온 오랜 외침이다. 2001년 1월 22일, 지하철 4호선 오이도역 장애인 노부부 추락 참사가 시작이었다. 설을 맞아 역귀성한 3급 장애인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장애인용 리프트에 탑승했다가 리프트 철심이 끊어지며 7m 아래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할머니가 사망하고 할아버지는 중상을 입었다.
이날 이후로 장애인들은 장애인이동권연대를 결성해 투쟁을 시작했다. 이들의 요구는 세 가지였다.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라. 저상버스를 도입하라.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등)을 도입하라” 그 뒤로 20여 년이 흘렀지만, 장애인들은 이동권을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교통약자법 제3조에는 “교통약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받기 위하여 교통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게 이용하여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쓰여있다. 2020년 기준 등록장애인은 263만 3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5.1%다. 지하철 한 량에는 좌석이 약 50여 개 있다. 단순히 계산해보면, 이 중 2.5개의 좌석은 장애인의 몫이다. 평소 지하철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장애인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
미디어에서는 첨단기술을 집약해 만든 장애인 이동보조기기 개발 소식을 전한다. 다리를 못 쓰던 장애인이 벌떡 일어나 걸을 수 있다거나, 계단을 오를 수 있는 휠체어가 개발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희망적이다. ‘아이언맨의 강철 슈트’와 같은 비유도 멋지다. 그러나 기자는 이날 평소엔 의식조차 못했던 문턱이, 경사로가, 엘리베이터가, 화장실이, 버스가, 지하철이 낯설고 불안한 공간으로 변모한 경험을 했다. 첨단기술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오늘’을 바꿔놓을 거라고 쉽게 말할 수 없었다.
김종배 연세대 작업치료학과 교수에게 과학기술의 역할을 물었다. 김 교수는 그가 사용하는 ‘다니엘라 커프’를 예로 들었다. 사고로 하반신과 팔이 마비된 김 교수에게 36년 전 작업치료사인 다니엘라 수녀가 직접 개발해 준 그만의 보조기구다. 단순한 기구지만, 손에 끼우고 스마트펜, 숟가락 등을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장애인에게 기술이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 필요한지에 대한 고려”라고 했다. 장애인의 이동이 획기적으로 편해질 첨단 이동보조기기 개발은 중요하다. 하지만 동시에 다니엘라 수녀의 커프와 같은 보조기기, 장애인들이 매일 타는 휠체어, 대중교통 이용을 돕는 안전장치 등에 대한 연구도 귀하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겪는 불편을 해결할 도구는 직접 장애인 당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는 개발할 수 없다. 김 교수는 “장애인을 위한 기술을 연구할 때는 반드시 참여형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양한 장애 유형별 장애인 포커스 그룹을 만들어 도구에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연구방식을 도입하고 있다”며 “그렇게 해야 진짜 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제품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토도웍스의 휠체어 전동키트 ‘토도 드라이브’는 좋은 예시다. 심재신 토도웍스 대표는 “수동 휠체어를 타는 한 아이로부터 ‘전동휠체어가 편하긴 하지만, 너무 크고 무거워 수동휠체어를 탄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동휠체어에 모터를 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가 개발한 토도드라이브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수동휠체어 동력보조장치로 꼽힌다.
“이동은 사람 간 소통을 만들어줍니다. 토도웍스는 이동에 불편을 겪는 사람들이 세상 밖으로 나아가 소통할 수 있도록 기술로서 도움을 주는 회사입니다. 대한민국에서 토도드라이브를 이용하는 초등학생 어린이가 2000명이 넘었습니다. 이 아이들과 비장애 아동이 함께 성장해 성인이 된 세상은 지금보다는 편견의 벽이 낮아지지 않았을까요?”
●인터뷰
김지우 씨를 비롯한 이달의 휠체어 팀원들에게 ‘휠꾸(휠체어 꾸미기)’의 의미를 물었다.
“우린 같은 교실에 있어야 해”
유튜브 채널 ‘굴러라 구르님’을 운영중인 김지우 씨(오른쪽)는 ‘이달의 휠체어’란 이름으로 휠체어 화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이달의 휠체어는 ‘우린 같은 교실에 있어야 해’란 주제로 제작됐다. 교실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함께해야 서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
Q 휠체어란 어떤 의미인지
김지우: 제게는 늘 사용하는 이동을 돕는 보조기기이자, 자기표현의 수단이에요. 기능적인 면을 고려해 휠체어를 타곤 하지만, 그날의 기분이나 패션에 따라 휠체어를 고르기도 하죠.
장수연: 휠체어=의자+바퀴+α라고 생각해요.
Q 앞으로 ‘휠꾸’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민지: 휠체어 하면 떠오르던 기존의 부정적이고 평면적인 이미지를 전복시키되 휠체어 자체가 지워지지 않도록 그 균형을 잘 맞추며 더 다양한 휠꾸를 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