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초록)]
공들여 분리 배출한 플라스틱이 재활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찝찝한 기분을 선사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플라스틱을 분리수거함에 넣고 마냥 뿌듯해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분리배출을 하면서도 환경을 해친단 죄책감에 시달린다고 호소하고 있다. 아예 플라스틱을 안 쓰면 좀 나을까 싶어 친환경 빨대로 커피를 마시는 시도가 전 세계적으로 활발히 이뤄졌지만, 전체 플라스틱 폐기물 가운데 빨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우리는 플라스틱과의 불편한 동거가 당분간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연과 플라스틱이 공존할 다른 전략은 없는지 광범위한 문헌과 전문가 그룹 인터뷰를 통해 조사했다. 그 결과 소재 변경과 소성(플라스틱 제조) 과정 개선, 그리고 기존 플라스틱을 분해했다 다시 합성하는 해중합 도입으로 보다 합리적인 플라스틱 사용이 가능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Introduction (서론)]
오늘날 플라스틱은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고분자 물질 중 하나다. 하지만 분해가 어렵고 제조 과정에서 탄소를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심각한 환경문제를 일으킨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플라스틱 문제 해결을 위해 플라스틱에 대해 먼저 알아봐야 한다. 대한화학회에서 발간한 화학 백과는 플라스틱을 ‘열 또는 압력에 의해 성형할 수 있는 유기물 기반 고분자물질 및 그 혼합물’이라고 정의한다. 정의에 따르자면….
…여기까지 쓰고 나니 맥이 풀린다. 사실 기자의 전공은 화학공학이다. 고분자물질인 플라스틱이라면 전공 수업 시간에 숱하게 배웠다. 하지만 짧다면 짧은 몇 년의 공부만으로 전 지구가 직면한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사실만 확실해졌다. 이 논문, 쓰지 말까.
그래도 수업 때 교수님이 설명했던 내용만큼은 정확히 떠오른다. 고분자물질은 분자량이 매우 높은 물질을 뜻한다. 분자량이 작은 단위분자인 ‘단량체’를 규칙적으로 연결해 만든다. (교수님, 당신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플라스틱을 이루는 단량체는 기본 뼈대가 탄소다. 레고 블록 하나하나를 단량체라고 하자. 이 블록을 여러 개 연결해 튼튼하고 예쁜 성을 쌓을 수 있다. 이 성을 고분자물질인 플라스틱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최초의 플라스틱인 셀룰로이드가 개발된 이후 150년간 인간은 단량체를 레고 블록처럼 이리저리 연결해가며 다양한 물건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블록이 너무 단단하게 연결돼 버렸다. 분해가 잘 안 돼 환경 문제를 일으키게 됐다. 게다가 이 블록,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온실가스를 내뿜는다.
플라스틱이 생태계에 없던 물질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플라스틱의 재료인 원유는 땅속 깊숙이 저장돼 있던 탄화수소 혼합물이다. 탄소를 끄집어내 사용하다 보니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높아졌다. 서상원 미국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 브렌 환경과학 경영대학원 교수팀은 2019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 2015년 한 해 동안 플라스틱 제조, 제품 생산, 폐기 등으로 전 세계 플라스틱 산업이 배출한 온실가스가 17억 8100만 tCO2eq이었다고 보고했다. 연구팀은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이 지금 추세대로 증가한다면 2050년엔 플라스틱 산업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65억 tCO2eq으로 탄소 예산의 15%를 잠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doi: 10.1038/s41558-019-0459-z
플라스틱을 만드는 방식도 생태계에 생소하다. 플라스틱의 원료인 단량체를 만들기 위해선 우선 원유를 증류탑에서 끓여 끓는점에 따라 원유 속 화학물질을 분리한다(81~82쪽 인포그래픽 참조). 이 중 75~150℃에서 분리되는 탄화수소 혼합체를 나프타라 부른다. 나프타는 플라스틱의 재료로 활용된다. 탄소가 5~12개 사이인 분자의 혼합물인 나프타로 단량체를 만들려면 나프타를 끊는 ‘나프타 크래킹(cracking)’ 공정을 통해 균일한 크기의 입자로 부숴야 한다. 그 결과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단량체가 석유화학공업계에서 가장 많이 활용돼 ‘석유화학공업의 왕자’로 불리는 에틸렌이다.
반응성이 높은 라디칼 분자를 넣어 연쇄적으로 중합 반응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라디칼 중합’을 이용해 에틸렌을 여러 개 이어 만든 고분자물질이 폴리에틸렌(PE)이다. 폴리에틸렌은 전 세계 플라스틱 가운데 생산량이 가장 많다. 폴리에틸렌 외에 폴리스타이렌(PS), 폴리염화비닐(PVC) 등 대부분 플라스틱은 단량체 속 탄소와 탄소를 연결하는 식으로 결합한다.
그런데 생태계엔 이 연결고리를 끊어 플라스틱을 분해할 생물이 없다. 오동엽 한국화학연구원(화학연) 바이오화학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대부분 생명체는 에스테르화 반응 등 탈수 축합중합 반응을 이용해 고분자 물질을 합성하기에 이 방식으로 만들어진 물질을 분해하는 촉매를 가진 생물은 많다”며 “반면 플라스틱을 만드는 라디칼 중합은 인간이 만들어낸 중합법이라 생태계에선 낯설다”고 설명했다. 그는 “라디칼 중합을 통해 생긴 탄소와 탄소 사이의 결합을 깨려면 인공적으로 만든 촉매나 높은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레고 블록 놀이를 할 때는 갖고 놀다가 다시 분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 블록으로 나중에 배도 만들어보고, 우주선도 만들며 놀 수 있다. 그러나 플라스틱의 경우 한번 만든 레고 성이 500년간 분해되지도 않고 남아서 자리만 차지한다. 태우면 빨리 분해할 수 있는데 대신 온실가스가 나온다.
그렇다고 당장 플라스틱 사용을 멈추기에는 플라스틱의 장점을 무시할 수 없다. 배진영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플라스틱은 가공성이나 가격 등 여러 면에서 우수한 성질을 보여 현재 금속, 세라믹에 이어 3대 소재로 꼽히는 중요한 재료”라고 했다. 배 교수는 “코끼리를 죽여야 얻는 코끼리 상아 대신 당구공을 만들 소재를 찾다가 개발된 것이 최초의 플라스틱인 셀룰로이드”라며 “천연물을 대체하기 위해 만든 플라스틱의 긍정적 효과 또한 무시할 수 없으므로 공과 과를 모두 따져가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Materials&Methods(연구방법)]
우리는 플라스틱이 일으키는 환경 문제를 플라스틱 자체의 물성을 개선하는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전문가 그룹 인터뷰와 문헌 조사를 통해 재료, 결합, 분해 측면에서 세 가지 전략을 추출했다.
전략ⓛ 석유 빼고 재료 변신, 온실가스 가둔다
논문도 중반에 다다랐다. 다시 대학 시절이 떠올랐다. 인턴 생활을 했던 합성생물학 연구실에서 나를 가르치던 선배가 한 말이 떠올랐다. “생물은 그 자체로 탄소를 먹고 유용한 화학물질을 만드는 작은 공장이라 할 수 있어. 우린 그중에서도 미생물을 이용하지.” 유전자를 조작하거나 화학물질을 첨가해 미생물로 다양한 화학물질을 만들던 연구실이었다. 5L짜리 반응기에 가득 담겨 약의 원료나 유기 용매 등을 만들어내는 대장균을 보며 당시엔 ‘미생물 학대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다. 반응기 안엔 그의 말대로 작은 공장 수십억 개가 쉴새 없이 가동됐다. 혹시 플라스틱 문제 해결에 이들 미생물을 활용할 방법은 없을까.
플라스틱과 공존하기 위한 첫 번째 전략은 소재를 바꾸는 방법이다. 석유 없이 플라스틱을 만드는 게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다. 분해 미생물 입장에서는 석유보다 낯익은 ‘식재료’로 돼 있을테니까.
과학자들은 생물과 대기로 눈을 돌렸다. 생물이 광합성 등 화학반응을 통해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유기물로 전환하는 과정을 탄소 고정이라 부른다. 이 과정을 활용해 만드는 플라스틱이 ‘바이오 플라스틱’이다.
바이오 플라스틱의 대표적인 예는 이미 상용화돼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폴리락틱애시드(PLA)다. 주로 빨대나 식품 포장재, 비닐봉지 등에 활용된다. PLA를 구성하는 단량체는 젖산이다. 미생물은 발효과정을 통해 바이오매스 속 전분을 분해해 생명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고 그 부산물로 젖산을 만든다.
바이오매스를 거치지 않고 공기 중 탄소를 플라스틱의 재료로 곧장 전환할 수도 있다. 조병관 KAIST 생명과학과 교수팀은 미생물인 클로스트리디움 오토에타노게눔(Clostridium autoethanogenum)을 활용해 이산화탄소, 일산화탄소 등 탄소 한 개로 구성된 가스(C1 가스)를 아세트산으로 전환하는데 3월 성공했다. 아세트산은 아세트산 비닐 등 플라스틱의 원료다.
원래 아세토젠 미생물은 당이나 수소를 분해해 에너지를 얻는다. 연구팀은 클로스트리디움 오토에타노게눔의 표면에 광 나노입자를 부착해 당이나 수소 없이 빛을 유일한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미생물을 만들었다. 광 나노입자에 빛을 쬐면 고에너지 전자가 방출돼 미생물의 아세트산 합성을 유도한다. doi: 10.1073/pnas.2020552118
바이오 플라스틱이 기존 석유 기반 플라스틱을 대체하려면 효율을 높여야 한다. 미생물은 생명 활동의 부산물 중 하나로 단량체를 생산하기 때문에 먹이 형태로 투입한 재료에 비해 생산되는 단량체의 비율(수율)이 낮다. 공정의 비효율성도 생산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한지훈 전북대 화학공학부 교수는 “미생물을 이용한 공정은 연속적인 생산이 어려워 생산 효율이 낮다”고 했다. 바이오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하이드록시알카노에이트(PHA)는 미생물 내에 녹지 않는 과립 형태로 발견되는 고분자물질이다. 에너지원을 PHA 과립으로 저장한 것인데, 이 PHA를 수확하려면 미생물을 파쇄하거나 화학물질을 넣어 분해해야 한다. 단량체를 얻기 위해 매번 미생물을 키우고 죽이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연속적인 생산이 불가능하다.
화학적 촉매 전환 공정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바이오매스를 바이오 플라스틱 단량체로 전환하는 과정을 미생물 없이 촉매로 구현하면 연속생산이 가능해져 수율을 높일 수 있다.
이산화탄소를 직접 나프타로 전환할 수도 있다. 화학연 차세대탄소자원화연구단은 2월 코발트와 철을 섞어 만든 합금을 촉매로 활용해 이산화탄소를 나프타로 전환하는데 성공했다. 수율도 기존 전환 기술(16%)보다 높은 22%로 향상시켰다. 연구팀은 “2030년에는 실용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doi:10.1021/acscatal.0c04358
전략② ‘연결 방법’ 바꿔 쉬운 분해 유도한다
과학 논문엔 자고로 실험이 필요하다. 다양한 생분해성 빨대를 실험해 봤는데…. 전분으로 만든 빨대는 영 시원찮았다. 평소 빨대를 깨무는 습관이 있는데, 입에 넣자마자 ‘뽀작’ 소리를 내며 갈라져 버렸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려 꺼낸 빨대였는데, 한 시간도 안 돼서 흐물흐물해졌다. 커피맛 숭늉을 먹는 느낌이었다. 반면 편의점에서 받아온 생분해성 플라스틱 빨대는 달랐다. 출근 때부터 퇴근 때까지 커피에 담가 방치해도 모양을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나무젓가락이나 종이처럼 잘 썩어 분해된다. 잘 썩는다는 천연물의 장점에 가공과 사용이 편리하다는 플라스틱의 장점을 모두 갖췄다. 생분해성 플라스틱 빨대를 질겅질겅 씹으니 마음이 다시 평화로워진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비밀은 미생물이 끊을 수 있는 결합방식을 이용해 단량체를 고분자로 중합한 데에 있다.
오동엽 화학연 바이오화학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생분해할 수 있으려면 가수분해가 잘 되는 구조를 가지면 된다”고 했다. 가수분해는 물을 이용해 고분자물질 속 단량체 사이의 결합을 끊는 과정을 말한다. 가수분해의 반대 반응은 탈수 축합 반응인데, 물을 분리하며 단량체 사이를 연결하는 과정이다. 두 반응은 생명체 내에서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등 고분자의 합성과 분해를 위해 자주 활용된다. 에스테르 결합이 대표적으로, 인간 등 생명체가 흔히 지닌 가수분해효소를 이용해 쉽게 분해할 수 있다. 에스테르 결합 외에도 펩타이드 결합, 글리코사이드 결합 등이 가수분해되는 결합이다. 오 선임연구원은 “반면 폴리에틸렌이나 폴리프로필렌 등 기존 플라스틱은 화학적으로 가수분해할 수 있는 작용기가 없어 미생물이 분해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PLA, 폴리부틸렌석시네이트(PBS) 등 생분해성 플라스틱 제품은 편의점에서 주는 빨대, 화장품 가게의 비닐봉지 등 주로 일회용품의 형태로 상용화됐다. 최근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생활필수품이 된 마스크에도 활용할 수 있다. 오 연구원 등 화학연 바이오화학연구센터팀은 1월 PBS를 가느다란 섬유 형태로 뽑은 뒤 이를 겹쳐 부직포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위에 키토산 나노입자를 코팅해 음전하를 띠는 바이러스나 미세먼지 등 외부물질을 흡착하도록 했다. 그 결과 필터는 2.5 µm(마이크로미터·1µm는 백만분의 1m) 크기 입자를 98.3% 차단해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마스크 기준으로 N95 급의 성능을 보였다. 또, 분해 테스트 결과 퇴비화 조건에서 4주 이내에 생분해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doi: 10.1002/advs.202003155
생분해성 플라스틱에는 역설적인 고민이 있다.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최종 목표는 분해돼 퇴비가 된 다음 식물로 다시 태어나 바이오 플라스틱의 원료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일반쓰레기와 함께 폐기돼 소각되거나 매립되는 실정이다. 유영선 가톨릭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별도의 수거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현 상황에서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새로운 쓰레기를 양산할 뿐만 아니라 PP나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와 같은 재료와 한데 섞여 재활용을 오히려 방해할 수 있다”고 짚었다.
생분해성 마스크 필터를 개발한 황성연 화학연 바이오화학연구센터장도 “아직까지 국내엔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매립할 전용 매립장이 없다”며 “마스크를 생분해 소재로 대체하는 것은 탄소중립 사회로 가는 중간과정일 뿐”이라고 말했다. 황 단장은 “최종적으로는 이를 효율적으로 분해시킬 수 있는 퇴비화 매립장이 제도적으로 필요하다”고 했다.
전략③ 분해했다 다시 조립…재활용 품질 높여
분리 배출한 플라스틱 폐기물이 재활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잘 안다. 그래도 플라스틱 폐기물 속 이물질을 잘 씻고, 페트병의 라벨을 열심히 떼어 낸다. 그게 플라스틱 폐기물을 버리는 소비자의 역할이니까. 플라스틱 무덤이 지구를 덮는 사태는 막아야 하니까. 하지만 소비자가 최선을 다해 분리배출한 플라스틱 폐기물의 재활용률이 낮다는 건 아무래도 기운 빠지는 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8년 발표한 보고서 ‘플라스틱 관리 개선: 트렌드, 정책 반응, 그리고 국제협력과 무역의 역할’에 따르면 전 세계 플라스틱 재활용률은 14~18%에 불과하다. OECD는 원인 중 하나로 현재 재활용으로 분류된 플라스틱의 품질이 낮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재활용할 수 없는 플라스틱은 소각이나 매립을 통해 삶을 끝낸다.
플라스틱의 재활용 방법은 크게 기계적 재활용과 화학적 재활용으로 나뉜다. 기계적 재활용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한데 모아 잘게 자르고 이를 녹여 다시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플라스틱의 재활용은 대부분 이 방식을 택한다. 하지만 폐플라스틱의 오염도에 따라 재활용 플라스틱 품질이 크게 달라진다는 단점이 있다.
화학적 재활용은 기계적 재활용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플라스틱을 다시 작은 분자 단위로 분해한다. 가스, 오일, 나프타 수준으로 분해된 분자는 연료나 석유화학제품을 만드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에너지순환자원연구실 연구팀이 지난 2월 발표한 폐비닐 열분해 기술이 그 예다. 연구팀은 산소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한 고온 환경을 준비한 뒤 작은 조각 형태로 자른 폐비닐을 분해해 연료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기름을 얻었다.
또 다른 화학적 재활용 기술인 해중합은 촉매를 이용해 플라스틱을 단량체로 분해했다 다시 합쳐 새로운 플라스틱 제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PET 폐기물만 선별해 유기 용매 및 촉매와 섞은 뒤 190℃ 가까운 온도로 가열하면 PET가 BHET(비스-2-하이드록시에틸 테레프탈레이트) 단량체로 분해된다. 이를 용매에서 분리해 다시 합성하면 깨끗하고 품질 높은 PET를 생산할 수 있다. 오 선임연구원은 “현재 해중합에 활용할 촉매가 많이 보고돼 있다”며 “색소 첨가물이나 음식 찌꺼기 등으로 순도가 낮아진 플라스틱 폐기물을 해중합할 경우 촉매의 내구도가 떨어지는 문제를 극복하면 상용화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탄생, 사용, 그리고 죽음까지, 플라스틱의 생애를 보다 친환경적으로 설계하려는 과학자들의 노력을 세 가지 전략으로 압축해 살펴봤다. 하지만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상용화돼도,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모아 퇴비화할 설비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해중합을 위한 촉매가 개발돼도 플라스틱 폐기물의 오염도가 높으면 촉매의 내구도가 떨어져 상용화하기 어렵다. 과학기술만으로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Results&Discussion(결론 및 토론)]
이 때문에 플라스틱의 생애 주기 전체를 고려한 새롭고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7월 2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는 독일, 호주, 미국 등 7개국의 과학자 14명이 공동으로 발표한 정책제안서 ‘플라스틱의 생애 주기를 다루기 위한 국제 협약’이 실렸다.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탄생, 사용, 폐기, 그리고 재탄생까지 플라스틱의 생애 주기 전체를 관리할 국제적 협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정책제안서는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협의에 다음 세 가지 목표를 넣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첫째: 새로운 플라스틱 제품의 생산과 소비를 최소화할 것.
둘째: 플라스틱이 재활용될 안전한 순환 회로를 구축할 것.
셋째: 플라스틱에 의한 환경오염을 줄일 것.
김소연1*, 이명희2† 1과학동아, 2과학동아(디자인파트), *교신저자. email : leica@donga.com †디자인·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