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 이동경로를 알기 위해 다양한 과학 기술장비가 동원된다. 동물생태를 정확히 이해하고 희귀동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동물에 해가 없는 장비 개발은 과학자들의 새로운 과제다.
1993년 12월 영국 농어식품부가 방류한 넙치 50마리 중 6마리가 이듬해 1월 발견됐다. 수온 수압 감지용 센서, 자료 저장용 마이크로 칩 등 첨단장비를 갖춘 넙치를 어부가 포획, 농어식품부에 전달한 것이다. 장치의 크기는 46mm×22mm. 칩의 수명은 9개월 이상, 자료저장 기간이 최고 5년이나 된다. 과학자들은 저장된 수온 수압 자료를 조수간만 그림과 비교, 넙치의 이동 경로를 알아냈다.
이 자료들로 무분별한 물고기 포획을 막을 수 있었다. 당시까지 유럽연합(EU)은 물고기 보호를 위해 잡을 수 있는 물고기의 양을 규정했다. 그러나 그물을 쳐놓고 일정량의 물고기만 걸리기를 바랄 수 있을까. 새끼를 비롯해 규정보다 몇배나 되는 물고기가 잡히기 일쑤였다.
과학자들은 물고기를 잡는 양보다는 잡는 장소를 조절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다 자란 물고기가 비교적 적게 잡히는 장소를 정해 그곳에서만 물고기를 잡게 하는 것. 이를 위해 물고기의 생태를 정확히 알아야 했다. 넙치에 표식을 부착,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연구는 바로 이런 목적에서 시작됐다.
첨단장비를 단 '비싼' 물고기
외부에서 새로운 생물을 수입할 때도 이런 연구가 필요하다. 육식동물 블루길이 일본에서 수입되자 우리나라 어류생태계의 먹이사슬이 깨졌고, 작은 물고기와 플랑크톤이 줄어 적조현상이 일어났다. 또한 서해안 특산종 우럭이 남해안에서 대량으로 양식되는 것도 문제. 태풍이라도 불면 양식장 그물이 찢어져 강력한 육식성 물고기인 우럭이 방류되고, 그 결과 남해안 일대가 '우럭천지'가 돼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무분별하게 도입된 생물의 횡포를 막으려면 우선 그 생물의 생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한국해양연구소의 박철원 박사는 "바다 관리의 시작은 바다의 환경수용량을 측정하는 일이며, 그 한 방법으로 물고기를 일단 잡아 표시를 한 뒤 방류, 물고기의 생태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송어 연어 등 장거리를 이동하는 회귀성 어류는 어떻게 추적할까. 더욱이 강물을 가로지르는 댐들은 이들의 이동 경로를 막아 생존을 위협하기도 한다. 그러나 댐의 한쪽에 물고기 경로를 만들고 감지장치를 설치하면 희귀성 어류의 추적도 가능하다.
먼저 11mm×2.1mm 유리관에 수동탐색 송수신기(passive interrogated transponder : PIT)를 장치, 물고기에 이식한다. 이 물고기가 감지장치를 지날 때, 송수신기의 코일 안테나는 표식된 물고기가 통과함을, 그리고 집적회로 칩에 저장된 코드는 어떤 물고기인지를 알려준다. 코일이 자석효과를 내므로 별도로 충전기가 필요없다. 즉 물고기가 살아있는 한 이 장치를 통해 물고기의 이동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정보들은 감지장치와 연결된 컴퓨터로 자동 입력된다.
물에 전극을 설치, 전기를 흘린 뒤 물고기가 전극 사이를 통과할 때 전류의 변동을 측정하는 방법도 있다. 이 장치는 현재 많은 강에 설치돼 송어 연어 등이 이동하는 수를 측정한다. 이 때 전극 사이 거리는 보통 1m 이내로 짧아야 한다.
물고기를 직접 잡지 않고 많은 물고기에 표식을 장치할 수는 없을까. 인공적으로 새끼를 길러 바다에 풀어줄 때 표식을 달면 된다.
지난 8월 30일 강화도 임진강 하류에서 열린 광복기념 '황복치어방류행사'는 그 가능성을 제시했다. 황복은 현재 멸종위기에 닥친 국내 우량 어류의 하나. 방류된 약 4만마리의 황복 새끼는 1995년 5월 한국해양연구소가 인공산란 유도로 알을 부화, 사육한 것이었다. 만일 이 황복 새끼에 적절한 추적장치를 이식, 생태를 조사한다면 황복 연구는 한걸음 진전될 것이다.
하늘의 새는 어떻게 추적할까. 가장 고전적인 방식은 새에 가락지를 달고 새를 날려보낸 후 그물로 잡아 새의 이동경로를 추적하는 것. 조류에 가락지를 부착한 것은 중세 유럽 사냥용 매의 발에 금속가락지를 단 것이 최초. 프랑스 헨리 4세의 매가 24시간 후 2천k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일화가 있다.
인공위성, 희귀조 보호에 이용
최근에는 새를 잡았을 때 새의 이름 뿐만 아니라 날개길이 부리길이 체중 성별 등을 조사해 기록한다. 이 내용에 따라 새 종류를 나타내는 일련번호를 만드는 것. 가락지에는 이 일련번호와 새를 발견했을 때 연락할 주소가 적혀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매년 1백만마리 이상의 새에 가락지를 달고 4-5만마리 정도를 회수한다고 한다. 이 일에 종사하는 인원은 2천여명. 이들은 조류학 지식이 풍부하고 엄중한 심사를 거친 요원들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각 도에 야생동물실태조사원 2명씩이 배치된 정도다.
이 방법의 가장 큰 어려움은 가락지를 단 새를 다시 잡을 확률이 매우 낮다는 점이다. 또한 요행히 잡았다 해도 가락지에 표기된 주소로 연락할 만한 전문담당자가 적다는 것도 문제. 임업 연구원의 김진한 박사는 특히 "러시아는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경제성이 없는 이 분야에 대한 지원을 중단, 우리나라를 거쳐 러시아 지역으로 이동하는 새를 조사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세계적으로 수가 적은 새들은 어떻게 추적해야 할까. 희귀조를 보호하기 위해 서식지와 이동경로를 알아내는 것은 조류보호단체들의 오랜 꿈이다.
1992년 2월 세계 최대 두루미류 월동지인 일본 규슈 이즈미에서 약 2주에 걸쳐 재두루미 6마리, 흑두루미 4마리 등 10마리에 인공위성용 전파발신기를 장착시키는 작업이 진행됐다. 포획용 로켓포를 이용, 그물로 잡고 간단하게 두루미 상태를 측정한 후 발신기를 두루미 등에 장치한 것.
전파발신기가 60초마다 1회씩 발신한 전파는 지상 8백50km 우주에 있는 미국 기상위성노아(NOAA)를 통해 프랑스 토루즈 우주센터로 보내진다. 이 데이터는 PC 통신으로 일본의 조사본부로 전송된다.
성냥갑 모양의 이 발신기 크기는 56mm×33mm. 무게는 불과 45-55g 정도다. 위성용 전파발신기로는 세계 최소형이다. 전지 수명은 약 6개월. 발신기를 두루미 등에 장착시키는 리본은 6개월에서 1년 사이에 부식되므로 수명이 다한 발신기는 자동적으로 두루미로부터 떨어져 나간다. 두루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발신기와 리본을 합한 무게는 약 60g. 이는 체중의 1-2%에 불과하다. 보통 조류는 체중의 4-5% 이하의 물체를 달고 무리없이 날 수 있으므로, 이 발신기는 두루미의 이동에 별 지장을 주지 않는다. 결국 두루미 개체별로 연월 일시 경도 위도 등이 컴퓨터에 표시되므로, 두루미가 이동중인지, 혹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1994년 7월에는 우리나라 산림청 임업연구원과 일본 야조회가 공동으로 북위 45도 동경 1백 33도에 위치한 러시아 한카호에서 발신기를 두루미 4마리에 부착, 이 중 2마리가 같은 해 11월에 비무장지대인 철원에서 휴식하는 것을 확인했다.
나비, 메뚜기 등 곤충 추적도
철원지역에 많은 두루미류가 월동하는 이유는, 논에 풍부한 먹이가 있고 겨울에도 항상 15℃ 내외를 유지하는 물이 있으며 비무장지대인 탓에 인간의 위험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난다는 점 등 때문이다.
두루미와 같은 희귀조의 이동을 추적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 철새들의 출발지와 도착지 정도만을 짐작해서는 이들을 제대로 보호할 수 없다. 가령 중간 휴식지를 인간이 무분별하게 개발한다면 쉴 곳이 없는 철새들이 더이상 생존하기 어려운 것이다. 임업연구원의 이우신 박사는 "철새를 보호하기 위해 먼저 그들이 어떤 경로로 이동하는지,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 몇마리가 쉬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 발신기가 두루미류 보호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크기는 작지만 큰 무리를 지어 움직이는 곤충도 추적할 수 있다. 가령 미국의 대왕나비는 매년 미국 북부 지역에서 멕시코로 대이동을 한다.
이때 나비 날개에 색깔을 표시한 후 곳곳에 그물을 설치, 다시 잡아 나비의 이동경로를 알 수 있다. 그물을 여러 각도로 설치해서 나비의 비행 방향도 추정할 수 있다. 한편 메뚜기에 알루미늄 가루를 뿌린 뒤 레이더로 추적, 현재 아프리카 메뚜기의 대이동도 관찰하고 있다.
멧돼지 추적 2년
우리나라는 야생동물을 추적하는 연구가 얼마나 진행되고 있을까. 한마디로 거의 없다. '기초분야'에 속하는 이 연구에 인력과 재정이 지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려대 산림자원학과 김원명 박사는 이 '어려운' 환경에서 원격측정법을 도입, 국내 멧돼지 연구에 큰 디딤돌을 만들었다. 생포한 멧돼지에 마취제를 투여, 발신기를 부착하고 풀어준 후 1993년 7월부터 2년간 안테나로 추적한 것이다.
멧돼지는 야행성이고 노출을 꺼리며 행동반경이 커서 야외에서 직접 관찰하기 어려운 동물이다. 김원명 박사는 강원도 산골에서 발신기를 단 멧돼지를 끈질기게 추적, 우리나라 멧돼지의 활동시간과 범위를 알아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멧돼지는 여름과 가을의 무더운 낮시간과 한밤중에는 주로 휴식이나 수면을 취하고 해가 뜨거나 질 때 활발히 활동했다.
또한 활동과 휴식시간이 일정해서 대체로 4-6시간 활동하다 다시 4-6시간 휴식을 취했다. 앞으로 지속적이고 충분한 연구여건과 인공위성자료가 제공된다면 더욱 정밀하고 구체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현대의 첨단과학장비는 자연보호와 더불어 생태계를 보다 정확히 이해하는 데 잘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야생동물을 추적하는 일은 결코 쉽거나 낭만적인 일이 아니다. 결국 인간이 저지른 무분별한 자연파괴의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보호를 위한 포획'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또한 다른 개체를 위해 평생 '무거운 짐'을 지도록 '선택된' 야생동물은 언제쯤 자유로워질까. 과학자들은 야생동물 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는 장치를 개발하고 있다. 장치의 크기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그것이다.
이들에게 진 빚은 우리가 노력한다면 이들과 이들 자손에게 갚을 수 있을 것이다.
야생동물 원격측정, 이렇게 한다.
야생동물 원격측정법은 일반적으로 동물이동을 추적 하기 위해 무선통신장치(radio tags)를 부착하기 때문에 '무선통신 추적' (radio-tracking)이라고도 한다. 이 용어는 1852년 프랑스 포병 기술자가 목표물 위치를 측정하기 위해 처음 만들었다.
동물은 교신을 위해 청각 시각 온도 등을 이용한다. 따라서 동물들이 감지하지 못하는 전송방식을 만드는 것이 큰 과제. 대표적으로 전자기 이용 방식을 살펴보자.
전자기 스펙트럼은 파장 ${10}^{-10}$m(X선) 부터 ${10}^{3}$m에 이른다. 동물은 주로 4백-7백nm(${10}^{-9}$m)의 가시광선을 이용하므로 가장 단순하게 가시광선을 이용할 수 있다. 카메라나 텔레비전에서 동물의 행동을 직접 관찰하는 것.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심해에서도 관찰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이미지를 디지털 형태로 포착해 컴퓨터로 분석하는 방법이 발달되고 있다.
동물에 화학적 발광물질이나 발광 2극관을 부착, 보다 명확한 측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보통 발광체는 전력 소비가 많아 수명이 짧고 관측거리가 최대 1백50m 정도이며 가시광선 때문에 동물 행동을 방해할 위험이 있다.
7천-1천5백nm 파장의 적외선 빛은 대부분 동물에게 보이지 않는다. 사진필름과 텔레비전 카메라는 이 파장에 민감하다. 따라서 동물 행동을 방해하지 않고 관찰이 가능하다.
보통 지구 표면에 사는 생명체는 몸에서 1천5백nm-1mm 파장의 열을 방출한다.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는 라디오미터는 이 파장을 감지한다.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는 동물은 추운 배경에서 잘 관측된다. 그러나 동물과 주위 배경과의 관계가 복잡하며, 외부와 분리된 온도를 유지하는 동물은 관측되지 않는다.
파장 1mm-0.5m의 극초단파는 동물이 감지하지 못하므로 원격측정법 응용 여지가 크다. 그러나 이 파장은 레이더가 이용하는 파장. 레이더는 이 파장을 방출하고 목표물에서 되돌아오는 신호를 분석, 정보를 얻는다. 따라서 군사용 레이더 사용 초기에 잡힌 대부분의 파장이 새로부터 발생했다. 이 점을 이용해 철새의 위치 수 속도 고도 방향 날개짓수 등이 측정됐으며, 비행속도나 날개짓수를 비교해서 메뚜기 같은 곤충 무리도 관찰됐다.
파장 1m-10cm의 초고주파(ultra-high frequency, UHF)는 인공위성을 이용한 추적장치에 사용된다. 지구위치측정시스템(GPS:Global positioning system)일종인 아르고스(Argos) 시스템을 주로 이용한다. 각종 관측기기와 송신기를 갖는 장치를 동물에 장착, 위성이 동물의 위치나 관측데이터를 수신해서 시시각각으로 지상에 보내도록 계획돼 있다.
발신기 주파수로는 4백 1.650MHz를 주로 사용한다. 초기 아르고스 발신기는 무게가 수kg에 이르러 비교적 큰 동물 추적에만 사용됐다. 가령 북극곰, 종종 바다 위로 떠오르는 돌묵상어, 순록 등이 그것. 이후 크기가 작아져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파장 1-10m의 파(very high frequency, VHF)는 고전적인 무선추적장치에 사용된다. 기본적으로 손으로 잡는 방향안테나(directional antenna), 수신기, 헤드폰 등으로 구성된다. 동물에 부착된 발신기로부터 신호를 듣고 위치를 파악한다. 이 방법으로 민물고기의 위치 추적도 가능하다. 그러나 소음이 많아 바다고기의 측정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