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게놈은 평균 1천염기당 1개꼴로 다르다. 이 차이를 SNP라 하는데 머리카락, 피부, 눈 색깔, 키, 몸무게, 그리고 질병민감성과 같은 개인의 차이가 여기서 비롯된다. 한국인이 지닌 SNP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최신 연구들을 만나보자.
인간의 게놈 염기서열이 내년 말까지는 완전히 밝혀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밝혀질 게놈의 염기서열은 일종의 기준에 불과하다. 실제 사람 각각의 게놈은 수백만에서 1천만여개의 염기가 다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염기서열 차이가 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달리 규정하는 것이다.
인간 염기서열의 어떤 차이가 어떤 유전적 특성을 규정짓는지 밝히는 노력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특정 염기서열에 변이를 일으킨 후 어떤 형질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조사하는 연구를 통해 직접 해답을 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을 실험대상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생물체를 대신 사용해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런데 최근 게놈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기술이 날로 발전하면서 개인의 게놈 중 주요부분의 염기서열은 불과 1주일만에 밝혀낼 수 있게 됐다. 지난 10월 3일 영국 BBC 방송은 미국 셀레라 지노믹스사를 이끌었던 크레이그 벤터 박사가 71만3천달러를 내는 사람에게 핵심 염기서열을 1주일만에 CD에 담아 제공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처럼 여러 사람의 게놈정보를 파악하면 통계적인 분석으로 각 개인의 표현형질 차이와 상관관계가 있는 유전형질의 차이를 밝혀낼 수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 모든 표현형질의 원인이 되는 유전형질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개인이 가진 염기서열은 어떤 형태로 차이가 나는 것일까. 한두개의 염기가 빠지거나 더해지기도 하고, 꽤 큰 덩어리가 삭제되거나 추가되기도 하며, 염색체가 통째로 없거나 더 있기도 한다. 그런데 개인적 차이의 90% 정도는 한 염기가 다른 염기로 바뀌는 변이인데, 이를 단일염기다형성(SNP)라고 한다. 최근 이 SNP를 이용해 질병이나 의약품의 처방과 관련된 유전자를 찾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복잡한 질병 이해의 단서 제공
특정 질병을 유발하는데 관여하는 유전자를 게놈 전체에서 찾고자 할 때, 가장 일반적인 접근 방법은 가족력이 있는 환자의 가계도를 살펴보는 것이다. 가계도 구성원들의 DNA를 연관(linkage)분석하면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의 게놈상 위치를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연관분석은 돌연변이 형질과 따라 다니는 분자마커를 사용해 재조합되는 수치를 계산함으로써 연관된 정도를 파악해 상대적인 거리를 가늠하는 방법이다. 연관분석를 바탕으로 질병유전자의 위치가 대략적으로 추정되면 그 영역이 질병유발에 실제 관여하는지를 실험으로 검증한다.
지금까지 가계도를 토대로 한 연관분석을 통해 상당수의 질병유발 유전자가 규명됐다. 가족성 유방암을 유발하는 유전자인 BRCA1, BRCA2가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연관분석은 질환을 결정하는 유전자가 한두개로 소수여서 멘델의 유전법칙에 따라 유전돼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멘델 유전법칙을 따르는 질환은 혈액응고인자가 없어 출혈이 멈추지 않는 혈우병처럼 희귀유전병이 대부분이다.
반면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질환인 암, 치매, 당뇨, 고혈압 등의 발병에는 여러개의 유전자가 매우 복합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관여한다. 흔히 복합질환(complex disease)이라 부르는데, 가족·친지의 수가 많은 거대 가계도를 확보하거나 표현형이 동일한 가계도를 다수 확보해야 연관분석으로 유전자를 추적할 수 있다. 그러나 분석대상인 가계도는 보통 2-3세대에 불과하므로 발병 유전자가 위치할 것으로 추정되는 후보영역을 좁히기가 힘들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SNP를 이용해 질병유발 유전자를 검색하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SNP를 이용한 유전자 검색이 가능한 이론적 바탕은 연관불균형(LD, Linkage Disequilibrium)이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후 수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상동염색체 간에 재조합 현상이 반복됐지만 아직 완전히 뒤섞이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연관이 불균형하게 일어나며, 이를 바탕으로 인간게놈을 평균 30kb(kb는 1천개 염기쌍)인 절편으로 구분하는 일이 가능하다.
이렇게 구분된 각 LD 절편마다 하나 이상의 SNP를 확보한다고 가정해보자. 10만개의 LD절편에서 SNP 지도를 완성하면 인간게놈 전체(30억 염기=30kb×10만)에 해당한다. 그러면 질병 유전자를 찾을 때 관련 SNP를 이용해 어떤 LD절편에 속하는지 알 수 있다. 결국 SNP를 활용한 연구는 질병유전자의 위치를 30kb 범위로 축소시키며, 동시에 멘델의 유전법칙을 따르지 않는 복합질환을 유발하는 유전자의 검색에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부작용 줄이고 약효 높인다
SNP가 질병이나 약물효과에 관여하는 예가 그동안 여럿 밝혀졌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노인성 치매(알츠하이머병)를 일으키는데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 ApoE에 존재하는 2개의 SNP다. ApoE 단백질의 1백12번과 1백58번 아미노산 정보가 담긴 유전자의 암호인 코돈(codon)에서 한개의 염기가 서로다른 SNP가 있어 아미노산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ApoE 유전자는 이 SNP에 따라 E2, E3, E4 라는 3가지 일배체형(haplotype, 유전적 변이)이 있다. 그 중 E4형이 노인성 치매의 발병 위험성을 증가시키고, 치료제인 타크린(tarcrine)에 대한 반응성도 약화시킨다.
또한 유전자 FGFR3의 SNP G380R을 보유한 사람은 뼈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연골무형성증 발병률이 높다. 유전자 β-globin의 SNP E146V는 혈액이 산소를 제대로 운반 못하는 겸상적혈구빈혈증(sickle cell anemia)의 발병위험성을 높인다.
또 유전자 CETP에는 SNP B1과 B2가 있는데, B1과 B2를 둘다 가진 사람은 콜레스테롤 저하제인 프라바스타틴에 대한 반응성이 좋다. 유전자 TPMP의 SNP 2, 3A, 3B, 3C는 티오퓨린 계열의 약물에 대한 부작용을 유발할 확률을 높인다.
약과 유전형질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는 약리게놈학(pharmacogenomics) 연구는 약물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효능을 최대화해 신약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 이제 의사들은 약을 처방하기 위해서 각 환자의 SNP를 분석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맞춤의약시대에는 각 개인이 가진 SNP를 참조해 약의 종류뿐 아니라 복용량을 결정할 수 있다.
사실 맞춤의약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1백여년 전부터 실시되고 있었다. 요즈음 TV드라마 ‘태양인 이제마’에 나오는 이제마 선생은 사람의 체질을 약물반응에 근거해 4가지로 구분했다. 같은 증상을 치료하는데도 사람의 체질에 맞게 다른 약제를 처방했던 것이다. SNP는 미래판 이제마의 등장을 약속해 준다.
개인별로 달라지는 처방시대
인간의 SNP를 대량으로 정확히 분석할 수 있는 첨단기기가 2001년 4월 KAIST 생물과학과에 설치된 이후 필자의 연구실에서 본격적인 SNP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MassARRAY는 96개 샘플을 대상으로 동시에 SNP 분석에 필요한 반응을 자동으로 수행한다. 반응결과물은 MALDI-TOF 질량분석기로 수분만에 분석해 컴퓨터프로그램으로 SNP를 정확히 찾아낼 수 있다(그림 2). 삼성종합기술원 이연수 박사팀과 성균관의대 박주배 교수팀도 최근 MassARRAY를 설치하면서 SNP 연구를 시작했다.
KAIST에서는 21세기 프론티어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 과제의 일환으로 지난해부터 위암 발병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SNP 분석을 통해 찾고 있다. 삼성의료원 김종원 교수팀, 울산의대 송규영 교수팀과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현재 매우 유력한 새로운 유전자 두개를 발견했다. 위암 환자와 정상인 각각 2백 샘플을 확보한 후, 유전자 60여개에 존재하는 SNP 6백여개를 MALDI-TOF 질량분석기로 분석한 결과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보다 훨씬 작은 규모로 진행되는 국내 연구에서 거둔 고무적인 결과로 평가된다.
서울의대 이효석 교수팀은 간염으로부터 간암으로 변하는데 크게 관여할 것으로 보이는 유전자들을 SNP 분석을 통해서 최근 밝혀냈다. 또 보건복지부의 지원으로 국내 10여개 의대 연구팀들이 여러 질환의 유전자를 SNP 분석을 통해서 규명하려는 연구과제들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관절염, 골다공증과 같은 골격계 질환을 대상으로 경북의대 김신윤 교수팀이 SNP 연구를 준비하고 있으며, 류마티스성 관절염 SNP 연구를 한양대 의대 배상철 교수팀과 필자 연구팀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등 여러 연구가 태동하고 있다.
또한 약물대사에 관여하는 유전자 TPMT, Cytochrome P450 등에서 SNP를 발굴하고 그 기능을 규명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실제 임상에서 유전자를 분석한 후 약물의 적정량을 결정하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개인별 맞춤의학 시대가 국내에서도 시작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국립보건원 유전체연구소의 김규찬 박사팀은 한국인 수백명의 특정 부위 염기서열을 모두 결정해 한국인 특이의 SNP를 발굴하고 각 염색체의 일배체형을 결정하는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 생명공학벤처회사인 마크로젠은 동북아시아 국가들과 연합해 우리 민족과 뿌리가 같을 것으로 추정되는 민족들의 유전적 특성을 밝히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MyDNA 등 벤처들도 SNP를 활용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앞으로 SNP를 활용하는 연구가 인간게놈연구의 주류를 이룰 것으로 예상된다. 여러 질병에 관여하는 여러 유전자들을 효율적으로 검색하는데 SNP가 유용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질병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밝혀내면, 유전자의 변이가 특정 질병에 어느 정도 기여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러면 각 개인의 SNP를 통해 질병 발생률이 몇%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발생률이 인종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SNP 연구는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 외에도 양약과 함께 한약의 효능과 부작용 역시 유전적 소양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 SNP를 활용해 연구돼야 한다. 어떤 SNP를 가진 사람들이 효과가 최대이며 부작용이 없는지에 대해 약제마다 연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