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수소는 ‘친환경 연료’란 이름값을 하지 못한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수소에너지를 사용할 땐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지만, 수소를 만들 때 온실가스가 나오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9년 발표한 보고서 ‘수소의 미래’에서 “오늘날 전 세계 수소 생산량 약 7000만 t(톤) 가운데 76%를 천연가스에서 추출하고, 나머지 23%를 석탄에서 추출한다”고 했다. 그 결과, 수소 생산 과정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연간 8만 3000만 t에 달한다. 인도네시아와 영국에서 1년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를 합친 것과 비슷한 수치다.
수소는 생산 방식에 따라 브라운, 그레이, 블루, 그린 등 네 종류로 구분한다. 그린으로 갈수록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다. 브라운 수소는 갈탄·석탄을 태워 생산하는 개질 수소다. 그레이 수소는 천연가스를 고온·고압 수증기와 반응시켜 얻는 개질 수소와 석유화학 공정에서 부산물로 발생하는 부생 수소다. 블루 수소는 그레이 수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포집·저장해 탄소 배출을 줄인 수소를 뜻한다. 그레이 수소, 브라운 수소보다는 더 친환경이라 할 수 있지만, 여전히 소량의 탄소를 배출한다. 마지막으로 그린 수소는 전기로 물을 분해해 생산한 수소로 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 단 조건이 있다. 이때 사용하는 전기 역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로 만든 것이어야 한다. IEA는 보고서에서 “현재 전 세계 수소 생산량의 0.1% 이하가 물을 분해해 만든 수소(그린 수소)다”라고 했다.
진정한 ‘친환경 수소’를 만들려면
수소가 친환경 연료로 제 역할을 하려면 풍력,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그린 수소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높여야 한다. 재생에너지로 수소를 생산하면 시간대나 날씨에 따라 전력 생산량이 변해 불안정하다는 재생에너지의 단점도 보완할 수 있다. 낮 동안 태양광 발전을 통해 만든 잉여전력을 활용해 물을 전기분해하고, 생산된 수소를 해가 뜨지 않는 시간대나 날씨가 흐린 날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 식이다. 이렇게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만드는 방식을 ‘수전해’라 하고, 이때 사용하는 장치를 ‘수전해 장치’라 부른다.
재생에너지로 수소를 만들 때 관건은 수전해 장치의 전극이 급격하게 변동하는 전력 부하를 버티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김민중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KIER) 수소연구단 선임연구원은 “재생에너지의 전력 생산량이 급격하게 변동하면 수전해 장치가 갑자기 멈추거나 고출력 상태로 전환하는 등 여러 가지 극단적인 변화를 겪을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 노출됐을 경우 물 전기분해 반응이 일어나는 전극이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재생에너지 발전이 갑자기 멈추면 평소 운전조건과 반대로 전류가 흐르는 역전류 현상이 일어나 전극이 산화된다. 반대로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갑자기 늘어나면 전압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전극 표면이 부식된다. 이렇게 부하 변동이 짧은 주기로 계속 반복되면 전극이 되돌릴 수 없게 손상돼 수전해 장치의 성능이 나빠진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수소연구단은 이 점을 개선하기 위해 내구성과 효율이 높은 전극과 분리막을 자체개발해 안정적인 수전해 장치를 만들었다. 연구단이 2020년 개발한 ‘부하변동 대응형 수전해 스택’ 기술을 적용하면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기에너지의 출력이 5~110%로 변하더라도 수소 생산 효율을 82% 까지 낼 수 있다. 연구단은 2021년 6월 최대 84% 효율로 1시간에 2Nm3(노르말 세제곱미터·1Nm3는 0℃·1기압에서 1m3)의 그린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10kW급 알칼라인 수전해 스택’도 개발해 1008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구동하는 데 성공했다.
태양전지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고 이 전력으로 물을 분해하는 방법을 태양광-수전해(PV-EC)법이라 부른다. 이 외에, 광촉매를 이용해서 태양에너지로 바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만드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현재로선 태양에너지를 전력으로 바꾸는 기술, 전력으로 물을 분해하는 기술 모두 오랜 시간 발전해왔기에 PV-EC법의 에너지 전환 효율이 더 높다. 하지만 이론상 태양에너지를 바로 수소에너지로 전환해야 에너지 손실이 적다. 이 때문에 광촉매 관련 기술이 앞으로 더 개발되면 광촉매로 수소를 만든 방식이 더 높은 효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태양광 발전 장비와 수전해 장비를 따로 갖추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광촉매를 이용한 방식이 가진 장점이다.
이재성 울산과학기술원(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교수는 “미국 에너지부나 유럽연합(EU)은 태양에너지를 수소에너지로 변환할 때 효율이 10%를 넘기는 기술이어야 상업화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어 “PV-EC법은 이 효율을 쉽게 달성했으나, 광촉매를 이용한 방식은 아직 이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며 “광촉매를 전극 형태로 만들어 사용하는 광전기화학법(PEC)의 경우, 우리팀이 세운 7.7% 효율이 세계 기록인 상태”라고 말했다. 10% 벽을 넘기 위해선 소재 개조 기술, 전극 제조 기술 등 난관이 남아있다.
이 교수팀은 광촉매를 이용한 물 분해 기술을 실제로 태양광 수소차 충전소에 적용하기 위해 실증연구도 하고 있다. 충전소 옆에 태양광 수소 제조 패널을 설치하고, 여기서 생산된 수소를 충전소로 보내는 식이다. 이 교수는 “이상적으로 광전기화학법의 효율이 30%를 넘으면 충전소 지붕을 덮은 패널만으로도 빛을 모으기에 충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땅 위에도, 땅 아래에도 수소가 흐르는 미래 도시
수소의 무게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원자 중에서 가장 가볍다. 1kg당 33.3kWh(킬로와트시·1kW의 전력을 1시간 생산한 전력량)의 사용 가능한 에너지가 저장돼 있어, 같은 무게의 메테인보다 에너지를 2배 이상 낼 수 있다. 하지만 부피를 기준으로 보면 에너지 밀도가 1m3 당 3kWh로 메테인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수소를 저장하고 운송할 때는 부피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현재는 압축하거나 액화하는 방법, 톨루엔 등 액체에 수소를 녹여 저장하는 방법, 수소를 암모니아나 메탄올 등 연료로 전환하는 방식으로 부피를 줄인다.
압축된 수소 기체는 트럭이나 튜브 트레일러로 운송한다. 이때 수소의 압력은 대기압의 200~700배 수준인 200~700bar(바·1bar는 0.98692atm)에 이른다. 500bar로 압축할 경우 점보 튜브 트레일러 한 대에 압축된 수소를 최대 1100kg까지 실을 수 있다. 많은 양의 수소를 한번에 운송해 운송 단가를 낮추기 위해 수소를 액화하기도 한다. 수소를 영하 253℃로 냉각하면 수소가 액체 상태로 변한다. 이를 트럭으로 운송할 경우, 트럭 한 대에 최대 3500kg의 액화 수소가 들어간다.
더 많은 양의 수소를 더 먼 거리로 운송할 목적으로 지하 수소 수송관을 건설하기도 한다. 국내에는 울산 석유화학단지에 1960년대 설치한 120km 길이의 수소 배관이 운영되고 있다. 울산시는 2020년 12월 1.3km 길이의 배관으로 수소 생산공장과 울산시 남구 ‘울산 투게더 수소충전소’를 연결했다. 2011년 일본 후쿠오카 기타큐슈, 미국 캘리포니아주 토런스에 이어 수소 생산공장에서 배관으로 수소를 공급하는 세 번째 사례다. 하루 14시간 운영되는 이 수송관을 통해 매일 770kg의 수소가 공급된다. 수소차 130여 대를 충전할 수 있는 용량이다. 김종명 울산시 에너지산업과 주무관은 “이 수송관을 타고 수소가 압축된 기체 상태로 운송된다”며 “수송관에는 광섬유 센서를 함께 묻어 혹시 모를 누출을 모니터하고 있다”고 했다. 이 외에도 도시가스 등 기존 화석연료를 수송하던 관을 활용해 수소를 운송하는 방식이 있다. 또 배편으로 액화수소나, 톨루엔 등 액체에 저장된 수소, 암모니아, 메탄올 등 연료로 전환된 수소를 운송하는 방식도 있다.
문제는 가격이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2021년 5월 발표한 보고서 ‘그린 수소 공급: 정책 수립을 위한 제언’에서 트럭으로 수소를 수송할 경우 수송용량이 적고, 수소를 액화한다고 해도 다시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든다고 짚었다. 수송관으로 수소를 수송하려고 해도 새로 건설하는 데 1km당 수십억 원의 예산을 들여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수소 수송관은 화석연료 수송관보다 10~50% 더 비싸다. 반면, 기존 화석연료 수송관을 수소 수송관으로 개조해 사용할 경우 새로 수소 수송관을 건설할 때의 10~25% 수준으로 비용이 줄어든다. 기본 설비를 갖추고 나면 수소 수송관은 같은 양의 에너지를 전기에너지 형태로 수송할 때보다 10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게 나를 수 있다.
압축된 수소를 수송할 탱크도 비싸다. 이는 수소 운송 트럭뿐만 아니라 수소차에 탑재하는 수소연료탱크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는 차량에 설치되는 수소연료탱크의 내피를 수소의 투과를 최소화하는 나일론 소재로, 외피는 700bar의 높은 압력을 버티는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으로 만든다. 복잡한 구조 탓에 생산단가가 높다.
수소의 부피를 가장 많이 압축시키는 방법은 고체로 만드는 것이다. 최근 연구 중인 분야는 수소를 니켈, 철, 티타늄 등 금속 소재에 붙여 저장하는 고체수소저장법이다. 수소가 금속에 침투해 금속-수소 결합을 형성하는 원리를 이용한다. 김민중 선임 연구원은 “상온에서도 수소를 저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금속 소재 무게 대비 1~2%만 수소와 결합하기 때문에 저장량이 낮고 수소 저장·방출 과정에서 열에너지가 출입하는데 이 열을 처리하다 보면 저장 시스템의 부피가 커진다는 단점이 있다”고 했다. 이어 “금속 소재의 수소 저장량을 획기적으로 높일 소재를 개발해 더 안전하고 경제성이 높은 수소 저장 기술을 완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기차와 공존하는 수소차의 생태계를 그리다
“Exactly, fuel cells=fool sells(수소 연료전지는 바보나 판다.)”
미국의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수소차를 부정적으로 보는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2020년 6월 위와 같은 내용을 트위터에 올리며 논란을 일으켰다. 머스크는 수소차가 ‘바보나 파는 물건’이라는 이유 중 하나로 수소가 차량에 사용하기엔 에너지 저장 방식이 비효율적이라는 점을 꼬집는다.
단위 부피당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양이 작다는 건 승용차 시장에서 큰 약점이다. 작은 차 안에 수소연료탱크를 싣다 보면 차 내부 공간을 충분히 활용하기 어려워진다. 수소 저장 기술이 고군분투하는 가운데, 상용차 시장에서 수소차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상용차는 사업에 사용되는 자동차로 트럭, 버스 등 주로 사람이나 물건을 수송할 때 쓴다.
승용차보다 규모가 큰 상용차에서 중요한 건 ‘얼마나 가볍냐’다. 부피는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진다. 이런 이점을 살려 현대자동차는 2020년 세계 최초로 대형 수소전기트럭 ‘엑시언트’를 양산해 스위스로 수출했다. 트럭, 버스 등 수송용 차량은 매일 일정한 경로를 따라 먼 거리를 이동한다. 수소차의 대표적인 장점인 긴 주행거리가 여기서 빛을 발한다. 수소충전소를 거쳐오는 경로로 이동하면 되기 때문에 수소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이 교수는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가 낮아 대형트럭, 선박, 비행기 등에는 사용하기 어렵지만, 수소연료전지는 가능하다”며 “소형차에는 배터리, 대형 운송 모빌리티에는 수소연료전지를 사용하는 식으로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는 “다만 승용차의 경우엔 두 기술 모두 적용 가능하기 때문에 여러 국제기관은 전기차와 수소연료전지차가 궁극적으로는 시장을 비슷하게 나눠가며 발전할 것으로 예측한다”고 설명했다. “전기는 대용량으로 저장하기 어렵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발전 과정에서 과량으로 발생하는 전기를 바로 저장하지 않으면 버려지지만, 수소는 화학연료이기 때문에 저장이 용이하다”며 “잉여전력으로 수소를 만들면 상당히 싸게 수소를 만들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김민수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도 전기차와 수소차가 공존할 것으로 내다봤다. 김 교수는 “화석연료 규제를 바탕으로 전기차와 수소차 시장 모두 서서히 성장하고 있다”며 “전기차의 경우엔 크기가 작은 소형차부터 영역을 확보하는 반면, 수소차는 수소연료탱크만 더 달면 주행거리가 더 길어지기 때문에 트럭, 트레일러 등 차량의 크기가 커질수록 강점을 보인다”고 했다. 그는 “수소차는 단순히 전기차와 비교해 자동차 시장에서 어떤 것이 더 우위에 있느냐를 볼 것이 아니라, 화석연료 중심의 경제에서 수소를 중심으로 한 수소 경제로 전환해가는 과정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