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7년 스위스의 발명가 아이작 드 리바즈는 드 리바즈 엔진 자동차를 개발했다. 현대적인 자동차의 시작을 알린 독일 공학자 카를 벤츠의 화석연료 내연기관 자동차가 처음 개발된 해(1885년)보다 약 80년 앞섰다. 특이한 것은 연료였다. 리바즈는 풍선 속에 담아 둔 수소에 스파크를 가해 산소와 반응시키는 방법으로 폭발적인 연소를 유도했다. 오늘날 ‘수소 내연기관 자동차’라고 부르는 자동차의 시조다.
수소는 1g으로 142kJ의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휘발유의 네 배, 천연가스의 세 배 수준이다. 에너지 효율은 높지만 온실가스 배출은 적다. 달리는 수소차에서는 물만 배출된다.
하지만 수소 내연기관차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다. 수소의 저장과 수송이 불편하다는 점이었다. 반면 화석연료는 훨씬 쉽고 간편했다. 수소 내연기관은 80년 뒤, 연료만 다를 뿐 기본적인 구동 원리가 똑같은 화석연료 내연기관에 밀려 자동차 산업의 주류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100년 이상 대중에게서 잊혀졌다.
수소 내연기관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또 다른 원리의 수소 에너지 기술이 개발됐다. 수소연료전지다. 1839년 영국 물리학자 윌리엄 그로브가 개발한 이 기술은 수소를 직접 태우는 대신 연료전지 양쪽에 수소와 산소를 넣어 전력을 만들었다. 이론적으로 수소연료전지는 수소 내연기관보다 에너지 효율이 좋다. 현재 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한 수소연료전지차(FCEV)의 에너지 효율은 200년 전 개발된 수소 내연기관은 물론, 자동차 산업의 주류인 가솔린 엔진보다 45% 높게 나타난다.
하지만 수소연료전지가 처음 개발된 당시엔, 이 기술 역시 화석연료 내연기관에 밀려 자동차 산업에 도입되지 못한 채 잊혀졌다. 이 기술이 다시 주목 받은 것은 개발된 지 100년이 훌쩍 넘은 1950년대 후반이었다. 미국과 옛 소련은 우주선에 탑재할 동력원으로 수소연료전지에 주목했다. 관련 연구가 활기를 띠었다.
1965년 미국 우주선 제미니 5호에 처음으로 수소연료전지가 탑재됐다. 이듬해 첫 수소연료전지차도 나왔다. 1966년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만든 ‘일렉트로밴’은 주행거리가 약 240km였으며 최고 시속 112km까지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커다란 수소 탱크 때문에 탑승 인원이 2명으로 적었고, 자동차 생산 원가와 수소 가격이 높아 상용화로 이어지진 못했다.
비록 눈에 띄는 상용화 사례는 드물었지만, 개발은 이어졌다. 2001년 일본 혼다가 수소연료전지차 ‘FCX-V4’를 출시해 미국과 일본에서 처음으로 도로용 자동차 승인을 받았다. 이어 현대자동차가 2013년 ‘투싼 ix Fuel Cell’을 출시하면서 세계 최초로 수소연료전지차 양산에 성공했다. 투싼 ix Fuel Cell의 주행거리는 588km로, GM의 일렉트로밴이 기록한 주행거리를 두 배 넘게 늘렸다. 최고속도 역시 시속 160km로 크게 높였다.
100여 년간 이어져 온 내연기관 자동차산업이 신기후체제에 발맞춰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 중국, 캐나다 등이 2035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노르웨이는 이보다 빠른 2025년, 네덜란드와 스웨덴은 2030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수소연료전지차 시장도 성장하고 있다. 수소 전문 시장조사기관 H2리서치에 따르면, 수소차 시장은 2021년부터 연평균 58.6%씩 성장해 2030년엔 한 해에 105만 대가 판매될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조사기업 IHS 역시 수소차 연간 판매 대수가 2022년 26만 대, 2030년 220만 대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소차 시장이 커지려면 사회 전체의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주유소와 도시가스 공급망 등 화석연료 기반의 현재 에너지 시스템을 수소를 중심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한국 정부는 2018년 ‘혁신성장 전략투자 방향’에서 수소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경제산업 구조인 ‘수소경제’를 3대 전략투자 분야 중 하나로 선정했다. 이어 2019년 1월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마련해 수소경제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로드맵에 따르면 2040년까지 수소차를 620만 대 생산하고 수소충전소를 1200개소 구축할 예정이다. 수소 공급량은 연간 526만 t(톤)을 확충하고, 가격도 1kg에 3000원까지 내릴 계획이다.
수소차 수백만 대가 국토 위를 누비고 다니려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먼저 수소충전소 등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2021년 4월 기준으로 한국 땅에서 달리고 있는 수소차는 1만 3647대다. 하지만 수소 충전소는 단 66개소다. 이마저도 수도권이나 울산, 대전, 광주 등 주요 도시에 몰려있다. 비싼 가격도 현실화해야 한다. 2021년 기준 국내에 출시된 수소연료전지차는 현대차가 2021년 1월 출시한 ‘2021 넥쏘’가 유일하다. 출시가가 6765만~7095만 원으로 차종이 비슷한 다른 차량보다 2~3배 비싸다. 수소 충전 요금은 1kg당 7000~8800원 선이다.
안전에 대한 우려도 수소연료전지차가 넘어야 할 산이다. 수소는 가연성 물질로 공기 중 수소 농도가 4~74%일 때 폭발위험이 높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인명·재산피해 또는 화재가 발생한 수소가스 관련 사고는 총 11건이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9년 사상자 8명을 낸 강원도 강릉 수소 탱크 폭발사고다. 강릉과학산업단지에서 연구 목적으로 사용하던 수소저장탱크의 내부 압력을 잘못 관리하면서 산소가 유입됐다. 여기에 정전기 불꽃이 발생하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전 세계적으로 수소충전소에서 발생한 사고는 2019년 노르웨이에서 넬(NEL)사의 수소충전소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가 대표적이다. 수소탱크에 플러그가 잘못 조립돼 발생했다. 한국과 노르웨이의 사례 모두 사람의 실수로 벌어진 인재다.
수소는 가볍고 빠르게 흩어지는 특성 때문에 실제 폭발 위험성은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9년 발표한 ‘수소 안전관리 종합대책’에서 공기 무게의 14분의 1 수준으로 가볍다는 특성 때문에 수소는 공기 중으로 누출돼도 빠르게 확산해 폭발 가능성이 가솔린, 프로판, 메탄 등 화석연료보다 낮다고 설명했다. 산업통상지원부는 “수소는 그동안 석유화학, 정유, 반도체, 식품 등 다양한 산업현장에서 수십 년간 사용해온 가스로써 이미 안전관리 기술력이 축적된 분야”라고 했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이 활발해지면서 이들 에너지를 저장해 둘 연료로도 수소가 활약할 전망이다.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을 이용해 물을 분해하면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 연료인 ‘그린 수소’를 만들 수 있다. 그린 수소는 시간에 따라 발전량이 일정하지 않은 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한다. 재생에너지 기술이 발전하면 수소에너지의 생산 단가도 낮출 수 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는 2020년 발표한 ‘그린수소 생산비용 절감 전략’ 보고서에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저렴해지면 그린수소 생산단가를 85%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