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출전 48년만에 한국이 첫승을 달성하며 16강에 진출한 것은 물론이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성적을 거두었다.이번 월드컵을 6가지 키워드로 풀어봤다. 레드, 히딩크, 헤딩, 징크스, 페널티킥, 골대. 과학적 시각으로 전세계인의 축제를 다시 보자.
1 레드 - 경기장서 시각 효과 뛰어나
레드는 이번 월드컵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키워드. 정열, 행운, 환희, 사치, 흥분, 선동, 공격성 등을 상징하는 레드는 이번 월드컵을 통해 대표팀을 응원하는 ‘붉은악마’의 대명사가 됐다.
붉은악마가 흉내낸 대표선수들 축구복의 붉은색은 경기장의 조명이나 햇빛 아래서 눈에 잘 띈다. 긴 파장(빨강)에 민감한 눈의 원추세포가 주로 밝은 곳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기 때문이다. 또 그라운드의 초록색은 붉은색의 보색이라 축구복의 붉은색은 더욱 도드라진다. 그래서 경기장의 관중이나 길거리응원단이 태극전사들을 주목하기 쉽다.
길거리응원은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펼쳐졌다. 광화문에서 시청까지의 거리를 비롯해 전국의 붉은 인파는 6월 4일 폴란드전 50만에서 22일 스페인전 5백만으로 급증했다.
우리 민족의 결집력을 전세계에 알린 길거리응원은 사람들을 거리로 내모는 나름대로 독특한 매력을 가진다. 거리에서 함께 응원하다 보면 가슴 속에서 꿈틀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사회심리학적으로는 군중심리의 한 특성이다. 군중은 단순히 개개인을 산술적으로 합한 존재가 아니다. 마치 수소(H)와 산소(O)가 이 둘의 결합체인 물(${H}_{2}$O)과 다르다는 점과 비슷하다. 군중 속에 있는 사람은 자신 이상의 감정이나 행동을 경험하는데, 이것이 바로 군중심리다.
한국팀의 승리를 기원한다는 공통분모로부터 출발한 길거리응원. 함께 모인 수많은 인원이 일치된 모습을 보여주며, 각자가 눈과 귀, 그리고 피부를 통해 서로 자극을 받았다. 대형전광판이라는 매체와 더불어 ‘대-한민국’이나 ‘오- 필승 코리아’ 같은 간결한 구호와 리듬은 이런 자극에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응원단 속에 있던 누구나 자율신경계 중의 교감신경이 활성화돼 맥박이 빨라지고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솟구치는 짜릿한 흥분과, 더 나아가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되면서 밀려오는 황홀한 감동을 느꼈던 것이다.
붉은악마의 길거리응원은 그 자체가 즐거운 자극을 주는 ‘축제’였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팀의 승리는 축제의 하이라이트였다.
2 히딩크 - 산소섭취량 늘려 압박축구 실현
한국이 월드컵 첫승과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초과해 4강까지 진출하자 이번 월드컵 내내 대표팀 감독 히딩크의 신드롬이 불어닥쳤다. 히딩크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얼마만큼 바뀌었고 이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히딩크호의 변화를 통계로 알아보자. 조별리그와 16강전을 치른 후 분석결과를 보면 한국팀의 공격적인 플레이를 확인할 수 있다. 경기당 페널티지역 내에서의 슈팅은 6.28회로 32개국 중 14위를 기록했지만, 이들 슈팅 가운데 70%인 4.42회가 골문 안으로 향해 2위를 차지했다. 슈팅이 득점으로 이어지는 골 결정력 확률은 19%로 15위였다. 하지만 전체 슈팅 가운데 골지역 내에서의 슈팅 비율은 57%로 16강에 진출한 팀 중 1위를 차지했다. 결국 히딩크호는 슈팅의 정확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문전에서 어느 팀보다 훨씬 활발하게 상대를 몰아붙였다는 말이다.
히딩크호는 패스성공률도 높아졌다. 조별리그 폴란드전에서 71.7%, 미국전에서 82.9%를 보였다. 특히 미국전의 수치는 브라질, 독일, 프랑스,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이 조별리그 2차전에서 보여준 80% 이상의 패스성공률과 맞먹었다. 이는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팀이 ‘뻥축구’라는 오명을 벗고 정밀한 경기를 펼쳤다는 증거다.
대표팀 변화의 원동력은 히딩크 감독이 가장 중시한 체력이다. 대표팀의 체력은 파워프로그램을 통해 업그레이드됐다. 특히 20m 왕복달리기인 ‘셔틀 런 테스트’가 효과 만점이었다. 1982년 캐나다의 스포츠과학자 레거 박사가 개발한 이 훈련방법은 최대산소섭취량을 늘려 지구력과 순발력을 강화하는데 목적이 있다. 체중 1kg당 1분에 섭취할 수 있는 산소의 양인 최대산소섭취량이 늘어날수록 파워와 스피드가 좋아지고, 전력질주를 한 뒤에도 피로 회복속도가 빠르다. 유럽 프로축구선수들은 한 경기에서 평균 96회 전력질주를 하는데, 셔틀 런 테스트에서는 1백회 이상 왕복달리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선수들은 혹독한 훈련을 통해 대부분 1백30회 이상의 관문을 통과했다.
보통 유럽선수들을 능가하는 체력을 바탕으로 한 히딩크호는 압박축구와 창조적인 플레이, 그리고 멀티플레이어로 무장했다. 90분 내내 지치지 않는 체력과 조직력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압박축구, 경기 중 항상 생각하며 펼치는 창조적인 플레이, 한명의 선수가 공수를 넘나들며 제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가 그것이다.
히딩크호의 위력은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페널티킥을 실축하고 선제골을 허용한 뒤, 수비수 3명을 공격수 3명으로 교체하는 놀라운 전술로 후반에 동점골을, 연장전에서는 결국 역전골을 뽑아냈다. 이같은 전술은 지칠 줄 모르는 체력과 유상철이나 송종국 같은 멀티플레이어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던 것이다.
아울러 대표팀의 성공 뒤에는 히딩크 감독의 카리스마, 믿음, 인간미, 열린 마음이 있었다.
“나는 한국 선수들을 대단히 사랑한다. 그들의 순수함은 나를 들뜨게 한다. 당신들이 조급한 마음을 가지고 비판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때, 나는 6월을 기다려 왔다. 세계 유명 축구팀들이 우리를 비웃어도 반박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월드컵에서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네덜란드 신문에 기고했던 히딩크 감독의 말이다. 그는 자신의 말을 지켰다.
3 헤딩 - 둥근 머리와 공이 만드는 예측불능
연장전 후반도 얼마 남지 않은 순간 ‘아줌마’ 머리가 솟구치며 날아오던 공의 방향을 바꾸자 골네트가 흔들렸다. 이탈리아와 치른 16강전 1백17분의 사투에 마침표를 찍던 안정환 선수의 골든골 장면이다. 미국전에 이은 두번째 헤딩골이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유난히 헤딩골이 많이 터졌다. 조별리그, 16강전, 8강전에 치러진 60경기에서 총 1백52골이 나왔는데, 이 가운데 페널티킥을 제외하면 발로 찬 슛에 의한 골은 1백1골로 66.4%를, 헤딩슛에 의한 골은 37골로 24.3%를 차지했다. 헤딩골의 비중은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의 17.7%(전체 1백41골 중 25골),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의 18.1%(전체 1백71골 중 31골)에 이어 증가하는 추세다. 또 8강전까지 득점 공동선두를 달리던 독일의 클로제 선수는 5골을 모두 헤딩으로 넣었다.
한때 헤딩은 머리에 충격을 주는 위험한 행위로 여겨졌고 미국에서는 축구를 기피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특히 준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날아온 공이 머리에 맞을 때는 공의 운동량이 모두 머리에 전달되기 때문에 위험하다. 그런데도 헤딩슛이 계속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압박과 밀착 마크를 동원한 수비 시스템에서 헤딩슛이 발로 차는 슛에 비해 위력적이기 때문이다. 발로 차는 슛은 방향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반면, 둥근 공과 둥근 머리가 충돌하는 헤딩슛의 경우 골키퍼가 어디서 날아올지 종잡을 수가 없다. 멕시코와 이탈리아가 맞선 조별리그전에서 멕시코의 보르헤티 선수가 골키퍼를 등진 상태에서 270°를 돌며 날린 헤딩슛이 대표적인 예다.
한편 이번 대회에는 빡빡머리 선수가 굉장히 많이 눈에 띄었다. 브라질의 호나우두, 독일의 양커, 잉글랜드의 캠블 등. 과연 헤딩슛에 빡빡머리가 유리할까. 축구전문가들에 따르면 헤딩의 정확도와 머리카락의 존재와는 거의 관계가 없다. 오히려 머리카락이 없으면 신체 접촉이 일어날 때 다치기 쉽고 머리에서 땀이 솟아날 때 그대로 눈으로 흘러들어 경기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도 있다. 사실 빡빡머리는 잉글랜드 베컴 선수의 ‘닭벼슬 머리’처럼 개인의 취향에 따른 유행이라는 말이 맞겠다.
4 징크스 - 설명가능한 머피의 법칙
이번 월드컵에서는 팀마다 징크스에 울고 웃었다. 개막식 당일 첫시합에서 전년도 우승팀이 이기지 못한다는 ‘개막식 징크스’에 프랑스는 울었고, 역대 월드컵 개최국이 첫경기에 패하지 않으며 16강에 100% 진출한다는 ‘개최국 징크스’에 한국과 일본은 웃었다. 34년간 스웨덴을 한번도 꺾지 못했다는 잉글랜드는 후반에 터진 동점골에 ‘스웨덴 징크스’를 깨는데 실패한 반면, 유럽에 약하다는 한국은 5월 들어 유럽팀과의 평가전에서부터 선전하더니 월드컵 본선에서는 폴란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잇달아 격파하며 ‘유럽 징크스’를 뛰어넘었다.
징크스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에서 마술에 사용하던 딱따구리의 일종인 개미잡이(Jynx torquilla chinensis)라는 새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다분히 주술적인 의미도 가진다. 불길한 일이나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운명적인 일을 일컫다. 징크스는 왜 생기는 것일까.
징크스와 비슷한 것 중에 ‘머피의 법칙’이 있다. 1940년대 미국의 한 공군기지에서 기술자의 실수로 중요한 실험이 실패하자 머피 대위가 남겼다는 “잘 되거나 잘못될 수 있는 일은 반드시 잘못된다”는 명언이 바로 머피의 법칙이다. 내가 선 줄은 항상 다른 사람이 선 줄보다 늦게 줄어들거나, 우연히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우산을 챙겨 외출하면 하루종일 햇빛이 쨍쨍 내리쬔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이같은 일의 대부분은 자신의 운수와 무관하다. 예를 들어 5대의 현금인출기 중에서 한줄을 선택하고 기다렸을 때 자신의 줄이 먼저 줄어들 확률은 1/5, 다른 줄이 먼저 줄어들 확률은 4/5이기 때문이다.
축구와 같은 스포츠의 징크스에는 심리적인 요소가 일부 작용하지만, 머피의 법칙처럼 징크스도 분명 객관적인 실력 차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운수로만 좌우되기에 90분은 너무나 길기 때문이다. 징크스와 이변이 연속된 이번 월드컵은 그만큼 세계축구가 상향 평준화됐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과학적인 훈련으로 체력과 조직력을 끌어올리며 강팀과의 평가전을 마다하지 않은 한국팀이 이번 월드컵에서 유럽 징크스를 깬 일이 대표적인 예다.
5 페널티킥 -승부차기 이기는 선수배치
공의 속도와 골키퍼의 반응속도를 감안할 때 페널티킥은 제대로만 차면 들어간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에서는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는 일이 쉽지만 않다는 점을 보여줬다. 8강전까지 총 18번의 페널티킥이 선언됐는데, 이 가운데 5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키커의 심리적인 부담도 컸겠지만, 선수의 움직임이나 골의 방향이 골키퍼에게 들켰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스포츠과학 저널’에 실린 한 연구에 따르면, 유능한 골키퍼는 페널티킥의 방향을 예측하는데 좀더 정확하고, 움직이기 전에 키커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피며 최대한 오래 기다린다. 특히 키커가 공을 차는 순간 공을 차는 발, 그렇지 않은 발, 그리고 공이 있는 지역에서 자신이 대처해야 할 정보를 찾아낸다.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의 네번째 킥을 막아낸 한국의 이운재 골키퍼는 이같은 점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어김없이 16강전부터는 연장전까지 승부가 가려지지 않은 경우 승부차기가 펼쳐졌다. 승부차기는 페널티킥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승부차기에서 이기려면 키커를 어떤 순서로 배치해야 할까. 먼저 승부차기는 양팀의 선수가 5명씩 번갈아 가며 찬다. 이때 스포츠과학자들은 5명의 키커를 페널티킥 실력의 역순으로 배치하는 것이 좋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한다. 맨처음 페널티킥을 찰 선수로 5명 가운데 가장 못 차는 선수를, 두번째 키커로는 그다음 잘 차는 선수를 내세우고, 5번째로는 가장 잘 차는 선수를 내세워야 한다는 얘기다. 또 5번의 승부차기에서도 결판이 나지 않을 경우에는 나머지 선수 중에서 페널티킥을 가장 잘 차는 선수가 키커로 나서야 한다.
실제 한국팀이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벌인 승부차기를 살펴보자. 양팀은 첫번째 키커에서 세번째 키커까지 골을 성공시켰다. 한국의 네번째 키커 안정환 선수가 골을 넣은 후 스페인의 네번째 키커가 찬 공이 이운재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스코어 4대3. 한국의 마지막 키커 홍명보 선수. 침착하게 골을 성공시키며 경기를 끝냈다. 골키퍼의 능력만큼 마지막 키커의 부담이나 중요성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 결과였다.
6 골대 - 수mm 차이로 희비 엇갈려
이번 월드컵대회의 최대 이변은 전대회 우승국 프랑스가 16강 문턱에도 가지 못한 일이다. 그것도 한골도 못 넣고 말이다. 유럽 3개 리그 득점왕이 포진했다는 팀이 왜 그랬을까. 개막전 징크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3경기에서 브라질에 버금가는 26번의 슈팅을 하고도 5번이나 골대를 맞춘 불운 때문이었을까. 반면에 개막전에서 프랑스를 누른 세네갈은 16강전에서도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골든골을 터뜨렸다. 그것도 골대를 맞고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 또 한국과 8강전을 치른 스페인은 연장전 전반에 결정적인 슈팅이 골대를 맞으며 승리와 멀어졌다.
유난히도 이번 월드컵에서는 공이 골대를 맞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 어떻게 맞으면 튕겨나가고 또 어떻게 맞으면 골문 안으로 들어갈까. 간단히 축구공이 크로스바를 맞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국제축구연맹(FIFA)의 규정에 따르면, 크로스바의 지름은 12.7cm 이내여야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공이 맞는 지점이 2cm만 어긋나도 공이 튀는 방향이 상당히 달라진다.
축구공이 원형의 크로스바 아래쪽 네 지점에 부딪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그림). 가장 위쪽 지점에 맞는 공의 윗부분은 크로스바의 중심에서 2.5cm 위에 위치하고, 나머지 세 지점에 맞는 공의 윗부분은 이보다 차례대로 2.5cm씩 아래에 위치한다. 반발계수가 0.7일 때, 즉 충돌한 후 공의 속도가 충돌하기 전 공 속도의 0.7배로 줄어들 때 부딪치는 위치가 7.5cm 차이만으로도 공이 크로스바에 맞고 튀는 방향에서는 거의 90° 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크로스바를 맞고 튀는 공도 지면에 부딪쳐 튀는 공과 마찬가지로 회전한다. 앞의 예에서 크로스바의 가장 아래쪽 부분에 맞는 경우를 보자. 공이 시속 50km로 크로스바에 부딪친다면 초당 10회만큼 회전한다고 계산된다. 공이 이 경우보다 더 아래쪽의 크로스바에 맞는다면 그대로 미끄러지듯이 골문 안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다.
결국 프랑스와 세네갈은 공과 골대가 맞는 지점에서 수mm 만큼의 작은 차이로 희비가 교차했다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