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가 2019년 11월 공개한 전기차 사이버트럭의 모습. 최상급 모델은 40 퓨처 모빌리티 한 번 충전으로 805km 이상 달릴 수 있다.
국내에 처음 전기차가 도입된 것은 2009년 무렵이었다. 정부가 탄소배출을 줄이고자 전기차 보급 촉진 정책을 펴며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2010년까지 70여 대를 보급하는 데 그쳤다.
보급 초기 전기차는 가격 면에서도, 인프라 측면에서도 한계가 많았다. 당시 전기차는 한 번 충전해 갈 수 있는 거리가 100km 정도로 짧았고, 차량 가격은 일반 가솔린차보다 비쌌다. 충전소 숫자도 적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적극적으로 충전소를 구축하고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해 가격 격차를 메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전기차 성능이 빠르게 개선돼 1회 충전만으로 400km 이상을 달릴 수 있는 모델이 나오면서 성장의 동력을 얻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5년 5712대 수준이던 전기차는 2018년 5만 5756대로 10배가량 늘었다. 2020년 12월 기준 약 13만 5000대가 운행 중이다. 2015년에 비하면 약 24배 증가한 수치다.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자동차에 대한 인식이 높아진 데다, 운영비가 적게 들고 차량의 성능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진 덕분이다. 충전 인프라도 확충되고 있어 과거보다 충전 불편도 줄어들었다.
비싸고 불편했던 전기차가 달라지고 있다
전기차는 가솔린과 디젤 내연기관차에 있는 엔진이 없다. 그 대신 배터리를 통해 전기를 공급받고, 전기에너지만으로 전기모터를 구동한다. 내연기관차가 약 3만 개의 부품이 모여 동력을 만들어 내는 데 비해, 전기차 부품 수는 약 1만 1000개로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다.
하지만 아직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훨씬 비싸다. 현대자동차의 코나를 예로 들면, 2021년 7월 기준으로 휘발유 모델이 1999만 원, 전기차 모델이 4690만 원이다. 전기차가 두 배 이상 높다. 이는 배터리팩의 가격이 높기 때문이다. 차량 가격의 30~40%가 배터리 가격이다. 이에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희소자원인 코발트 함량을 줄이는 기술과 배터리 용량을 늘리는 기술 개발이 활발하다. 2010년 배터리 용량 1kWh(킬로와트시·1kW의 전력을 1시간 생산한 전력량)를 생산하는 데 드는 단가는 1000달러(약 114만 원)가 넘었다. 하지만 2020년에는 120달러(약 14만 원) 수준으로 빠르게 줄어들었다.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전기차의 가격도 점차 낮아질 것이다.
지금은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해 기존 내연기관차와 전기차의 격차를 줄이고 있다. 2021년 서울시 기준 신차 가격 6000만 원 미만은 최대 1200만 원, 6000만~9000만 원은 최대 60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세금 혜택도 준다. 연비와 1회 충전 주행거리에 따라 보조금의 규모를 달리하며 성능 좋은 차량의 구매를 유도하고 있다.
정부가 전기차 시장 확대를 위해 정책적으로 관여하는 부분은 또 있다. 바로 충전이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공공장소에 우선적으로 인프라를 마련하고 중·장거리 운행 시 불편함이 없도록 고속도로 휴게소 등 주요 지점에 충전소를 설치하고 있다. 2020년 12월 기준 국내 공용 전기차 충전기는 3만 4639기가 있다. 이 중 23%인 7959기가 급속충전기다. 현재 국내 급속충전기 1기당 전기차 수는 16.9대인데 1기당 10대 이하가 적정한 수준이다. 충분한 충전소를 확보하는 것은 2025년까지 정부가 계획하고 있는 전기차 113만 대 보급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중요하다.
미래 전기차 핵심은 배터리·반도체·자율주행
전기차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배터리 성능의 발전이 가장 돋보인다. 기존 리튬이온배터리에 사용되는 흑연계 음극재의 한계를 넘어서는 실리콘 기반 음극재가 개발돼 용량이 늘어났고, 양극재도 코발트 대신 니켈 비중을 늘리면서 에너지 밀도를 높였다. 모두 배터리의 성능을 높여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한 기술이다. 한 번 충전으로 주행할 수 있는 거리가 400km 이상으로 늘어나 거리의 제약이 사라지고 있다.
전기차에는 많은 반도체가 사용된다. 내연기관차에 탑재된 반도체가 200~300개 정도라면, 전동화(electrification·화석연료 대신 전기에너지로 주행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된 전기차에 사용되는 반도체는 두 배 이상 많다. 그야말로 굴뚝 산업에서 반도체 산업으로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최근에는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전기차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정도로 반도체는 전기차의 핵심 부품 중 하나다.
차량용 반도체는 섀시 제어, 파워트레인 제어, 바디 제어, 차량 내외의 통신 등에 다양하게 활용된다. 차량이 전동화될수록 사용되는 차량용 반도체의 수도 늘어난다. 최근에는 자율주행 기술도 가세했다. 자율주행 레벨3 이상인 차량은 2000개 이상의 반도체가 필요하다.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한 전기차는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 차량 스스로 운행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면서, 충전과 운전을 더 이상 인간이 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전기차에서 사용하고 남은 전기를 다른 차량에 보내거나, 집안의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전기차가 여는 새로운 모빌리티 시대
인류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한 전기차는 약 190년 전 영국 스코틀랜드 사업가인 앤더슨이 발명한 원유 전기마차였다. 이후 프랑스의 가스통 플란테가 축전지를 만들며 전기차가 급속도로 발전했다. 소음이 없고 냄새와 진동이 적은 전기차는 1900년대 전후에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동력 시스템이 등장하고, 1920년대 미국 텍사스에서 원유가 대량으로 발견되며 휘발유 가격이 낮아지자 가격 경쟁에서 밀려 자취를 감췄다.
1990년대에는 환경오염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면서 전기차가 다시 돌아왔다. 휘발유 차량이 배출하는 매연과 온실가스 등이 환경오염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1996년 전기차 EV1을 만들어 출시했다(출시 당시에는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2010년 무렵부터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한 국제적인 환경규제가 강화되면서 내연기관차에 대한 판매 제약이 커졌다. 반면 전기차의 인기는 높아지고 있다. 노르웨이는 2025년부터, 네덜란드는 2030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도 2040년부터 내연기관차 판매를 중단할 계획이다.
모든 분야에서 친환경으로의 전환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전기차가 새로운 모빌리티 시대를 열고 있다. 탄소배출을 줄여 인간과 환경을 살릴 수 있는 지속가능한 교통 수단으로 계속 성장해 나갈 것이다.
※필자소개
김규옥. 한국교통연구원 4차산업혁명교통연구본부 미래차교통연구센터장이다. 전기차, 자율주행차 등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에 대한 법·제도를 세우고 표준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