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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 & Fun] 의자 없앤 사무실 잘못하면 건강 망친다


기자는 작년 11월 서서 일하기를 처음 시도했다. 가장 먼저 마주한 장애물은 책상이었다. 서서 일하려면 모든 사무기구의 위치가 함께 높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서서 일하기 전용 책상은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적당한 높이의 접이식 테이블을 구입해 책상 위에 놓고 본격적으로 서서 일하기 시작했다.

첫째 날.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 혼자 일어서 있자니 좀 민망했다. 게다가 서서 일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우선 발바닥과 다리가 아팠다. 물론 하루 종일 서 있었던 것은 아니다.

중간에 적절히 쉬어가며 일했다. 몇 달 동안 서서 일하고 있는 회사 동료에게 물어보니 바닥이 푹신한 실내화와 무릎 보호용 매트를 사용하면 한결 낫다고 했다.

이후 신발을 갈아 신고 매트도 깔았지만 다리, 특히 무릎 부위가 계속 아팠다. 처음에는 50분을 일하고 10분을 앉아서 쉬는 등 규칙적으로 쉬어주려 했지만 바쁜 일에 쫓기다 보면 그러기 쉽지 않았다. 몸이 불편하다 보니 자꾸 서 있는 자세도 삐딱해져 갔다. 결국 기자는 1주일을 못 버티고 ‘일시 휴식’에 들어갔다.

‘처음이라 몸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무릎 통증이 나아지자 다시 서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서 있기에 집착하지 않고 몸이 불편하면 그때그때 자리에 앉아서 일했다. 버틸만 했지만 여전히 다리는 아팠고, 딱히 업무 효율이 높아진 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중요한 일을 할 때 집중하기 어려웠고, ‘내가 왜 사서 고생을 할까’라는 생각과 함께 마치 벌을 서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약 1주일을 더 서서 일한 기자는 서서히 회의감이 들었다. ‘이건 뭔가 아닌 것 같은데….’


아파서 포기한 서서 일하기
 
정말 서서 일하는 게 건강에 좋은 걸까. 연구 결과를 검색해 봤다. 하지만 서서 일하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는 찾기 어려웠다. 오히려 건강에 문제를 불러일으킨다는 논문이 더 많았다. 미용사나 교사처럼 서서 일하는 시간이 긴 직업군에서 많이 나타나는 하지정맥류가 대표적이다. 하지정맥류는 다리에 있는 정맥이 늘어나서 피부로 돌출된 것으로, 혈관 압력이 높아져서 판막이 손상될 때 혈액이 역류하면서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

기자가 시도한 것 같은 ‘극단적인’ 서서 일하기는 하지정맥류에 걸릴 위험을 높인다. 김현주 이화여대 목동병원 직업환경의 학과 교수팀이 2012년 국제학술지 ‘인간공학’ 2월호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쉬지 않고 서서 일하는 시간이 하루 4시간 이상일 경우 하지정맥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남자는 약 8배, 여자는 약 3배 가량 높아진다(doi:10.1080/00140139.2011.582957). 한국근로자 2165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다. 서서 일하면 다리 근육에 피로가 쌓이고, 다리 관절에 가해지는 부담이 커진다. 캐나다 직업건강및안전센터는 장기간 서서 일할 경우 요통이 발생하기 쉬우며(허리에 좋다는 주장은 낭설이다!) 혈액순환이 나빠질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또 네덜란드 에라스무스의대 알렉스 버도프 교수팀은 임산부가 일주일에 25시간 이상 서서 일하면 태아의 발달이 늦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직업환경의학’ 2012년 6월 27일자에 발표하기도 했다(doi:10.1136/oemed-2011-100615).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임신한 네덜란드 여성 4680명을 상대로 조사했더니, 일주일에 25시간 이상 서서 일한 여성들이 낳은 아이들은 전반적으로 머리둘레가 3% 정도 더 작았고, 몸무게도 148~198g가량 적게 태어났다. 조산하는 경우도 더 많았다.
핵심은 서는 게 아니라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는 것’

서서 일하기 유행의 진원지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IT기업들이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 등이 서서 일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주목을 받았다. 여러 언론 보도에서 근거로 언급하는 연구 결과를 보면, 오랜 시간 ‘앉아 있는 게 건강에 나쁘다’는 주장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럼 서서 일하는 게 좋겠구나”라고 비약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는 연구팀의 의도를 곡해한 결과다.

직장과 가정에서 의자나 침대, 소파를 이용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2000년대 이후 하루 중 앉아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에 따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연구 결과가 많이 발표되고 있다. 이런 연구들은 모두 ‘앉아서 지내는 시간’에 주목한다. 유승호, 장유수 강북삼성병원 교수팀도 국제학술지 ‘간장학’ 2015년 10월 15일자 온라인판에 하루 중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비알콜성지방간에 걸릴 가능성이 최대 36%까지 높아진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doi: 10.1016/j.jhep.2015.07.010).

연구팀은 2011~2013년 강북삼성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13만9056명의 자료를 분석했다. 업무 환경에 대한 세부적인 설문조사와 함께 간 초음파 검사 결과를 비교했는데, 3만9257명이 비알콜성지방간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알콜성지방간은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의 간에 지방이 정상보다 많이 쌓여 있는 증상으로, 심해지면 간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팀은 건강검진에 참여한 사람들을 평소 신체활동 정도에 따라 건강증진형(주 3회 이상, 하루 60분 이상 격렬한 운동), 최소형(주 3회 이상 운동, 하루 20분이상 격렬한 운동), 비활동형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이들이 하루에 앉아있는 시간과 비알콜성지방간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결과를 비교했더니, 비활동형이면서 하루 10시간 이상 앉아서 지내는 사람은 건강증진형이면서 하루 5시간 이하로 앉아 있는 사람에 비해 비알콜성지방간을 앓을 확률이 36%나 높았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다른 모든 변수를 제거하고 앉아서 지내는 시간만을 비교했을 때였다. 하루 10시간 이상 앉아 있는 사람이 5시간 이하로 앉아서 지내는 사람에 비해 유병률이 9%가량 높았다. 활동량과 관계없이 오래 앉아 지내면 비알콜성지방간에 걸릴 위험이 소폭이지만 높아진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체지방 비율이 증가하고, 지방간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일하는 자세를 자주 바꾸자

‘오래 앉아 있는 것도 안 좋고, 서서 일하는 것도 나쁘다면 대체 어쩌란 말야!’라는 생각이 든다면, 잠시 진정하자.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터에서 앉아 있는 것과 서 있는 것을 적절히 섞어주는 것이다. 너무 단순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지키기 쉽지 않다.

미국 비영리의료기관 헬스파트너스 연구팀은 흥미로운 실험 결과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가 발행하는 학술지 ‘만성질환예방’ 2012년 10월 11일자에 발표했다(doi:10.5888pcd9.110323). 주로 앉아서 일하는 사무직 직장인 34명을 대상으로,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는 근무 형태가 앉아서만 일하는 경우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한 것이다. 2011년 3월부터 5월까지 7주 동안 이어진 실험에서 24명은 첫 주와 마지막 2주를 제외한 4주 동안 높낮이 조절 책상을 이용해 자세를 바꿔가며 일했고, 10명은 계속 앉아서 일했다.

연구팀은 7주 동안 이들의 활동을 기록하는 한편, 1주와 5주, 7주차 때의 건강과 심리상태에 대해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분석 결과, 높낮이 조절 책상을 쓰면서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한 사람은 앉아 있는 시간이 이전보다 하루 평균 66분 줄었다. 그리고 등 위쪽 통증과 목 통증이 54%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전반적인 기분 상태도 나아졌다. 하지만 이런 효과는 원래대로 앉아서 일하기 시작하자 2주 안에 모두 사라졌다.

결국은 ‘중용’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서서 일하는 사람이나 앉아서 일하는 사람이나 주기적으로 몸을 움직여주고, 자세를 바꿔주는 것이 건강에 좋다. 꼭 값비싼 높낮이 조절 책상을 구입하지 않더라도, 일하면서 자주 돌아다니거나 스트레칭을 해 주면 좋다. 김영기 양산 부산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가만히 서 있는 자세는 근육 긴장을 지속시키고, 혈액순환이 정체된다”며 “잠시라도 걸어 다니거나 움직이는 빈도를 높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근로자의 건강을 배려하는 직장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 김현주 이화여대 목동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앉아서 일하든 서서 일하든, 선택할 수 없는 자세로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며 “압좌식 의자나 높이 조절이 가능한 작업대 등을 제공하고, 피로를 최소할 수 있는 적절한 휴식 공간과 시간을 제공하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처음 호기롭게 서서 일하기를 시도한 기자는 2주 만에 중단하면서 너무 쉽게 포기한 것 같아 괜히 민망했다. 하지만 이제 서서 일하지 않는 이유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됐다. 대신 일하는 동안 좀 더 자주 움직일 생각이다. 이것도 참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편집자 후기

이 기사를 쓰고 한 달 정도 최 기자를 봤는데 전보다 자주 움직인 것 같진 않았다. 사람 습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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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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