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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기차 성능의 핵심 배터리의 미래

전력을 저장하는 배터리가 있어 전기차가 탄생할 수 있었고, 배터리가 작아지자 전기차는 더 많은 배터리와 함께 더 오래 달리게 됐다. 배터리 가격 하락은 전기차 대중화를 이끌었다. 전기차의 역사는 배터리 발전과 함께했다.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의 24%를 만드는 LG에너지솔루션 기술연구원의 윤효정 책임연구원을 만나 배터리 기술과 산업의 미래를 물어봤다.

 

Q. 현재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리튬이온배터리의 수명을 높이는 장수명 배터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전기차를 구동하는 배터리 전체를 ‘팩’이라고 한다면, 그 안에는 수많은 ‘모듈’이 들어있고, 모듈 내부를 구성하는 게 ‘셀’이다. 셀은 실질적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최소 단위다. 여기에는 다양한 구성 요소가 들어 있다. 리튬이온배터리를 예로 들면 리튬을 공급하는 양극, 양극에서 공급된 리튬이온을 받는 음극, 리튬이온이 헤엄치게 도와주는 전해질, 양극과 음극이 만나지 못하게 막는 분리막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 배터리 4대 구성요소라고 한다.
배터리의 수명을 높이기 위해서는 소재 하나하나부터 팩에 이르는 모든 단계에서 연구가 필요한데, 나는 셀 상태에서 배터리 성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배터리의 수명은 전기차 산업에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다. 배터리 수명이 10년이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 실제 수명은 훨씬 길다. 다만 전기차 배터리 교체 주기가 10년가량이다 보니 이런 말이 나온다. 자동차는 다른 가전제품처럼 작은 전류로 일정하게 구동되는 것이 아니라 운전자가 원할 때 순간 출력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 보니 일정 수준 이상의 성능을 지녀야 안전한다고 자동차 업계가 합의한 수치가 필요한데, 그게 80%다. 이 말은 배터리 교체 주기가 됐다고 수명이 0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장수명 배터리 프로젝트는 수명이 80% 이하로 떨어지는 속도를 최대한 늦춰 더 효율적이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연구다.

 

Q. 현재 전기차 배터리 개발 수준은?


상용화된 전기차의 주행성능은 내연기관차와 비슷한 수준까지 도달했다. 성능 좋은 모델은 1회 충전에 500km 후반대의 주행거리가 나온다. 2017년 미국 에너지부에서 주도하는 ʻ배터리 500’ 컨소시움에 따르면 차세대 배터리 에너지 밀도 목표치는 1kg당 500Wh(와트시·1W의 전력을 1시간 생산한 전력량)다. 한 번 충전하면 800~1000km를 달릴 수 있는 정도다.
꽤 좋은 성능인 5000mAh 용량의 배터리를 가진 스마트폰 한 대의 소비전력이 0.02kWh 정도인데 테슬라 모델3 롱레인지 모델의 경우 80kWh의 배터리를 탑재하고 달린다. 에너지 측면에서 수천 배 수준으로 발전한 셈이다.
다만 이제부터는 에너지 밀도의 싸움이다. 자동차에서 배터리를 위해 내줄 수 있는 공간의 크기에는 한계가 있다. 내연기관차의 경우 기름통과 엔진을 돌리는 수많은 동력장치가 있어 부품이 많고 복잡한데 반해, 전기차는 배터리팩과 모터만 있으면 굴러갈 정도로 비교적 단순하다. 지금은 배터리가 공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소형화해 차체 무게를 줄이면서도 성능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다.


Q. 배터리 성능을 더 높이려면?


셀 안에서는 기존의 4대 구성요소에 기존보다 더 효율이 좋은 새로운 소재를 찾아야 한다. 셀이 완성되면 이를 연결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셀을 마치 건전지를 연결하듯 이어붙이면 모듈이 되고, 모듈을 서로 연결하면 팩이 된다. 하나의 거대한 셀을 만드는 대신 작은 셀들을 이어붙여 팩으로 만드는 이유는 배터리 구동 환경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모듈은 구동 환경을 조절하는 배터리관리시스템(BMS)과 온도 조절 장치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되면서 작동한다. 이를 적절히 조율하는 것이 배터리 성능과 직결된다.
아예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있다. 작년 말 테슬라가 ‘셀 투 팩(cell to pack)’으로 모듈을 생략하는 방식의 특허를 냈다. 아무리 얇게 만들어도 셀-모듈-팩 방식은 케이스에 케이스를 이중으로 씌우기 때문에 소모되는 공간이 있다. 중간 단계를 하나 생략해 공간을 줄이려는 노력이다.

 

Q. 곧 전기배, 전기비행기도 나오나?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강화 등 유럽을 시작으로 친환경 붐이 일어나면서 첫 번째 타깃은 자동차였다. 일상에서 가장 많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원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온 전기차는 주행거리도 짧고 크기도 작았다. 그런데 이제는 포르쉐 타이칸 등 ‘슈퍼카’ 전기차가 나오고 있다.
같은 논리로 이제 배와 비행기도 논하는 수준이 됐다. 다만 두 운송수단의 발전 상황은 많이 다르다. 전기배는 비교적 구현 가능성이 높다. 스웨덴이 2018년 운항에 성공한 전기배 ʻ스테나 주트란디카’가 대표적이다. 당시 전기배는 5MWh(메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팩을 바닥에 장착했다. 축구장만한 크기인데, 얼마나 컸으면 개발자 본인들이 배터리 ‘파크(park)’라고 이름 붙였다. 다소 무거운 배터리라도 선박의 바닥에 깔면 되니 배는 육해공 중 공간제약이 가장 덜하다.
반면 비행기는 배나 자동차보다 훨씬 성능이 좋은 배터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미국 테슬라 모델3의 경우 1kg당 260Wh의 에너지를 가진 배터리를 사용한다. 현재 항공유의 에너지 밀도인 1kg당 12kWh와 겨루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비행기가 추운 하늘을 난다는 데 있다. 여객기가 날아가는 수km 상공의 기온은 영하 40℃ 정도다. 그런데 리튬이온배터리는 저온에 취약하다. 다들 겨울 한파에 스마트폰 배터리가 갑자기 쭉쭉 닳는 경험을 한 적이 있지 않나. 날씨가 추우면 리튬이온배터리 효율이 낮아져 전기차의 주행거리가 30~40% 감소한다(오죽하면 일부 운전자들은 배터리 효율이 가을에만 좋다며 전기차를 ‘가을전어’라고 부른다). 영하의 조건에서 날아야 하는 비행기에 현재의 리튬이온배터리를 적용할 경우 효율이 극도로 낮아진다. 이때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이 전고체 배터리다.

 

Q. 그렇다면 전고체 배터리의 시대가 올까?


전고체 배터리는 기존 양극과 음극을 연결하는 전해질이 액체가 아닌 고체로 된 배터리를 말한다. 액체 전해질보다 온도의 영향이 적고 폭발이나 발화 위험성도 낮아 차세대 배터리 후보로 지목된다.
다만 아직 전고체 배터리는 상용화 단계에 이르지 못했고, 소재 연구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표적인 후보 물질의 종류는 황화물계, 산화물계, 고분자계로 나뉜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연구된 소재로 평가받는 것은 황화물계로 전체 후보 물질 관련 특허의 45%를 차지한다. 다만 대부분의 특허를 일본 토요타가 가지고 있어 일부 연구에 제약이 있다.
황화물계는 전도도가 높고 셀 성능이 우수한 재료였기 때문에 전고체 배터리 연구의 초석을 다지는 데 쓰였다. 다만 수분에 취약해 공기 중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산화물계 재료는 전기화학적 안전성이 황화물계에 비해 더 높지만 크기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고분자계의 경우 높은 온도에서만 구동이 잘 되는 편이다. 아직은 특정 물질이 주도권을 가져가는 단계는 아니다. 모든 소재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예선전을 치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는 전고체 배터리의 시대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에 있다. LG에너지솔루션에서 리튬황배터리 드론을 개발하는 등 일부 개발 사례가 있는 상태다. 전고체 배터리는 장점이 많아 10년 이내에 리튬이온배터리를 대체하는 수준으로 발전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때가 되면 지금 자동차 옵션을 달리하듯 배터리 종류도 옵션에 따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Q. 전기차 배터리의 친환경성에 대한 논란이 있던데.


리튬이온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가 상용화되면서 수명 교체 주기가 다가오는 폐배터리 문제를 걱정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로서의 임무가 끝나도 70~80%의 용량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에너지 저장 장치(ESS)용으로 전환해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평가 지표나 기준이 필요하다. 전기차 배터리는 어떻게 사용했는지와 교체 시기에 따라 잔존수명이 각기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의 정확한 ʻ스펙’을 모른다면 폐배터리 자체를 분해해 리튬, 코발트, 니켈, 망간 등 희귀금속 원재료 자체를 추출해 재활용할 수 있다. 캐나다, 미국, 독일 등에서는 이미 리튬이온배터리를 재활용하는 기업들이 2016년 이후 설립돼 운영 중이다.

 

Q. 개발자로서 최종 목표는?


‘전기차 수명=배터리 수명’이라는 편견을 없애고 싶다. 내연기관차를 살 때 엔진이나 구동 모터가 고장날 수는 있어도 기름통이 고장날까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모터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도 문제없는 장수명 배터리를 개발하고 싶다. 최종 목표는 총 주행거리 160만 km를 뛰어넘고 싶다.
또 전기차의 특성상 출력이 굉장히 중요한데, 힘이 좋은 자동차를 만들려면 배터리 수준에서부터 출력을 관리해야 한다. 특히 트럭처럼 차체가 무겁고 짐을 잔뜩 실은 채 가파른 언덕길을 주행해야 하는 경우, 높은 출력과 이를 장시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특수 화물용 배터리도 연구 개발하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차량 종류를 따지지 않고 모든 ʻ바퀴 달린 것’에 무리 없이 쓸 수 있는 배터리를 개발하고 싶다.
나중에는 내연기관차가 주유소에 들러 주유를 하듯 전기차도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충전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아직까지는 완속충전만 한 배터리와 무리하게 급속충전을 한 배터리 사이에 어쩔 수 없는 성능 차이가 존재한다. 빨리 충전해도 손상되지 않는 배터리를 만들고 싶다.

2021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윤효정 LG에너지솔루션 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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